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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은호 님의 서재입니다.

파인딩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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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나은호
작품등록일 :
2012.11.19 12:30
최근연재일 :
2012.12.26 01:01
연재수 :
5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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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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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6
글자수 :
242,379

작성
12.11.28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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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파인딩 스타(3부) - 우츠보 공원(1)

DUMMY

2008년 오사카 대학교 1학년 가을학기. 한수지는 교환학생 자격으로 일본에 유학을 왔다. 그녀의 전공은 호텔관광학이었다. 호텔리어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나라의 문화체험과 외국어 실력이 필수였다. 수지는 학기가 시작되기 한 달 전부터 일본으로 건너와서 짐을 풀고 마음도 풀어 놓았다. 주로 인터넷 카페에서 사귄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다니며 일본이라는 나라를 오감으로 체험하고 새로운 문화의 매력을 마음껏 즐겼다.


일본은 낯선 곳이 아니었다. 가족과 함께 두 차례나 여행을 왔었고 중학교 때부터는 일본만화에 푹 빠져 살았다. 20세기 소년, 나루토, 원피스, 너에게 닿기를, 바사라, 꽃보다 남자. 일본만화 특유의 상상력과 스케일에 매료되었고 순정만화에도 고스란히 순정을 바쳐야 했다. 한수지는 그저 만화가 좋아서 일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중3 때부터 유명한 만화들을 원서로 읽었고 웬만한 애니메이션 영화도 모두 통달해서 자연스럽게 일본어에 능숙해졌다.


그녀는 오사카 대학생활에 빠르게 적응했다. 일본어가 유창하고 일본 학생들과도 잘 어울려서 가끔은 그녀가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잊어버릴 정도였다. 투명하게 빛나는 외모 덕분에 인기가 단연 최고였다. 수지가 있는 곳은 어디나 그녀의 아우라가 느껴졌다. 쓸쓸하고 황량한 거리도 그녀가 있으면 아름답고 낭만적인 거리로 보였고 비오는 날 외로움이 사무치는 거리도 그녀가 있으면 한 폭의 예쁜 수채화로 변했다.


‘일본의 이해’라는 교양과목 수업시간이었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지금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이 누구인지를 물어보았다. 지금 만나는 사랑이 보고 싶다는 학생도 있었고 헤어진 사랑이 보고 싶다는 학생도 있었다. 엄마가 보고 싶다는 학생도 있었고 연예인이 보고 싶다는 학생도 있었다. 집나간 고양이가 보고 싶다는 학생도 있었고 시베리아 호랑이가 보고 싶다는 학생도 있었다. 수지에게 답변순서가 돌아오자 남학생들의 관심이 일제히 쏠렸다. 제발 마음에 품고 있는 남자가 없기를 간절히 바라는 눈치였다.


“이마 아이따이 히토가 나이데스.”


지금 보고 싶은 사람이 없다는 수지의 말에 남학생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선생님은 고대일본의 민간설화를 소개하면서 누군가를 간절히 그리워하면 그 사람에 대한 징표를 보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일주일 안에 세 번 연속으로 징표를 보게 되면 하늘이 만남을 허락하는 것이라고 했다.


‘참 예쁜 이야기네.’


일본설화가 한수지의 의식을 서서히 파고들기 시작했다. 특별히 보고 싶은 사람은 없었지만 하늘이 만남을 허락한다면 누구를 그리워하면 좋을까. 문득 은호가 생각이 났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참 잊기 힘든 존재이다. 은호에 대한 좋은 기억과 아픈 기억이 마음 한 구석에 언제나 뒤엉켜 있었다.


