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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uan71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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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그림과 칼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무협

완결

검은칼날
작품등록일 :
2021.12.18 21:47
최근연재일 :
2022.07.05 16:00
연재수 :
110 회
조회수 :
20,917
추천수 :
438
글자수 :
581,056

작성
22.06.1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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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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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DUMMY

무오년(戊午年)의 마지막 밤이 찾아왔다.

대문 양옆에는 붉은 종이에 쓴 춘련(春聯)이 붙었다. 어둠이 내렸지만 집안은 마치 대낮처럼 환했다. 방뿐만 아니라 곳간, 문간, 뒷간에도 모두 붉은 등(紅燈)이 밝혀져 있었다.

섣달그믐 밤, 명희, 세현, 승호, 준, 아영, 보보와 국, 산과 모친, 왕휘와 삼이 모두 밤을 새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삼은 남방의 설음식인 멥쌀로 만들어 구운 찰떡(粘糕)을 상에 올렸다. 아영은 산동 사람인 세현을 위해 북방의 설음식인 교자도 준비했다. 모두들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갑자기 폭죽 터지는 소리가 대화를 끊었다.

“벌써 시작한 사람들도 있네. 난 술 좀 더 마시다 나가려고 했는데, 그럼 술은 나갔다 와서 다시 먹자고. 보보야, 삼촌이랑 밖에 나가자.” 세현이 집밖에서 울리는 폭죽소리를 듣고는 술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그래요, 구경 가요. 엄마 아빠, 다녀와도 되죠?” 보보가 신이 나서 아영과 준에게 물었다.

“구경이 뭐야? 우리도 다 같이 한 번 놀아봐야지.” 준도 신이 나서 말했다.

“삼촌, 폭죽 사왔어요?”

“밤새도록 저거 다 터뜨려보자고.” 세현은 미소를 지으며 구석에 놓아둔 마대자루 두 개를 가리켰다.

다들 거기에 놓인 커다란 마대 두 개를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뭔가 했더니만 저게 다 폭죽이야? 누구랑 전쟁이라도 치르려고 하는 거야?” 왕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삼촌, 안 놀 거면 몰라도 놀려면 전쟁처럼 한 번 실컷 놀아봐야죠.”

“어머니, 저도 갔다 올게요.” 산도 신이 나서 말했다.

산의 어머니는 걱정스런 눈빛을 보내면서도 허락했다. 그러면서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내가 보보 데리고 갔다 올게.” 준이 국을 안은 채 걱정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 하는 아영에게 말했다.

“언니는 국이 때문에 안 되겠구나. 밖에서 터뜨려도 시끄러울 텐데, 그래도 국이 많이 안 놀라겠지?”

“왜 안 놀라겠어?” 왕휘가 핀잔을 줬다.

“뭐 어쩌겠어? 설날인데 신나게 놀아야지.” 명희도 들뜬 표정으로 대꾸했다.

“아가씨, 보보 좀 잘 봐줘요.” 아영이 부탁했다.

“언니, 그건 걱정하지 말라고.” 명희가 아영에게 고개를 끄떡이고 나서 소리쳤다. “자, 우리 아예 나루터 근처로 나가자. 앞뜰에서 터뜨리면 국이 놀랄 거야.”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승호는 말없이 술만 마시다가 따라 일어섰다. 그러고는 세현을 쫓아가 마대자루 하나를 어깨에 짊어졌다. 덩치 좋은 세현과 승호가 마대자루를 하나씩 짊어졌는데 꽤나 무거워보였다. 자리에 앉아 그걸 보던 아영과 산의 어머니는 자식 걱정에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모두들 그녀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신이 나서 밖으로 나갔다.


세현은 대통에 넣은 폭죽 몇 개를 바닥에 둥그렇게 늘어놓았다. 하나씩 불을 붙이고는 자리를 피했다. 불꽃이 하나씩 원을 그리며 연이어서 공중으로 치솟았다. 일행은 환호했다.

세현은 연발폭죽을 나뭇가지 끝에 걸었다. 그러고는 폭죽에 불을 붙였다. 긴 연발폭죽은 뱀처럼 꿈틀대며 사방으로 불꽃을 뿜어댔다. 일행은 또 환호했다.

“다들 뭐해? 왜 나만 보고 있어? 마대에서 맘에 드는 폭죽들을 꺼내서 불이라도 붙여보라고!” 세현이 일행들에게 소리쳤다. 그러면서 마대자루 하나를 뒤집어엎고는 폭죽들을 땅에 뿌렸다. 그러고는 들고 있던 횃불로 다른 횃불에 불을 붙여 나누어주었다.

명희와 다른 일행들도 대통폭죽과 연발폭죽을 여러 발 챙겨온 후 횃불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폭죽에 불을 붙였다. 사방으로 폭죽이 터져나갔다. 수 백발의 폭죽이 한꺼번에 터지며 밤하늘을 밝혔고, 매캐한 연기와 화약 냄새가 밤공기를 뒤덮었다.

