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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여우의 서재입니다.

아저씨는 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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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여우
작품등록일 :
2024.03.28 10:40
최근연재일 :
2024.06.28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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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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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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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당하다

DUMMY

에스지 카페 2호점에 할아버지 한 분이 들어오신다.


"동대표 할아버지, 어서 오세요."


"소희가 맛있는거 사준다고?"


"케잌 좋아하세요? 초콜릿 쿠키는요? 음료수는 생과일 주스 드릴까요? 망고에 오렌지 섞어서요."


내가 직접 음료수와 과자를 준비하는 동안 아저씨와 인사를 하셨다.

분식집 단골손님이시기도 한 할아버지다.


"어서 드세요. 제가 사드리는 거니까, 부담 갖지 마시고요."


"여기 사장 아녀? 뭘 사줘."


"제가 여기 사장 아니고요. 제 사비로 계산할 거예요."


할아버지가 석연치않다는 기운을 내비치셨다.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보시며 볼을 부풀리셨다.


의심이 많으신 것 같다.

내가 일상적으로 하는 말에도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셔서 진위여부를 살피시는 분이, 586평 1층 가게를 통채로 내주신다는 게 말이 안되는 거지.


"소희야, 나도 망고 주스 마시고 싶다."


눈치 없는 아저씨.

가만히 좀 계시지.


"아저씨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좋아하잖아."


내가 테이블 아래서 아저씨 허벅지를 손가락을 찔렀다.

눈치 좀 챙기라는 나의 경고다.


아저씨가 움찔하시더니 창 밖을 내다보신다.

한숨을 쉬려다가 참는 게 내 눈에 포착됐다.


할아버지 가시고 봐요.

내 앞에서 한숨을 쉬다니.


분식집을 닫고 온 참이라 유리 언니가 같이 와 있었다.

민지와 은지 언니는 당연히 있었고.


손님은 세 테이블에 앉아 계신 분들 여덟 명이 다 였다.


할아버지가 케잌을 좋아하시나 보다.

자주 드셔봤던 듯 포크로 자연스럽게 잘라 드시고 있다.


나는 할아버지가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지켜봐 드렸다.

본론을 바로 꺼내면 의심하고 경계하다 맛을 못느끼실 것 같다.


사실 586평 맡아 하기가 내키지 않는다.


아저씨가 얘기를 듣고는 말리셨다.

천씨 할아버지가 아무런 이유없이 그런 호의를 베푸실 분이 전혀 아니시란다.

관문사거리에 신축 상가건물을 올릴 수 있었던 배경은 지독한 셈법에서 나왔다고도 말하셨다.


상가부지 매입부터 업체 선정에 공사 현장감독에 이르기까지 할아버지 입김이 안닿은 곳이 없으시단다.

부지 매입비와 신축 비용은 전통시장 열 군데 가게 임대로 20년 동안 모아 오신거고.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고 여쭤보니, 할아버지가 자랑삼아 말씀하신단다.

괜히 단골손님이 아니라고도 말하셨다.

아저씨하고는 나이를 떠나서 다 터 놓고 지내는 사이시란다.

그만큼 신경을 많이 써 드렸단다.


그러나, 그것은 이해가 부딪치지 않을 때 생길 수 있는 관계라고 하셨다.

금전적인 문제가 끼면 할아버지 본색이 드러날 거란 말도 해주셨다.


할아버지는 서두르시지 않으셨다.

천천히 맛을 음미하며 내 눈치를 보셨다.

이상하게 아저씨는 신경 안쓰는 것 같아 보였다.


나는 가만히 할아버지를 보고만 있었다.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친손녀라면 어떤 표정을 지으며 할아버지를 지켜볼까 하는 생각으로 과하지 않는 얼굴표정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했다.


카운터에 서 있는 세 여자가 내 얼굴표정에 감탄하는 눈빛을 보내고 있다.

내가 앞으로 잘 가르쳐서 써야 하는 식구들이다.

뭘 이런 거 가지고 그런 반응을 보이나 몰라.


할아버지가 내가 짓고 있는 표정이 마음에 드셨나 보다.

할아버지 접시에 놓인 초콜릿 쿠키를 하나 집어서 나에게 건네주셨다.


"소희는 왜 안먹어? 내가 사줘야 하는데 얻어 먹어서 미안하네."


"저는 오늘 많이 먹었어요. 눈치도 많이 먹고, 눈총도 엄청 먹었어요. 그래서 배불러요."


"장사하기가 쉽지 않지. 얼굴 만 보면 스트레스는 커녕 즐거워 보여. 그래서 소희가 예뻐."


