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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uan71 님의 서재입니다.

표지

독점 그림과 칼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무협

완결

검은칼날
작품등록일 :
2021.12.18 21:47
최근연재일 :
2022.07.05 16:00
연재수 :
1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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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37
추천수 :
438
글자수 :
581,056

작성
22.06.2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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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무덤에서

DUMMY

“이게 무슨 족자야?” 명희가 손돌에게 족자를 건네받아 펼치며 물었다.

“아가씨, 이게 은자를 일천 냥이나 주고 산 동기창의 족자인데 김흥방이 가짜라고 하던데?”

“이런 가짜를 일천 냥이나 주고 샀다고? 답답하군. 누구한테 샀는데?”

“역관이 유리창에서 사온 걸 샀어. 서울 양반들 중에 중국 서화 같은 것은 없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아. 난 그런 건 감정할 사람이 없어서 취급하지 않는다고 했어. 근데, 아까 말했잖아? 김흥방이 나리의 그림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그래서 이 족자를 사서 김흥방을 찾아갔어. 혹시 진화루라는 데서 내가 아는 그림이라도 볼 수 있을까봐. 근데 김흥방을 직접 만나긴 했는데, 진화루도 가보지도 못 하고, 이 따위 가짜는 태워버리라는 핀잔만 들었어.”

“그랬구나. 어쨌든 삼촌, 북경 유리창에 널리고 널린 게 이런 열 냥짜리 동기창의 족자야. 진품이라면 일천 냥으로 구매는커녕 한 번 보는 값밖에는 안 될 거야. 유리창에는 유명 화가의 진품들이 거의 없다고 봐야해. 그런 것들은 고관이나 부자들이 중개상과 따로 거래를 하지 유리창에 나돌지는 않아. 게다가 요즘 들어서는 건륭이 그림을 워낙 좋아해서 황실의 중개상들이 전국에서 쓸어 모으고 있어.”

“그래도 나리께서 유리창에서 유명 화가들의 진품을 여러 점을 사셨는데.”

“의부의 중개로 샀으니까 진품을 샀지.”

“그건 맞아. 그 때 사행 갔을 때 안공께서 중개해주셨지.”

“그래, 의부의 감식안은 청나라에서 최고일 거야. 게다가 그 때만 해도 유리창에서 진품도 팔고, 그림 값도 지금에 비해 쌌을 때야. 하지만 요즘은 아니야. 네가 얼마 전에 갔다 왔다고.”

“아가씨 대단해. 어떤 조선 여자가 북경 유리창에 가봤겠어?”

“삼촌 그건 됐고, 바가지를 한 번 쓰고 나서 다시는 그림에 손 안 댄 게 다행이야. 괜히 모르고라도 양반 놈들에게 가짜를 팔았다가 아예 다른 장사까지 다 말아먹을 수도 있다고. 앞으로는 절대 그림은 손대지 마.”

“알았어. 이건 진화루에 가보려고 산 거라고.”

“진화루에서 진짜 볼 만한 그림은 준의 아버지 한현 화원께서 그린 김흥방의 전신사진이야.”

“아가씨, 진화루도 가봤어?”

“그럼.”

명희는 김흥방의 얼자 김진섭이 진화루에 데려간 이야기를 해주었다.

“서울 가면 김진섭부터 찾아봐야겠어. 우선은 그 때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봐야지.” 명희가 이야기를 끝내고 말을 덧붙였다.

“아가씨, 김진섭은 서울에 없어. 그가 그림 때문에 나리를 찾아와서 나도 안면이 있지. 근데 무신년 여름부터 관악산 아래 김흥방의 소작지에 기거하고 있다던데.”

“그래? 무신년이라면 우리 서울 떠나고 나서부터인 것 같은데···”

“나도 자세한 건 잘 몰라.”

“그건 됐고. 삼촌, 내가 서울 가면 어디 머물 만한 데가 있을까?” 명희가 화제를 바꾸었다.

“난 서울에도 집이 있어. 남산 아래인데, 내가 장사하러 가면 머무는 곳이야.”

“아니, 거긴 됐어. 우린 앞으로 웬만하면 서로 모르는 척하자고.”

“그러면 서운한데.” 손돌이 술을 단숨에 들이켜며 말했다.

“아니야, 삼촌.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아이들이 누군 줄 알아? 부모 없는 아이들이야. 삼촌도 이젠 딸이 있잖아. 명희도 잘 돌보고, 위험한 일은 하지 마.”

“아버지 원망하는 것 같은 말을 하는군.”

“아니야. 아버지도 당신께서 옳다고 여긴 일을 하신 것뿐이야. 어쨌든, 삼촌도 우리집안에 지킬 의리는 다 지켰어. 아니, 내가 갚아야할 게 더 많지. 그러니 삼촌은 날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의 가족을 지켜야 해.”

“아가씨, 내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어?”

“아니야, 그렇게 하라고. 그건 그렇고, 난 내일 아침에 떠날 거야. 한동안 서울에 있다가 돌아와서 명희한테 말 타는 거 가르쳐줄 거야. 그리고 아까는 술 한 잔도 못 올리고 왔으니, 내일 다시 성묘 갈 거야. 삼촌이 제물(祭物) 좀 마련해줘.”

