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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칼날 님의 서재입니다.

그림과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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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검은칼날
작품등록일 :
2021.12.18 21:47
최근연재일 :
2022.07.05 16:00
연재수 :
1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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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5
글자수 :
581,056

작성
22.06.07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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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가슴 시린 백발

DUMMY

“이제 그만 나와. 물도 차잖아?” 예상이 검을 거두며 연못에 있는 명희에게 말했다.

예상의 손에서 보랏빛 검기를 내뿜던 두 번째 용천검에는 표면의 보랏빛 광채만 남아 있었다.

“아직까지는 내공을 쓰지 않아도 물이 차진 않아.” 명희가 대꾸하며 공중을 날아 연못 밖으로 나왔다.

“내공도 안 쓰고 있었어? 그렇다면 상대가 찬물에서 체온 유지하느라 내공을 쓰는 동안 넌 싸움에 내공을 다 쏟아 부을 수 있겠구먼. 넌 역시 물이랑 상생이야.”

“언니 역시 대단해. 그동안 나한테 시범 보인 거랑은 아예 다르던데. 내가 얘를 쓰는 것보다 더 강력했다고.” 명희가 등 뒤에서 첫 번째 용천검을 뽑으며 말했다.

그 검은 칼집을 나오면서 보랏빛 섬광을 내뿜었다.

“너 쌍검 쓰고 싶다고 했지? 이 두 검이 합이 잘 맞을 것 같아.”

“내가 말했잖아? 어제 술 마시고 쌍검 연습했더니 합이 잘 맞더라고.”

“그래, 첫 번째 검이 두 번째 검의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어. 얘도 품고 있는 위력이 강력해.” 예상이 명희에게 두 번째 용천검을 건네주며 말했다.

명희는 두 자루의 검을 모두 등 뒤의 칼집에 꽂았다.

“언니, 내일 중추절인데 사동각에 오면 안 돼?”

“나, 사람들 만나기 싫어.” 예상이 단호하게 거절했다.

“내일은 명절이라 내가 여기 오기 힘들 것 같아서 그런데.”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알았어. 내가 내일 밤늦게라고 올게.” 명희는 하얗게 반짝이는 예상의 머리칼을 보며 가슴이 먹먹해졌다.


중추절, 명희, 승호, 준, 아영, 보보, 국, 왕휘, 산의 모자는 아침부터 모두 모여 월병을 먹으며 명절을 보냈다. 삼은 만찬을 위해 아침부터 영풍루의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했다. 저녁에는 모두 영풍루에 모여 삼이 준비한 산해진미를 먹으며 왁자지껄 명절을 즐겼다. 그러고는 달구경을 하며 소원을 빌었다.


“언니, 하루 종일 혼자서 심심했지? 명절이라 더 그랬을 거야.”

“그런 거 없어. 십년 동안 절해고도에서 혼자서 살았다고.”

“그건 아는데, 어쨌든 술이나 한 잔 하자. 그리고 이것 좀 먹어봐.” 명희가 월병과 죽 한 그릇을 내밀며 말했다. 그러고는 술을 따라주었다.

“월병 먹어본지도 오래됐군. 근데 단맛은 싫어.” 예상이 월병을 밀어두고 술 한 잔을 마셨다.

“그럼, 죽이라도 먹어봐. 털게의 살만 발라내서 아무런 조미료도 안 쓰고 소금만 넣고 끓인 거야. 언니가 고기는 입에도 안 대니까 내가 일부러 부탁했다고. 이것도 안 먹으면 난 서운하고 삼은 미쳐버릴 거야.”

“이제 가을이니 털게 철이구나.” 예상이 죽을 마셨다.

“언니, 맛있지?” 명희가 죽을 마시는 예상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건 그런대로 괜찮네. 근데 난 비린 맛 그대로가 좋은데, 걔는 일부러 그걸 죽이려고 생강이랑 마늘하고 소흥주까지 넣고 털게를 삶았어.”

“그런 맛도 구별할 수 있어? 어쨌든 삼이 죽에는 아무 양념도 안 했다고 했는데, 털게를 삶을 때 어떻게 삶았는지는 모르겠어. 언니 근데, 육식을 안 해야지 언니처럼 내공이 순정해지는 거야?”

“그런 게 어디 있어? 내가 섬에 살면서 특별한 음식을 해먹은 적은 없지만, 그래도 열흘에 한 번 정도는 물고기를 구워먹었어.”

“언니, 내가 음식은 못 해도 바다 나가면 물고기 잡아서 회는 떠줄 수 있은데··· 난 노를 저어서 바다를 건너온 후에는 십년동안 바다를 못 봤어.”

