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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uan71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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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그림과 칼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무협

완결

검은칼날
작품등록일 :
2021.12.18 21:47
최근연재일 :
2022.07.05 16:00
연재수 :
110 회
조회수 :
20,929
추천수 :
438
글자수 :
581,056

작성
22.06.3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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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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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대리 대국

DUMMY

명희는 부모의 무덤을 떠나 서울을 향해 말을 달렸다. 도성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마포나루에서 한강을 건넜다. 그러고는 김진섭이 기거하고 있다는 관악산 아래 김흥방의 소작지로 향했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그곳에 닿았고, 김진섭의 집을 찾아 묵어가길 청했다.


“서방님, 과객이 들었는데 꼭 찾아뵙겠답니다. 재워줬으면 고마운지 알아야지, 방해하지 말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아요. 지금이라도 내쫓을까요?” 돌쇠가 사랑방 마루에서 혼자 바둑을 두고 있던 김진섭에게 보고했다.

“재워준다고 받아놓고 뭘 다시 내쫓아?” 김진섭이 핀잔을 주고 말을 이었다. “누구인데 날 보고 싶다는 거야? 데리고 와봐라.”

잠시 후, 돌쇠가 명희를 데리고 왔다.

“넌 누구냐? 왜 나를 보겠다는 거야?” 김진섭이 명희를 쳐다보지도 않고 물었다.

“전 떠돌이 장사꾼 희명이라고 합니다. 마침, 바둑을 두고 계셨군요. 전 국수님과 바둑 한 판 두려고 왔습니다.” 명희가 천연덕스럽게 가명을 댔다.

“나랑 바둑을 두러 왔다고? 자네 바둑은 얼마나 잘 두나?”

“조선 국수에게 한 집만 이길 만큼은 두죠.” 명희는 승호가 자신에게 한 집만 져주던 때를 떠올리며 대꾸했다.

“조선 국수? 하하, 조선 국수라고? 누가 조선 국수인가?”

“두는 사람마다 다들 조선 국수라고 하던데요. 그래도 서울의 김진섭 정도는 돼야 국수라고 할 수 있겠죠? 제가 서울 가서 두어보려고 했는데, 여기 계시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그래? 네놈 정말 대담하구나. 그러면 이리 올라와봐라.”

명희가 마루에 올라가 절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자네가 보기에, 이 바둑 흑이 이길 것 같나 아니면 백이 이길 것 같나?” 김진섭이 자리에 앉은 명희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바둑판을 바라보며 물었다.

“모르죠, 더 두어봐야 알 것 같아요.” 명희가 돌이 놓인 바둑판을 바라보며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김진섭이 두고 있던 바둑은 승호도 양주에서 가끔 두던 바둑이었다. 이것은 십일 년 전 진화루에서 김진섭과 두다가 김흥방이 나타나서 그만둔 미완의 대국이었다. 승호는 백제성을 가던 뱃길에서 번개를 맞고 양주로 돌아온 후에 바둑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그러면서 김진섭과 두다 만 바둑도 그만둔 곳에서부터 가능한 수들을 놓아보았다. 명희도 가끔 끼어들어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었다. 수만 가지의 변화를 두어보면서 승부를 예측했다. 결국 이기는 수를 몇 가지 찾아냈다. 지금 김진섭이 두고 있는 바둑은 그 때 그만둔 데서 일곱 수가 더 진행된 상황이었다. 여기에서 이기는 길은 명희도 알고 있었다.


“여기까지 두고 나서는 흑이 실수하지 않으면 백이 이길 수 없는 바둑이야.” 김진섭이 포기한 듯 말했다.

“그런가요?” 명희는 무심하게 대꾸했다. 그러면서 김진섭도 수만 가지의 변화를 두어보았지만 결국 이기는 수를 발견하지 못 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바둑은 됐고, 자네가 선장선수로 한 판 두어보자.” 김진섭이 바둑알을 거두며 말했다.

“그렇게 하죠.” 명희가 대답하며 바둑알을 고르는 것을 거들었다.

“자네 생김새가 십일 년 전에 내가 알던 당돌한 계집애랑 닮았는데, 손을 보니 아니구먼.” 김진섭이 명희의 얼굴과 바둑알을 챙기는 손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예? 십일 년 전에 알던 계집애라고요?”

“아니야. 자네 얼굴은 사내 같지 않게 곱상한테, 손을 보니 고생 많이 한 것 같구먼.”

“예, 제가 고생 좀 했죠. 어쨌든 내기를 해야죠.”

“내기바둑 좋지. 그러면 자네는 무엇을 걸겠나?”

“제가 예찬의 족자를 손에 넣었는데, 그걸 걸겠어요.”

“예찬의 족자? 자네 그림도 볼 줄 아나?”

