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이 자꾸난다 #020
됐다. 묵직하게 맵고, 화끈하며, 목으로 넘긴 뒤에 칼칼하고 시원함이 느껴지는 맛.
부재료를 더 궁리하면 훨씬 더 맛있어지겠지만, 기본 베이스는 완성된 셈이다.
[정의를 관장하는 신께서 엄지를 척!]
[사랑을 관장하는 신께서 관심을 보이세요.]
[이름을 밝히지 않은 신께서 흡족하게 웃으세요.]
유건은 수연의 고모도 신으로 영접하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위장이 박살나도 이 냄비의 떡볶이만큼은 다 먹고 죽으리라.
“맛있어. 이건, 평범한 재료로 이렇게까지 맛있을 줄이야.”
시중에서 난다 긴다 하는 떡볶이는 다 먹어봤지만, 사람들이 줄 서서 먹는 떡볶이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의 맛이었다.
유건은 결국 선 채로 떡볶이를 다 먹어 버렸다. 너무 매워서 눈물과 땀과 콧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악귀같이 탐닉했다.
“후아악. 헉, 헉. 매워, 아 매워! 헉. 헉! 어흑.”
뱃속은 죽을 것처럼 아팠으나 마음은 꽃길을 걷는 기분이다. 유건은 배를 부여잡고 2층으로 올라가 찬물에 몸을 던졌다.
‘이제 방앗간에서 긴 떡 견적 알아보고. 국물떡볶이니까 부재료도 필요한데. 뭘 하면 좋을까.’
열을 식히려고 찬물을 맞으면서도, 머리는 계속 떡볶이의 개량 방향을 재고 있었다.
*
월요일 아침. 유건은 방앗간에 가서 가래떡을 뽑아왔다.
퍼런 김장 봉투에 한가득 담긴 얇은 가래떡. 쌀 한 포대를 통째로 써서 뽑아 족히 25킬로그램은 되었다.
‘신체능력 강화 덕분인가. 꽤 걸었는데도 전혀 안 무겁네.’
[정의를 관장하는 신께서 어깨를 으쓱하세요.]
솔직히 별로 필요한 능력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필요할 때 도움을 받으니 생각이 바뀐다.
‘간사하다니깐.’
집에 도착한 유건은 2층 옥탑에 모셔둔 재료들 위에 가래떡을 뒀다. 그리고 축복 패널을 불러내 식자재 등급 상승의 축복을 선택했다.
새로 개발한 매운 떡볶이는 평범한 재료를 써도 맛있다. 그러나 그건 그거고. 굳이 좋은 축복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자 그럼, 오늘도 시작해볼까.”
유건이 식자재 회복의 축복을 선택하고 재료가 담긴 목욕대야를 향해 손을 뻗자, 언제나 그렇듯 박력 넘치는 백색광이 터졌다.
“흐, 흐흐흐.”
빛이 증발하고, 유건은 거의 두 배 이상 불어난 재료들을 보며 흐흐 웃었다.
처음 축복을 걸었을 때, 반쪽짜리 양배추가 온전한 한 통으로 변한 걸 보고 유건은 깨달았다.
잘 응용하면 재료를 무지막지하게 불릴 수 있다는 사실을.
“역시 이번에도 똑같네.”
지난 일주일간 재료 준비를 하며 실험을 병행한 결과, 유건은 몇 가지 규칙을 찾아냈다.
첫째로, 가공된 재료는 불어나지 않는다는 것. 예를 들면 떡이나 양념, 껍질을 깐 조개류나 육수 등등은 축복을 걸어도 양의 변화가 없다.
둘째로, 한 번 양이 불어난 재료는 다시 축복을 걸어도 양이 불지 않는다. 만약 이게 가능했다면 무한하게 양을 불릴 수 있었겠지만, 유건은 그 정도로 도둑놈 심보는 아니었다.
셋째로, 어째서인지 4등분이 넘게 나눈 재료는 불어나지 않는다.
양배추와 피망, 당근, 양파. 포차에서 쓰는 모든 재료로 실험을 해본 결과, 네 토막 낸 재료까지는 본래 모습을 되찾지만 다섯 토막 이상은 품질만 올라갔다.
반대로 말하면, 채소나 과일에 한정되긴 해도 재료 하나를 불려 최대 네 통을 만들 수 있다는 것.
도축장에 가서 도축만 끝낸 가축으로 실험을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유건은 감당이 안 될 것 같아 포기했다. 금방 반으로 자른 돼지가 멀쩡히 살아나면 호러물이 될 테니까.