“너 바다 보고 싶어?”

“응. 헤엄은 바다에서 쳐야지 제 맛이지.”

“같이 갈까? 너랑 같이 가면 혼자 있을 때랑은 다를 것 같아.”

“언니랑 가보고는 싶은데 거기서 계속 살 생각은 없어.”

“난 동지가 지나면 섬으로 돌아갈 생각이야.”

“동지가 지나서? 왜 가게?”

예상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언니, 그 얘긴 됐고, 이것 좀 봐봐.” 명희가 묻는 걸 포기하고 화제를 바꾸었다. 품에서 견본에 그린 사진을 꺼내 예상에게 건넸다.

“준이 그린 거야?” 예상은 무덤덤하게 자신의 사진을 바라보다 물었다.

“잘 그리지? 내가 말해준 대로 그린 거라고.”

“근데, 왜 머리칼이 검은 색이야?”

“내가 언니 백발이란 말은 안 했는데, 그랬더니 준이 검은 색으로 칠했어.” 명희가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예상이 일부러 왜곡해서 채색한 걸 알면 성질을 부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랬어? 실제로 보지도 않고 말한 것만 듣고 이렇게 그랬다는 거야?”

“내가 제대로 말해준 거지. 화가의 솜씨만 좋다고 되나?”

“넌 또 잘난 척이니.” 예상이 핀잔을 준 후 말을 이었다. “걔 불상 그림도 매력적이더니만, 사진도 잘 그리네.”

“준이 원래 사진의 전문가야. 걔네 아버지께서 조선의 궁중화원이셨는데, 그런 아버지께 배운 솜씨라고.”

“한 화원 얘긴 알고 있어. 네가 여자 사진 화첩 보여줄 때 이미 말했잖아.”

“맞아, 얘기했었지.” 명희가 긍정하고 화제를 바꾸었다. “언니, 그 사진은 완성된 게 아니니까 돌려줘. 내가 언니 머리칼이 까매지면 표구까지 해서 선물할게.”

“야 이년아, 지금 누굴 놀리니? 머리칼이 어떻게 다시 까매진다는 거야?”

“조금만 기다려. 내가 언니 머리칼을 검게 바꿔줄게. 그 때가 되면 언니의 미모는 경국지색이란 말이 명불허전이 되는 거지.” 명희가 장담했다.

“야, 헛소리 좀 그만해!”

“아니야, 내가 약을 구하고 있다고. 좀 있으면 손에 넣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런 약이 있다고?” 예상이 화를 누그러뜨리며 물었다.

“왜 없겠어? 조만간 구할 수 있을 것 같아. 그 때가 되면 나랑 같이 사동각에 내 친구들 보러 가야 해.”

예상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명희는 은색의 보름달빛을 받아 유난히 하얗게 빛나는 예상의 머리칼을 보며 울적해졌다.


중주절이 지나고 보름 후, 구월 초하루가 되었다.

이 날, 양원길이 사동각을 찾았다.

“아가씨, 북경에서 약이 왔소.” 양원길이 말을 꺼냈다.

“그럼, 어서 주세요.” 명희가 재촉했다.

“약은 우선 반만 가져왔소. 머리뿌리까지 까매지려면 약을 모두 복용해야하오.”

“우선 반만 준다는 건 무슨 의미예요?”

“요즘은 그림 매입이 없어서 아가씨한테 부탁 좀 하려고 그러오.”

“약속한 것과 다르잖아요? 이미 심상덕의 모든 소장품을 다 매입할 수 있게 해드렸잖아요?”

“그 대신 약값은 한 푼도 받지 않겠소.”

“양주에서 살 수 있는 만큼은 거의 다 산 거예요. 이제는 강제로 빼앗지 않는 한 그림 구하기는 쉽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아가씨한테 부탁하는 것 아니오.”

침묵이 흘렀다. 명희는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아가씨, 우선 이 약을 한 번 써보쇼. 그러면 생각이 달라질 거요. 복용하고 나서 열흘 후면 머리카락 반이 까매질 거요.”

“그래요?”

“물론이지, 게다가 나머지 반을 다 복용하고 나면 머리뿌리까지 까매져서 몇 년 혹은 그 이상도 까만 머리칼을 유지할 수 있소.”

“좋아요. 시간을 좀 주시면 어떻게든 해볼게요. 양주에서는 더 이상 그림 구하기는 어려울 거예요. 안휘성(安徽省) 안경부(安慶府)에 한 번 다녀와야겠어요.”

“거기는 왜 간다는 것이오?”

“제가 사년 전에 거기에 갔다가 호가장(胡家莊)이라는 장원에 머물렀던 적이 있어요. 집안에 말 그림들이 많아서 살펴보니 한간(韓幹)의 진품 같았어요.”

