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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uan71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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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그림과 칼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무협

완결

검은칼날
작품등록일 :
2021.12.18 21:47
최근연재일 :
2022.07.05 16:00
연재수 :
110 회
조회수 :
21,407
추천수 :
438
글자수 :
581,056

작성
22.07.0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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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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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사칭

DUMMY

명희는 달빛에 의지해 밤길에 말을 달렸다. 그렇게 달려 동이 트기 직전 마포나루의 건너편에 도착했다.

거기에는 나룻배가 있었으나, 뱃사공은 손님이 모일 때까지 배를 띄우지 않겠다고 했다. 명희는 손님을 가득 태웠을 때의 뱃삯에 두 배를 지불했다. 사공이 배에 손님 한 명과 말 한 마리를 태웠다. 명희는 오랜만에 노를 젓고 싶었다. 사공에게 자신이 노를 젓겠다고 하자 그는 그렇게 해 보라며 노를 건넸다. 명희는 빠른 속도로 노를 저어 한강을 건넜다. 사공은 명희의 솜씨에 놀라며 뱃사공 노릇을 같이 해보자는 농담을 던졌다. 명희는 그 말을 무시하고 배에서 내려 말을 타고 나루를 떠났다.

명희는 말에서 내려 남대문을 통해 도성으로 들어갔다. 도성 안에서는 양반이나 공무를 맡은 관리가 아니면 말을 타고 다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명희는 남대문 근처에서 숙박할 곳을 찾았다. 숙소를 정하고 말을 맡겨놓은 후 길을 나섰다.

서울, 십일 년 만에 되돌아온 고향이었다. 발걸음은 옛집이 있던 다동으로 향했다. 집은 그대로였다. 원래 역적의 집은 허물어버리고 연못을 만드는 것이 국법이었으나 그렇게 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손돌은 여기에 누가 사는지 알고 있었을 테지만, 명희는 물어보지 않았다. 명희는 한동안 옛집을 바라보다 발걸음을 옮겼다.

명희는 다동을 떠나 서대문으로 걸어갔다. 거기에서 정오에 만나기로 한 손돌의 하인 상준을 기다렸다. 약속시간이 아직 되지 않아서 명희는 성벽에 기대 앉아 눈을 붙였다. 밤새 한숨도 자지 못 했기 때문에 금세 잠이 들었다.


“아가씨, 일어나세요.” 상준이 나귀가 끌고 온 수레를 세우며 명희를 깨웠다.

“어어, 왔어.” 명희가 일어나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아가씨, 왜 여기서 주무세요?”

“야, 남장을 했는데, 아가씨라고 부르면 어떡해?” 명희가 핀잔을 주었다.

“말은 어디에 맡겨놓으셨어요?”

“남대문 근처에 숙소를 잡았어.”

“잘됐네요. 그럼, 우선 거기로 가죠.”

“뭐가 잘됐다는 거야?”

“나리께서 남산 아래 있는 집에 머물라고 하셨어요. 거기가 남대문 근처니까 잘됐다는 거죠.”

“삼촌한테 거긴 안 간다고 말했었는데.”

“거기 그냥 머무시래요. 그 집은 이번에 아예 정리하실 거래요.”

“그래? 알았어.”

“그리고 아가씨, 이번에 무슨 일을 하시든 제가 모실게요.”

“뭔 소리야? 넌 오늘 쉬고 내일 돌아가.”

“아니에요. 저도 이번에 아가씨 모시고 나서 삭주로 이주할 거예요. 제가 전부터 무역 일을 한 번 해보고 싶었거든요.”

“후회 없어? 그건 그냥 무역이 아니라 불법적인 밀무역이라고.”

“알고 있어요. 제가 스스로 원한 걸요.”

“그래, 알았어. 너 삭주 갈 때, 내가 한몫 챙겨줄게.”

“그러실 필요 없어요.”

“그건 내가 나중에 알아서 할 테니까, 지금은 우선 가자.”


상준은 명희를 데리고 수레를 끌고 남산 아래 손돌의 집으로 갔다. 상준은 명희에게 집 밖에서 기다리라고 하고 혼자 집으로 들어갔다. 집을 지키고 있던 기수가 상준을 반겼다. 상준은 기수에게 개성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기수는 짐을 챙겨 집을 떠났다. 상준은 기수가 떠나자 명희를 불러 집안으로 들였다.

명희는 상준을 데리고 아침에 잡아놓은 숙소에 가서 말을 찾아왔다.


“상준아, 이 그림 어떠냐?” 명희가 족자를 보여주며 물었다.

“제가 어디 그림 볼 줄 아나요?”

“알고 모르는 게 어디 있어? 눈이 있는데, 왜 그림을 못 봐?”

“그게 아니고요. 어쨌든 이 인물 상당히 괴기스럽네요. 그리고 그림도 무지 오래된 것 같아요.”

“그래, 맞아. 사백 년은 되었지. 원나라 안휘의 이철괴 그림이야.” 명희가 긍정하고 또 다른 족자를 보여주며 물었다. “그럼, 이건 어떠니?”

