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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칼날 님의 서재입니다.

그림과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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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검은칼날
작품등록일 :
2021.12.18 21:47
최근연재일 :
2022.07.05 16:00
연재수 :
1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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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81,056

작성
22.07.0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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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자진 반환

DUMMY

작년 가을, 명희는 양진후가 빼앗아간 가문의 소장품과 똑같은 모작을 만들었다. 무신년 준이 개성에서 모든 소장품을 모사했고, 명희는 그림에다 원작의 크기와 상태, 제발과 인장 그리고 표구 방식 등을 적어놓았다. 명희는 이것을 바탕으로 그림 재료를 구해서 준에게 똑같이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준은 십 년이 지났지만 세밀한 부분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명희는 준이 그린 그림을 소주로 가져가 제발과 인장뿐만 아니라 표구도 거의 똑같이 만들었다. 명희는 그것을 양주로 가져가 준에게 보여주었고, 준은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것과 다른 부분을 지적했다. 명희는 지적한 그림들을 다시 소주로 가져가 다시 교정했다. 결국 빼앗긴 그림과 거의 똑같은 모작을 만들어냈다.

명희는 이렇게 만든 모작들과 예상 때문에 그린 안휘의 이철괴 그림 그리고 양원길을 속이기 위해 만든 휘종의 궁중화원의 말 그림을 조선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명희는 어제 상준에게 이철괴의 그림과 말 그림, 그리고 가문의 소장품 중 관아재(觀我齋) 조영석(趙榮祏)의 화첩 모작을 김흥방에게 보여주라고 했다. 김흥방은 이철괴와 말 그림뿐만 아니라 털보를 시켜 빼앗아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화첩과 똑같은 화첩 때문에 놀랐다. 그래서 명희가 사칭한 박희명을 오늘 보자고 했다.

명희는 원래 김흥방의 믿음을 얻기 위해 손돌이 발견한 가문의 진품을 가져오려고 계획했다. 하지만 그것도 모작으로 대체했다. 궤짝에다 김흥방이 빼앗아서 이미 가지고 있는 그림들의 모작과 준이 숨겨두어서 빼앗지 못 한 그림들의 모작을 채웠다.

김흥방은 놀랐다.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그림이 박희명이란 처녀가 가져온 궤짝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의 것이 위작인지 그녀의 것이 위작인지 구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놀라움을 감추느라고 힘들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가진 그림에 대한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똑같은 그림들이 어떻게 쌍으로 존재하는 것인지는 몰랐지만, 양진후가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 한 것이 틀림없었다. 의심암귀(疑心暗鬼)! 희명의 아버지 박만길이 변양호의 그림 궤짝 두 개를 모두 입수한 것이 합리적으로 보였다.


“희명이라고 했지? 희명 아가씨, 이렇게 많은 그림의 구매를 당장 결정하기는 힘들 것 같아. 오늘은 궤짝을 여기에 놓고 가게. 내일이나 모레까지 살펴보고 그 때 구매를 결정하겠네. 그리고 그 동안의 대여료는 지금 당장 두둑하게 지불하겠네.” 김흥방이 제안했다.

“하루나 이틀 동안 보고 나서 결정하세요. 그리고 대여료는 필요 없어요.”

“이 아가씨 화통하구먼. 그럼 그렇게 하지. 나중에 그림 값은 후하게 쳐주겠네.”

“그러세요. 그리고 이거 모두 구매하시려면 금괴 마흔에서 쉰 근 정도는 준비하세요. 금괴를 마련하시려면 시간이 좀 걸릴 테니 미리 말씀 드리는 거예요.” 명희가 김흥방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나서 대략적인 매매금액을 알려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틀 후, 양진후가 명희가 머무는 집을 찾아왔다. 상준이 그를 명희에게 안내했다. 명희는 대청마루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아가씨, 대감님 말씀 전하러 왔소.” 양진후가 거만하게 말을 꺼냈다.

“올라와서 얘기하게.” 명희가 거만하게 대꾸했다.

“아가씨, 심하네. 심부름 왔다고 하게체를 쓰는 건 아니지 않나?”

