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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칼날 님의 서재입니다.

그림과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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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검은칼날
작품등록일 :
2021.12.18 21:47
최근연재일 :
2022.07.05 16: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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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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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잠깐만, 잠깐 기다리쇼. 호 공자, 이 그림들은 내가 당장 사겠소.” 양원길이 명희와 호운작의 거래를 만류하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림 값은 이 아가씨가 어떤 값을 부르든 그것의 배를 주겠소.”

명희는 양원길이 호가장의 나머지 그림들을 살 기회를 잃을까봐 몸이 달아오른 것을 보고 속으로 웃었다.

“아니오, 그림은 아껴주는 사람에게 팔아야한다고 하지 않았소? 아까 이렇게 말하신 건 잊지 않으셨죠? 내가 보기엔 이 명희 아가씨가 그림을 훨씬 아끼는 것 같소. 두 배든 세 배든 더 주신다고 해도 싫소이다.”

“잠깐, 잠깐만 좀 기다리라니까.” 양원길이 호운작을 만류하고 명희에게 말했다. “아가씨, 나머지 약은 반을 더 드리겠소. 나한테 양보 좀 해주시오.”

“나머지의 반이라면, 원래의 반의 반이잖아요? 양 공께서는 참 좀스럽네요.” 명희가 비꼬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소.” 양원길이 비굴하게 고개를 숙였다.

“호 공자님, 죄송해요. 제가 포기할 테니 양 공의 말대로 하세요.”

“아가씨, 고맙소, 고마워.” 양원길이 고개를 숙이고 사례하고 나서 말을 이었다. “나머지 약의 반은 내일까지 보내드리겠소.”

“아니 아가씨, 갑자기 말을 바꾸면 어떡해?” 호운작이 투덜댔다.

“공자님, 죄송해요. 그 대신 제가 양주 구경은 확실히 시켜드릴게요. 명승고적은 물론 음식까지 제대로 대접해드릴게요.”

“알았소. 어차피 양주에서 실컷 놀다가려고 했으니, 아가씨 제안도 괜찮구먼.”

“호 공자, 장원으로 언제 돌아갈 생각이오?” 양원길이 조바심을 내며 물었다.

“놀다가 지치면 갈 생각이오. 보름 정도 놀다보면 지겨워질지 모르겠소.” 호운작이 여유롭게 말했다.

“호 공자, 장원에 다녀와서 놀면 안 되겠소? 그 때는 내가 제대로 대접하겠소.”

“싫소이다. 난 양 공의 대접보다 이 아가씨의 대접이 구미가 더 당기거든요.” 호운작이 거절하고 나서 말을 이었다. “내가 돌아가기 전에 연락드리겠소. 그 때 저 감식가께서 같이 가면 될 거요.”

“알았소.” 양원길이 받아들이고 명희에게 말했다. “아가씨, 나머지 약을 다 받으려면 호 공자를 빨리 놀다가 지치게 해주오.”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명희가 퉁명하게 대꾸했다.

“호 공자, 빠른 연락을 바라오.” 양원길이 분통을 억누르며 한 마디를 남기고 사동각을 떠났다.


양원길과 황신이 떠나고 사동각에는 명희와 산 그리고 호운작과 시종이 남았다.

“호 공자, 아까는 임기응변을 발휘해서 내 말을 잘 받아줬어.” 명희가 호운작을 칭찬하고 혼잣말을 덧붙였다. “내가 사람을 잘 골랐다니까.”

“그런 거야 내가 잘하지 말이야.” 호운작이 자부했다.

“근데, 이번 일이 좀 골치 아프게 됐어.”

“그래서 언제 돌아갈지 모른다고 한 거 아니야?”

“시간을 벌어놓은 건 괜찮은데, 계획을 변경해야 하잖아? 이번 일은 그냥 양주에서 처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그런 건 네가 알아서 처리해. 근데 아까 그 감식가 이름은 뭐야?”

“황신이라고 하는데, 양원길이 무슨 의심이 들었기에 그를 딸려 보내려는 건지 모르겠어.”

“그거야 나도 모르지. 넌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공자도 이젠 이주해서 숨어살아야 할 거야. 저들이 공자의 장원이 어딘지 알게 되면 거기서 계속 살 수 없잖아?”

“평생 살아온 곳이라 아쉽기는 하지만, 그건 별로 상관없어.” 호운작이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공자가 그렇게 생각하면 나야 마음이 편하지 뭐.”

