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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시아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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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r
작품등록일 :
2011.11.13 22:52
최근연재일 :
2014.12.15 00:37
연재수 :
1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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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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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88,474

작성
13.01.18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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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로라시아 연대기 - 31.카린의 조사(6)

DUMMY

사흘 뒤, 프레이르는 알리아의 시청에서 회의를 하고 있었다. 이 회의에는 알리아의 시장과 시의원들은 물론, 알리아의 교구 사제와 아키텐 전지역의 자작과 남작들이 모두 참여하였다. 프레이르가 가진 작은 왕국의 실력자들이 모두 이곳에 모였다고 할 수 있었다.

아키텐 지역의 유지뿐만 아니라 이 회의에는 프레이르와 알베로, 카린 등 프레이르의 직속 부하들도 참가하였다.

“좋아요, 좋아.”

프레이르가 시장이 제출한 치수공사 계획을 검토한 뒤 계획서에 사인했다.

“원안대로 시행하도록 하세요.”

프레이르가 시장에게 계획서를 넘기자 시장이 공손히 그 계획서를 받아들었다.

“그럼 이제 주요 안건들은 모두 처리된 건가요?”

프레이르가 일동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렇습니다, 전하.”프로이스 백작이 대답했다. 그는 알리아의 시장 다음가는 아키텐 지방의 2인자였다.

“아, 다행이네요.”

프레이르가 일동을 돌아보며 가볍게 탁자를 두드렸다.

“그럼 이번에는 제가 한 가지 안건을 올리도록 하죠.”

프레이르는 이렇게 말하며 ‘탁’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그 신호에 맞추어 회의실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문을 통해 에밀이 안으로 들어왔다.

“아니, 저 자는...”

“이건......”

“에밀......”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예상 밖의 인물이 등장하자 그들은 동요하고 있었다. 특히 탁자의 가운데에 앉은 프로이스 백작의 눈은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에밀은 바로 프로이스 백작 자신의 셋째 아들이었다.

“모두들 프로이스 씨에 대해 잘 아실 테니 소개는 생략하기로 하죠.”

프레이르가 경악에 빠진 일동을 돌아보며 말했다.

“전 이 청년을 알리아 시와 아키텐 지역의 임시감사관으로 임명할 생각입니다.”

프레이르가 말했다.

“최근 아키텐 지역의 재정이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탄원이 제게 들어왔거든요.”

프레이르의 마지막 말에 시의원들과 영주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치안대장에서 사직하고 아무 직위도 없는 20대 청년을 감사관에 임명한다는 말에 그들은 동요했다.

특히 시장은 프레이르의 말을 듣자마자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에밀은 그에게 있어서 최악의 정적이었기 때문이었다.

프레이르는 회의실 내의 동요를 모른 체하며 알베로에게 손짓을 했다. 그러자 알베로는 품 속에서 한 문서를 꺼내 낭독하기 시작했다.

“주님의 고귀함과 은총이 함께하시는 프레이르 전하.

아키텐의 백성으로서, 전하께서 이곳을 직접 방문하신 것에 대해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무한한 기쁨을 느끼고 있습니다. 레인가드 왕국의 프레이르 전하께 가장 충성된 지역으로서 저희는 이 충성심을 증명하기 위해서 언제든지 전하를 위해 피와 땀을 흘릴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설사 천사의 군대라 할지라도 저희 아키텐의 충정에는 미치지 못하리라 저희는 그리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신 전하, 전하께서 부디 너그러이 용서해주시기를 간청하며 감히 한 가지를 탄원하고 싶습니다. 전하께서 아키텐을 다스리신지 20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이곳 아키텐 백성들의 삶은 매우 곤궁해졌습니다. 이는 전하의 이름을 이용하여 그 권력을 남용하는 세력이 알리아와 아키텐을 통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알리아의 시장과 시의회 의장을 비롯한 다수의 시의원들은 주님과 전하의 뜻을 거스르며 전하께로 바쳐지는 세금을 횡령하고, 전하의 백성들을 자신의 수족처럼 부려왔습니다. 또한 그들은 전하의 충성된 백성과 가신들을 자신들의 뜻에 따르지 않는다 하여 시의회에서 내치고, 타락하고 방종한 자들로 그들의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프레이르 전하. 저는 보잘 것 없는 종에 불과하지만 전하에 대한 충심은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전하께 이 탄원서를 바치는 것은 저의 하찮은 목숨보다도 전하의 위세와 명성과 아키텐 전역의 충성심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부디 저와 수많은 백성들의 뜻이 담긴 이 탄원서를 고려해주셨으면 합니다.