“이건 더 오래된 것 같은데요. 여기 그린 말은 꼭 살아 있는 것 같아요.”

“그래. 그리고 이 그림은 네가 처음 본 이철괴 족자보다 더 오래된 거야. 이건 육백 년 이상 된 송나라 휘종 때의 것이니까.”

“예? 그렇게나 오래되었다고요.”

“그래, 맞아. 둘 다 청나라의 보물이지. 네가 이 족자들과 다른 화첩 하나를 김흥방에게 가지고 가서 보여주고 와라.”

“예? 북촌의 안국방에 사는 김 대감이요?”

“그래, 이미 알고 있구나. 그 자가 분명히 관심을 가질 거야. 그림에 대해 물으면 모른다고 하고, 내가 청나라에서 구한 거라고 하면 돼. 내 이름은 박만길의 딸 박희명이라고 해라. 그리고 나에 대해 물으면 이번에 우연히 만나서 잘 모른다고 하면 돼.”

“박만길이요? 의주에서 밀무역하다가 잡혀서 본보기로 효수를 당했다는 상인 아니에요?”

“그래, 그것도 알고 있구나.”

“예, 삼사 년 전에 소문이 파다했어요. 지금도 가끔 회자된다니까요.”

“그래, 오늘 한 번 다녀와라.”


다음날, 가마꾼들이 남산 아래 명희가 머무는 집 앞에 나타났다.

“아가씨, 가마꾼들이 왔어요.” 상준이 명희에게 알렸다.

“알았다, 나간다.” 명희는 방을 나가서 마당에 놓인 가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가씨, 뭐 하세요? 어서 타세요.” 상준이 재촉했다.

“그래.” 명희가 짧게 대꾸하고 가마에 올랐다.

“출발하쇼.” 상준이 가마꾼들에게 말했다.

“예예.” 가마꾼 네 명이 대답하고 가마를 들어 올리며 명희에게 알렸다. “아가씨, 이제 갑니다.”

상준은 떠나는 가마를 보며 수레를 끄는 나귀를 출발시켰다.

명희는 처음 타보는 가마가 불편했다. 말을 타고 가고 싶었지만, 성 안에서 말을 탈 수 있는 사람들은 양반들뿐이었다. 장옷을 머리 위에 걸치고 걸어 가볼 생각도 했지만, 화려한 행차가 사람들에게 주는 위압감을 알기에 그러지 않았다.

조선의 임금보다 돈이 더 많은 양주의 부자들도 남들에게 보이는 것을 중시했다. 명희는 가끔 노를 젓다가 화려한 배를 탄 그들과 마주치기도 했다. 그들은 양주 최고의 화상이 직접 노를 젓는 것에 놀랐다. 하지만 명희는 그림을 팔 때면 최고급의 차림새로 그들을 찾아갔다. 그들은 자신을 대접해주기 위한 것이라고 여기고 오히려 명희를 더 신뢰했다.

명희는 작년에 양주에서 구매한 최고급 비단으로 한복 한 벌을 만들었고, 또한 무명으로 남장 한복 한 벌을 만들었다. 국경을 넘으면서 남장 한복을 입었고, 오늘은 비단한복을 입었다. 그리고 서울에서 최고급 가마를 불렀다. 최고의 가마꾼들이 모는 가마는 불편하지 않았다. 불편한 게 아니라 안에 있으려니 답답했다.


명희는 진화루로 안내되었다. 십일 년 만에 다시 찾은 두 번째 방문이었다. 거기서 기다리고 있던 김흥방에게 절을 올렸다. 분했다. 속으로 분노를 삼켰지만, 눈에서 발산되는 분노는 감출 수가 없었다.

“눈빛이 사납군. 내가 자네한테 뭔 잘못이라도 했나?” 김흥방은 명희의 분노의 눈빛을 보고 물었다.

“평소에 남들에게 잘못을 많이 하고 사셨습니까?” 명희가 당돌하게 되물었다.

김흥방은 웃으면서 명희를 노려보았다. 명희는 그의 날카로운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김흥방은 잠시 후 눈길을 접으며 입을 열었다.

“그림이나 보여줘라.”

“예.” 명희가 짧게 대답하고, 상준의 이름을 ‘석수’라고 부르며 궤짝을 열라고 했다.

상준은 그림을 꺼내 김흥방 앞에 내려놓았다. 김흥방은 족자와 화첩들을 손길 닿는 대로 펼쳐보았다. 그림들을 보면서 고개를 내저으며 의혹의 눈초리를 감추려고 했다. 명희는 그걸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김흥방은 한동안 그림들을 살펴보다 고개를 들어 명희를 쳐다보았다.

“자네 이 그림들은 어디서 났나?”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것도 있고, 제가 북경에서 사온 것도 있죠.”

“하하, 요즘은 북경을 아무나 갈 수 있나보지. 세상 좋아졌어. 북경이 이젠 계집애도 그냥 갈 수 있는 데인 줄은 몰랐어.” 김흥방의 명희를 응시하며 냉소했다.