“네가 이번 제안을 했을 때 이 정도는 각오했어.”

“고마워. 어쨌든 아직 완성 안 된 것들이 있어서 며칠이 더 걸릴 거야.”

“알았어.” 호운작이 짧게 대답하고 시종에게 말했다. “일현아, 며칠 동안 편히 쉬고 나머지가 완성되면 그것들을 가지고 안경으로 먼저 돌아가.”

“예, 공자님.” 시종 일현이 대답했다.

“노자는 넉넉히 줄 테니까 최대한 빨리 돌아가서 알아서 준비해둬. 난 네가 돌아가고 나서 이틀 정도 있다가 출발할 거야.”

“예, 가지고 간 것들은 그 궤짝에다 넣어놓고, 장원의 일꾼들에게도 입을 맞춰야할 것에 대해서 당부해놓을게요.”

“그래, 그건 네가 잘 알아서 할 거야. 그리고 이번 일이 성사되면 네게 크게 한 몫 떼어줄게.”

“공자님, 그건 됐습니다.”

“아니야, 내가 챙겨줄게.” 호운작이 일현이 대꾸하지 못 하게 손을 내젓고 명희에게 말했다. “명희야, 모든 작업은 앞으로 닷새 안에 끝내. 그 때까지 완성되지 않은 것들은 그냥 포기하라고.”

“알았어. 나도 더 이상은 일을 키울 생각이 없어.”

“이 얘기는 이제 그만하자. 그건 그렇고, 너 검술은 많이 늘었다며 대결 한 번 해볼까?” 호운작이 화제를 바꾸었다.

“사년 전, 그러니까 내가 초보자일 때에도 졌으면서 또 대결을 하자고?”

“그 때가 초보자였으면 지금은 고수라도 됐다는 말이야?”

“내가 오면서 얘기했잖아? 요즘 제대로 된 사부한테 제대로 배우고 있다고.”

“실력이 늘었다고 잘난 척만 하고, 그 사부가 누구인지는 얘기도 안 해주면서 뭘 그래? 그리고 나도 검술 실력이 꽤 늘었다고.”

“됐어.” 명희가 짧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되기는, 다시 한 번 대결해보자고. 나도 안경에서는 칼싸움이라면 빠지지 않았는데, 사년 전에 너한테 무릎을 꿇고 나서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고. 너랑 안 싸워본 놈들은 아직도 내가 계집애한테 졌다고 비웃는다니까.”

“됐어, 비웃게 놔둬. 그리고 난 이제 공자 같은 일반인이랑은 대결 안 해!”

“실력은 안 늘었는데, 괜히 잘난 척하는 거 아냐?”

“마음대로 생각해. 어차피 대결은 안 할 테니까.” 명희가 거절하고 나서 제안했다. “오늘은 평산어면관에 가서 해물국수를 먹자. 안경에서는 바닷고기 구경하기 힘들잖아?”

“대결하기 전에는 아무 데도 안 가.” 호운작이 고집을 부렸다.

“이래도 안 가!”


명희의 오른손이 순식간에 호운작의 얼굴 앞을 세로로 가르고 되돌아갔다. 호운작은 이마에서부터 코를 지나 입술까지 서늘한 한기를 느꼈다. 그러고는 명희의 손에 쥐어진 손가락 두 개 정도 크기의 비도를 바라보았다. 그게 언제 어떻게 손에 쥐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명희가 왼손으로 가볍게 탁자를 내려쳤다. 그러자 호운작의 앞에 놓인 찻잔이 반으로 갈라졌다. 호운작은 쏟아진 찻물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산과 일현도 탁자를 적시는 찻물과 갈라진 찻잔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처음 해본 건데, 이게 되네.” 명희는 자기도 신기한 듯 혼잣말을 했다.

“이게 말이 돼? 야 너, 지금 무슨 사기를 친 거야?” 호운작이 잘려진 찻잔을 들어서 살펴보며 말했다.

“눈앞에서 보고 나서 무슨 사기라는 거야? 공자는 내가 이 작은 비도로 싸워도 셋을 세는 동안에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잘난 척은!” 호운작이 핀잔을 주려다 말을 바꾸었다. “잘난 척이 아니라 진정한 고수네. 명희야, 너 이 정도로 고수가 된 거야? 대결이 아니라 사부로 모셔야겠구먼.”

