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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시아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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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r
작품등록일 :
2011.11.13 22:52
최근연재일 :
2014.12.15 00:37
연재수 :
1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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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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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8,474

작성
13.01.10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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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로라시아 연대기 - 31.카린의 조사(1)

DUMMY

이처럼 세자르가 아버지의 말을 떠올리며 프레이르와 에버딘의 관계에 대해 주목하고 있을 무렵, 카린은 아키텐 지방의 최대 도시인 알리아의 북문에 도착했다. 프레이르가 머무르고 있는 레트 시로부터 사흘 행군 거리(약 40km)만큼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그녀는 프레이르의 일정보다 이틀 앞서 이곳에서 아키텐 지방의 밑바닥 민심을 조사해볼 예정이었다.

“이름?”

얼굴에 X자 표시의 상처가 나 있는 경비병이 카린에게 물었다.

“카린.”

“성은?”

“없어.”

카린이 평민을 가장하여 말했다.

“얼굴을 보이도록.”

카린은 쓰고 있던 후드를 벗어보였다.

경비병은 카린의 얼굴을 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행은?”

“없어. 혼자야.”

카린의 대답에 경비병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10대 중반 정도 밖에 안 되는 소녀가 초면에 말을 놓자 기분이 상해서였다.

“좀 더 공손히 말하는 게 좋을걸. 여길 통과시키느냐 마느냐는 내게 달렸으니까.”

“미안해. 아직 레인가드어를 완벽히 다 배우지 못했어.”

“레인가드어?”

경비병이 고개를 갸웃했다.

“외국인인가?"

카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서 왔지?”

“하시에르.”

카시네예프라고 말하면 자신이 지방순시단의 일행일 것이 발각될까 염려한 카린이 거짓말을 했다.

카린의 말에 경비병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멀리서도 왔군. 혼자서 온 거냐?”

카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15살도 안 되어 보이는 소녀가 부모나 보호자도 없이 이국 만리까지 왔다는 말에 경비병이 다시 질문했다.

“무슨 일 때문에 왔지?”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이모님에게 신세를 지러 가는 길이야.”

“흠......”

경비병은 자신이 괜한 질문을 했다고 생각하며 뺨을 긁적였다.

“그 이모님이라는 사람은 어디에 살고 있는데?”

카린은 거침없이 대답했다.

“카시네예프에 살고 있어.”

“그렇군.”

경비병은 카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통과.”

경비병은 이렇게 말하며 카린에게 한 나뭇조각을 건넸다.

“이게 뭐야?”

“통행 허가증이다. 여길 나갈 때 다시 반납해야 하니 절대 잃어버리지 마라.”

카린은 허가증을 받아든 뒤 후드를 도로 썼다.

허가증을 품 속에 넣으며 카린은 곧장 여관을 찾아 나섰다. 수십 년 전 그녀는 이 도시를 방문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도시의 구조는 대충 파악하고 있었다. 어느 여관이 유명한지, 어떤 술집에 가면 쓸 만한 정보를 구할 수 있을 지도 알고 있었다.

‘그나저나 대단히 삼엄한 경비네.’

카린은 생각했다.

‘나 같은 여자아이에게까지 통행 허가증이라니... 왕궁도 아니고 말이야. 아무리 지방 순시로 왕자가 온다지만 이건 좀 심하잖아.’

카린이 투덜거렸다.

‘한 번 알아봐야겠어.’

앞으로의 방침에 대해 생각하며 그녀는 광장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그리고 그녀는 광장 남쪽에서 머무르기 적당해 보이는 여관을 발견하고 미소를 지었다. 시청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여 고급 술집이 즐비한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카린이 생각하기에 정보를 캐내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그럼 한 번 실력 발휘 좀 해볼까?”

그녀는 자신만만한 발걸음으로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카린은 낮에 봐두었던 술집에 앉아 있었다. 시청과 가까운 고급 술집이면서 여자가 많지 않은 곳이었다. 그녀는 그 가게 안에서도 한가운데 자리에서 홀로 앉아 포도주를 홀짝이고 있었다. 카린은 채 반시간도 못 되어 주목을 끌게 되었다. 카린은 가만히 있으면 이국적이면서도 천진난만한 매력의 미소녀로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가게 안의 남자들은 모두 술집 한가운데서 홀로 앉아 있는 미소녀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함께 착석해도 좋을까요, 아가씨?”

아까부터 한쪽 자리에서 카린을 힐끗거리던 2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귀족이 카린에게 말을 걸었다. 멋을 부리기 위해 콧수염을 기르고 있었는데 나름 이 지역에서는 잘 나가는 귀족인 모양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거들먹거리는 태도와 그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보이는 주변 사람들이 이 젊은 귀족에게 저자세로 굽실거리는 모습이 그 증거였다.

기대했던 것보다 젊어서 조금 실망했지만 카린은 생긋 웃으며 자리를 권했다.

“앉아요. 말동무가 있었으면 했어.”