“대감 같으신 양반님들 덕분에 몰래 국경을 넘었습니다.” 명희도 차가운 웃음을 흘리며 대꾸했다.

“그래? 자네 의주의 박만길의 딸이라고 했지? 그러면 국경 넘은 이야기를 들려주게.”

“상감께서 밀무역을 금지하셨는데, 선부(先父)가 밀무역을 하다가 적발되어 효수됐습니다. 그러고 나니 집안은 풍비박산 나고 그 많던 재산도 어디로 갔는지 사려져버렸죠. 그런데 양자라고 들인 놈은 선부가 돈 한 푼 안 남기고 빚만 지고 가셨다며 저를 구박했습니다. 저는 구박에 못 이겨서 선부가 남겨놓은 그림들은 숨겨놓고 폐물만 지닌 채 국경을 넘었습니다. 그런데 의주 사람치고 한어 한두 마디 못하는 사람 있습니까? 선부는 의주 거상(巨商)이었으니 저도 어려서부터 한어를 좀 배웠었습니다. 그렇게 배운 한어로 청나라에서 망명해서 폐물을 팔아서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명희는 말을 끊고 허공을 응시했다.

“박만길의 외동딸은 목을 맸다던데?” 김흥방이 말을 끊은 명희에게 물었다.

“저도 그 얘기 들었습니다. 근데, 제가 도망치니까 죄도 없는 처녀 죽여서 목을 매달아놓았겠죠. 그 악렬한 양자 놈이 뭔들 못하겠습니까?”

“그래? 그건 그렇고, 자네가 청나라에서 장사해서 재물도 모으고 그림도 샀다는 건가?”

“그럼요. 제가 어려서부터 선부가 물려준 그림 보면서 감식안이 생겼거든요.”

“그러면, 이게 선부가 물려줬다는 그림들인가?”

“어떻게 아셨습니까?” 명희는 일부러 놀란 척을 하다 말을 이었다. “선부가 무신년에 개성에 갔다가 사왔다고 했죠. 저도 한꺼번에 두 궤짝이나 그림을 사가지고 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무신년에 개성이라고?” 김흥방이 의혹의 눈초리를 띄며 물었다.

“예. 제가 열두 살 때였죠. 그런데 희한한 건 선부가 그림을 숨겨놓고 감상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하라고 했다는 거죠.”

“그래? 그건 왜 그랬나?”

“으음, 그러니까 말이죠. 그땐 어려서 잘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선부가 무신년에 반란에 참여한 역도의 그림을 어디서 구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 그건 됐고, 그럼 이 그림들은 어떻게 팔겠는가?

“저도 물량이 많아서 어떻게 처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근데 한꺼번에 다 사실 생각이라면 부피가 큰 은보다는 금으로 지불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전부 다는 못 사실 테니, 마음에 드시는 것만 골라서 사시고 은으로 지불하셔도 됩니다.” 명희는 김흥방의 자존심을 자극했다.

“물론 다 사려면 대금이야 상당하겠지만, 나 김흥방이 그것조차 못 살까봐 걱정인가?”

“아, 아닙니다. 그런 의도로 말한 게 아닙니다.”

“그건 그렇고, 어제 그 이철괴 그림이랑 말 그림은 왜 안 가지고 왔나?”

“역시 보는 눈이 있으시네요. 그 인물이 이철괴임을 단번에 알아보시다니 탄복합니다. 근데 그 그림은 제가 좋아해서 팔 생각이 없는데, 그냥 보여드린 겁니다.”

“그렇다면 그 그림은 어쩔 수가 없군.”

“그리고 그 말 그림은 최근에 건륭이 입수한 것인데, 송나라 휘종이 직접 궁중화원들이 그린 것을 평가한 겁니다. 그건 황제에게 바치는 그림을 황실 중개상과 제가 목숨 걸고 빼돌린 것이라서 천만금을 주셔도 팔 수 없습니다.”

“그러면, 말 그림에 쓴 수금체가 휘종의 친필이 맞는 것이야?”

“역시 감식안이 대단해요.” 명희가 흥미를 갖는 김흥방을 칭찬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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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손돌 22.06.25 103 1 13쪽
103 의인(義人) 22.06.24 110 1 11쪽
102 상봉 22.06.23 104 1 13쪽
101 애합문(愛哈門)객잔 22.06.22 109 1 11쪽
100 인삼주 22.06.21 110 1 12쪽
99 국경 22.06.18 105 1 12쪽
98 엄마 22.06.17 106 1 11쪽
97 가출 22.06.16 107 1 12쪽
96 22.06.15 118 1 12쪽
95 거래 종료 22.06.14 112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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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핑계 22.06.10 115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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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불타지 않은 그림 22.06.03 111 2 11쪽
87 보랏빛 검기(劍氣) 22.06.02 115 2 12쪽
86 사라진 검기(劍氣) 22.06.01 117 2 11쪽
85 위조 미수 22.05.31 118 1 12쪽
84 백발처녀 22.05.28 114 1 12쪽
83 할머니 22.05.27 121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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