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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칼날 님의 서재입니다.

그림과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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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검은칼날
작품등록일 :
2021.12.18 21:47
최근연재일 :
2022.07.05 16:00
연재수 :
1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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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81,056

작성
22.06.1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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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사부

DUMMY

그날 밤, 명희는 관음산 근처의 연못을 찾았다.

“언니, 나 비도로 찻잔을 잘랐어.” 명희가 예상에게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 비도, 잘 만들었더구먼. 세현이 주문해서 만들어다준 거라며?” 예상이 딴소리를 했다.

“날이 잘 선 건 나도 인정하는데, 다른 게 아니라 그걸로 찻잔을 잘랐다고.”

“명희야, 너 나한테 자랑하려고 하는 말이야?”

“맞아. 언니한테 배우고 나서 자신감이 생겼거든, 그래서 시도해본 거라고.”

“너 바보 아니니? 그 정도야 나한테 배우기 전에도 할 수 있던 거야. 그 때도 넌 엄청난 내공과 검술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고. 물론, 요즘 들어서 그걸 더 제대로 쓸 수 있게 되긴 했지만.”

“그래? 난 요즘 들어서 할 수 있게 된 줄 알았는데.”

“야, 아무런 기초도 없이 실력이 일취월장할 수는 없잖아? 넌 이미 그런 실력을 갖추고 있었고, 실력이 일취월장한 게 아니라 그걸 어떻게 써야하는지 깨달은 거라고.”

“그런가?”

“그래서 내가 처음에 네 경공 시험하면서 놀라서 이년저년 욕한 거 아니야?

“난 그게 잘하는 건지도 몰랐는데.”

“네가 사부가 없어서 그렇기는 한데, 혼자서 그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건 다른 고수들도 믿기 힘들다고. 세현이 너한테 무학의 귀재라고 한 말은 틀린 말이 아니야. 세현이 걔는 실력이 별로지만.”

“언니, 내가 지금 자금성에 들어가 비도를 뿌리고 용천검 쌍검을 쓰면 호위무사 몇 명이나 처리할 수 있을까?”

“걔네들은 그냥 고수가 아니라 전국에서 뽑힌 최고수들이야. 그래도 네 실력이라면 스무 명은 처리할 수 있을 거야. 아니, 죽음 끝에 몰려 네 잠재력을 모두 끌어낸다면 오륙십 명도 처리할 수 있을 거야.”

“그 정도는 할 수 있을까?”

“그 정도를 처리하고 나서 뒤에 남은 이삼백 명은 어떻게 할 거야? 여사낭(呂四娘) 얘기는 전설이고 사람들의 바람을 투영한 것일 뿐이라고. 네가 그런 전설이 될 수는 없는 거야.”

“그래도 난 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너, 당신께서 돌아가셨다고 했잖아?”

“맞아. 하지만 시신이 어떻게 됐는지도 모른다고. 그것도 알아봐야 하고 복수도 해야 한다고.”

“아버지 시신 찾는 것도 당연한 일이고, 복수도 하고 싶으면 해야지.”

“내가 이래서 언니 좋아한다니까. 남들 같았으면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말이야.”

“그건 됐고, 널 보면 죽더라도 도망치지 않을 것 같아서 걱정이야.”

“지금은 아닐 것 같고, 머리로도 아닐 것 같은데, 상황이 몰리면 언니 말처럼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명희야, 넌 어떤 상황에서도 도망치려고 마음먹으면 빠져나올 수 있어. 안 되면 도망치는 것도 하나의 전술이야.”

“이번에 그 전술을 써야할 것 같아.”

“가짜 말 그림 팔아먹는 거? 넌 돈에 별로 신경 쓰지도 않으면서, 뭔 사기까지 쳐서 돈을 긁어내려고 해?”

“돈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고, 약 구하려고 이러는 거라고.”

“네 친구들 누구 아파? 아니면 보보나 국이 아픈 거야? 약 필요하면 내가 훔쳐서라도 구해다줄게.”

“아니야.” 명희가 부정을 하고 속으로 말을 삼켰다. ‘언니, 약은 다 구하면 줄게.’

“이젠 며칠 동안 못 오겠네.” 예상이 더 이상 캐묻지 않고 화제를 바꾸었다.

“그래, 내일 소주에 갔다가 돌아오면 사흘은 걸릴 것 같아.”