“가만. 내장을 미리 제거하니까 안 불어나려나?”
묘한 호기심이 들긴 하지만 아직은 축복을 낭비할 때가 아니다. 유건은 낮에 쓸 재료들을 챙겨 1층으로 내려왔다.
머리 위의 메뉴판 현수막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맨 끄트머리에 마커팬으로 ‘신메뉴. 설대 핵떡 출시!’라고 적어 놨다.
안쪽 버너에 떡볶이 판도 새로 놓고. 유건은 주말 내내 실험했던 대로 떡볶이를 올렸다.
바깥쪽에 있는 떡볶이 판에는 당연히 평소에 팔던 오리지널 떡볶이 그리고 안쪽에는 새로 개발한 핵떡이다.
“크. 냄새 죽이는구만.”
불맛 고춧가루를 풀자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얼얼한 향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약간 일찍 요리를 시작했는데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와, 사장님 이거 무슨 냄새에요?”
“설대, 핵떡······?”
핵떡의 냄새는 절대적이었다. 길 건너편 고깃집에 들어가려던 직장인들이 흘끗거릴 정도로.
화끈하고 얼얼한 냄새에 가장 먼저 이끌려 온 건 거의 이틀에 한 번 꼴로 찾아오는 여대생들이었다.
“오빠! 저게 핵떡이에요? 저건 얼마에요?”
“떡볶이랑 똑같아요! 조금 드려볼까요?”
“정말요!?”
유건은 핵떡을 종이컵에 조금 담아 그녀들에게 건네었다. 사람 수에 맞춰서 주자 여대생들은 사이좋게 나눠먹고는 지폐를 꺼내 들었다.
“10인분 돼요? 튀김 세트도 5인분 주세요!”
“그럼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핫, 핫뜨거, 와 진짜! 괴랄떡볶이보다 여기가 더 맛있어!”
‘당연하지. 재료가 압도적인데.’
유건이 떡볶이를 잔뜩 포장하자 어느새 밖에 줄이 이어졌다. 어쩐지 평소보다 더 많은 것 같다.
다만 핵떡을 접한 손님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엄청 맵겠는데. 난 매운 건 좀······.”
“그럼 보통 2인분이랑 핵 1인분으로 하는 건 어떠세요? 야심작이거든요. 하하.”
“사장님 야심작이라면, 1인분만 시켜볼까? 보통 둘에 핵 하나. 그렇게 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주로 매운 걸 못 먹는 사람들이 꺼려하는 눈치다. 그러나 유건이 자신 있게 추천하며 다른 메뉴랑 함께 사길 권유하니 안사는 사람이 없었다.
“모둠튀김 다섯 세트랑, 떡볶이 5인분. 저거, 핵떡? 저것도 1인분만 주세요.”
“겁나 맵겠다! 사장님 핵떡 3인분이요!”
“핵떡! 이름 괜찮네! 저도 2인분만. 오뎅도 다섯 개 담아주세요.”
처음엔 오리지널 떡볶이에 밀리는 느낌이었으나, 점심시간이 지나자 핵떡을 찾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아졌다. 아무래도 점심 후에 허전하고 입가심할 거리가 필요한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죄송합니다! 떡볶이 다 떨어졌어요!”
핵떡의 첫 판매는 대성공이었다. 재료의 지분을 얼추 어림잡아 보니 오리지널이 6할, 핵떡이 4할 정도 되는 것 같다.
그러나 핵떡에는 시너지가 있다. 평소에 떡볶이만큼 잘 팔리진 않던 튀김이나 어묵탕까지 우르르 몰고 나간 것이다.
‘매울까봐 이것저것 사 가서 그렇구나!’
[이름을 밝히지 않은 신께서 환호하세요.]
[사랑을 관장하는 신께서 입맛을 다시며 맛을 궁금해 하세요.]
- 작가의말
꾸준한 성원 감사합니다!
작중에 등장한, 그리고 앞으로 등장할 레시피와 요리 과정은 대부분 실제 요리가 가능한 메뉴입니다.
다만 핵떡의 경우, 고춧가루 증기가 너무 독해 위험하므로 댁에서의 조리를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쓰다가 궁금해서 고춧가루를 최대한 모아 직접 해봤는데, 얼굴이 벌겋게 익어버렸네요....
요리왕 비룡을 따라해도 황금 볶음밥이 나오진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인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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