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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시아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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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r
작품등록일 :
2011.11.13 22:52
최근연재일 :
2014.12.15 00:37
연재수 :
1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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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88,474

작성
13.09.03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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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시아 연대기 - 34.출진(1)

DUMMY

다음 날 새벽, 어제 밤부터 흩날리던 눈발은 겨울비가 되어 아키텐 전역에 내리기 시작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로 알리아의 도로는 물론 온 길가가 진창으로 변해버렸다. 싸늘한 겨울비를 맞은 병사들은 얼음처럼 꽁꽁 얼어붙은 흉갑을 입은 채 자리에 서서 덜덜 떨고 있었다.

“출진하기엔 최악의 날씨네......”

카린이 광장에서 덜덜 떨고 있는 천여명의 병사들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이런 날씨면 체력이 두 배는 빨리 소모될 거야.”

“화약이 비에 젖어버리면 머스킷도 무용지물이 될 겁니다.”

로렌스가 근심 가득한 낯빛을 띠고 카린에게 말했다.

“일단 날씨가 갤 때까지만이라도 출전을 늦춰야 하지 않을까요?”

로렌스의 말에 카린은 심각한 얼굴로 영빈관 쪽을 응시했다. 프레이르가 머무르고 있는 장소였다. 프레이르는 아직까지 광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그래야겠지만......”

카린은 로렌스의 말이 옳다고 여겼지만 프레이르가 출전을 늦추자는 제안에 귀를 기울일 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프레이르는 현재 완전히 이성을 잃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폰터프랙트 요새가 함락될까 전전긍긍하고 있는 프레이르에게 “출전을 늦추자”라고 말할 정도로 간이 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루크조차도 프레이르를 설득할 자신이 없을 정도였다.

“아마 안 되겠지.”

카린이 흐린 날씨만큼이나 음울하게 말했다.

“그런 상식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상태였다면 애초에 병사들을 소집하지도 않았을 거야.”

카린의 말에 로렌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잡담은 다 끝났나요?”

갑자기 그들의 등 뒤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루크였다.

“프레이르가 곧 나올 거예요, 플레어 양.”

루크가 카린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 출전할 준비를 하세요.”

루크의 말에 로렌스는 인사를 한 뒤 부랴부랴 종군 목사들이 모인 곳을 향해 떠났다. 그리고 그는 마치 병사들의 무사귀환을 비는 기도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처럼 병사들에게 성호를 그려가며 기도를 올렸다.

“저라면 말조심할 거예요, 플레어 양.”

루크가 카린을 바라보지 않은 채 흘러가듯이 말했다. 그는 로렌스와 그 앞에서 무릎을 꿀은 채 기도를 올리는 병사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무슨 뜻이야?”

카린이 조금 날카롭게 물었다.

“무슨 뜻인지는 플레어 양이 더 잘 알지 않나요?”

여전히 카린에게서 눈을 돌린 채 루크가 대답했다.

“프레이르를 정신 나간 것처럼 말하는 것 말이에요.”

루크의 말에 카린이 그를 노려보았다.

“안 그래도 병사들이 겁을 먹고 있는데 총사령관의 최측근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부정적인 이야기만 하면 병사들이 동요한다는 것도 모르나요?”

루크의 말에 카린이 대꾸했다.

“돈 많은 귀공자로만 생각했는데 꽤나 용감하네. 감히 나한테 그런 소릴 하다니 말이야.”

카린이 내뱉듯 말했다.

“프레이르에게 제대로 된 충고를 해줄 정도로 용감하진 않은 것 같지만 말이지.”

카린의 말에 이번에는 루크가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 말은 제가 겁쟁이라는 뜻인가요?”

“그런 말 한 적 없어. 하지만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굳이 부정하진 않을게.”

카린이 잔뜩 비꼬며 루크에게 말했다.

“전 겁쟁이가 아닙니다. 싸워보기도 전부터 겁을 먹고 병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당신이야말로 겁쟁이죠.”

루크가 카린을 비난했다. 그러자 카린은 코웃음을 쳤다.

“어려가지고...... 아직 전투란 걸 본 적도 없는 코흘리개가 지금 내 앞에서 전투를 말하는 거야?”

“어리다고 전투를 말하지 말란 법은 없죠. 오히려 나이 먹은 사람들이야말로 언제나 경험을 핑계 삼아서 두려움을 감추려 하고 말이죠.”

