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이 자꾸난다 #033
청주 시내에 위치한 4층짜리 건물. 위에서부터 유리창에 ‘온누리 용역’ ‘온누리 유통’ ‘온누리 건설’ 그리고 ‘온누리 부동산’이라고 시트지를 붙여놨다.
유건은 어깨에 마대자루를 짊어진 채 성큼성큼 계단을 타고 올라가 4층으로 향했다.
밖에서 봤을 땐 분명 4층의 불이 켜져 있었는데, 막상 올라가려니 층계참에 보안용 셔터가 쳐져 있었다.
유건은 픽 웃어버리고 셔터 한 구석을 잡아 힘으로 뜯어내 버렸다. 바닥에 프레임을 깔고 용접해둔 부분이 요란한 소릴 내며 찢겨지자, 온누리 용역 사무실의 문이 열리며 양복 차림의 사내들이 우르르 뛰쳐나왔다.
“뭐여! 이런 미친!”
검은 정장에 알로하 티셔츠. 20세기말 조폭 영화에서나 볼 법한 패션이다. 유건은 한심하다는 듯이 웃으며 마대자루에서 최루탄 하나를 꺼내 그들에게 던졌다.
“뭣, 엄마야!!”
“컥컥! 콜록!! 콜록 콜록!”
온누리파 조폭들은 갑작스런 최루가스 세례에 허우적대며 이리저리 도망쳤다. 뭐 그러거나 말거나. 유건은 계단을 뛰어내려오는 그들을 대강 제치고 유유히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사무실 중앙의 소파에서 민사장이 귀신이라도 본 것같은 얼굴로 유건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툼한 원목 테이블 위에 중국집 요리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는 걸 보니, 식사 중이었던 모양이다.
“너, 어떻게 끄흑!!”
유건은 단숨에 민사장에게 접근해 멱살을 틀어쥐고 번쩍 들었다. 그의 숨 막히는 소리에 사무실 안쪽에서 조직원 몇 명이 뛰어 나왔으나, 다들 얼굴이 허옇게 질려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민사장님. 뭐, 걔들 머리카락 개수까지 싹 털어서 어쩐다고요?”
“끅, 끅, 야, 놓고, 놓고······끄끅.”
숨이 막히는지 민사장은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발버둥 쳤다. 잠시 그를 보던 유건은 소파 위로 툭 던져 놓고 말했다.
“나한테 왜 그랬냐느니, 뭐 이런 거 안 물을게요. 민사장님 성격에 뻔하지.”
유건은 착 가라앉은 시선으로 민사장과 조직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카센터 직원들을 죄다 반죽음으로 만든 뒤 전부 불게 했다.
애초에 역린회가 아무리 무식한 놈들이라고 해도, 정말 스무 명 규모의 밀입국자 조직이었다면 민사장이 벌벌 떨 리가 없다.
숙소에 최루가스까지 준비해 가며 유건을 찾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조직 규모가 꽤 된다는 걸 민사장도 눈치 채고 있었고, 그렇다고 먼저 치려니 경찰의 눈이 무섭고.
아주 궤멸시켜 버리기보다, 적당히 타격을 줘서 어떻게 낼름 해먹어 볼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유건이 다칠 거라는 것도 계산되어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 병원비 때문에 얌전히 장사만 하고 있지만, 유건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그래서 지금껏 다시 영입하려고 직접 발품을 팔아가며 해코지까지 했으나, 최근 들어 설대포차가 너무 잘 나가자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못 먹을 감이라면 짓밟아 터트리고 말지, 절대로 남한테 양보할 민사장이 아니다. 정유건이라는 위협을 배제하면서 쓰고 버리기 알맞은 칼제비들도 손에 넣고. 일석이조를 노렸다.
그러나 그가 모르는 요소가 하나 있었으니, 유건이 신의 축복을 받은 인간이라는 것. 이 한 가지 요소가 그의 완벽에 가까운 계산을 근본부터 붕괴시켜 버렸다.
“너, 너 이 새끼. 여기서 이래놓고, 그 손바닥만 한 포차가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아!!”
“왜요. 술 안 대주게? 대주지 마십쇼 그럼.”
유건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말투로 툭 내뱉었다. 그러자 민사장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시고 말았다.
그가 유건에게 마음 놓고 행패를 부릴 수 있던 이유는, 포차 장사에선 없어선 안 되는 주류 유통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포차 장사를 못 하면 유건은 어머니의 병원비를 댈 수 없다. 그렇기에 온갖 모욕도 그저 참아왔다.
그러나 지금의 유건은 그렇지 않았다.
아침 분식 장사만으로도 매일 현금이 미어터지도록 벌어들였다. 유일한 약점이 극복된 것이다.
“술 그거 안 팔면 돼. 포차? 안 하면 된다고. 그쪽이 싱겁다고 타박하던 떡볶이로 매일 얼마씩 마진이 남는지 알아?”
“유, 유건아.”
“유건아?”
유건이 위협적인 목소리로 되묻자 민사장은 얼른 소파 밑으로 뛰어내려와 유건의 발밑으로 빌빌 기었다.