주님의 모든 찬미와 영광이 세세토록 전하께 내리기를 기도드립니다.”

알베로가 담담하게 탄원서를 읽어 내려가는 동안 시장과 시의원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탄원서는 말이 좋아 탄원서지. 사실상 고발장이나 다름없었다. 알베로가 읽은 탄원서는 거리낌 없이 알리아의 시장과 시의원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이 탄원서는 말입니다.”

알베로가 낭독을 끝마치자 프레이르가 입을 열었다.

“여기 있는 프로이스 씨가 쓴 것입니다.”

그 순간 회의실 안의 모든 사람들이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에밀을 노려보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찢어 죽여 버리겠다는 그런 표정이었다. 심지어는 에밀의 아버지인 프로이스 백작조차도 자신의 아들을 용서할 수 없다는 듯 이를 부득 갈았다.

프레이르는 이 눈빛을 놓치지 않았다.

“저, 전하...”

시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예상치 못한 사태에 그는 말까지 더듬거렸다.

“그, 그 탄원서는 모함입니다.”

“모함이요?”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시의회 의장이 거들었다. 카린의 말에 따르면 시장과 사돈 관계에 있는 자였다.

“이 글을 쓴 에밀 군은 알리아의 시장님과 시의원들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행한 청년입니다. 그는 시장님과 몇 차례 의견충돌을 일으켰는데 그 일 때문에 결국 알리아의 치안대장 자리에서 해고되다시피 하며 사직했습니다. 이 글은 분명 시장님과 시의회에 앙심을 품고 쓴 글입니다.”

의장이 에밀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이렇게 졸렬하고 한심한 글로 이 지역의 신사들의 명예를 실추하고 전하의 눈을 흐리려 한 저 자를 용서하시면 안 됩니다.”

의장의 말에 몇몇 시의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순간 한 의원이 나섰다. 아키텐의 치안판사였다.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하.”

그 말에 모두가 치안판사를 주목했다.

“전 프로이스 씨의 탄원서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고 믿습니다.”

치안판사의 양심선언에 시의장이 격분했다.

“와이어트 씨! 전하 앞에서 어찌 그런 거짓말을......”

“양심이 있다면 부끄러운 줄 아시오!”

치안판사가 소리치자 항의하던 의장이 입을 다물었다.

“지금까지 시의회에서 온갖 비리를 눈감아 준 게 어디 한두번입니까? 치안판사로서 본인은 프로이스 씨가 임시감사관에 임명되어 조사를 진행하는데 찬성합니다.”

“와이어트 씨!”

이번에는 다른 의원이 자리에서 소리쳤다.

“어찌 전하 앞에서 그런 거짓말을 뻔뻔스럽게 늘어놓으시는 겁니까? 와이어트 씨도 시장님께 무슨 앙금이라도 있는 겁니까?”

“당신이야말로 거짓말하지 마시오! 양심이란 것도 없소? 시장님께 도대체 얼마에 팔린 거요?”

치안판사의 말에 의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지금 그 말은 내가 매수라도 당했다는 겁니까? 와이어트 씨?”

“그렇소.”

치안판사의 말에 시의원이 씩씩거리며 치안판사에게 다가왔다.

“지금 당장 사과하십시오.”

“내 명예를 걸고 방금 한 말을 취소할 생각 없소.”

치안판사의 말에 시의원이 주머니에서 장갑을 꺼냈다. 그리고 그는 치안판사 앞에 그 장갑을 던졌다.

“지금 당장 앞뜰로 나오십시오. 전하 앞에서 이런 식으로 모욕을 당하고도 가만히 있을 거라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결투 신청이오? 좋소!”

