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이 자꾸난다 #035
지난 한 달간 많은 일이 있었다.
민사장의 피를 말려 새 매장으로 쓸 건물을 뜯어냈고, 인테리어와 주방 시설, 식자재용 냉장창고까지 한꺼번에 해결했다.
매장 위치는 청주 사창사거리 도로변에 있는 3층짜리 상가 건물이다. 1층과 2층을 식당으로 쓰기 위해 인테리어를 비롯한 준비를 마쳤고, 3층의 주거 공간에 이미 이사도 끝내 놨다.
여기에 영업 허가까지 받느라 준비만 한 달 가까이 걸렸지만, 분명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장사가 잘 될 것이다.
인근에 여고, 남고, 국립대와 부설 대학병원까지 밀집해 있으니까.
오픈은 8월 13일. 앞으로 1주일 정도 남았다. 전부 잘 풀리고 있다. 그러나 유건은 고민을 하나 안고 있었다.
‘오늘도 연락 안 오네.’
구인구직 사이트에 직원 모집 공고를 붙여놨으나 지원하는 사람이 없었다. 만약 이대로 오픈일이 와버리면 혼자서 손님을 감당해야 하고, 이전처럼 좁은 가건물하곤 차원이 다르겠지.
“인방을 몇 번 타서 그런가. 차라리 공고에 인방 얘길 빼는게······.”
물론 사람이 안 온다면 혼자서라도 해낼 생각이다. 유건은 휴대폰을 꺼내 구인공고를 살펴보고 고개를 저은 뒤 매장에서 나왔다.
간판 시공 업체 사람들이 1층에 간판을 달고 있었다. 예전 매장에서부터 쓰던 설대포차의 싸구려 간판이다.
‘저게 없으면 허전하지.’
붉은 바탕에 궁서체로 큼지막하게 ‘설대포차’라고 적은 간판. 유건은 간판 업체 직원들에게 살짝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넨 뒤 걸음을 옮겼다.
어머니가 입원한 병원에 갈 생각이었다. 도보로 걸어서 20분이면 가는 거리이기에 이젠 더 이상 택시를 탈 필요도 없었다.
‘이게 또 좋은 점이지.’
입지 하나는 끝내주게 잘 잡았다. 유건은 자신의 안목에 뿌듯해하며 느긋하게 걸어, 어느새 병원에 도착했다.
언제나처럼 문 앞에 서서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노크를 하려는데, 갑자기 누군가 유건을 불렀다.
“어, 마침 아드님 오셨네!”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머니의 주치의다. 그는 유건을 향해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병실 문을 두드렸다.
“정소영 환자분, 아드님 오셨는데요. 하하하.”
잠시 뒤 간호사가 안에서 문을 열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주치의는 얼른 병실 안으로 들어가더니 유건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아드님도 얼른 들어오세요. 좋은 일은 다 같이 알아야지.”
“좋은 일이요?”
왠지 걸음이 기운하더니. 좋은 일이라? 유건은 얼떨떨한 기분으로 병실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어머니도 금시초문인지, 인사도 잊은 채 놀란 얼굴로 의사를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좋은 일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인데, 암세포가 줄었습니다.”
“네!?”
재발 암인데 암세포가 저절로 줄어든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유건이 못 믿겠다는 듯이 고개를 젓자 의사는 단층촬영으로 나온 사진을 보여주며 볼펜으로 한 구석을 가리켰다.
“여기, 여기 보세요. 원래 이만큼이 전이암이었는데, 지금 보세요. 깨끗하죠?”
의사의 말 대로였다. 볼펜이 가리키는 곳은 암세포가 퍼져 있는 부위와는 확연히 달랐다.
약물치료를 하긴 했지만, 암이 이렇게 급격하게 사라진다는 건 있을 수 없다. 유건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퀘스트 패널을 흘끗 쳐다봤다.
[체력회복 Lv.3 : 소모된 체력을 더욱 빠르게 회복합니다.]
녀석은 보란 듯이 축복 패널을 끄집어냈다. 역시, 축복의 영향이었다.
“암도 줄고 체력도 붙고, 치료에 박차를 가해도 될 것 같습니다. 하하하!”
의사는 자기 일인 양 기뻐하며 껄껄 웃었다. 그 말을 들은 어머니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눈물지었다.
유건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신께서 격려하세요.]
[사랑을 관장하는 신께서 당신의 효심을 응원하세요.]
[정의를 관장하는 신께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세요.]
[전쟁의 신께서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와하하 웃으세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어쩌면 만년 묵은 선인과를 얻기 전에 암이 치료될지도 모른다. 유건은 팔로 눈가를 쓱쓱 훔치며, 손가락을 까딱여 축복 패널을 건드렸다.
[체력회복 Lv.3 : 소모된 체력을 더욱 빠르게 회복합니다.]
‘저희 어머니 잘 봐주셨으니까, 작은 보답입니다.’
은은한 빛이 어머니와 간호사, 그리고 주치의에게 깃들며 점점 몸에 스며들었다. 그러자 의사가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어깨를 풀었다.
“어? 갑자기 어깨 결리던 게······. 희한하네. 한바탕 웃어서 그런가? 허 참.”
“저도 허리 아프던 게 조금 나아진 것 같은데요?”
간호사도 의아한 얼굴을 하며 허리를 주물렀다. 축복의 효과가 제대로 발휘된 모양이다.
의사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개운함에 선 채로 몸을 이리저리 풀고는, 유건과 어머니를 번갈아 바라보고 말했다.
“그럼 대화 나누시고. 저는 다른 환자분 뵈러 가야 해서.”
의사가 병실을 나서고, 유건은 간이침대에 앉아 어머니를 올려다봤다. 기쁜 소식 덕분에 역린회 일을 들킬 염려는 없을 것 같았다.
어머니는 한참이나 훌쩍이다가 눈물을 닦고 말했다.
“씁, 흑. 마이썬. 엄마 이제 병원 신세 그만 져도 되는 거지?”
“벌써부터 호들갑은. 몸 관리 잘 하세요. 병원 신세도 그만 져야지.”
“응. 흐흑. 너, 근데 요새 어떻게 된 거니.”
“뭐가요?”
“가게 안 연다며.”
유건은 흠칫하며 자기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역린회 건을 들킬까봐 줄곧 잘 지낸다고 통화만 해왔는데, 어떻게 소식이 들어간 모양이다.
어차피 거짓말을 하면 들킬 게 뻔하니, 유건은 그냥 ‘일부분’만 숨긴 채 사실대로 얘기하기로 했다.
“저번 달 새벽에 웬 미친놈들이 쳐들어오는 바람에 가게 벽에 금 갔어요.”
“뭐어!?”
“사창동에 건물 하나 봐놔서, 이왕 이렇게 된 거 규모도 키우고 다시 열려고.”
그 말을 들은 어머니의 얼굴에 약간의 의심이 들었다. 그러나 아들이 무사하다는 것만으로도 족한지 더 캐묻지는 않았다.
축복도 걸어드렸겠다. 유건은 씩 웃으며 일어서서 말했다.
“이만 갈게요. 가게 이전할 준비해야 되니까.”
“그래, 바쁠 텐데 가봐. 위험한 일에는 손대지 말고.”
“알아요.”
유건은 옆에 있는 간호사에게 살짝 고개 숙여 인사하고 병실을 나섰다.
7월초의 태양이 유달리도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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