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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칼날 님의 서재입니다.

그림과 칼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무협

완결

검은칼날
작품등록일 :
2021.12.18 21:47
최근연재일 :
2022.07.05 16:00
연재수 :
1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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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87
추천수 :
565
글자수 :
581,056

작성
22.06.1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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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거래 종료

DUMMY

궤짝 위에는 종이 두루마리들이 사십여 점이나 있었고, 아래쪽에는 비단 두루마리 다섯 폭이 있었다.

일현이 종이 두루마리와 비단 두루마리를 차례로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비단 두루마리부터 보시죠.” 황신이 비단 두루마리를 양원길 앞에 끌어놓으며 말했다.

“그럼 그러지.” 양원길이 비단 두루마리를 펼치면서 대꾸했다.

“조대장군패(曺大將軍霸)! 조패 장군!” 황신이 양원길이 펼친 그림 위의 글자를 보며 외쳤다.

“조패 장군의 그림은 지금까지 한 점도 남아 있지 않잖아?” 양원길이 물었다.

“알려진 바로는 그렇습니다. 황제폐하께서도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다.” 황신이 대답했다.

“황제의 소장품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단정해서 말하죠?” 명희가 끼어들어 물었다.

“아 그건 뭐··· 그게 문제가 아니고, 아가씨, 이 그림 어떻게 생각하오?” 양원길이 명희의 질문을 회피하고 물었다.

“나머지 비단 두루마리에는 한간의 이름도 적혀 있어요. 그래서 전에 제가 한간의 그림 운운했는데 아무래도 뭔가 이상하단 말이에요.” 명희가 대꾸했다.

양원길은 명희의 말을 듣고 나머지 네 폭의 비단 두루마리도 펼쳐보았다. 그 중 두 폭에는 한간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나머지 두 폭에는 조패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름만 적혀 있고, 황실 소장인(所藏印)이나 어떤 제발도 적혀 있지 않잖아?” 양원길이 지적했다.

“게다가 비단도 조패나 한간이 활약했던 당나라 현종 때의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명희가 대꾸했다.

“맞습니다. 비단은 송나라의 것입니다.” 황신이 옆에서 거들었다.

“송나라 때 그림이라면 그 자체로 가치가 있기는 한데, 이게 어떻게 그려진 그림 같소?” 양원길이 황신과 명희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물었다.

“그게 그러니까 말입니다···” 황신은 양원길의 눈길을 피하며 말을 삼켰다.

“첫 번째로 보신 그림이 늙은 말 같지 않아요?” 명희는 양원길에게 확인을 받으려는 듯 질문을 던졌다.

“맞아, 황실의 말들 그림은 다 살이 올라 있는데, 이건 비쩍 마른 늙은 말 같아. 하지만 못 먹어서 그런 게 아니라 늙어서 마른 것 같다고.”

“《선화화보》를 보면 송나라 황실이 소장한 조패 장군의 그림이 있죠?” 명희는 양원길이 고개를 끄떡이자 말을 이었다. “거기에 그의 그림들 중 〈노기도(老驥圖)〉 그러니까 늙은 말 그림을 두 점 소장했다고 했잖아요?”

“예, 《선화화보》에 분명히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황신이 옆에서 거들었다.

“알고 있어. 나도 요즘 그 책을 다시 보고 암기했어.” 양원길이 쌀쌀맞게 대꾸했다.

“휘종의 궁중화원이 그걸 임모한 그림이 아닐까요?” 명희가 자신의 의견을 제시했다.

“조패의 원작을 임모한 거라고?”

“그럴지도 모른다고요. 휘종이 소장한 그림들을 화원들에게 베껴 그리게 했다는 건 알려진 얘기잖아요? 그리고 휘종이 그렇게 화원들에게 베껴 그리게 내놓은 원작이 이천 점이나 된다는 얘기도 있잖아요?”

“그렇지. 그럼 이 그림이 조패의 원작을 베껴 그린 거란 말이오?”

“그럴 수도 있다는 거죠. 저도 단정할 수는 없어요.”

“아니, 설득력이 있어. 종이에 그려진 그림들은 휘종황제께서 보고 나서 직접 평가한 형식으로 되어 있잖소?”

“맞아요. 여기 있는 사십여 점 되는 그림들은 모두 족자로 만들어진 거랑 거의 유사해요. 하지만 족자의 그림들보다 성적이 안 좋은 그림이죠.”

“그렇다면, 이것도 아가씨 말대로 황실소장의 원작을 임모한 그림일 거 아니오?”

“그럴 가능성이 있지만 확답은 못 드려요. 제가 이번에 중개만 하고 감정에서 빠진다고 했잖아요?”