할아버지가 지금 하신 말씀은 남자가 작업걸 때 쓰는 멘트 아닌가.

나보고 예쁘다고 하셨어.


아저씨가 눈에 힘을 주고 잠시 할아버지를 보시고는 고개를 돌리셨다.

역시 일상적인 멘트는 아니었다.


"제가 연약한 여자여서요. 사람들이 저한테 싫은 기색을 조금 내비쳐도 상처를 받거든요. 아까 다리에 힘이 빠져서 쓰러지는 줄 알았어요."


입 벌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눈치 좀 챙기지.

리액션이 너무 과하네.

세 여자도, 아저씨도.


할아버지는 나의 고충을 이해하시겠는지 안쓰럽게 나를 쳐다보셨다.


"그래, 장사하면서 힘든 게 이해당사자들 간 수익분배와 불만 해소지. 혼자서 다 먹으려고 용쓰고 있으니, 얼마나 할일이 많고 힘들겠어."


나는 진심으로 놀랐다.

어떻게 내 마음을 그렇게 잘 아시는지.

그래, 맞다.

나는 내가 다 먹을 거다.

그래서 머리가 아파 죽겠는 상태인 것이고.


"방법이 있으세요? 제가 다 먹으면서 전폭적인 지원을 이끌어낼 수 있는 묘수가 필요한데요."


"하아, 아니.."


주책없이 아저씨가 소리를 내셨다.

정말 도움이 안된다니까.

요새 왜 이러시는 거야.


나는 테이블 아래서 왼쪽 발로 아저씨 발목을 걷어찼다.

눈치, 정신 좀 챙기시라고.


"소희 때 나이면 다 해먹고 싶지. 사실 모든 사람이 다 그래. 맛있는 거 혼자서 먹으면 얼마나 맛있게."


"할버지는 묘수를 알고 계신 것 같은데요?"


"음, 이런 말 내게서 들었다고 하면 안된다. 사실 수익 분배를 꼭 금전적으로 만 나눌 필요는 없어. 그건 근시안적인 거고, 단체에 몇 푼 흘러들어가 봐야 단기 실적으로 잡히고 말지. 장기적으로 보면 말이지."


할아버지가 말을 멈추고 생과일 주스를 한 잔 하셨다.

역시 노련하시고 페이스 조절 또한 능하시다.

내 눈에 정말 멋져 보이셨다.


"상인회, 이장회, 축산회, 부녀회를 다 싸잡아서 그들 모두가 자랑할 수 있고 어깨를 으쓱거릴 수 있는 명분을 쥐여주면 돼. 그러면 자발적으로 새벽에 나와서 소희 일을 도울거야."


와우, 할아버지 쩐다.

나는 돈을 얼마큼 나눠줘야 하나 그 생각 만 하고 있었는데.

이번은 넘어갔지만 다음 번 장날 장사 끝나고 수익분배안을 제시하려고 골머리를 싸매고 있었는데.

수익분배는 돈으로 만 할 필요가 없다라는 말씀은 정말..


"명분을 예로 들어주시지는 않고요?"


"그건 소희 몫이지. 나는 그런 방법도 있다고 얘기해 주는 것 뿐이야."


할아버지가 발을 빼셨다.

넣었다 뺐다 능수능란하시다.

아저씨가 할아버지 반 만이라도 닮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아저씨 옆 얼굴을 쳐다보니 뜨끔하신 모양이다.

내 발이 또 쳐올까 경계하시는 것일 수도.


"그럼요. 이제 586평 가게 임대료 문제 말인데요."


할아버지 눈이 커지셨다.

본론이 나오니 바로 긴장 모드로 돌입하셨다.


"임대료 아니야. 정확히는 수수료야. 보증금 안받고, 월세 다달이 안받아. 나는 해장국 한 그릇 팔 때 마다 200원을 원할 뿐이야."


"제 본업이 뭔지 아시죠?"


"본업이라? 소희는 장사꾼이지."


할아버지가 내 눈을 피하시며 허공으로 눈을 돌리셨다.


"할아버지도 아시다시피, 저는 에스지 카페 사장이예요."


"그래, 알아. 커피 파는 것도 장사야."


"586평에서 해장국 만 팔아야 한다면 저는 하지 않을래요."


할아버지가 놀라셨다.

전혀 예상치 못하셨나 보다.


할아버지가 빈틈을 보이시는 건가.

그런 척 만 하시는 걸까.

왜 그러셔, 우리 서로 프로페셔널 아니었어요.


