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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칼날 님의 서재입니다.

그림과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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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검은칼날
작품등록일 :
2021.12.18 21:47
최근연재일 :
2022.07.05 16:00
연재수 :
110 회
조회수 :
25,628
추천수 :
565
글자수 :
581,056

작성
22.06.0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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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두 번째 검

DUMMY

다음날, 양원길은 그제부터 명희가 하루하고 한나절을 서서 기다렸다는 것도, 어제 저녁 심상덕의 저택으로 불려 들어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택 안에서 명희와 심상덕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명희가 오랫동안 저택 안에 머물렀기에 희망적인 소식을 기대했다.

양주에서 심상덕은 안기에는 비할 바가 못 되었지만, 〈계산행려도〉 모작을 비롯하여 명화를 많이 소장한 소장자 중 한 명이었다. 양원길은 그에게 그림을 사기 위해 방문했지만 문전박대만 당했었다. 그 옹고집 소장자에게는 접근조차 쉽지 않았다. 그래서 양원길은 명희를 끌어들였고, 희망을 갖게 되었다.

그제, 양원길의 시종은 사동각에 가서 심상덕이 〈계산행려도〉를 소각한 소식을 전하고 성으로 돌아왔다. 그러고 나서 성의 나루에서 명희를 기다렸다가 미행했다. 그는 심상덕의 저택까지 명희의 뒤를 밟았다. 이미 명희가 거기로 갈 것을 예상했기 때문에 멀리서 뒤따랐다. 거기서 문전박대 당하고 서 있는 명희를 지켜보다 돌아갔다. 그렇게 돌아가서 양원길에서 그 때까지의 상황을 전했다.

그 다음날 아침, 시종은 사동각으로 가기 전에 심상덕의 저택에 들렀다. 예상 밖에 비를 맞고 서 있는 명희를 발견하고 놀랐다. 그러면서 사동각으로 바로 가지 않고 이곳에 먼저 온 것을 다행이라고 여겼다. 명희는 밤새 거기에 서 있었던 것 같았다. 그녀가 빗물을 마시고 있는 것을 보며 들고 있던 우산을 받쳐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사동각으로 가지 않고 되돌아가 양원길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시종은 점심을 먹고 다시 심상덕의 저택으로 갔다. 명희는 따가운 가을 햇볕을 맞으며 그대로 서있다. 시종은 먹을 거라도 가져다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지겹도록 기다리다 명희가 심상덕의 저택으로 불려 들어가자 되돌아갔다. 그러고는 양원길에게 상황의 변화를 보고했다.

시종은 저녁도 먹지 않고 다시 심상덕의 저택으로 갔다. 명희는 밤이 되어서야 저택을 나왔다. 시종은 명희가 나루로 향하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되돌아갔다. 그러고는 양원길에게 보고하고 늦은 저녁을 먹었다.


다음날, 명희는 양원길을 찾아서 심상덕이 〈계산행려도〉를 처분하겠다고 한 소식을 전했다.

“그럼, 〈계산행려도〉를 불태웠단 말은 헛소문이었군. 아가씨, 수고했소. 아가씨라면 어떻게라도 할 수 있을지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결과가 있을 줄은 몰랐소.” 양원길은 희망을 품고 기대한 대로 되자 명희에게 사의를 표하며 칭찬했다.

“운이 좋았죠.” 명희는 짧게 대꾸하고 나서, 어떻게 심상덕을 만나 그림을 중개할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던 날들을 떠올렸다.

“그건 그렇고, 그림은 직접 보았소?”

“그럼요. 그림의 폭을 비롯한 규모도 원작과 거의 동일해요. 그리고 알려진 대로 원작과 동시대의 비단과 안료를 사용했어요. 또한 원작과 거의 같은 기법으로 그렸는데, 군데군데 편차가 있는 걸 보면 여러 화원이 함께 작업한 걸로 보여요.”

“범관의 서명은 어떻소?”

“원작의 서명이 있는 곳에는 없었어요. 그게 모작인 게 거의 확실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서명은 그림을 구입한 후에 정밀하게 찾아보세요.”

“그거야 그렇게 하면 될 것이고, 매매 날짜는 잡았소?”

“아직 잡지 않았어요. 그래도 거기서는 팔 생각이 있으니까, 양 공은 언제가 좋아요?”

“난 빠를수록 좋소.”

“그림 값은 흥정 없이 삼천만 냥으로 해주세요.”

“그쪽에서 그렇게나 많이 요구하오?”

“의부의 〈계산행려도〉에서 범관의 서명을 발견하지 못 했으면, 두 그림에 차별을 두지 않고 모두 삼천만 냥에 구입했을 것 아니에요?”

“듣고 보니 그렇긴 하지만, 이미 원작이 판명 났는데 그 금액은 과한 것 같소.” 양원길이 난색을 표했다.

“그 가격을 꼭 챙겨주세요. 제게 약속하신 중개료는 이 할이 아니라 일 할만 받을게요.”