“알았어. 그리고 나도 같이 따라 갈게. 성묘 갔다가 서울까지 가서 머물 곳도 잡아주고 도울 일 있으면 도와줄게.”

“그럴 필요 없다니까. 그런 식으로 하면 난 사라져버릴 수도 있어.”

“아니야. 이게 얼마 만에 만난 건데, 사라져버리면 절대 안 돼. 알았으니 아가씨 마음대로 하고, 꼭 돌아와야 해.”

“그래, 알았어. 그리고 저 궤짝은 내가 가져갈게. 난 먼저 서울에 가 있을 테니, 수레로 실어서 보내줘. 모레쯤 서대문에서 만나면 될 거야.”


다음 날 아침, 명희는 말을 타고 부모의 산소를 향했다.

명희는 손돌이 챙겨준 제물을 싸가지고 봄꽃들이 흐드러지게 핀 길을 달렸다. 명희는 아버지 머리가 묻힌 곳 앞에 술을 올렸다. 절을 올리면서 울었다. 절을 올리고 술을 뿌렸다. 비석을 세울 수도 봉분을 올릴 수도 없는 편평한 땅이 서러웠다. 그 위의 엎어져 흙과 잔디를 보듬었다.

명희는 어머니의 무덤 앞에 술을 올렸다. 절을 올리고 나서 술을 뿌렸다. 어머니의 무덤을 안고서 울었다.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면서 부모를 그리워하고 양주의 친구들도 그리워하고 예상도 그리워했다.


작년 동지 나흘 전, 예상의 머리칼은 뿌리까지 까매졌다.

동짓날, 절세가인은 십 년 전 헤어진 정인(情人)을 만나고 돌아왔다.

동지 다음 날, 명희는 관음산 연못에서 예상을 만났다.

예상의 정인은 이미 다른 이의 정인이 되어 있었고,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예상은 실망도 하지 않았고 별다른 감정도 느끼지 않았다. 십 년 전에는 절망감에 하룻밤에 머리칼이 허옇게 세어버렸지만, 십년 후에는 그러지 않았다. 정인은 가슴 시린 예상의 백발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가 떠난 후 예상은 백발이 되었고 그를 다시 만나기 전 흑발이 되었기 때문이다. 예상이 명희에게 한 말처럼, 십년이란 세월은 아무리 뜨거운 감정이라도 차게 식히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작년 연말 동안 예상은 명희와 함께 지내며 무예를 가르쳤다.

섣달그믐 아침, 예상은 명희와 작별하고 절해고도로 떠났다. 명희는 눈물을 흘리며 예상을 배웅하고 나서 홍교의 집으로 돌아갔다.


명희는 예상을 그리워하며 마시고 또 마셨다. 술이 떨어졌다. 그래서 봇짐에서 용천검 두 자루를 꺼냈다. 무덤 앞에서 칼춤을 추며 돌아가신 부모에게 복수를 다짐했다. 취기가 온몸의 피를 빨리 돌게 하며 칼춤을 수려하게 만들었다. 무덤가의 나무나 풀이 다치지 않도록 공중으로 날아올라 두 줄기의 보랏빛 섬광을 날렸다. 강렬한 한 줄기의 검기와 부드럽지만 날카로운 또 다른 한 줄기의 검기가 조화를 이루며 허공을 갈랐다. 잠시 땅으로 내려왔다가 다시 날아오르기를 반복하며 칼춤을 추었다.

명희는 칼춤을 멈추고 칼을 집어넣고 무덤가에 드러누워 숨을 골랐다. 그러면서 첫째 용천검이 피가 고파 울던 날을 떠올렸다.


책문에 도착하는 날부터 첫째 용천검이 울기 시작했다. 명희는 울음을 무시하고 인삼주 한 동이를 챙겨서 아버지가 말한 금석산을 찾았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술을 마시다가 용천검 두 자루를 꺼내 칼춤을 추었다. 예상의 피를 먹고 울지 않던 용천검이 진동하며 울었다. 명희는 불안해졌다.

애양진에 도착하자 용천검의 울음은 더욱 절박해진 것 같았다. 명희는 자신의 피라도 먹여주려다 예상의 말을 떠올렸다. 언니는 일부러 상처를 내서 피를 먹여줄 수는 없다고 했다.

명희는 애합문객잔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그 날 밤, 주인이 재물을 빼앗기 위해 식칼을 들고 덮쳤다. 명희는 한 주먹으로 그를 날려버렸다. 그러고 나서 그를 베어 용천검에 피를 먹이려다 그만두었다. 처음부터 칼을 들고 싸웠으면 모르지만, 이미 제압한 상대에게 칼질을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음 날, 명희는 주인에게 비단옷을 벗어주고 조선옷으로 갈아입은 후 애양진에서 북쪽으로 올라갔다.

명희는 거기에서 봉금지대로 들어갔고, 네 명의 여진족 사냥꾼 일행을 만났다. 그들은 명희의 말과 거기에 실린 짐을 보고는 침을 흘렸다. 그러다 명희가 혼자임을 확인하고는 창과 칼을 빼어들고 달려들었다. 명희는 첫째 용천검 한 자루만 뽑아들었다. 검은 순식간에 네 인물의 피를 마셨다. 그러고는 울음을 그쳤다.

