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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칼날 님의 서재입니다.

그림과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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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검은칼날
작품등록일 :
2021.12.18 21:47
최근연재일 :
2022.07.05 16:00
연재수 :
110 회
조회수 :
25,450
추천수 :
455
글자수 :
581,056

작성
22.06.1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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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엄마

DUMMY

정월 초아흐레, 명희가 떠나고 엿새가 지났다.

이 날 아침, 세현과 승호는 홍교의 사람들과 작별하고 준과 함께 평산의 말 농장으로 향했다. 세현과 승호는 거기서 말을 사서 운하를 따라 말을 달렸다. 준은 그들을 배웅하고 혼자서 명희의 배를 타고 홍교로 돌아갔다.


세현과 승호는 양주에서 사흘을 달려 운하의 기점인 회안부(淮安府)에 도착했다. 둘은 운하를 운행하는 배에 대해 알아보았다. 대보름 다음날 출항하는 관선이 있었다. 둘은 더 이상 올라가도 배를 구할 보장이 없어서 고민했다. 그래서 아예 나흘 후에 출발하는 배를 기다렸다가 타기로 했다. 세현은 운항을 맡은 관리에게 거액의 뇌물을 먹이고, 사람 둘과 말 두 마리가 탑승하기로 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양주에서 열이레에 예약한 배를 타는 것보다 사오일 정도 일찍 출발한 셈이 되었다. 그래도 명희보다 열흘쯤 늦은 셈이었다.


정월 열엿새 아침, 세현과 승호는 각자의 말과 함께 운하를 운행하는 관선을 탔다. 그들은 운하를 타고 북상했다.

며칠 후, 배는 직예(直隸)와 인접한 산동(山東)의 임청(臨淸)에 도착했다. 임청은 북경과 남경 사이의 요충으로, 산동에서는 으뜸인 상업도시였으며 운하의 기점이었다. 항해책임자인 관원은 여기서 하루 동안 정박하고 다음날 출발한다고 했다.

세현은 원래 임청에서 내려 고향에 다녀와서 다시 배를 구해야할지 아니면 그냥 지나가야할지 고민했었다. 그런데 관원이 마침 하루를 정박한다고 하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정박지인 임청에서 고향인 청평(淸平)까지는 구십여 리 밖에 되지 않아서 말을 타면 두 시간이면 넉넉히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세현은 승호를 데리고 말을 달려 청평의 고향집을 찾았다.

“엄마, 뭐 하셔? 저 왔어요!” 세현이 집에 들어서며 소리쳤다.

“웬 소리를 그렇게 질러.” 세현의 어머니가 핀잔을 줬다.

“반가워서 그랬지. 엄마, 설은 잘 쇠셨어?”

“친구랑 같이 왔어?” 그녀가 뒤에 선 승호를 보며 물었다.

“안녕하세요.” 승호가 인사했다.

“키가 세현이 만한 걸 보니 승호인가 보네.”

“예, 어머니.”

“세현이한테 친구들 얘기 들었어.” 그녀가 승호의 손을 잡고 말하다 물었다. “준하고 보보랑 얘들은 잘 있어?”

“예, 어머니.”

“열흘 전쯤 명희도 봤으니, 준이 가족도 한 번 봐야 하는데.”

“엄마, 명희가 왔다갔어?” 세현이 놀라며 물었다.

“그래, 대보름 하루 전에 왔다가 이틀을 묶고 나서 북경으로 갔어.”

“여유 있게 이틀이나 묶고 갔어?”

“여유롭긴 이놈아, 명희가 이틀 밖에 안 묵고 떠나서 내가 얼마나 서운했는지 알아?”

“엄마는 좋았을지 모르지만, 명희 걔 때문에 우리들은 속이 새까맣게 탔다고.”

“야 이놈아, 얌전한 아가씨 욕은 왜 하는 거야? 명희가 사람 배려하는 걸 보니, 누구 속 타게 할 아가씨가 아니야.” 그녀가 아들을 꾸짖으며 명희를 옹호했다.

“명희가 사람 배려하는 건 인정하지만, 얌전하기는커녕 천하제일 말썽쟁이라고.”

“멀쩡한 아가씨 모함하지 말고, 승호랑 들어가서 쉬고 있어. 먹을 것 좀 차려서 들어갈게.” 그녀는 음식을 마련하기 위해 말을 접고 부엌으로 향했다.

“명희가 탄 관선도 임청에서 이틀 동안 정박했나봐.” 세현이 부엌으로 향하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그러게, 우리가 열흘 정도 뒤쳐진 것 같아.” 승호가 대꾸했다.

“들어가자. 좀 있다 산동음식 한 번 먹어봐. 남방의 싱거운 음식하고는 다를 거야.”