“그게 맞는 것 같습니다. 여기 보면 ‘방조장군옥화총도(倣曺將軍玉花驄圖)’라고 적혀 있습니다.” 황신이 세 번째로 본 그림의 뒷면을 살펴보며 말했다.

“예? 그런 게 있어요? 난 전에 발견하지 못 했는데.” 명희가 말하며 황신에게 다가가서 황신이 가리키는 부분을 보았다.

황신은 득의양양하게 글씨가 적힌 그림의 뒷면을 양원길에게 보여주었다.

“그렇게 작은 글씨로 적혀 있으니 제가 못 봤죠.” 명희가 글귀를 확인하는 양원길에게 말했다.

“아가씨 말이 맞는 것 같구먼.”

“방(倣)이라고 했으니 모방해서 그린 게 맞습니다.” 황신이 그것을 발견한 것이 자신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끼어들었다.

황신과 명희는 남은 그림들의 뒷면을 세밀하게 살펴보았으나 아무런 글귀도 발견할 수 없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비단에 그린 이 그림들은 다 베껴 그린 것이니, 한 푼의 가치도 없는 거 아니오?” 호운작이 말을 꺼냈다.

“비록 무명(無名)이긴 하지만 송대 궁중화원이 그린 그림인데 왜 가치가 없겠소? 게다가 원작도 남아 있지 않는데, 그런 원작의 모작이라면 꽤나 가치가 있죠.” 황신이 나서서 대꾸했다.

“그럼 얼마나 가치가 있다는 거요?” 호운작이 물었다.

“그게 그러니까···” 황신이 양원길의 눈치를 보며 말을 삼켰다.

“호 공자, 이 그림들을 모두 다 사겠소.” 양원길이 선언했다.

“양 공, 거래가 성사됐으니 나머지 약을 주세요.” 명희가 말했다.

“아직 가격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뭐가 그렇게 급하오?”

“전 급해요. 약부터 주세요.”

“허허, 이 아가씨 참나···” 양원길이 품에서 약을 꺼내 명희에게 건넸다.

“가격은 두 분이 알아서 협상하세요. 난 가볼게요.”

“아가씨, 어딜 간다는 거요?” 호운작과 양원길이 동시에 물었다.

“공자님, 오면서 제가 거래가 성사되면 어떻게 협상해야 하는지 말했죠. 그대로 하시면 돼요.” 명희가 호운작에게 말한 후 양원길에게도 말했다. “양 공, 난 양주로 먼저 돌아갈 거요. 나중에 내 중개료는 양주에서 챙겨주세요.”

명희는 만류하는 그들을 뿌리치고 호가장을 떠났다.


명희는 말을 달려 양주로 향했다. 마을이 나타나면 지친 말을 헐값에 팔아버리고 말을 바꿔 탔다. 잠을 자지 않고 말을 달렸고, 잠이 오면 말 위에서 잠시 잠을 자기도 했다. 명희는 안경에서 양주까지 천리 길을 이틀 만에 주파했다.


어둔 밤, 명희는 집에도 들르지 않고 예상을 찾아갔다.

“너 꼴이 이게 뭐니? 뱃길로 안 오고 말 타고 온 거야? 사나흘 후에나 올 줄 알았는데.” 예상이 말에서 내리는 명희에게 물었다.

“언니, 약부터 먹어.” 명희가 품에서 약을 꺼내 예상에게 건넸다.

“이게 뭔 약인데, 이런 몰골로 나타나서 약부터 먹으라는 거야?” 예상은 먼지를 뒤집어쓴 명희를 바라보다 명희가 건넨 환약 스무 알을 모두 삼켰다.

“언니, 나 졸려.” 명희가 약을 삼킨 예상에게 미소 지으며 쓰러졌다.

예상은 쓰러지는 명희를 안아 눕혔다.

“언니, 머리칼 까매질 거야.” 명희는 웃으며 잠이 들었다.

예상은 잠이 든 명희를 눕혀놓았다. 그러고는 손수건을 연못물에 적셔 명희 얼굴의 흙먼지를 닦아주었다.


다음날 아침, 명희가 잠에서 깨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예상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명희는 옷을 벗고 연못에 들어가 몸을 씻고 머리를 감았다. 그러고는 연못에서 잠수도 하고 헤엄도 쳤다.


“명희야, 안 추워? 빨리 나와!” 예상이 연못 속의 명희에게 외쳤다.

“좀 있다가 나갈게. 여기가 시원하고 좋다니까. 이틀 동안 흙먼지 뒤집어썼으니까 하루 정도는 물에서 씻어내야지.”

“날도 추운데 물에 들어가는 게 그렇게 좋니? 이젠 그만하고 나와서 국수 먹어.”

“국수 사왔어?”