사냥꾼들은 치명적인 부위의 상처를 확인하고 무기를 던졌다. 두 명은 목젖에 흐르는 피를 닦았고, 다른 두 명은 왼쪽 가슴 위의 피를 닦았다. 넷은 자신의 상처를 만지며 동료의 상처를 바라보았다. 이건 고수의 솜씨이지 우연일 리가 없었다. 다들 손에 든 무기를 내던지고 명희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들은 감사했다. 칼이 조금만 깊이 들어왔으면 꿇어앉을 수조차 없었으리라. 이미 불귀의 객이 되었을 테니까.

명희는 그들에게 일어나서 돌아가라고 했다. 그들은 목숨을 살려준 명희에게 술을 대접하겠다며 붙잡았다. 명희가 거절하자 그들은 꿇어앉은 채 버텼다. 이미 죽었을 목숨인데 은인에게 술 한 잔 올리지 못하게 할 거면 차라리 목을 베고 가라고 했다.

명희는 자리에 앉으며 술을 달라고 했다. 그들은 가죽포대를 명희에게 건넸다. 명희는 술을 들이켠 후 바로 앉으라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꿇어앉은 다리를 펴지 않았다. 명희는 친구들이 꿇어앉아 있으니 술맛이 떨어진다며 가죽포대를 던졌다. 사냥꾼 한 명이 잽싸게 뛰어올라 가죽포대를 잡았다. 다들 가죽포대를 돌려가며 술을 마셨다. 그러면서 명희에게 안주로 먹으라며 산삼과 육포를 내밀었다. 명희는 사양하지 않고 그걸 받아 씹었다.

그들은 명희에게 어디 가는 길이냐고 물었다. 명희는 조선에 갈 거라고 했다. 그들은 몰래 갈 거냐고 물었고 명희는 그렇다고 했다. 그들은 서로 쑥덕거렸다. 그러고는 명희에게 자신들이 직접 압록강을 건너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명희는 그러라고 했다. 의심하지 않았다. 그들은 뗏목으로 압록강을 건너 인적이 드문 조선 땅에 명희를 내려주었다.

명희는 그들에게 은자를 주려고 했지만 그들은 한사코 거절했다. 명희는 친구들이 이것도 안 받는다면 친구가 아니라며 발끈했다. 그들은 명희에게 은자를 받아들고 절을 올렸다. 명희는 한 명씩 팔을 붙잡아 일으켜 세웠다. 그러고는 삭주를 지나쳐 말을 달렸다. 그 후로는 첫째 용천검은 더 이상 울지 않았다.

명희는 말을 달려 개성으로 향하며 여진족 사냥꾼 넷을 베고 찌르던 동작을 되짚어보았다. 그런데 그 때의 잔영만 남아 있을 뿐, 어떤 동작도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모든 칼의 움직임은 무의식적으로 나온 동작이었다. ‘갈고닦아서 몸에 익으면 칼은 저절로 움직인다.’ 이건 세현이 말한 것이었고 예상도 말한 것이었다. 사냥꾼과의 대결에서 그랬던 것 같았다. 그들을 죽일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모가지를 베지도 심장을 찌르지도 않았다. 그 위의 살갗만을 베고 찔렀을 뿐이다. 칼을 깊게 쓰지 않은 것도 무의식적으로 나온 것이었다.

‘이제 검은 내 마음에 그리고 몸에 맡기고, 그냥 몸과 마음이 흐르는 대로 싸우면 되는 걸까?’ 명희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당장 답을 구할 수가 없었지만 그러면 될 것 같았다.


명희는 회상을 접고 일어섰다. 부모의 무덤에 절을 올리고, 그 곳을 떠났다. 그러고는 말에 올라 십일 년 전에 여기로 왔던 길을 따라 서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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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손돌 22.06.25 101 1 13쪽
103 의인(義人) 22.06.24 106 1 11쪽
102 상봉 22.06.23 101 1 13쪽
101 애합문(愛哈門)객잔 22.06.22 106 1 11쪽
100 인삼주 22.06.21 106 1 12쪽
99 국경 22.06.18 102 1 12쪽
98 엄마 22.06.17 102 1 11쪽
97 가출 22.06.16 103 1 12쪽
96 22.06.15 114 1 12쪽
95 거래 종료 22.06.14 108 2 11쪽
94 사부 22.06.11 108 2 11쪽
93 핑계 22.06.10 112 2 11쪽
92 가보(家寶) 22.06.09 126 2 12쪽
91 감정(鑑定) 22.06.08 119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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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두 번째 검 22.06.04 113 2 12쪽
88 불타지 않은 그림 22.06.03 109 2 11쪽
87 보랏빛 검기(劍氣) 22.06.02 111 2 12쪽
86 사라진 검기(劍氣) 22.06.01 115 2 11쪽
85 위조 미수 22.05.31 116 1 12쪽
84 백발처녀 22.05.28 112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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