“야 이놈아, 내가 김 대감하고 맞상대하는데, 심부름 온 네 놈한테 존대를 하랴? 시정잡배 놈이라 격도 모르는 거냐?” 명희가 준엄하게 꾸짖고 나서 말을 이었다. “올라와라 앉으라고 한 것도 고마운 줄 모르고, 별 미친놈을 다 보겠구나. 쯧쯧.”

“아니, 뭐라고?” 양진후가 얼굴을 붉히며 할 말을 잃었다.

“아가씨, 그만 하셔.” 양진후의 졸개 정만이 끼어들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야 이놈아, 넌 또 뭐 하는 놈이야?” 명희가 정만에게 대꾸한 후 양진후에게 말했다. “야 너 털보 놈, 여기로 기어 올라오지 말고 그 아래서 김 대감의 말 전해!”

“아니, 으흐흐······” 양진후가 할 말을 잃고 부르르 떨었다.

“야 이놈아, 김 대감이 뭐라고 했는지 말을 안 전할 거야? 미친놈, 심부름 온 놈이 심부름도 제대로 못 하고 뭘 하는 거냐?” 명희는 인정사정없이 욕을 해댔다.

“으아!” 양진후가 혼자 소리를 내지르며 분노했다. 여기로 오기 전에 김흥방에게 심부름도 제대로 못했다고 욕을 먹었기 때문에 더욱 분했다.

“얘들아, 궤짝 들고 와.” 정만이 화가 난 양진후를 대신하여 졸개에게 명령했다.

“형님, 어디다 놓을까요?” 졸개 두 명이 궤짝을 들고 들어와서 물었다.

“아가씨, 어디가 놓을까요?” 정만이 물었다.

“이리 가져와서 여기다 놓고 가게.” 명희가 양진후를 대할 때보다 부드럽게 말했다.

졸개 둘이 궤짝을 명희 옆에 들어다 놓았다. 명희가 궤짝을 열고 안에 있는 그림을 살펴보았다.

“대감께서 그 그림들은 사지 않겠다고 하셨소. 그리고 나머지 그림들은 일괄 구매하실 거고 대금은 이틀 후에 지불할 테니, 그 때 와서 흥정하라고 하셨소.” 양진후가 화를 누그러뜨리고 명희에게 보고했다.

“잠깐. 우선 확인 좀 해보고 나서 얘기하세.” 명희는 고개도 들지 않고 그림을 살피며 대꾸했다.

“그러셔.” 양진후가 건들거리며 한 마디 내뱉었다.

“야, 이 그림들 누가 바꿔치기했어?” 명희가 그림을 살펴보고 나서 양진후를 노려보며 물었다.

“뭐라는 거요? 누가 뭔 바꿔치기를 해?”

“네 놈이 안 했다는 거야?”

“미친년, 사람 함부로 모함하지 마!” 양진후가 욕을 하며 소리쳤다.

“너, 내가 여자라고 함부로 욕하는 거야? 부끄러움도 모르는 주인 놈이나, 그놈한테 꼬리나 살살치는 개새끼나, 가관이다 가관이야.”

“저년이 정말 미쳤나?” 양진후가 발끈했다.

“시정에서나 왕초 노릇하는 놈이 아무 데서나 나대기는, 쯧쯧.” 명희가 비웃으며 혀를 차고 도발했다. “싸움질에 자신 있으면 올라와서 덤벼보던가.”

“뭐 저런 미친년이 다 있냐?” 양진후가 좌우를 돌아보며 졸개들에게 말한 후 대청마루로 뛰어올라갔다.

명희는 그것을 보며 차를 마셨다.

양진후가 발길질로 찻상을 날렸다. 양진후 뒤에서 두 명의 졸개도 명희에게 달려들었다. 명희는 공중으로 떠오른 상을 따라 날아오르면서 왼손으로 찻잔을 오른손으로 찻잔받침을 달려드는 졸개 둘에게 던졌다. 한 명이 가슴을 움켜주며 꼬꾸라졌다. 다른 한 명은 뒤로 나자빠졌다. 깨진 잔의 파편과 깨진 이마의 피가 동시에 튀었다.