보보는 그걸 보고 겁이 나기도 했지만 해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고모가 붙잡아 줄 테니 한 번 해볼래?” 명희가 보보의 표정을 읽고 물었다.

“야, 위험하게 그걸 애한테 시켜.” 준이 명희에게 핀잔을 줬다.

“야, 너도 재미있다고 터뜨리면서 딸이 해보겠다는데 왜 못 하게 해?”

“그게 아니잖아?”

“그건 명희 말이 맞아. 보보도 하게 해줘. 우리가 앞으로 언제 이렇게 다 모여서 폭죽놀이 할 수 있겠어?”

“삼촌, 왜요? 내년에는 안 올 거예요?”

“삼촌도 내년에는 엄마 보러 가야지. 올해는 보보랑 같이 폭죽놀이 하려고 안 갔잖아?”

“그럼, 그 다음에 오면 되잖아요? 한 번은 할머니랑 같이 있고 한 번은 보보랑 같이 있고.”

“그래도 할머니는 늙었으니까 삼촌이 자주 가봐야지.”

“고모는 불쌍해요. 엄마도 아빠도 없고. 아빠가 보보 할아버지는 조선에 있다고 했는데, 고모는 아무도 없잖아요?” 보보가 울먹였다.

“고모는 괜찮아.” 명희가 보보의 등을 토닥이며 제안했다. “보보야, 저 폭죽 언제 다 터뜨려? 우리도 빨리 터뜨려 보자고.”

“그래, 이거 다 터뜨리기 전에는 집에 안 가는 거야.” 세현이 옆에서 거들며 폭죽에 불을 붙였다.

명희가 보보를 뒤에서 끌어안고 횃불을 손에 쥐어주고 그 손을 잡아주었다. 그러고는 폭죽에 불을 붙였다. 보보는 자신이 불을 붙인 폭죽이 터지자 깔깔대며 좋아했다.

한동안 일행은 신나게 폭죽을 터뜨렸다. 그러나 터뜨리고 터뜨려도 끝이 없는 폭죽에 결국 질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직까지 한 마대도 다 터뜨리지 못했다.

“뭘 이렇게 많이 사왔어? 이 폭죽 값이면 집 한 채도 사겠어.” 명희가 투덜댔다.

“좋다고 터뜨리더니만 이제 질렸어?” 세현이 핀잔을 주고 말을 이었다. “사년 전에 네가 준 예금을 이번에 정리했는데, 이자가 원금보다 많이 붙었더라고. 너한테는 집 한 채 사줘도 안 받을 테고, 우리가 만난 것도 십년이 됐는데 모두 함께 놀아보려고 그 이자로 산 거야.”

“이자가 꽤나 많이 불었군. 폭죽놀이가 재미있긴 한데, 너무 많이 남았잖아?”

“기다려봐. 진짜 전쟁 한 판 벌이자.”

세현이 풀지도 않은 마대자루를 풀고 폭죽의 반쯤을 꺼낸 후 다시 주둥이를 묶었다. 그러고는 횃불로 마대에 불을 붙이고는 마대자루를 허공 높이 던졌다. 불이 붙은 마대는 공중으로 올라가면서 폭죽에 불을 붙였다. 공중을 날던 마대가 천둥소리가 울리며 폭발했다. 한꺼번에 터진 폭죽이 밤하늘을 밝혔다. 연발폭죽은 용처럼 하늘을 날아다녔다. 죽통폭죽은 불꽃뿐만 아니라 불 붙은 대나무파편도 사방으로 날렸다. 일행은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명희는 보보를 품에 안고 불꽃놀이를 바라보다 날아오는 파편들을 손으로 쳐서 날렸다.

“이거 재밌는데. 한 번 더 하자!” 세현이 아이처럼 좋아하면서 외쳤다.

“재밌긴 재밌다. 한 번 더 하자. 세현 오빠, 이번에는 내가 던질게. 더 높게 던져야 멋있을 거 아냐?” 명희가 말했다.

“네가 세현이보다 더 멀리 던질 수 있어?” 왕휘가 물었다.

“삼촌, 내가 또 알통 보여줘야 되겠어?”

“그래, 네가 던져봐.” 세현이 말하고는 터뜨리지 않은 폭죽을 남은 마대에 모두 주워 담았다.

명희는 세현이 묶어준 마대를 들었다. 세현은 횃불로 명희가 들고 있는 마대의 아래에 불을 붙였다. 마대가 타기 시작하자 명희는 마대를 들고 허공을 날았다. 그러고는 나뭇가지를 밟고 그 탄력을 이용해 마대를 공중으로 던졌다. 내공까지 쏟아 부은 마대는 세현이 던진 것보다 두 배 이상을 치솟았다.

마대의 폭죽들은 공중을 날면서 안에서 떠지기 시작했다. 한참을 터지면서 솟아오르다가 공중에서 폭발했다. 천둥소리가 허공을 갈랐고 마대에서 터뜨린 폭죽들이 사방으로 날렸다.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으면서 소나기처럼 땅으로 내리기 시작했다.

