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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칼날 님의 서재입니다.

그림과 칼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무협

완결

검은칼날
작품등록일 :
2021.12.18 21:47
최근연재일 :
2022.07.05 16:00
연재수 :
1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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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81,056

작성
22.06.0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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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감정(鑑定)

DUMMY

“한간의 말 그림을 위조한다고? 근데 한간은 당나라 현종 때 궁정화원이잖아? 이 비단은 송나라 때 비단이라며?” 준이 명희가 내민 비단을 가리키며 물었다.

“당대 비단은 구할 수가 없어. 송대 비단도 운이 좋아서 구한 거라고.” 명희가 볼멘소리를 했다.

“감식가라면 이건 구별할 수 있지 않겠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그럴 수도 있다면, 위험한 짓을 하는 거잖아?”

“그럼, 어쩌지? 나도 양원길이 하는 짓거리가 화가 나서 이런 생각까지 했는데··· 그리고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약의 나머지 반을 구할 수가 없단 말이야.”

“그 누나 이철괴 그림에다 용천검까지 훔쳤다고 했잖아? 그럼 그 약도 훔치면 되겠네. 애초에 양원길이 약속을 안 지킨 거니까 말이야.”

“예상 언니한테 말 안 했어. 그리고 그 언니한테 양원길에게 가서 직접 약을 훔치라는 게 말이 되냐? 게다가 양원길도 용천검을 잃어버린 적이 있어서 이번에는 방비를 제대로 할 거라고.”

“들어보니 그렇긴 하네. 근데 내가 말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거라면 자신이 있는데, 한간의 그림은 본 적이 없어서 제대로 모방할 수 있을까? 괜히 의심만 더 받을 수도 있잖아?

“그러게, 나도 한간의 그림은 본 적이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야. 단서라고는 두보(杜甫)의 〈단청인 증조패장군(丹靑引 贈曹霸將軍)〉이란 시의 일부밖에 없어. 《역대명화기》에서 인용한 그 시를 보면, ‘(조패 장군의) 제자 한간이 일찍이 새로운 경지에 들어, 또한 말을 그리면서 그 특이한 모습을 다 표현할 수 있었다. 한간은 살집만 그리고 골격을 그리지 않아, 준마의 기운만 쇠하게 하였다.(弟子韓幹早入室, 亦能畫馬窮殊相. 幹惟畫肉不畫骨, 忍使驊騮氣凋喪.)’라고 했어. 어쨌든 두보의 평가는 각박한 것 같아. 한간이 현종에게 ‘폐하의 마구간의 명마들이 모두 제 스승입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황제의 마구간에 있는 말들이 모두 준마이고 잘 먹여서 살이 오른 건 너무 당연하잖아? 궁중화원인 한간이 그런 말들을 보고 그렸으니 당연히 살집이 오른 말을 그릴 수밖에 없잖아?”

“그건 내 말이 맞아. 이번에 말 농장의 말들을 그리다 보니, 잘 먹고 잘 관리 받은 말들은 당연히 살집이 올라 있어. 황실의 준마들이라면 오죽 잘 먹이고 잘 관리 받았겠어?”

“그렇지. 그러니까 한간이 살집만 그리고 골격을 그리지 않았다는 건, 아마도 선묘로 윤곽을 잡아 그린 것을 말하는 것 같아.”

“그것만을 단서로 그리기에는 아무 단서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역대명화기》나 《당조명화록(唐朝名畫錄)》 그리고 《선화화보(宣和畫譜)》 어디에도 구체적인 기법은 나와 있지 않아. 《선화화보》를 보면 송나라 황실에서 수장했던 한간의 말 그림 제목들이 나오는데, 그걸로 말의 종류는 유추해볼 수 있어.”

“말의 종류를 알면 그리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기법을 모르면 모방하기는 힘들잖아?”

“그렇지. 그건 내가 좀 알아볼게.”

“그리고 그 당시의 그림처럼 보이려면, 내가 그냥 그림만 그린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

“그건 말이야, 내가 위작을 가려내기 위해 공부한 적이 있어. 그림 위조하는 데는 갖은 방법들이 다 있는데, 그 방법들을 써봐야지.”

“그건 그렇고, 이게 송나라 비단이라면 여기다 그냥 연습 삼아 그릴 수도 없잖아? 우선 구체적인 계획부터 세워봐.”

“그래, 알았어. 양원길이 약을 반만 주고 가는 바람에 화가 나서 앞뒤 생각을 못 했어.”


그로부터 보름 후, 명희가 사동각으로 호운작을 데리고 왔다.

“저저 저놈, 사년 전에 명희 너를 납치했던 놈 아니야!” 준이 호운작을 보자마자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쳤다.

“준아, 흥분하지 마.” 명희가 담담하게 말했다.

“명희야, 쟤 말이지, 너 몸값 지불하기 위에서 과주 갔을 때 나타났던 놈이라니까!” 준이 또 다시 소리쳤다.