이십 일 전 쯤, 명희는 양원길이 말을 바꾸자 위작을 만들기 위해 소주를 찾았다. 소주는 명대부터 위작을 가장 수준 높게 만들 수 있는 곳이었다. 명희는 위작 제조자들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화상들을 찾아가 구매자처럼 행세했다. 소주 화상들이 위작들을 가져올 때마다 명희는 위작임을 지적하며 사지 않았다. 결국 화상들도 질려서 소주에서 거래되는 옛날 그림 중에 진작은 거의 없다고 했다. 명희는 그렇다면 위작 제조자들을 소개해달라고 했고, 화상들은 결국 명희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명희는 위작 제조자들에게 준의 그림을 내밀며 황실소장품처럼 만들어달라고 했다. 그리고 우선 족자 세 폭의 그림은 송 휘종이 평가한 것으로 만들고 족자는 명대의 것으로 만들어 달라고 했다. 그리고 명희는 그들에게 산이 위작 제작을 참관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지만, 이 요구는 거절당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선금을 지급하고 다른 그림들은 작업을 맡겨놓고 나서 양주로 돌아왔다.

명희는 준이 그린 말 그림으로 위작을 만들었다. 준이 유명한 작품을 모사해주겠다고 했지만 거절했다. 아무리 정교하게 베껴도 위작은 표가 났고, 게다가 시간도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작을 베껴 그린 위작을 만든 것이 아니라 준의 그림을 송대 화원들이 그린 것이라는 논리를 만들어냈다. 이것들은 비교할 원작이 없으니까 그림이 세상에 나온 상황을 그럴싸하게 만들어 양원길을 납득시키려고 한 것이다. 게다가 준의 그림은 그 자체로 원작이었기에 때문에 베껴 그린 위작보다 자연스러웠다.


예상을 만나고 온 다음날, 명희는 산을 데리고 소주로 향했다.

“명희 누나, 심덕부의 《만력야획편》은 그림에 관련된 책도 아닌데 언제 읽었어요?” 산이 소주로 가는 배에서 명희에게 물었다.

“안진경의 서첩 때문에 묻는 거지? 그 얘기는 고상 아저씨한테 들었어. 근데 그 얘기가 《만력야획편》에 나온다는 것을 알고 나서 찾아본 거야. 물론 처음부터 읽어보려고 한 책은 아니고, 그건 운이 좋았던 거야.”

“그랬군요. 난 누나가 별의별 책을 다 읽었는지 알았어요.”

“그건 아니야. 물론 그림 관련된 책은 많이 읽기는 했지만 말이야.”

“근데 누나, 나를 양주에서 으뜸가는 화상으로 키워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래. 그래서 내가 그림의 역사랑 화가 그리고 기법 등등, 게다가 감정하는 방법까지 많이 알려줬잖아?”

“그건 맞아요. 근데 요즘 가짜그림만 보다보니 진짜그림도 배우고 싶다고요.”

“진짜그림? 그건 배우는 게 아니라 느끼는 거야. 그런 느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는 나도 잘 몰라. 직관적인 느낌인데 이건 설명을 해줄 수가 없거든. 너도 이런 느낌을 가지려면 그림을 더 많이 봐야 해.”

“무슨 말인지는 알 것 같은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혀서요.”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 어떤 것들은 훌륭한 스승이 가르쳐준다고 해도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야. 느껴야 하고 시간도 필요해.”

“준이 형님 그림 많이 보는 것도 도움이 되겠죠?”

“당연하지. 걔가 십년 동안 그린 그림을 비교하면서 관찰해봐. 그러면 변하지 않는 것이 있고 변하는 것도 발견할 수 있을 거야. 한 화가의 기법을 밑바닥까지 파악하고 있으면, 다른 화가들의 기법을 파악하는 데도 도움이 돼. 준의 그림은 너한테 진정한 스승이 될 거야. 게다가 궁금한 게 있으면 준에게 직접 물어봐도 되잖아?”

“아하, 난 급한 마음에 이것저것 다 보려고 했는데, 먼저 하나를 끝까지 파야한다는 거죠?”

“그래, 그것부터 해봐. 그리고 이번에 가짜그림 만들면서 왜 너를 데리고 다닌 줄 알아?”

“가짜그림 공부 시키려는 거잖아요?”

“그래. 소주에서 화상들이 유통하는 고서화란 것들 중에 진품은 거의 없어. 그게 다 위작이라는 거야. 위작도 많이 볼수록 직관 같은 게 생겨. 하지만 직관만 믿으면 안 되고, 모든 조건을 세밀하게 살피며 하나하나 따져야 해. 그런 실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공부를 많이 해야 하고.”