“아뇨, 우연히 손에 넣었어요. 전 봐도 잘 모르겠으니, 위작인지 아닌지 한 번 보여드릴까요?”

“아니, 보고 싶지 않아. 난 무신년부터 그림을 보지 않는다네.”

“예? 그림을 보지 않는다고요?” 명희는 그림에 미쳤던 김진섭이 그림조차 보지 않는다는 말에 놀라며 물었다.

“그래. 무얼 그렇게 놀라나?”

“아니에요. 그럼, 내기는 바둑을 두고 나서 이긴 사람이 정하기로 하죠.”

“그래, 그렇게 하자.”


명희의 선장선수로 바둑이 시작되었다. 명희는 십일 년 전 승호와 김진섭과 두었던 미완의 바둑을 두어갔다. 김진섭은 이상한 듯 명희를 바라보다 고개를 저으며 그 날의 바둑을 두어갔다. 중반에 들어서자 명희는 잠깐 고민하며 승호의 말을 떠올렸다.

‘아가씨, 상대가 여기서 이렇게 두었으면 내가 질 수도 있었어요.’

명희는 두다보니 그 순간이 찾아왔다. 하지만 김진섭은 승호가 지적했던 곳에 돌을 놓지 않았다. 명희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김진섭은 명희의 한숨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명희는 눈길을 피하며 김진섭이 그 날 그만둔 곳에서 시작하려고 하는 것을 알아챘다.

둘은 미완의 바둑을 그대로 두어갔다. 결국 그 날의 마지막 수를 명희가 두었다. 김진섭이 거기에서 둘 수 있는 최선의 수를 두었다. 명희는 승호가 연구해놓은 대로 응수해나갔다. 김진섭도 최선의 수를 두었지만, 자신도 이미 알고 있다시피 이길 방법은 없었다. 명희는 승호를 대신해 바둑을 두었고 승리했다.


“자네 누군가?” 김진섭 패배를 인정한 후 물었다.

“조선국수의 대리인이죠.” 명희가 담담하게 대꾸했다.

“조선국수 장승호의 대리인? 너 변명희 맞지?”

“예. 알아보시는군요.” 명희가 담담하게 긍정했다.

“너 살아 있었구나. 내가 얼마나 기원했었는데······” 김진섭이 말을 끌며 눈물을 글썽였다.

“나리, 내가 내기는 이겼으니 술 한 잔 하며 얘기 좀 들어야겠어요.”

“그래, 그래.” 김진섭이 대꾸하고 고함을 치며 돌쇠를 불렀다.

“예, 나리. 부르셨어요?” 돌쇠가 밖에서 들어와 호응했다.

“돌쇠야, 여기 술상 좀 봐와라.”

“예, 예. 금세 대령하겠습니다.” 돌쇠가 대꾸하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명희야, 승호랑 동희도 살아 있니?” 김진섭이 돌쇠의 뒷모습을 보며 명희에게 물었다.

“예, 둘 다 살아 있어요. 그리고 오늘 바둑은 제가 승호 대신 둔 거예요. 승호가 수만 가지 수를 놓아보면서 그 날 그만둔 데서 시작하면 백이 이길 수 없다고 했어요.”

“그래, 맞아. 나도 두어보고 그런 결론을 내렸어. 어쨌든 승호랑 동희도 살아 있으니 정말 다행이야.” 김진섭이 안도의 한숨을 쉬고 명희에게 물었다. “근데, 넌 고생을 얼마나 했기에 손이 그 모양이야?”

“열두 살에 돛단배의 노를 저어 바다를 건넌 것부터 고생의 시작이었죠.”

“바다를 건너기는 한 거야? 잘했어. 그리고 미안하구나.” 김진섭은 고개를 조아렸다.

“서방님, 술상 봐왔어요.” 돌쇠가 둘의 대화를 깼다.

“그래, 여기 놓고 나가봐라.”

“예. 옆에서 시중 안 들어드려도 괜찮으시겠어요?”

“그래, 부르기 전에는 들어올 필요 없어.”

“예, 알겠어요.” 돌쇠가 명희를 관찰하며 대답하고 물러났다.

“명희야, 정말 반가워.” 김진섭이 명희에게 술을 따르며 반겼다.

“양반집이라서 다르네요. 조정에서 금주령을 내려서 주막에서도 술도 한 잔 못 마셨는데. 아전 놈들이 술 담글 때는 아무 말도 안하다가 술 익으면 와서 국법이라고 다 뺏어간다고 하던데요. 여기는 역시 양반집이라 금주령에도 이런 향기로운 술이 있군요.”

“뭐가 그렇게 신랄해?” 김진섭이 핀잔을 주다 혼잣말을 했다. “아니다. 너는 상감과 양반이라면 이가 갈릴 거야.”