“누나, 지금 그 비도로 찻잔을 자른 거예요?” 산이 상황을 파악하고 놀라며 물었다.

“호 공자가 자꾸 대결하자고 고집을 부려서 그냥 시험 삼아 해본 거야.”

다들 명희의 말에 혀를 내둘렀다.


사년 전, 명희는 의부 안기가 자신의 혼인을 추진하자 가출했다. 세현이 먼저 양주를 떠났지만 과주에서 명희를 기다리고 있었다. 둘은 거기서 만나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장강을 운행하는 배를 탔다.

둘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산적이나 토비를 만나서 싸우기도 했다. 명희는 그들의 생명을 해치지 않고 위협만 하려고 했지만 조절이 쉽지 않았다. 검술을 배운 후 처음으로 실전에 임했기 때문이었다. 몇 명의 상대는 명희의 칼에 베이고 찔렸다. 그러나 헤치려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많이 다치지는 않았다. 명희는 몇 번의 실전경험 후 상대를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 제압할 수 있게 되었다. 육년 동안의 고된 수련과 세현이 말한 무학의 천부적 재능 때문이었다.

둘은 그렇게 남쪽을 향해 가다 안경부에 도착했다. 명희는 호운작과 시비가 붙었고, 그와의 대결에서 다치지 않게 그를 제압했다. 호운작은 자존심이 상했지만 패배는 시원하게 인정했다. 그러면서 명희의 무예 실력을 보고 마을의 토비를 소탕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명희는 세현과 함께 토비들과 싸워서 그들을 제압했다. 호운작은 둘에게 사례하면 극진히 대접했다.

명희는 거기서 자신이 토비에게 납치된 후에 강간을 당해 결혼할 수 없는 운명이 되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이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만들기 위해 구체적인 토비들은 필요 없었다. 몸값 협상을 할 토비 한 명과 인질을 데리고 있을 토비 한 명, 둘만 있으면 충분했다. 전자가 일현이었고 후자가 호운작이었다.

세현은 거기서 헤어져 방랑을 시작했고, 명희는 호운작과 일현과 함께 양주로 되돌아왔다.

일현이 양주의 사동각에 가서 명희가 한글로 쓴 편지를 준에게 전했다. 준은 동희를 찾아서 상의했고, 둘은 인질의 몸값을 들고 명희가 사주한 납치범의 뜻대로 움직였다. 명희는 자작극을 돕는 대가로 호운작에게 자신의 몸값을 전부를 가져가도록 했다. 호운작은 토비 소탕의 대가로 한 푼도 받지 않겠다고 했지만, 명희는 거부했다.

명희는 양주로 돌아와 토비들에게 강간당했다는 핑계로 혼인을 회피했고, 의부 안기의 집을 나와 홍교에서 준의 가족과 승호와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다.


명희는 심상덕의 소장품 중개를 마지막으로 양원길과 관계를 청산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만족하지 않았고 말을 바꾸었다. 그가 그만두었으면 위작을 만들어 사기를 칠 필요도 없었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명희는 사년 만에 다시 안경부의 호가장을 찾아갔다.

호운작은 오랜만에 만난 명희를 반겼다. 명희는 그에게 양원길을 상대로 가짜그림을 팔 계획을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양원길이 황제의 대리인이 거의 확실하다는 경고도 했다. 호운작은 부잣집 망나니 도련님답게 재미있을 거라며 명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자신에게 닥칠 후환 따위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게다가 부모님도 이미 다 돌아가서 신경 쓸 가족도 없었다.

명희는 호운작과 일현을 데리고 양주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호운작에게 족자 세 폭과 서첩 하나를 건넸다. 족자는 말 그림이었고, 서첩은 안진경의 서첩이었다. 명희는 유명 화가의 작품을 직접 위조하는 것보다 비교적 안전한 방법을 택했다. 송대 무명 화가의 그림을 휘종황제가 직접 보고 나서 평가한 것으로 위조했다. 그리고 심덕부의 《만력야획편》을 읽었던 기억을 되살려, 안진경의 위조 서첩을 또 다시 위조했다. 그러고는 작품에 대한 감정을 회피했다.

명희는 양원길을 사동각으로 불러 호운작을 소개했다. 족자와 서첩은 성공적이었지만, 나머지 그림들의 거래는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명희는 고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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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사라진 검기(劍氣) 22.06.01 152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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