세현의 어머니는 음식과 술을 가지고 방으로 들어왔다.

“엄마, 웬 오리구이야? 이건 시간도 오래 걸릴 텐데, 미리 해놓은 거예요?”

“그래, 명희가 너랑 승호랑 열흘 후쯤 올지도 모른다고 해서 어제 해놓은 거야. 게다가 너도 작년 중추절에 왔을 때, 승호랑 이맘때쯤 온다고 했었잖아?”

“명희 아니었으면 며칠 더 늦게 왔을 거야.”

세현이 설을 쇠고 사흘 후 명희가 양주를 떠나고 자신과 승호가 명희를 뒤쫓아 온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녀는 세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승호에게 음식을 권하고 술도 따라주었다. 승호도 음식을 먹으면서 그녀에게도 음식도 권하고 술도 따라주었다. 그녀는 세현의 이야기를 들으며 승호와 술을 마셨다.

“명희의 말로는 북경에 가서 구경도 하고 유리창(琉璃廠)의 그림가게도 가볼 거라고 했어. 그 얘기를 하면서 엄청 들떠 있던데.” 그녀가 세현의 이야기를 듣고 말을 꺼냈다.

“전부터 명희가 북경 가보고 싶다고 했었어.” 세현이 그녀에게 대꾸하고 승호에게 물었다. “북경 가면 며칠 동안 머물겠지?”

“사나흘 정도는 묵지 않을까?” 승호가 대꾸했다.

“우리가 서두르면 국경에서는 따라잡을 수도 있을 거야.”

“그러면 좋겠어.” 승호가 대꾸하고 나서 그녀에게 말했다. “어머니, 만두 정말 맛있어요.”

“승호야, 많이 먹어. 명희도 만두 좋아하더라. 쟤만 왔으면 만두는 아예 하지도 않았어. 쟤는 산동사람인데도 만두를 안 먹는다니까.”

“형이 누나 때문에 마음 아파서 그런 거죠.” 승호가 대꾸하고 나서 후회했다. 세현에게 사연을 들었고, 이번 설에 그가 아영이 만든 교자를 입에도 대지 않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나도 알아. 쟤가 죽은 누나 때문에 만두 먹다 다 토하고 나서 만두라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거 나도 안다고. 근데, 산동사람이 만두 안 먹는 건 남방사람이 밥을 안 먹는 거랑 같다고.” 그녀가 승호에게 하소연을 했다.

“엄마, 그만하셔. 취하셨어.”

“야 이놈아, 내가 명희 보면서 네 누나 생각 얼마나 했는지 아니? 넌 걔를 만난 지가 십년인데 마음도 못 잡고 뭐한 거야? 준은 벌써 딸에다 아들까지 낳았다며, 넌 장가도 안 가고 뭐한 거냐고?”

“엄마, 승호도 있잖아. 그만하시라니까.”

“승호야, 너라도 명희의 마음을 잡았어야지. 너도 장가 안 가고 지금까지 뭐한 거야?” 그녀가 아들 꾸짖는 말투로 승호를 꾸짖었다.

“어머니, 죄송해요.” 승호가 술 취한 그녀에게 사과하다 갑자기 돌도 되기 전에 돌아가신 엄마가 그리워졌다.

“엄마, 아직까지 장가 안 간 왕휘 삼촌도 있어. 승호나 나나 아직 서른도 안 됐는데, 뭘 그렇게 뭐라고 하셔?”

“너 내후년이면 서른이잖아?”

“엄마, 그렇게 자꾸 뭐라고 하시면, 승호가 앞으로 장가가기 전에는 다시는 엄마한테 인사도 못 오겠어.”

“넌 명희한데도 뭐라고 하더니만, 승호는 또 왜 끌고 들어가?”

“어머니, 아니에요. 나중에 기회 되면 꼭 찾아뵐게요.” 승호가 끼어들며 모자의 정을 부러워했다.

“그래, 고맙구나. 쟤가 밖으로 나돌며 싸움질이나 하고 다니는 줄 알았더니, 친구는 잘 사귀었어. 승호 너도 그렇고, 명희 걔도 그렇고.” 그녀가 술을 들이켠 후 승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어머니, 형이 좋은 친구에요.”

“엄마, 승호랑 술 더 드시는 건 좋은데, 우리 내일 새벽에 떠나야 해.”

“내가 내일 해장국도 못 끓여줄까 그러냐?”

“해장국은 안 먹어도 새벽에 일찍 간다고 알려드리는 거라고.”

“어머니, 이거요.” 승호가 봇짐에서 영롱한 옥비녀를 꺼내 어색한 손길로 내밀었다.

“이게 뭐야?” 그녀가 옥비녀를 건네받으며 말했다.