“전체 금액이 커지면 아가씨의 중개로는 일 할만 받아도 이 할을 받는 것보다 커질 것 아니오? 어쨌든 중개료는 됐고, 그게 문제가 아니라 아가씨가 제시한 금액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세 배나 높소.”

“〈계산행려도〉의 원작과 모작을 동시에 소장하실 기회를 날리시려고요. 제가 〈계산행려도〉가 불태워졌다는 말을 듣고 나서 얼마나 가슴이 타들어갔는지 아세요?”

“맞소, 실제로 소각했다면 끔직한 일이었겠지.” 양원길이 그것을 상상하다 치를 떨었다.

“심 공을 겨우 진정시켰어요. 그분의 자존심을 세워주면 아마 다른 그림도 구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른 그림까지?” 양원길이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심 부인의 말로는 심 공이 〈계산행려도〉 때문에 다른 그림들에 대한 흥미도 잃은 것 같다고 했어요. 제가 설득해볼 테니까, 〈계산행려도〉는 제가 말한 가격으로 구입해주세요.”

“나름 괜찮은 제안이군. 그렇다면 생각을 해보겠소.” 양원길은 속으로 명희의 수완에 놀랐지만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았다.

“제가 오늘 거길 다시 찾아보고 날짜를 잡을게요. 만약 다른 그림까지 매매한다면 그림감정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

“아가씨가 보기에 다른 그림들은 어떻소?” 양원길이 명희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물었다.

“아직은 그쪽에서 판다고 확정한 것도 아니고, 다른 그림들은 보지 못 했어요.”

“만약 다른 그림들도 판다면 아가씨가 감정을 맡아주면 될 것 같소.”

“아니요, 만약 그렇다면 전 그쪽 대리인으로 나설 생각이에요. 그러면 전 한 푼이라도 더 받아야 하죠. 제가 감정하는 대로 따르시겠다면 그렇게 하시고, 아니면 감식가를 데리고 오시는 게 나을 거예요.”

“알았소. 아가씨의 말 그대로 하겠소.”

“제가 거기 다녀와서 확답을 받아온 후에 다시 상의해요.” 명희는 대화를 일단락 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닷새 후, 명희는 양원길을 데리고 심상덕의 저택을 찾았다.

양원길은 북경에서 온 황신이라는 감식가를 데리고 갔다. 심상덕은 명희에게 가격협상의 전권을 위임하고 자신은 거래에 관여하지 않았다. 황신이 그림을 감정했고, 명희는 그의 감정에 동의하기도 했고 반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심상덕의 소장품은 모두 일백 점이 넘어서 사흘에 걸쳐 감정이 이루어졌다.

명희는 심상덕의 소장품을 평소 거래가보다 조금 높여서 불렀다. 하지만 터무니없는 가격은 아니었다. 그래서 양원길은 거래를 빨리 마무리 지으려고 명희가 부른 가격을 거의 그대로 지불했다. 소장품이 많은 탓에 감식에는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흥정은 빨리 이루어졌다. 명희는 〈계산행려도〉를 포함하여 모든 그림을 오천만 냥에 육박하는 금액에 매도했다.

심상덕은 거래가 끝나고 충분히 자존심을 세울 만한 매도액에 놀라면서 만족했다. 그의 처는 명희의 손을 잡고 사례했다. 양원길도 〈계산행려도〉를 비롯하여 한꺼번에 많은 작품을 입수했기 때문에 만족했다. 심상덕은 거래 완료를 축하하면서 연회를 베풀었다.


다음 날 그리고 중추절 하루 전, 명희는 관음산 근처의 연못을 찾았다.

명희 등 뒤에 칼 두 자루를 메고 그걸 감추기 위해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그림은 다 팔아치웠어?” 예상이 나흘 만에 찾아온 명희에게 물었다.

“어제 다 끝났어. 내 친구들하고는 다르게 나이든 사내들은 지겨워. 아니지, 왕휘 삼촌은 나이 들어서도 안 그러는데.” 명희가 투덜댔다.

“연회 때문에 그래? 뭣 하러 계속 앉아 있었어?”

“앞으로도 봐야하는데 거절할 수가 없었어. 그래도 심 부인이 연회 중간에 날 데리러 와서 그나마 괜찮았어.”

“그 아줌마가 널 딸처럼 여기는 것 같아.”

“뭐 그런 면도 있고, 다른 처녀들이랑 달라서 흥미를 갖는 것 같기도 하고.”

“알통도 보여줬어?”

“아니, 보여주려다 뒤통수만 긁었어.”

“뒤통수는 왜 긁어?”

“너무 놀랄까봐 이렇게 했다고.” 명희는 오른팔을 들어 알통을 잡으려도 뒤통수를 긁는 동작을 보여줬다.

“하하, 왜 알통도 보여주고 십년 전에 노를 저어 바다를 건너왔다는 허풍도 떨지 그랬어?”

“뱃사공 노릇 했다는 얘기는 했는데, 그 얘긴 안 했어.”

“이젠 심상덕의 〈계산행려도〉도 더 이상은 못 보겠군.” 예상이 화제를 바꾸었다.