어쩌다 은호가 생각나더라도 마지막에 비참하게 외면당한 기억은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서로 아무런 오해없이 헤어졌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랬더라면 자꾸 이렇게 마음이 복잡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인생의 책장이 잘 안 넘겨지는 기분이었다. 다시 한번 만나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수업이 끝나고 도서관에 가는 길이었다. 며칠 사이에 나뭇잎 빛깔이 눈에 띄게 바랬다. 캠퍼스 전체가 가을의 품 안에서 차분하게 가라앉고 있었다. 운동장의 열기도 시들해 보였다. 항상 에너지가 넘쳐났던 한국 대학교의 캠퍼스가 그리워지기도 했다. 일본 학생들은 ‘계절이 옷을 갈아입으면 생각도 갈아입어야 한다.’라는 격언을 성실하게 실천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수지도 가을의 우수에 물들고 있었다. 문득 사랑을 하고 싶어졌다. 그리움에 대한 설화에 너무 몰입되었던 탓일까. 또다시 은호 생각이 났다. 재작년 크리스마스 이브 때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만일 다시 만난다면 무슨 이야기를 나눠야 할까. 누가 누구를 먼저 용서해 주어야 할까. 그 애도 가끔 나를 생각하고 있을까.


‘내가 왜 자꾸 이런 생각을 하지.’


일본의 가을이 너무 외롭게 느껴졌다. 결국 그날 밤 꿈에서 은호를 보았다. 은호가 귀엽게 생긴 강아지를 쓰다듬고 있었다. 은호는 강아지를 수지에게 안겨주었다. 수지가 끌어안으려고 하자 강아지가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수지는 깜짝 놀라서 강아지를 떨어뜨렸고 강아지가 순식간에 무서운 개로 변해버렸다. 덩치도 호랑이보다 훨씬 커버린 것 같았다. 개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달려들자 은호는 재빠르게 수지를 감싸 안았다. 개가 은호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은호는 고통을 참으면서 끝까지 수지를 붙들고 있었다.


수지는 무서워서 울부짖다가 악몽에서 깨어났다. 꿈이 너무 생생하고 공포스러웠다. 하늘이 무슨 징표를 보여준 것일까. 은호는 죽기를 각오하고 자신을 지키려고 했다. 은호는 현실에서도 그러지 않았을까. 왠지 우리의 어긋난 헤어짐에 다른 사연이 있었을 것 같았다. 계속해서 물고 늘어지는 생각에 밤잠을 설쳤다. 완전히 잊었다고 마음먹었는데 왜 자꾸 은호가 생각나는 것일까.


‘우리가 정말 인연이라면 하늘이 만나게 해주시겠지.’


금요일 오후에 대학재단에서 설립한 오사카 호텔로 견학을 갔다. 호텔관광학과 학생들에게는 오사카 호텔에서 체계적으로 현장교육을 받을 수 있는 특전이 주어졌다. 오사카 호텔의 외관은 다소 평범했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니 모든 것이 세련되고 깔끔한 느낌이었다. 지배인이 직접 나와서 호텔을 소개하고 객실, 레스토랑, 연회장, 부대시설을 차례로 구경시켜 주었다. 한수지는 벌써 호텔리어가 된 것처럼 기분이 들떴다. 자신이 오사카 대학교 교환학생이란 사실이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게 느껴졌다.


갑자기 호텔로비가 소란스러워졌다. 수많은 인파가 호텔로 들이닥치고 있었다. 지배인이 잠시 후에 기자회견이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내일 K-1 월드맥스 결승전에 출전하는 선수들이라고 했다. 관심이 있으면 기자회견을 구경하고 가라고 했다. 학생들은 횡재라고 하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학생들은 순식간에 격투기 팬클럽으로 둔갑했다. 마사토, 쁘아까오, 앤디 사워, 아투르 키센코와 같은 선수들은 학생들의 열띤 논쟁을 통해서 벌써부터 결승전을 치르고 있었다. 수지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들이었다. 학생들은 마사토라는 자국선수의 우승을 간절하게 염원하는 것 같았다.


팬들의 박수갈채 속에 선수들이 한 명씩 기자회견장에 나타났다. 마사토가 입장할 때는 호텔이 무너져 내릴 정도로 환호성이 대단했다. 선수들 모두 영화배우처럼 잘 생기고 카리스마가 넘쳤다. 일본에서는 격투기 열기가 정말 뜨거운 것 같았다. 세계적인 격투기 축제에 한국선수가 없는 것이 너무 안타깝게 느껴졌다.


‘참. 은호도 격투기를 하겠다고 했었지.’