“형이 어머니께서 다른 장신구는 절대로 안 하신다고 해서 그걸 산 거예요.”

“승호야, 넌 어떻게 명희랑 똑같은 말을 하니? 명희도 똑 같은 말을 하면서 내가 꽂았던 비녀를 뽑고 나서, 그 투박한 손으로 머리를 빗겨주고 이 비녀를 꽂아줬거든.” 그녀가 머리에 꽂은 비녀를 뽑으며 말했다.

“엄마, 내가 다음에 금비녀를 사다줄게.”

그녀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양손으로 머리칼을 쓸어 뒤로 모았다. 그러고는 왼손으로 머리칼을 잡고 오른손으로 승호가 선물한 옥비녀를 꽂았다.

“어머니, 마음에 드세요?”

“난 비녀보다 네가 마음에 드는구나.” 그녀가 대꾸하며 뽑아놓은 옥비녀를 품안에 소중히 넣었다.

“엄마, 승호가 만두 다 먹었어. 빚어놓은 거 더 있으면 내줘요.”

“그래 알았어.” 그녀가 대꾸하고 일어섰다.


그녀는 만두를 가져왔고, 승호는 만두를 먹었고, 셋은 술을 마셨고, 승호는 술에 취해 그녀를 ‘어머니’가 아니라 ‘엄마’라고 불렀다. 그녀는 승호와의 술자리가 즐거워서 버티다가 잠이 들었고, 세현은 승호에게 안아다 눕혀드리라고 했다. 승호는 그녀를 안아 눕히고 나서 세현과 술을 마시다 금세 탁자 위에 엎디었다. 세현은 승호를 자기 침대에 눕히고 혼자서 술을 마셨다.


다음날 새벽, 세현의 어머니는 생선국을 끓여 세현과 승호에게 밥을 먹였다. 둘은 따뜻한 밥을 먹고 새벽길을 나섰다. 그녀는 승호의 손을 잡고 꼭 돌아와서 하루가 아니라 몇날며칠을 묵어가라고 했다. 그리고 세현에게는 명희가 보고 싶으니 꼭 데려오라고 당부했다. 둘은 그녀에게 인사하고 말을 타고 임청의 나루로 향했다.


배는 임청을 출발해 순조롭게 운항하여 운하의 막바지인 천진(天津)에 도착했다. 뱃길은 북경까지 운하의 마지막 구간만이 남아 있었다. 천진은 새해에 운항을 시작한 배들로 혼잡했다. 사선(私船)들은 운항 허가를 받기 위해 북적거렸고, 허가를 받은 관선들도 운항의 차례가 밀려 있었다.

세현과 승호가 탄 관선도 차례를 기다려야 했는데, 얼마를 기다려야할지는 몰랐다. 둘은 더 이상 배를 타지 않고 말을 타고 북경으로 가기로 했다. 그들은 점심을 먹고 천진에서 출발했다.

겨울은 물러가고 있었으나 이월 초순의 해는 아직 짧았다.

세현과 승호는 랑방(廊坊)에서 말을 멈췄다. 그러고는 객점을 찾아 하루를 묵었다.

다음날, 그들은 이른 아침을 먹고 북경으로 출발했다. 빠르게 말을 몰아 점심때쯤 북경에 도착했다. 객점을 잡아놓고 명희의 행방을 찾기 위해 유리창을 찾았다. 그들은 명희가 그곳에 가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는 세현의 어머니의 말을 따랐다.


유리창 거리는 북경 성의 남쪽 밖의 정양문(正陽門)과 선무문(宣武門) 사이에 있었다. 그 이름은 원대(元代)와 명대(明代) 유리기와 공장이 있던 곳이라고 해서 붙여졌다. 청나라 초기부터 과거를 치르기 위해 북경으로 온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에 가져온 서적, 먹, 벼루 등을 가지고 나와서 팔았던 곳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문방사우, 책, 골동품 등을 파는 가게들이 들어서 시장을 형성하게 되었다.


세현과 승호는 그림을 취급하는 가게들을 찾았다. 거기에서 준이 그려준 명희의 사진을 상인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들은 명희를 기억하고 있었다. 열흘 전쯤 처음 온 후에 사나흘 동안 매일 왔다고 했다. 그런데 대엿새 전부터는 오지 않았다고 했다.

세현과 승호는 시간차를 열흘에서 대엿새로 줄인 것에 고무되었다. 어차피 날이 어두워졌으므로 북경에서 하루를 묵고 나서 국경을 향해 출발하기로 했다. 그 여정은 조선 사신들의 사행(使行)길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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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상봉 22.06.23 138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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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사부 22.06.11 140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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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사라진 검기(劍氣) 22.06.01 152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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