“하하하, 한간의 진품이라고? 지금 남아 있는 건 황제께서 이미 다 가지고 계신데.” 양원길은 명희의 말에 정색을 했다.

“그래요? 황제의 소장품을 어떻게 아세요?”

“아니, 그런 소문이 있다는 거요. 황실에서 한간의 〈조야백도(照夜白圖)〉, 〈신준도(神駿圖)〉, 〈목마도(牧馬圖〉를 소장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소.”

“그래요? 근데 거기에는 알려지지 않은 한간의 그림들이 많은 것 같아요. 송대(宋代)의 다른 그림들도 꽤 있는 것 같더라고요.” 명희는 양원길의 호기심을 끌기 위해 말을 끊었다.

“어떤 그림들이오?” 양원길은 궁금함을 못 이기고 명희에게 말을 재촉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송나라 황실에서 직접 빼돌린 것 같아요. 근데 웃긴 건 그 집안사람들이 그 가치를 제대로 모르더라고요.”

“그래서?” 양원길은 또 다시 말을 끊은 명희를 재촉했다.

“아니, 그렇다고요. 진짜 보물이 거기에 잠자고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그 호가장이 안경부의 어디 있소? 거기가 도대체 어디냐고?”

명희는 입을 닫고 느긋하게 양원길의 조바심을 즐겼다.

“아가씨, 나랑 함께 가봅시다.” 양원길이 몸이 달아 제안했다.

“아니요, 저 혼자 우선 갔다 올게요. 다시 한 번 송대의 그림이 맞는지도 확인해봐야 하고 그쪽에서 팔 생각이 있는지도 알아볼게요.”

“그렇다면 알아봐주쇼. 시간은 얼마나 걸릴 것 같소?”

“보름에서 한 달 정도는 걸리지 않겠어요. 조만간 준비해서 갔다 올게요.”

“그 거래만 성사되면 약의 나머지 반도 다 드리겠소. 그리고 아가씨 요즘 보니 중개료는 큰 관심이 없는 것 같기는 한데, 중개료도 넉넉히 드리도록 하겠소.” 양원길이 잔뜩 기대에 부풀어 말했다.

“그러세요.”

“그러면, 잘 다녀오시게.” 양원길이 약을 건네며 일어섰다.


“산아, 같이 들어가자. 넌 준한테 가서 작업실로 오라고 해. 난 내 방에 좀 갔다 작업실로 갈게.” 명희가 양원길이 돌아가자 산에게 말했다.

“누나, 무슨 일이에요?” 산은 명희가 질문에 대답하지 않자 더 이상 묻지 않고 준을 찾아갔다.

명희는 자기의 방으로 돌아가 잠가놓은 궤짝을 열고 송대의 비단을 꺼냈다. 그러고는 그걸 작업실로 가져갔다.


“명희야, 무슨 일이야?” 준이 작업실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명희가 들어오자 물었다.

“준아, 부탁할 게 있어.” 명희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뭔데? 말해봐.”

“말 그림 좀 여기다 그려주면 안 돼?” 명희가 준에게 비단을 내밀며 물었다.

“이거 비단이잖아? 꽤나 오래된 것 같은데.”

“송대의 비단인데 어렵게 구했어.”

“송대의 비단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고?”

“그러니까, 어렵게 구했지.”

“근데, 여기다 말 그림을 그려달라고? 너 가짜그림 만들려는 거 아니야?”

“맞아. 양원길이 자꾸 말을 바꿔서 나도 이젠 못 참겠어. 아까 항의하려다 쓸데없는 짓 같아서 그만뒀어. 근데 더는 참을 수가 없단 말이야.”

명희는 준에게 양원길과의 대화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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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가출 22.06.16 140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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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거래 종료 22.06.14 143 3 11쪽
94 사부 22.06.11 143 3 11쪽
93 핑계 22.06.10 150 3 11쪽
92 가보(家寶) 22.06.09 169 3 12쪽
91 감정(鑑定) 22.06.08 161 3 12쪽
» 가슴 시린 백발 22.06.07 156 2 11쪽
89 두 번째 검 22.06.04 149 3 12쪽
88 불타지 않은 그림 22.06.03 145 3 11쪽
87 보랏빛 검기(劍氣) 22.06.02 153 3 12쪽
86 사라진 검기(劍氣) 22.06.01 157 3 11쪽
85 위조 미수 22.05.31 150 2 12쪽
84 백발처녀 22.05.28 146 2 12쪽
83 할머니 22.05.27 158 2 11쪽
82 22.05.26 158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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