그제야 할아버지가 아저씨를 쳐다보셨다.

아저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셨다.


"가게를 나눠서 카페도 하겠다는 거야?"


"시멘트 벽으로 만 막지 않고, 통유리도 같이 쓸게요."


할아버지가 고민에 빠지셨다.

뭔가 열심히 계산하시는 것 같다.


그게 뭘까.


"그러면 커피 파는 거에도 수수료를 물려야 해. 한 잔에 100원, 어때?"


"그럴 수 없어요. 카페는 에스지 3호점으로 별도 사업장으로 만들거예요. 임대차계약을 따로 맺었으면 해요. 할아버지는 통이 크셔서 따로 계약을 맺자고 하실 것 같지는 않지만요."


"하아~"


신음 소리가 또 터져나왔다.


나는 카운터 쪽 은지 언니를 노려봤다.

은지 언니가 손으로 입을 서둘러 막았다.


"그래, 임대차 계약서는 한 장으로 해야지. 원하는 평수는?"


"사실 300평을 카페로 하고 싶은데요. 제 생각 만 할수는 없으니까, 할아버지도 만족하셔야 하니까, 250평 만 할게요."


할아버지 인상이 안좋아지셨다.

이마에 있는 주름 골짜기가 더 깊어지셨다.


카운터 뒤 세 여자가 입을 꽉 다물었다.

숨도 멈추고 있는 것 같다.

아저씨는 나를 멍하니 쳐다보고 계시다.


할아버지는.


엄청 갈등 중이셨다.


할아버지 체면이 있지, 설마 딜을 걸어오실까.

손녀뻘인 나한테 흥정을 걸어오시지는 않을거야.

할아버지, 그러셔야 합니다.


"그렇게는 안되겠다. 네가 말한대로 내가 통 크게 양보하마. 150평!"


내 입이 크게 벌어졌다.


설마 했는데, 할아버지가 째째하게 밀당을 하자신다.


"너무 좁아요. 저희 카페가 최소한의 면적이 되야 해서요. 20평 줄여서 230평 어떠실까요?"


할아버지가 나를 노려보셨다.

나도 눈을 피하지 않았다.


이건 비즈니스다.

피도 눈물도 다 필요없다.

내가 잡아 먹지 않으면, 잡혀 먹히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적용되는 정글 안에 할아버지와 내가 맞서 있다.


나는 걸어온 싸움을 피하지 않는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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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92 그놈이 문제야 NEW 11시간 전 4 0 7쪽
91 처음 안아 보시나 24.06.26 16 0 7쪽
90 너무 하긴요 24.06.25 14 0 7쪽
89 좋은 건 따라 하는 게 맞지 24.06.24 16 0 7쪽
88 부담은 나에게 24.06.23 18 0 7쪽
87 보내기가 쉽지 않네 24.06.22 19 0 7쪽
86 이 정도라? 24.06.21 15 0 7쪽
85 정말 괜찮은 거야? 24.06.20 19 0 7쪽
84 난 신입이니까 24.06.19 17 0 7쪽
83 내가 미안해지잖아 24.06.18 21 0 7쪽
82 도와줘 24.06.17 26 0 7쪽
81 결정권자 눈에 들어야 해 24.06.16 28 0 7쪽
80 엉덩이 한 대 맞고 얘기하자 24.06.15 26 0 7쪽
79 어색한 사이가 되는 건 피해야 한다 24.06.14 20 0 7쪽
78 내가 아는 게 없어 24.06.13 23 0 8쪽
77 번지수를 잘못 찾아 24.06.12 27 0 8쪽
76 나는 관대한 여자니까 24.06.11 33 0 9쪽
» 밀당하다 24.06.10 26 0 9쪽
74 잠시 휴전되다 24.06.09 30 1 9쪽
73 주제 파악 못하는 이모들 24.06.08 43 1 9쪽
72 나쁜 사람으로 만들지 말아요 24.06.07 45 2 8쪽
71 길이 어디까지 뚫린거야 24.06.06 46 1 8쪽
70 미쳤어 정말! 24.06.05 46 1 7쪽
69 그렇게 좋은 거야? 24.06.04 51 1 7쪽
68 왜 그러실까 24.06.03 31 1 7쪽
67 시샘한다고? 24.06.02 32 1 7쪽
66 왜 그러는 거야 24.06.01 46 2 7쪽
65 아프게 하지마 24.05.31 56 2 8쪽
64 그게 뭐라고 24.05.30 40 2 8쪽
63 넘사벽 소희 24.05.29 41 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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