명희는 찻잔과 받침을 날린 후 공중에 떠 있는 찻상을 향해 날아올랐다. 양손으로 치마를 끌어올린 후 찻상을 양진후에게 내찼다. 상이 박살나면서 파편들이 양진후를 향해 날아갔다. 양진후도 날아올랐지만 피하지 못 한 파편들이 하반신의 살을 파고들었다. 명희는 공중에서 가볍게 내려섰다. 양진후도 공중에서 내려섰다. 나무먼지가 날렸다. 졸개 둘은 바닥을 뒹굴면서 자신들이 왜 뒹굴게 되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 했다. 정만은 그 장면을 바라보다가 명희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됐어. 멈춰” 양진후가 단호한 말투로 정만을 제지했다.

정만은 마루에 뛰어오르다 멈춰 섰다.

“대단한 고수구먼. 나이도 어린년이.” 양진후가 욕을 하며 명희의 실력을 인정했다.

“시정의 싸움질과 무예는 아예 격이 다른 거야. 돌아가서 너희 패거리들 다 데려와. 그 때는 한 놈씩 이마하고 심장에 비도를 박아줄게.”

뒹굴다 일어난 졸개 둘이 명희의 말에 각자 이마와 가슴을 만졌다. 거기에 비도가 박혔다면 이미 죽은 목숨이라는 것을 깨닫고 치를 떨었다.

“넌 나한테 욕을 하고 잘난 척을 하더니만, 졸개들 앞에서 창피 당할까봐 제대로 덤비지도 못 하냐?” 명희가 양진후를 비웃었다.

양진후는 대꾸도 못 하고 분해서 부들부들 떨며 명희를 노려보았다.

“뭐가 분하기라도 한 거야?” 명희가 양진후의 멱살을 잡고 위로 들어올렸다. 그러고는 두툼한 손으로 그의 뺨을 갈겼다.

양진후는 발끝이 바닥에 닿지 않는 허공에서 명희에게 뺨을 맞았다. 정만이 그것을 보고 명희에게 달려들었다. 명희는 양진후를 멱살을 잡은 상태로 뒤차기를 날렸다. 정만은 가슴을 얻어맞고 허공을 날아 바닥에 떨어졌다.

명희는 십일 년 전 양진후가 배 위에서 열두 살 소년 준의 뺨을 때린 만큼 그의 뺨을 때렸다. 그러고 나서 멱살을 잡은 채로 집어던졌다. 양진후도 허공을 날아 바닥에 떨어졌다.

“털보 너, 김 대감한테 가서 전해. 그림 값은 흥정할 필요 없이 금괴 스무 근만 내라고 해. 흥정을 했으면 서른 근은 받아냈을 텐데, 싸게 주는 거라고 전해. 그리고 난 거기 가지 않을 테니, 네가 직접 내일 아침까지 금괴 스무 근을 이곳으로 가져와. 물론 오늘 일을 복수하고 싶으면 너희 패거리를 다 끌고 와도 좋아. 그리고 칼이든 도끼든 무기를 가져와도 좋아.”

“알았소.” 양진후가 짧게 답하고 자리를 떴다.

졸개들도 그를 따라 집을 나갔다.


“넌 싸우는 거 처음 봤어? 왜 그렇게 넋이 나가 있어?” 명희는 놀라서 멍한 상준에게 물었다.

“아가씨 어떻게 한 거예요? 저놈들을 아가씨가 제압한 거 맞죠?” 상준이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보고도 몰라. 저놈들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가는 것 못 봤어?”

“보기야 봤죠. 믿을 수가 없어서 그렇죠. 아니, 그리고 맨 처음 졸개 두 명은 어떻게 된 건지 너무 빨라서 제대로 보지도 못 했어요.”

“못 봤으면 그냥 지나가. 그건 됐고, 너 내일 떠날 준비해라. 그림을 다 가지고 가서 삼촌한테 맡겨줘.”

“예? 아까 궤짝의 그림을 보면서 바꿔치기 당했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그건 어떻게 하실 거예요? 안 바꾸고 그냥 가요?”