“나도 알고 있어. 흥분 좀 가라앉혀.”

준은 호운작을 노려보았고, 호운작은 웃으며 흥분한 준의 바라보았다. 준은 호운작 뒤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시종을 쳐다보았다.

“저놈은 또 그 때 서생 복장을 하고 사동각에 찾아와 몸값을 요구한 놈이라고!” 준은 시종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쳤다.

호운작의 시종은 준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야, 도대체 저놈들을 왜 데리고 온 거야?”

“이놈저놈 좀 그만 하셔. 듣는 놈 화나니까. 그 때 그건 다 네 친구 명희가 부탁해서 한 일이라고.” 호운작이 명희 대신 나서서 대꾸했다.

“뭔 소릴 하는 거야?” 준이 호운작에게 말하고 명희를 쳐다보며 물었다. “명희야, 저 말 사실이야? 네가 부탁한 거야?”

“한 화원이 그림 잘 그린다는 말은 들었는데, 그 때 내 얼굴 한 번 보고 나서 기억하는 걸 보니 기억력도 대단하군. 난 한 화원 얼굴을 잊고 있었거든.” 호운작이 또 다시 나서서 감탄하며 대꾸했다.

“호 공자, 준은 스쳐지나간 사람들도 기억하는데, 날 납치한 원수를 기억 못하겠어? 얘는 한 번 유심히 본 사물은 형상 그대로 기억한다니까.”

“한 화원, 이번의 말 그림을 보니 대단하더구먼. 그림을 잘 모르는 나도 감동했다니까.” 호운작이 준의 솜씨를 칭찬했다.

준은 호운작이 명희의 이름을 부르는 것도 싫었고, 자기를 ‘한 화원’이라고 부르며 칭찬하는 것도 싫었다. 하지만 호운작이나 명희에게 화를 낼 수가 없었다.

“그 때 걱정시킨 건 정말 미안해.” 명희가 먼저 사과한 후에 말을 이었다. “그 때 정말 시집가기 싫었다고. 준아, 내가 그 때 시집갔으면 지금 여기서 너희들이랑 살 수 있었겠어?”

“그래서 네가 꾸민 자작극이었어?” 준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되물었다.

“그래, 맞아.”

“그랬으면 미리 말이라도 해줬어야지.”

“너한테 말해줬으면 오빠까지 속일 수 있었겠어? 넌 거짓말도 제대로 못 하잖아?”

“그 때 동희 형도 걱정 많이 했다고.”

“그건 미안하지만, 오빠가 시집가라고 강요했단 건 너도 알잖아? 그 때 납치사건 없었더라면 강제로 시집갔을 거야.”

“내가 시집 안 가려고 도망친 사람 얘긴 들어봤어도, 몸값까지 요구하는 납치사건으로 자작극을 꾸미는 사람은 처음 봤다. 으이그.”

“그냥 도망치는 거야 누가 못 해? 납치사건으로 꾸몄으니까 되돌아올 수 있었던 거야. 그래야 자연스럽잖아?”

“대단히 똑똑하구먼.” 준이 잘난 척하는 명희를 비꼬았다.


명희는 안경부의 호가장에서 호운작을 데리고 왔다고 양원길에게 통보했다. 양원길은 그 말을 듣고 서둘러 사동각을 찾았다. 명희는 양원길에게 호운작을 소개했고, 양원길과 호운작은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럼, 그림을 보도록 합시다.” 양원길이 인사를 마치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

“전 이미 호 공자의 소장품을 봤어요. 송대 그림이 맞는 것 같은데, 확신할 수 없으니 그쪽에서 감정을 하세요.” 명희가 그림을 보기 전에 양원길에게 단서를 달았다.

“그렇게 하겠소.” 양원길이 북경에서 데려온 감식가 황신을 바라보며 명희에게 대꾸했다.

“그림은 다 가져오지 않았소. 몇 점만 가져왔는데, 우선 그림 말고 글씨 좀 봐주쇼.” 호운작이 말하고는 시종에게 서첩을 꺼내라고 했다.

시종은 상자에서 서첩을 꺼내 호운작에게 건넸고, 호운작은 그것을 양원길에게 건넸다. 양원길은 서첩을 펼쳐서 유심히 살피다 놀라며 황신에게 건넸다. 황신은 글씨를 보면서 아리송한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끄떡이기도 했다.

“어떤가?” 양원길이 황신의 표정을 살피다 물었다.

“이건 안진경(顔眞卿)의 진적 같습니다.” 황신이 단정적으로 말했다.

“안진경의 진적이요? 그럼 천만금은 나갈 텐데요. 다 보시고 저도 좀 보여주세요.” 명희가 끼어들어 말을 꺼냈다.

양원길이 황신에게 서첩을 건네받아 명희에게 건넸다.

명희는 전체를 한 번 훑어보고는 작게 쓴 해서(楷書)체 글씨를 유심히 살펴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가씨, 어떻소?” 양원길이 물었다.