은호가 태권도부 학생들을 제압했던 이야기가 기억났다. 은호는 신체반응 감각이 남달라서 격투기에 자신 있다고 말했다. 그 친구도 지금 격투기를 하고 있을까. 이런 곳에서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은호 생각을 하다 보니 이것도 징표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에 꿈에서 한 번 느꼈고 지금이 두 번째였다.


‘정말 징표를 세 번 보면 은호를 만나게 될까.’


왠지 일본설화가 현실이 될 것 같았다. 다음 징표는 언제 어떻게 나타날까. 혹시나 놓쳐버린 징표가 있을까봐 며칠사이의 일들을 하나하나 수색해 보기도 했다. 문득 실소가 새어져 나왔다.


‘내가 억지로 짜맞추고 있는 것 좀 봐.’


은호와 운명적인 재회를 하고 싶은 마음이 왜 이렇게 간절한 것일까. 은호가 정말로 보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유학생활에 지친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냥 상황을 재밌게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징표도 억지로 만들어내지 않기로 했다. 무심히 살다가 섬광처럼 마주쳐야 진짜 징표가 아닐까. 아무튼 이렇게 일본설화를 체험한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일이었다.


“지텐샤 노리니 이꼬우까.”


일요일 아침에 룸메이트가 자전거를 타러 가자고 했다. 목적지는 우츠보 공원이었다. 아침거리는 깨끗하고 상쾌했다. 자전거로 30분 정도 달리자 우츠보 공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울창한 나무가 주변도심을 완벽하게 차단하고 있었다. 도심 한복판에 공원을 만든 것이 아니라 도시가 생겨나기 전부터 숲이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지나는 길 주변에는 형형색색의 꽃들이 풍성하게 피어있었다. 가을꽃이 이렇게 다양한지 신기할 정도였다. 우츠보 공원은 한 마디로 숲과 화단의 환상적인 조화였다. 자전거를 타고 기나긴 단풍나무 사잇길을 관통하는 기분도 정말 황홀했다.


자전거를 타고 시냇물처럼 만들어 놓은 연못을 지날 때였다. 벤치에 앉아있는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운동복 차림에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후드도 쓰고 있었지만 멍들고 부은 얼굴을 완전히 가리지는 못했다. 한수지는 너무 놀라서 하마터면 자전거에서 넘어질 뻔 했다. 은호의 느낌이 가슴을 강렬하게 관통하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언제가 은호가 자기 때문에 초주검이 될 정도로 구타당했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후드티 남자 때문에 드넓은 우츠보 공원이 순식간에 아이들 놀이터 만큼 작은 공간으로 변해버렸다. 어딜가나 그 남자의 시선이 느껴졌다. 공원은 더 이상 지상낙원이 아니었다. 친구를 재촉해서 서둘러 공원을 빠져나왔다. 공원이 멀어질수록 마음이 안정을 되찾고 있었다.


이것도 은호에 대한 징표였을까. 최근 들어 은호에 대한 강렬한 느낌이 벌써 세 번째였다. 일주일 사이의 세 번의 징표. 굳이 일본설화가 아니더라도 범상치 않은 일이었다. 하늘에서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수지가 공원을 다녀가고 1시간이 지났다. 후드티 남자는 벤치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뭔가 어려운 결단을 내린 것 같았다. 굳은 표정에서 얼굴의 상처보다 더 깊은 마음의 상처가 묻어났다. 그 남자는 공원입구로 걸어갔다. 걸음걸이도 생기가 없고 애처로웠다. 공원이 아름다워서 더 그렇게 보였다. 때로는 아름다움이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기도 한다. 남자는 공중전화 부스로 들어갔다.


“관장님이신가요.”


후드티의 남자는 바로 나은호였다. 그는 강시춘 관장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말없이 떠난 뒤로 처음 연락을 하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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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파인딩 스타(4부) - 격투기 카페(1) +2 12.12.08 1,190 9 11쪽
45 파인딩 스타(3부) - 오사카의 밤(3) +9 12.12.08 1,079 12 9쪽
44 파인딩 스타(3부) - 오사카의 밤(2) +3 12.12.07 1,037 10 8쪽
43 파인딩 스타(3부) - 오사카의 밤(1) +4 12.12.06 1,105 14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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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인딩 스타(3부) - 우츠보 공원(1) +1 12.11.28 1,285 1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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