그 모습을 본 유건의 뇌리에, 몇 달 전까지의 민사장이 스쳐 지나갔다.
-싱겁잖아, 싱겁잖아 이 새끼야! 싱! 싱! 싱겁잖아!
설마 민사장과 이런 식으로 결단이 날줄은 몰랐기에, 유건은 어처구니가 없어 피식 웃고 말했다.
“잘못했다. 아니, 제, 제가 잘못했습니다. 정사장님······.”
“약자한테는 한없이 강하고, 강자한테는 한없이 약하고. 왜 그렇게 비열하게 삽니까.”
민사장은 한 순간 분하다는 듯이 고개를 쳐들었다. 그러나 유건이 저승사자처럼 내려다보는 시선에 곧장 고개를 처박았다.
지금의 유건을 당해낼 방도가 없다. 역린회를 혼자 쓸어버리고, 혹시나 그런 일이 생길까봐 준비해둔 카센터의 칼제비들도 전부 제꼈으니 여기까지 온 거겠지.
민사장은 유건이 받은 신의 축복에 대해 일절 몰랐으나, 본래 유건이 가진 전투 능력이 얼마나 위험한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어찌어찌 유건을 주저앉힌다고 해도 조직의 피해는 막심할 것이고, 무조건 경찰에 들킨다. 그렇게 되면 역린회와의 관계를 재조명받게 될 것이다.
사면초가라는 뜻이다.
“민사장님.”
유건은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민사장을 부르며 곁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그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이렇게 하죠. 어쨌든지 간에 저는 사장님 일은 잘 처리했고, 지금 사장님 수작질에 화가 많이 났어요.”
“예, 예. 정사장님.”
“마침 저희 매장도 아작 났고, 왜 저번달인가? 저희 집 튀김기에 지랄 떨면서 자랑하던 상가 건물 있잖아요.”
민사장의 눈이 번쩍 뜨였다. 저번 달에 방범비를 뜯으러 갔을 때, 유건을 약 올리려고 자랑했던 상가 건물 이야기였다.
그의 표정을 본 유건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거······.”
“아, 아, 안 돼. 안 돼! 새로 사업하려고 그 근방 건물들 싹다 접수했단 말야!”
꽤 다급했는지 민사장은 다시 반말을 쓰며 몸을 벌떡 일으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파리처럼 싹싹 빌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다른 건물이라면 다 괜찮아! 제발 그 건물만은! 그 건물 없으면 새 사업 다 물거품이야, 제발, 유건아. 정유건! 내가 정말 죽을 죄를 지었지만, 죽이지만 말아다오! 부탁이다!”
급기야 민사장은 넙죽 엎드려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 비열한 민사장이 여기까지 떨어지다니. 유건은 슬슬 보기가 역겨워서 인상을 쓰며 일어섰다.
“건물 한 채, 저 주는 겁니다. 사장님. 약속 한 거예요.”
“그래!”
민사장은 구세주라도 만난 것처럼 활짝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우는 연기였던 모양이지만 유건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중요한 건 민사장에게서 건물을 뜯어낼 수 있다는 것. 마음 같아선 당장 창밖으로 던져버리고 싶었으나, 유건은 꾹 참고 혀를 차며 입구로 향했다.
그리고 민사장이 비틀비틀 일어서자, 다시 돌아와 그의 정강이를 까버린 뒤 멱살을 붙잡았다.
“어헉!!!”
민사장은 목줄 잡힌 개처럼 사무실 밖으로 질질 끌려 나왔다. 바깥의 계단 위엔 아직 최루가스가 뭉게뭉게 들어차 있다.
“카칵!! 컥! 컥 콜록!! 콜록 콜록!! 아아아아아악!!”
“그렇게 소리 지르다가 주민 신고라도 들어가면 어쩌시려고?”
“끅······!”
민사장은 눈도 제대로 못 뜨고 눈물을 줄줄 흘리며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자 유건이 그의 양손을 강제로 얼굴에서 떼어내고 말했다.
“경고하는데, 지금 이 순간부터는 방범비니 뭐니 개소리 씹어재끼면서 행패 부리고 다니지 마요.”
“으윽, 윽······! 끄흐흐흥! 그르륵!!”
“내 눈에 띄면 유통이고 뭐고, 다 밀어버릴 거니까.”
유건이 손을 놓자 민사장은 정강이를 부여잡은 채 데굴데굴 굴러 사무실로 들어갔다.
“흥.”
이제 자신은 물론, 더 이상 영세 상인들을 괴롭히지 않겠지. 유건은 최루가스 사이로 유유히 걸어 나오며 씩 웃었다.
- 작가의말
시원하게 줘패버리면 민사장이 사람의 형체를 잃어버릴것같아서 그렇게까진 못했습니다만........
어찌 생각해보면 후드려까는것보다 더 잔인하지요.
화생방 훈련때 쓰는 시에스탄이랑은 격이 다른 진짜 최루가스로 끌고 들어가서는, 입도 못 막게 손을 붙잡아 버리고 말을 걸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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