외국어의 억양이 묻어나오는 데다 제대로 된 존댓말을 구사하지 못하는 카린을 보며 젊은 귀족이 말했다.

“못 보던 분이신데...... 혹시 외국인이신지?”

“네. 하시에르에서 왔어.”

“아, 하시에르에서 오신 분이시군요. 어쩐지 이국적이다 싶었습니다.”

귀족은 카린의 옆에 있는 의자를 꺼내 앉았다.

그리고 그는 짐짓 거들먹거리며 하시에르어로 뭐라 지껄여댔다. 엉터리 하시에르어였지만 카린은 사교적인 미소를 지어보였다.

“하시에르어가 능숙해. 혼자 공부한 거야요?”

“하하, 부끄럽습니다만 그렇습니다.”

귀족이 카린의 입 발린 칭찬에 우쭐해하며 웃었다.

“사실 저도 예전에 하시에르에 다녀온 적이 있거든요. 엘리스 왕비님을 모시러 가는 사절단에 동행한 적이 있어서요. 약 반년 정도 머무르면서 하시에르어를 배웠습니다.”

귀족이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며 잘난 척을 해댔다. 물론 레인가드 왕실에서 몇 년 동안이나 생활했던 카린이 보기에는 그저 잘난 척하기 좋아하는 촌뜨기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카린은 시종일관 사교용 미소를 유지한 채 귀족의 말에 관심을 보이는 체 했다.

“대단하시네요. 왕비님을 따라서 외국에 나가다니......요? 다? 이게 맞는 말인가요?”

카린이 귀엽게 말꼬리를 올리며 혼란스러운 듯 고개를 갸웃했다. 이 어리바리한 말투가 미소녀의 애교로 보인 귀족은 기분 좋게 웃었다.

“어느 쪽이든 좋습니다. 어느 쪽이든.”

귀족은 이렇게 말한 뒤 마치 자신이 재치 있는 말이라도 했다는 듯 껄껄 웃었다. 물론 카린 역시 그를 따라 생글생글 웃음을 흘렸다.

카린이 자신에게 감탄하고 있다고 생각한 귀족이 말을 이어갔다.

“아, 그러고 보니 제 소개를 하지 못했군요.”

귀족은 우아한 태도로 모자를 벗어 보였다.

“전 에밀 드 엔데 프로이스라고 합니다. 이 도시의 치안대장이죠.”

귀족이 ‘프로이스’를 강조하며 말했다. 카린은 귀족의 이름을 듣는 순간 자신이 송사리 낚시를 하다 예기치 않게 대어를 낚는 데 성공했다는 걸 깨달았다. 프로이스라면 프레이르에게 충성을 바치는 프로이스 백작가문이 분명했다.

‘훗, 딱 걸렸어!’

카린은 지금 당장이라도 술집 밖으로 나가 쾌재를 부르고 싶었지만 겉으로는 조신한 외국 여인을 흉내 내며 입을 두 손으로 막았다.

“어머! 어떡해! 치안대장이나 되시는 분한테 실례를.”

카린이 짐짓 당황한 흉내를 내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평소의 카린을 알고 있는 프레이르라면 박장대소했겠지만 그녀의 본모습을 모르는 귀족에게는 아양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죄송해요. 내가 그만...”

“하하, 아닙니다. 이 지역 사람도 아닌데 프로이스 가문에 대해서 모르실 수밖에요.”

자신을 에밀이라고 소개한 귀족이 겸손을 떠는 척했다. 물론 실제로는 자신의 가문이 이 지역에서 잘 나간다는 것을 은연중에 과시하는 것뿐이었다.

“아가씨의 이름은 무엇인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에밀의 말에 카린은 탁자 위에 올려진 에밀의 손등에 자신의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그녀는 애교스럽게 말했다.

“레인가드어로 어떻게 읽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써요.”

그녀는 몸을 기울여 에밀에게 달라붙으며 그 손등 위에 손가락으로 자신의 이름을 천천히 써주었다. 카린이 에밀에게 달라붙자 카린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요염한 향수 냄새가 에밀의 코 끝을 자극했다. 동시에 그는 카린의 손가락이 닿은 자신의 손등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과 가슴의 박동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혈관이란 혈관 모두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에밀은 갑작스런 신체의 반응에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많은 여자들을 대해봤고, 눈 앞에 있는 빨간 눈동자의 여자아이 이상으로 아름다운 여자도 안아보았지만 이렇게도 빨리, 그리고 강렬하게 심장이 두근거린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자기 자신이 아직 풋사과 같은 여자아이에게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에 그는 당황하고 있었다.

물론 그는 카린이 마법사라는 사실과 그녀가 사실은 산전수전 다 겪었으며 남자의 생리에 관해 그 어떤 여자보다도 전문가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또한 그는 카린이 간단한 마법을 통해 에밀 자신의 체온을 높임으로서 심장박동을 빠르게 한 것뿐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그가 카린이 쳐 놓은 올가미에 고스란히 빠졌다는 걸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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