“송대의 종이에 그려진 그림이라고 꼭 송대에 그려진 그림은 아니라는 거죠? 준이 형이 송대 종이에 그림을 그린 것처럼.”

“송대에 그려진 그림은 송대의 종이에 그려져야 하지만, 그 반대는 참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는 거야.”

“그건 이번에 깨달았어요.”

“정해진 조건에서 맞는 것들을 취하고 아닌 건 버리다 보면, 그림이 품은 진실에 가까워지게 돼.”

“알았어요. 누나처럼 그럴싸한 거짓말을 해도 위작임을 구별해낼 수 있어야한다는 거잖아요?” 산이 명희의 행위를 꼬집으며 물었다.

“그렇지. 앞으로 네가 그림 거래할 때 그런 것에 속으면 안 돼.” 명희는 자신을 비꼬는 말에 별 반응하지 않고 진지하게 대꾸했다.

“그건 그렇고···” 산은 명희가 화를 내지 않자 말을 끌다 화제를 바꾸었다. “누나, 송대 비단은 구하기도 어려운데, 거기 그린 그림은 잘 만들어졌을까요?”

“소주 위조꾼들은 최고니까 잘 만들어놓았겠지.”


이틀 후, 명희는 산과 함께 소주에서 양주로 돌아왔다.


그 다음날, 호운작의 시종 일현은 그림들을 가지고 안경부의 호가장으로 떠났다. 승호가 일현을 호위하기 위해 창을 들고 따라나섰다.

그날 저녁, 호운작은 양원길에게 이틀 후에 안경으로 돌아간다는 통보를 했다.

양원길은 통보를 받고 나서 자신도 함께 가서 거기서 거래하겠다고 통보했다.


이틀 후, 명희와 산과 호운작 그리고 양원길과 황신이 양주에서 안경을 향해 출발했다.


그 전에 일현과 승호는 길을 재촉하여 최대한 빨리 안경에 도착했다. 일현은 완성된 위작들을 궤짝에 넣어놓고, 족자 두 폭은 명희가 지시한 대로 집안에 걸어놓았다. 그리고 장원의 일꾼들을 모아놓고 그림과 관련된 일에 대해 입을 맞추었다. 승호는 일이 일단락되자 하루를 묵고 혼자 양주를 향해 떠났다.


명희와 호운작은 될 수 있는 대로 여정을 늦추며 안경을 향해 갔다. 그들 일행은 일현이 호가장에 도착하고 나흘이 지나서 호가장에 도착했다. 일현이 그들을 맞이하여 집안으로 안내했다.

“여기 이등과 삼등의 말 그림이 걸려있구먼.” 양원길이 당옥(堂屋)에 걸린 족자를 보며 말을 꺼냈다.

그 두 폭의 그림은 호운작이 양주로 가져온 족자 중 ‘어화원제일(御畫院第一)’이라고 쓴 그림과 같은 형식이었다. 역시 ‘선화(宣和)’라는 인장이 찍혀 있고, 휘종(徽宗)의 수금체(瘦金體)로 쓴 글이 있었다. 그것과 다른 것은, 한 폭에는 ‘어화원제이(御畫院第二)’, 그리고 또 다른 한 폭에는 ‘어화원제삼(御畫院第三)’이라고 쓰여 있었다.

“황제의 눈이나 우리 눈이나 비슷하죠. 확실히 황제가 일등으로 평가한 그림이 제일 좋고, 여기 두 점도 꽤나 괜찮잖아요?” 명희가 옆에서 거들었다. 그러면서 휘종황제가 평가한 그림이라는 것을 기정사실화하려고 했다.

“호 공자, 그 궤짝의 그림들을 보여주쇼.” 양원길이 단도직입했다.

“도착하자마자 뭔 그림이오? 숨이라도 좀 돌리고 나서 봅시다.” 호운작이 회피했다. 우선은 일현에게 그 동안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공자께서는 숨 좀 돌리시고, 우리한테 궤짝만 내다 주쇼.” 양원길이 재촉했다.

“공자님, 그렇게 하세요. 양 공께서 마음이 급하신 것 같아요.” 명희가 양원길의 편을 들었다. 일현이 일을 허술하게 처리해놓지 않았을 거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현아, 차 좀 내오고, 양 공께 궤짝도 가져다 드려.” 호운작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하인이 차를 내왔다.

“공자님, 우선 차를 드시고 계세요. 궤짝을 이리로 가져오겠습니다.” 일현이 대꾸하고 밖으로 향했다.


잠시 후, 일현이 궤짝을 가져와서 그것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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