“어? 언니, 그것도 가서 봤어?”

“그럼, 아마도 〈계산행려도〉 두 점 모두를 나보다 많이 본 사람은 없을 걸.” 예상이 자부했다.

“그렇겠군. 의부께서도 심상덕의 〈계산행려도〉는 한 번도 못 보셨으니까. 게다가 나도 그걸 두 번밖에 못 봤으니 말이야.”

“근데, 닷새 전에 가서 보니까 말이야, 전에는 구별하지 못 했는데, 네 말을 들어서인지 그게 모작 같더라고. 묵연당에 걸려 있던 〈계산행려도〉가 발산하는 기운이 더 센 것 같았어.”

“나도 마찬가지야. 언니 말처럼 알고 나니 그런 느낌을 받는 걸 수도 있어.”

“어쨌든, 〈계산행려도〉 둘을 하룻밤에 볼 수 있는 기회를 그놈의 황제한데 빼앗겼어.”

“하룻밤에 둘을 같이 본 날도 있었어?”

“그럼.”

“난 그것도 못 해봤는데 부럽네. 하긴, 언니의 경공이라면 그런 것쯤이야 별것도 아니지.”

“그림을 다 팔았으면, 이젠 예찬(倪瓚)의 〈용슬재도(容膝齋圖)〉도 다시 못 보겠군.” 예상이 아쉬워했다.

“언니, 그 그림도 봤어? 이번에 비싸게 팔았어. 근데 좋아하면서 왜 안 가져갔어?”

“야 이년아, 내가 이철괴 그림을 한 번 훔쳤다고 아무거나 다 훔치는 줄 알아!”

“언니, 미안해.” 명희가 고개를 숙였다.

“내가 너만큼 그림에 대해 박식하지는 않지만, 너만큼 그림을 좋아한다고. 그림은 내가 좋아하니까 몰래 훔쳐 본 적은 많지만, 이철괴 그림 말고는 한 번도 훔친 적이 없어!”

“정말 미안해. 언니, 사과 안 받아주면 또 이마를 땅에 찧을 거야.”

“이년이 이젠 협박까지 하네.” 예상이 화를 누그러뜨리며 욕을 했다.

“언니, 이게 두 번째 용천검이야.” 명희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망토를 풀고 등 뒤에서 칼을 뽑으며 말을 이었다. “어제 거래 끝나고 양원길한테 받은 거야.”

“그래도 표면에는 보랏빛 광채가 서려 있네.”

“첫째보다 못 하지만 꽤 괜찮은 것 같아. 어젯밤에 술 좀 마시고 쌍검 연습을 했는데, 둘 다 용천검이어서 그런지 합이 잘 맞더라고.” 명희가 말하고 나서 예상에게 칼을 건넸다.

예상은 두 번째 검을 건네받고 보랏빛 광채를 바라보다 앞으로 찌른 후 안으로 한 바퀴를 휘둘렀다. 그러고는 칼춤을 추기 시작했다. 동작은 점점 빨라졌다. 칼날 위를 감싸고 있던 보랏빛 광채가 예상의 동작을 따라 응축되기 시작했다. 예상이 제비처럼 가볍게 날았다 벌처럼 빠르게 쏘았다. 보랏빛 광채가 살벌한 검기로 변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명희는 쏟아지는 검기를 피해 연못으로 뛰어들었다. 무아지경에 빠진 예상을 말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살벌했지만 아름다웠다. 서릿발 같은 보랏빛 검기가 연못 위를 감쌌다가 사방으로 쏟아졌다. 예상의 내공은 검 표면의 보랏빛 광채를 날카로운 검기로 바꾸었다.

명희는 최고수의 검무에 감동했다. 예상의 백발과 용천검의 보랏빛 검기에 눈이 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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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의인(義人) 22.06.24 143 3 11쪽
102 상봉 22.06.23 140 3 13쪽
101 애합문(愛哈門)객잔 22.06.22 142 2 11쪽
100 인삼주 22.06.21 141 2 12쪽
99 국경 22.06.18 136 2 12쪽
98 엄마 22.06.17 140 2 11쪽
97 가출 22.06.16 139 2 12쪽
96 22.06.15 154 2 12쪽
95 거래 종료 22.06.14 142 3 11쪽
94 사부 22.06.11 142 3 11쪽
93 핑계 22.06.10 150 3 11쪽
92 가보(家寶) 22.06.09 168 3 12쪽
91 감정(鑑定) 22.06.08 160 3 12쪽
90 가슴 시린 백발 22.06.07 155 2 11쪽
» 두 번째 검 22.06.04 149 3 12쪽
88 불타지 않은 그림 22.06.03 145 3 11쪽
87 보랏빛 검기(劍氣) 22.06.02 153 3 12쪽
86 사라진 검기(劍氣) 22.06.01 156 3 11쪽
85 위조 미수 22.05.31 149 2 12쪽
84 백발처녀 22.05.28 146 2 12쪽
83 할머니 22.05.27 157 2 11쪽
82 22.05.26 158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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