“너 국수 좋아하잖아? 빨리 나와서 먹어.”

명희가 잠수를 했다가 공중으로 몸을 날려 예상 옆에 착지했다.

“언니, 국수 한 그릇 가져오느라고 내공을 얼마나 쓴 거야? 국수가 아직까지 따뜻하잖아?” 명희가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국수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야, 뭔 그런 걸 따지고 있어? 어서 국수나 먹어.”

“고명으로 해물이나 고기가 안 들어가도 맛있네.” 명희가 버섯이 고명으로 얹어진 국수를 몇 젓가락 먹고 나서 말했다.

“관음사 앞의 국숫집인데, 고명도 그렇지만 국물도 아예 야채로만 육수를 낸다고. 난 좋아하는데 넌 어떨지 모르겠다. 그래도 네가 이틀 동안 건량만 씹어 먹고 왔을 테니, 지금은 아무 거나 맛있을 거야?”

“맛있기는 한데, 양고기 국수가 먹고 싶어지네. 고기가 먹고 싶다고.”

“난 안 먹을 거지만, 쟤라도 잡아서 고기 좀 구워줘?” 예상이 명희가 타고 온 말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니야, 여기까지 태워다줬는데.” 명희가 정색을 하며 손을 내젓고 나서 물었다. “언니, 동지에 누구를 만나기로 한 거지?”

“말 안 했는데도 아네.”

“동지 지나서 다시 절해고도로 돌아간다고 했잖아?”

“그래.”

“그 사람 만나고 나면 어떻든 떠날 거야?”

“그가 같이 간다면 둘이 떠날 거고, 아니면 나 혼자라도 떠날 거야.”

“남자였구나. 동지까지 보름이나 남았으니 다행이네. 열흘 후면 머리뿌리까지 까매질 거야.”

“너 이것 때문에 그림까지 위조한 거야?”

“원작을 베껴서 위조한 건 아니야? 그럴 듯한 상황을 만들어낸 거지. 사람들은 사실보다 믿고 싶은 걸 믿는 편이거든.”

“그래서 그들에게 믿고 싶은 걸 믿게 해준 거야?”

“맞아. 원작이 있는 그림을 위조한 후에 그 위작을 원작이라고 우기지는 않았잖아? 비단과 종이 그리고 묵까지 모두 송대 것을 사용해서 소주의 전문 위조꾼들도 위조하기 쉬웠다고 하더라. 감식가들도 화가를 뺀 모든 조건이 송대 작품이기 때문에 구별하기 힘들 거야. 게다가 서예작품의 글씨를 위조한 것도 아니고 비단 그림은 인장조차 찍지 않아서 더 그렇겠지.”

“넌 총명하니까 위조도 주도면밀하구먼. 근데 유명 화가의 작품도 아니고 그렇게 해서 남는 게 별로 없을 것 같은데.”

“그건 맞아. 호 공자가 얼마에 협상할지는 몰라도 그건 다 위험을 무릎 쓴 대가로 그에게 주기로 했어. 그리고 그 거래액의 일 할이 양원길에게 받을 내 중개료야. 송대 그림재료 값하고 소주 위조꾼들에게 준 비용을 합치면 오히려 손해일 거야.”

“나한테 약 구해주려고 그런 거잖아?”

“언니, 그런 거 신경 쓰지 마. 나 〈계산행려도〉를 중개하면서 돈은 꽤 많이 벌었어. 게다가 조선에 갈 거니까 재산 같은 건 쓸모도 없어. 은을 싸 짊어지고 갈 수도 없고, 금괴 몇 덩이만 가져갈 거야.”

“이것도 가져가.” 예상이 봇짐을 명희에게 건넸다.

“이게 뭐야?”

“주먹폭탄과 해독약이야. 폭탄은 모두 여덟 발인데, 폭발 자체는 살상력이 거의 없고 맹독을 멀리 분산시키는 역할을 하는 거야. 해독약은 폭탄 터뜨리기 전에 미리 먹고, 나중에 상황 봐서 더 복용하면 돼.”

“언니, 떠날 날이 다가오니 나도 겁나.”

“내가 같이 가줄까?”

“어? 정말? 언니 누구 만난 후에 돌아간다고 했잖아?”

“십년 전에는 간절히 바랐는데, 십년이란 세월은 아무리 뜨거운 감정이라도 차게 식히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어. 이젠 그 사람을 만나도 아무런 느낌도 없을 것 같아서 나도 겁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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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애합문(愛哈門)객잔 22.06.22 142 2 11쪽
100 인삼주 22.06.21 141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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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엄마 22.06.17 140 2 11쪽
97 가출 22.06.16 139 2 12쪽
96 22.06.15 155 2 12쪽
» 거래 종료 22.06.14 143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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