루크가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받아치자 카린은 다시 콧방귀를 뀌었다.

“난 너희가 엄마에게 젖 달라고 징징거리고 있을 때부터 전쟁을 해왔어. 너희들이 살아온 세월보다 더 많은 시간을 전쟁을 하면서 보냈지. 당신 다른 사람과 싸워 본 적 있어?”

“결투라면......”

“그런 점잔 떠는 싸움 말고. 서로 진짜 죽이는 싸움 말이야.”

카린의 말에 루크는 말문이 막혔다.

“왜 대답을 못 하지? 있어? 없어?”

“아직은......”

카린이 작게 코웃음을 치며 루크를 비웃었다.

“흥... 결투라니...... 어디 두고 보자고.”

“자꾸 그런 식으로......”

카린의 빈정거림에 루크가 뭐라 반박하려 했다. 하지만 그는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어느샌가 프레이르가 호위 기사들을 이끌고 광장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전하.”

에밀이 프레이르에게 경례를 올렸다.

“모두 준비되었습니다.”

에밀의 말에 프레이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프레이르의 얼굴을 차가운 겨울비로도 식혀지지 않는 화톳불처럼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마치 열병에라도 걸린 것 같은 안색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프레이르는 흉흉한 안광을 내뿜으며 불길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바다와도 같이 푸른 눈동자는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늘 웃음기가 머물러 있던 눈가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지난 밤 한숨도 자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프레이르는 가신들의 경례를 받으며 광장의 한가운데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둘러싼 병사들을 향해 외쳤다. 병사들은 추위에 덜덜 떨고 있었다.

“제군들!”

프레이르가 외쳤다.

“신화에 존재했던 백만의 용사보다도 난 그대들을 더욱 믿는다.”

프레이르는 이렇게 말하며 폰터프랙트가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신과 국왕 폐하를 거역한 잔당들이 이곳 아키텐을 위협하고 있다. 그들은 나를 협박하여 신의 뜻조차 반하려 하고 있다. 과연 이것이 용서받을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프레이르의 물음에 병사들 중 몇몇이 산발적으로 “반란군을 죽여라!”라고 외쳤다. 주로 프레이르와 함께 수도에서부터 따라온 친위대였다. 하지만 아키텐의 징집병들과 용병들은 프레이르의 연설을 말없이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뼛속까지 얼어붙는 것 같은 추위에 그들은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병사들의 반응은 냉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프레이르 역시 곧바로 병사들의 사기가 바닥까지 떨어져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백만의 용사보다 믿는다고는 말했지만 징집병들은 제대로 된 훈련조차 받지 오합지졸이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연설의 방향을 바꾸었다.

“주군의 명령에 응답하여 용감히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그대들의 용기를 믿고 나는 이제 전장으로 나아가려 한다. 반란군을 무찌르고 폰터프랙트를 해방하면 나 프레이르 드 세이비어 에인절은 아벨 신 앞에 맹세하건대 그대들에게 각자 금화 백 닢을 지급할 것이며, 공을 세운 자 스무 명을 뽑아 새로이 아키텐의 기사와 영주로 삼을 것이다.”

프레이르의 이 말에 병사들이 웅성거렸다. 주로 징집병들과 용병들이었다. 금화 백 닢은 용병이 10달 정도 싸웠을 때 받는 급료에 해당되는 거금이었다. 그 돈을 전투 한 번에 주겠다는 프레이르의 파격적인 제안에 병사들은 겨우 어느 정도 사기를 되찾았다.

프레이르는 말 안장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는 병사들에게 외쳤다.

“자, 그러니 나와 함께 가자. 반란군을 도륙하고 각자 받을 상급을 스스로 쟁취하라!”

프레이르의 말에 병사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아까보다는 훨씬 기운을 차린 모습이었다. 적어도 병사들은 한 번 전투를 치를 정도의 사기는 회복하였다.

프레이르는 루크와 아르넷에게 눈짓을 했다. 그리고 그는 그 둘과 함께 환호하는 병사들 사이로 쏜살같이 말을 몰고 달려나갔다. 그 뒤를 따라 기사들과 경기병들도 말을 타고 거리를 달려갔다.

“과연......”

카린이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무너져도 프레이르는 프레이르네.”

카린은 혼잣말을 하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리고 그녀 역시 말 위에 올라탄 뒤 프레이르의 뒤를 좇아 박차를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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