치안판사가 바닥에 떨어진 장갑을 주웠다.

때 아닌 사건에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치안판사와 시의원은 격한 말을 주고받으며 결투를 하자고 달려들고 있었고, 시장은 그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땀만 뻘뻘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대다수의 의원들은 프레이르와 에밀, 그리고 시장의 눈치를 봤다. 그들 중 대다수는 시장의 협력자 내지 공범이었지만 이렇게 시장의 비리가 까발려진 이상 어느 쪽에 줄을 서야 할 지 고민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정숙. 정숙하십시오.”

보다 못한 알베로가 장내를 정돈하였다.

“전하 앞에서 결투라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망동입니까?”

알베로의 호통에 치안판사와 시의원은 말다툼을 그쳤다. 그리고 그들은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은 서로의 목을 조르고 싶은 표정으로 서로를 노려보았다.

장내가 조금 정리되자 이번에는 시장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시장으로서는 어떻게든 자신의 최악의 정적인 에밀이 감사관에 임명되는 것만은 막아야 했다.

“하지만 전하...”

시장이 말했다.

“송구스럽습니다만 탄원서를 제출한 사람을 감사관으로 임명하시는 건 공정치 못하다고 생각됩니다.”

프레이르가 시장을 쳐다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죠?”

“에밀 군은 저와 시의회를 모함했는데 그를 감사관에 임명하신다면 공정하게 조사가 진행될 리 없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기 죄송합니다만 감사관은 저희 시의회에서 정하게 해주십시오. 명망 있고 공정한 인물을 선출하여 철저히 조사하도록 하겠습니다.”

“흠...”

프레이르가 팔짱을 끼웠다. 그리고 그는 의자에 몸을 파묻으며 무언가를 고심했다.

잠시 후, 그가 말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네요.”

프레이르의 말에 시장과 의장, 그리고 몇몇 시의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아왔다.

“프로이스 씨를 감사관으로 임명하는 건 그만두기로 하죠.”

프레이르의 말에 시장과 의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 순간 프레이르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시장님과 시의원님들께 그런 수고를 끼쳐드리는 것도 죄송하네요.”

프레이르가 말했다.

“따라서 이번 일은 제가 직접 조사하기로 하겠습니다.”

프레이르의 말에 다시 한 번 장내가 술렁였다.

“여기 있는 알베로 경을 임시감사관으로 임명하고 이 탄원서의 진위 여부를 철저히 조사하겠습니다.”

“하지만 전하.”

시장이 다급히 말했다.

“이런 일은 그 지역의 실정을 잘 아는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아, 그건 걱정 마세요.”

프레이르가 시장에게 대답했다.

“이번 순시단에는 수십명에 달하는 학자와 전문가들이 동참하고 있으니까요. 법학자, 신학자, 의학박사, 지리학자, 광물학자, 생물학자, 연금술사, 어이쿠... 생각해 보니 음악가와 시인도 있네요. 어찌 되었든 이 사람들은 레인가드에서도 최고로 솝꼽히는 전문가들이니 이곳 아키텐의 실정을 낱낱이 조사해줄 겁니다.”

프레이르는 이렇게 말하며 시장에게 몸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그러니 시장님께서는 털끝 하나 움직일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감사는 제 사람들로만 진행할 테니까요.”

프레이르가 ‘털끝’이란 단어를 강조하며 시장에게 말했다. 좋게 돌려 말했지만 결국 이 말은 자신이 독단적으로 조사할 테니 당신들은 찌그러져 있으란 소리였다. 그리고 프레이르에겐 충분히 이 일을 수행할 만한 인재들이 차고 넘쳤다.

“그럼 이만 회의를 마치도록 하죠.”

프레이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좋은 감사 결과가 있길 기대할게요. 저 자신은 물론 여러분들을 위해서도요.”

그리고 그는 기습적으로 감사를 결정한 것만큼이나 갑작스럽게 회의를 끝마쳤다. 채 반론이 나오기도 전에 그는 회의를 끝내버리고 일행과 함께 회의실을 나갔다.

시장과 시의원들은 프레이르와 그 보좌관들이 떠난 자리를 그저 망연히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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