“그래. 욕심이 지나치면 눈이 흐려지는 법이야. 그러면 앞뒤 가리질 못하지. 스스로 진짜를 포기하고 가짜를 취하는 멍청한 행동을 하게 되는 거야?”

“예? 무슨 말이세요?”

“아니야. 어쨌든 이 그림들과 금괴 스무 근을 가지고 개성으로 돌아가. 그러고 나서는 개성에 머물지 말고 바로 삭주로 가도록 해. 그리고 금괴 열 근은 네 몫으로 줄 테니, 나머지는 삼촌에게 맡겨둬.”

“예? 금괴 열 근을 저한테 준다고요?” 상준이 놀라며 되물었다.

“왜? 적으면 더 줄 수도 있어.”

“아니, 아니에요. 너무 많아서 그렇죠.”

“아니야, 많지 않아.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지만, 혹시라도 김흥방이 널 쫓을 수도 있어. 그 때는 재물은 아끼지 말고 피신하는 데 다 써. 잡히고 나면 재물이 암만 많아도 다 빼앗기게 되어 있어.”

“아니요, 그래도 너무 많아요.”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다 가지고 있어. 내 말 안 들으면, 너 아까 걔네들 나한테 맞는 거 봤지? 그렇게 되는 거야.”

“아가씨, 그건 사양할게요.” 상준이 말하고 나서 망설이며 물었다. “명희 아가씨, 그러니까, 나한테 싸움 가르쳐주면 안 돼요?”

“왜 안 돼? 내가 나중에 삭주로 찾아가서 가르쳐줄게. 아까도 말했지만 개성에서 삼촌한테 그림 전하고 나서 바로 삭주로 떠나.”

“예, 알았어요. 나중에 꼭 가르쳐줘야 해요.”

“알았어. 죽지 않으면 반드시 약속 지킬 거야.”

“뭔 죽는다는 얘기를 하세요? 불길하게.”

“이 얘긴 됐고, 내일 금괴를 받으면 바로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둬.”

“예. 그렇게 준비해놓을게요.”


다음 날 아침, 양진후가 정만만 데리고 명희를 찾아와서 금괴 스무 근을 건넸다. 떠날 준비하고 있던 상준은 그림 궤짝과 금괴를 수레에 싣고 개성으로 떠났다.

김흥방은 스스로 모작을 취하고 변씨 가문의 소장품을 모두 내주었다. 욕심은 이성을 어둡게 한다. 어두워진 이성은 진실을 외면한다. 김흥방이 비열하게 그림을 바꿔치기하면서까지 선택한 것은 결국 모작이었다.

명희는 가문의 소장품 중 빼앗긴 것과 숨겨져 있던 것 모두 찾았다. 그리고 숨겨져 있던 소장품의 모작을 금괴 스무 근에 팔아버렸다. 이 일이 일단락되자 홀가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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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또 다른 명희 22.06.28 138 2 10쪽
104 손돌 22.06.25 135 2 13쪽
103 의인(義人) 22.06.24 144 3 11쪽
102 상봉 22.06.23 141 3 13쪽
101 애합문(愛哈門)객잔 22.06.22 143 2 11쪽
100 인삼주 22.06.21 141 2 12쪽
99 국경 22.06.18 137 2 12쪽
98 엄마 22.06.17 140 2 11쪽
97 가출 22.06.16 140 2 12쪽
96 22.06.15 155 2 12쪽
95 거래 종료 22.06.14 143 3 11쪽
94 사부 22.06.11 143 3 11쪽
93 핑계 22.06.10 150 3 11쪽
92 가보(家寶) 22.06.09 169 3 12쪽
91 감정(鑑定) 22.06.08 161 3 12쪽
90 가슴 시린 백발 22.06.07 155 2 11쪽
89 두 번째 검 22.06.04 149 3 12쪽
88 불타지 않은 그림 22.06.03 145 3 11쪽
87 보랏빛 검기(劍氣) 22.06.02 153 3 12쪽
86 사라진 검기(劍氣) 22.06.01 157 3 11쪽
85 위조 미수 22.05.31 149 2 12쪽
84 백발처녀 22.05.28 146 2 12쪽
83 할머니 22.05.27 157 2 11쪽
82 22.05.26 158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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