“그림은 왜 안 보시는 거예요?” 명희가 술을 들이켜며 물었다.

“술 좀 마시고 나서 이야기하자.” 김진섭이 술을 들이켜며 제안했다.


명희가 빠르게 술을 마셨다. 김진섭도 벌컥벌컥 술을 마셨다. 둘은 술 한 병을 금세 비웠다. 김진섭은 돌쇠를 불러 술독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러고는 돌쇠가 술독을 가져오자 들어가서 자라고 했다. 둘은 계속 술을 마셨고, 김진섭은 금세 취했다. 명희는 김진섭이 술 취한 걸 확인하고 무신년 얘기를 물었다. 김진섭은 술에 취해 그 때 이야기를 넋두리처럼 풀어놓았다.


김진섭은 젊은 시절 무작정 그림을 사 모으고 싶었다. 명희가 자기의 아버지의 소장품을 모사한 것을 보고 변양호의 그림을 탐했다. 김진섭은 아버지 김흥방에게 변양호의 그림 얘기를 꺼냈다. 김흥방도 변양호가 처분한 서예작품들을 사고 나서 그의 소장품에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변양호가 서예만 처분하고 그림은 팔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변양호는 얼마 후 역적이 되었다. 김흥방은 털보 양진후에게 송도로 가서 남매를 살펴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변양호가 어차피 역적이 되었으니 그림들은 공개적으로 빼앗지 말라고 했다. 실권자가 역적의 소장품을 약탈했다는 소문이 나면 좋을 게 없었기 때문이다.

양진후는 승호를 통해 남매가 뱃길로 청나라에 들어갈 계획을 알게 되었다. 그 소식을 김흥방에게 알리고 후속조치를 지시 받았다. 김흥방은 양진후에게 배 위에서 그림을 빼앗으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남매와 승호를 모두 수장하라고 했다.

김진섭은 그 소식을 듣고 아버지 몰래 양진후에게 두둑한 재물을 찔러주었다. 아이들을 그냥 바다에 내던지지 말고 작은 배라도 태워주라고 했다. 죽든 살든 그것은 다음 문제고, 수장시키지는 말라고 했다. 생사는 하늘에 맡겼고 그들의 생존을 기원했다. 재물을 받은 양진후는 그러겠다고 승낙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김진섭이 아니었더라면 셋 다 죽었을 것이다. 게다가 아무 것도 모르고 몰래 배를 탄 준도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넷 다 모두 살았다. 명희는 김진섭의 지난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자신이 짐작했던 것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래는 김흥방이 사주해서 그림을 빼앗았고, 승호와 사귄 양진후가 돛단배를 내어준 은인인 줄 알았다. 그러나 양진후는 김진섭에게 돈을 받고 일행을 풀어주기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양진후는 승호 때문에 자비라도 베풀 듯했다.

명희는 개성을 떠나면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나서 김진섭의 목을 치려고 했었다. 그가 그림 때문에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김진섭은 무신년 이후에는 그림을 보지 않고 살았다. 집안의 소작지가 있는 이곳으로 내려와 바둑이나 두며 세월을 흘려보냈다. 명희는 칼을 뽑지 않고 김진섭과 술을 마셨다.


“명희야, 부탁이 하나 있다.” 김진섭이 술에 취해 말을 꺼냈다.

“뭔데요? 말해보세요.”

“면목이 없지만 제발 들어주어라.”

“말해보라니까요.”

“우리 아버지 목숨만을 살려주라. 아까 이야기할 때 네 눈을 보니, 살기가 가득하더라.”

“알았어요. 그건 들어드릴게요.” 명희가 승낙하고 나서 말을 이었다. “나도 내기에 이긴 대가를 제시할게요.”

“그래, 말해봐라. 무엇이든 들어줄게.”

“오늘 저 만난 건 잊으세요.”

“그래, 알았어. 네가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나는 하늘에 감사한다.” 김진섭이 한시름을 놓은 듯 대꾸했다.


밤이 깊었고, 명희는 김진섭이 술에 취해 잠이 들자 거기서 숙박하지 않고 말을 타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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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손돌 22.06.25 101 1 13쪽
103 의인(義人) 22.06.24 105 1 11쪽
102 상봉 22.06.23 100 1 13쪽
101 애합문(愛哈門)객잔 22.06.22 106 1 11쪽
100 인삼주 22.06.21 106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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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엄마 22.06.17 102 1 11쪽
97 가출 22.06.16 103 1 12쪽
96 22.06.15 11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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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불타지 않은 그림 22.06.03 108 2 11쪽
87 보랏빛 검기(劍氣) 22.06.02 111 2 12쪽
86 사라진 검기(劍氣) 22.06.01 115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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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백발처녀 22.05.28 111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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