“이 서첩이 다시 이렇게 나돌지는 몰랐네.” 명희는 양원길에게 대꾸하지 않고 혼자 중얼거렸다.

“아가씨, 왜 그러오?” 양원길과 호운작이 동시에 물었다.

“호 공자님, 이거 어디서 구하셨어요?” 명희가 호운작에게 인상을 쓰며 물었다.

“내가 양주에 오기 전에 신안(新安)에 들렀는데, 거기서 부잣집 노인을 만났소. 그가 내 말 그림이 너무 마음에 든다며 이 서첩과 바꾸자고 했소. 이게 안진경의 글씨인데 보물이라고 해서 말 그림이랑 바꿨는데··· 안진경의 서첩이라면 보물이 아니오?” 호운작이 명희의 표정을 살피며 눈을 껌벅거렸다.

“아주 잘하셨어요. 이런 쓰레기를 진짜 보물인 말 그림이랑 바꾸시다니요.” 명희가 비꼬았다.

명희가 서첩을 쓰레기라고 부르자 모두들 놀랐다. 그러면서 휘둥그레진 눈으로 명희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명희는 대답하지 않고 책장으로 걸어갔다. 거기서 책 한 권을 꺼내 탁자로 들고 왔다. 그러고는 책장을 넘기며 한 부분을 찾아냈다. 호운작에게 그 부분을 보여주려다 자기 앞에 놓았다.

“제가 요약해서 읽어 드릴게요. 이 책은 심덕부(沈德符)의 《만력야획편(萬曆野獲編)》이란 책이에요. 심덕부가 오문(吳門)에서 동기창, 한고주(韓古洲)와 함께 서로의 소장품의 우열을 가릴 때 얘기지요. 그런데 동기창이 바로 방금 전에 보신 그 서첩 그러니까 안진경의 〈주거천고신(朱巨川告身)〉을 꺼냈답니다. 그러고는 감탄하면서 ‘이것은 내 친구 진미공(陳眉公)의 수장품인데 참으로 귀중한 보물이다.’라고 했지요. 근데 심덕부가 작게 쓴 해서 글씨를 보니 중서시랑(中書侍郞) 개파(開播)라고 쓰여 있더랍니다. 아까 제가 살펴본 그 부분이었지요. 그걸 보고 심덕부가 뭐라고 했는지는 제가 그냥 읽어보죠. ‘여기서 개파는 틀림없이 노기(盧杞)가 추천했던 관파(關播)인데, 임모하는 사람이 역사도 모르고 실수로 관(關)자를 개(開)자로 잘못 쓴 것이다. 더욱이 안진경과 노기, 관파는 동시대 사람이므로, 이것이 실수라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자 동기창이 심덕부의 지적을 인정하고 황급히 그 서첩을 상자에 넣어버렸어요. 그러고는 ‘너의 말의 맞다! 하지만 진계유(陳繼儒)가 매우 아끼는 물건이니 잠시 이 사실을 퍼뜨리지 말라.’고 당부했답니다. 동기창의 감식안보다 심덕부의 박식함이 위작을 알아낸 거지요. 하긴, 천하의 동기창도 글씨만 보고 안진경의 진적이라고 믿었으니, 호 공자께서 속으신 것도 뭐라 할 수는 없지요.” 명희가 긴 얘기를 끊었다 한 마디 덧붙였다. “지금 이 서첩이 바로 그 때 위작으로 판명 난 서첩이잖아요?”

서첩을 진품이라고 했던 황신은 얼굴이 시뻘게져서 명희가 지적한 부분을 살펴보았다.

“아가씨 그런 책까지 다 읽었어? 그럼, 이건 쓸모없는 위작이잖소?” 호공자는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이렇게 책에도 나와 있는 위작이니 아예 가치가 없다고는 할 수 없죠.”

“맞습니다. 양 공, 여기 보시면 이미 개(開)자를 관(關)자로 고쳤습니다. 물로 씻어내고 고친 흔적이 있지 않습니까?” 황신은 마치 자신이 위작을 감정해낸 것처럼 의기양양했다.

“그러게요. 제가 이 서첩을 보니까, 누군가가 아까 제가 보여드린 심덕부의 《만력야획편》을 보고 나서 위작으로 판명하는 기준이 된 잘못된 글자를 아예 지우고 고쳐놓더군요.” 명희는 자신이 감정한 내용을 황신이 가로챘지만 신경 쓰지 않고 덧붙였다.

양원길은 심드렁하게 황신을 쳐다본 후 명희에게 신뢰의 눈길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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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불타지 않은 그림 22.06.03 145 3 11쪽
87 보랏빛 검기(劍氣) 22.06.02 153 3 12쪽
86 사라진 검기(劍氣) 22.06.01 157 3 11쪽
85 위조 미수 22.05.31 149 2 12쪽
84 백발처녀 22.05.28 146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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