“높이 나니까 더 멋있지 않아?” 명희가 대꾸를 바라지 않고 물었다.

“하하, 고모 잘난척쟁이. 멋있어요.” 보보가 깔깔댔다.

“멋있게 집 한 채가 공중에서 불꽃으로 날리는구먼.” 왕휘가 중얼거렸지만 비꼬는 말투는 아니었다.

“삼촌, 집 한 채나 다 태웠으니까 멋있는 거지. 하하하.” 세현이 천진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빠 아니면, 누가 이런 미친 짓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겠어?” 명희가 세현에게 말하며 제방 위를 가리켰다.

명희의 손가락 끝에는 불꽃놀이를 구경하러 나온 동네사람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첫 번째 마대가 폭발하는 소리를 듣고 놀라서 뛰어나왔다. 그러고는 두 번째 마대의 불꽃놀이를 감상하고 있었다. 잠시 후, 공중을 날던 불꽃들이 잦아들자 구경꾼들은 박수를 쳤다.


“왜 나와 계세요?” 준이 앞뜰에 나와 있는 삼의 모친에게 물었다. 그러면서 그 옆에 국을 안고 있는 아영을 바라보았다.

“천둥소리가 들려서 뭔 일인가 싶어서 나와 봤어.” 그녀가 대답했다.

“공중에서 어떻게 폭죽을 터뜨린 거예요?” 아영이 물었다.

“그거 봤어?” 준이 되물었다.

“처음에는 천둥소리가 들려서 밖으로 나왔어요. 근데 잠시 후에 수백 발 아니, 수천 발의 폭죽이 공중에서 터지는 건 정말 장관이었어요.”

“고모가 던진 거예요.” 보보가 끼어들었다.

“아가씨, 그렇게 높이 던졌다고요?”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집안에서라도 다 봤겠지?” 명희가 아영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되물은 후 한 마디 덧붙였다. “세현 오빠가 많은 사람들한테 새해선물을 준 거라고.”

“그렇게 안 터뜨렸으면, 밤새우고도 다 못 터뜨렸을 거야.” 왕휘가 한 마디 거들었다.

“그 재미있는 폭죽놀이도 나중에는 지겨워지더라니까.” 준도 한 마디 거들었다.

“오늘은 밤을 새야하니까 이제부터 술 좀 마셔보자고.” 세현이 제안했다.

“형님, 오늘 정말 재미있었어요. 내가 가서 안주 좀 만들어올 테니 술 좀 마시고 있어요.” 삼이 세현에게 말하고 영풍루로 돌아갔다.


세현은 취하려는 듯 빠른 속도로 술을 마셨다.

“오빠, 뭘 이렇게 빨리 마셔?” 명희가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설 쇠고 승호는 조선으로 돌아갈 거야. 그리고 내가 국경까지 데려다줄 거야. 내년부터는 우리들 다 모일 수가 없다고.” 세현이 취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진짜 떠날 거야?” 명희가 승호에게 물었다.

“예, 아가씨.” 승호가 짧게 대답했다.

“승호도 아버지를 찾아봐야지. 이젠 십년이나 됐잖아?” 세현이 나서서 말했다.

“나도 가보고 싶은데, 이젠 얘들도 있고 어쩔 수가 없다. 가는 게 문제가 아니라 다시 돌아오는 것도 문제고. 아휴.” 준이 한탄하며 말했다.

“승호가 조선에 간다고 폭죽을 그렇게 사온 거야?” 왕휘가 물었다.

“그럼요.” 세현이 대답하고 명희에게 물었다. “명희야, 넌 안 갈 거야? 너도 언젠가는 돌아갈 것처럼 말했잖아? 이번에 같이 가자.”

“그런 말을 이렇게 갑자기 꺼내면 어떡해? 어쨌든 난 같이 안 가.” 명희가 잘라 말했다.

“갔다가 돌아올 거야?” 왕휘가 승호에게 물었다.

“모르겠어요.”

“명희야, 넌 네 아버지를 참수한 조선임금의 모가지를 베어버릴 계획이 아니었어? 네가 말한 복수라면 그런 거 아냐?” 세현이 병을 들고 술을 들이켜며 물었다.

“명희야, 너 혹시 여사낭이 옹정 목을 벴다는 소문 따위를 믿는 건 아니지?” 왕휘가 끼어들어 물었다.

“이런 얘기는 집어치우고 술이나 마시자.” 명희가 세현의 질문도 왕휘의 질문도 회피하며 세현의 손에 들린 술병을 낚아채서 술을 마셨다.

다들 말도 없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술병은 금방 비었다. 모두들 취하지 않으면 안 될 사람들처럼 술을 마셔댔다. 그들은 그렇게 술에 취해 기미년(己未年) 새해의 새벽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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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보랏빛 검기(劍氣) 22.06.02 111 2 12쪽
86 사라진 검기(劍氣) 22.06.01 115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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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백발처녀 22.05.28 111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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