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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범 님의 서재입니다.

지옥불 난이도의 이세계 생존기.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지니범
작품등록일 :
2020.07.30 01:13
최근연재일 :
2021.06.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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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5,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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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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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쁜 일(2)

DUMMY

세유라벤 산맥이 험준하다 여겨지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첫째는 미친듯한 높이, 둘째는 사시사철 몰아치는 눈보라, 마지막 셋째는 첫째와 둘째가 만나 대규모 인원이 산맥을 오르기가 무진장 어렵다는 것이다.


기사들과 아이들이 오른 것만 보아도 제대로 준비만 한다면 험준하기는 해도 목숨을 잃을 정도는 아니지만. 기사들이 아닌 일반 병사들 수백에서 수천명이 한 번에 오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만큼 넓은 길도 없을 뿐더러. 그나마 있는 길도 사람이 다닐 수 있다 정도이지 도저히 안정적으로 보급선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험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매그놀리아 왕국군은 소수 정예인 산악병단들을 집중적으로 투입하여 일단 전초기지를 건설하고, 그 주변의 자원들을 수집하여 일단 아델라이데의 국토에 거점을 세우려 했다.


"조심히 옮겨라! 골재가 손상되면 골치 아파진다!"

"눈보라가 너무 거셉니다! 조금만 쉬었다 가면.."

"바보 같으니! 이건 세유라벤 산맥에서는 고작 진눈깨비일 뿐이다! 이대로 꾸물거리다간 정말로 눈보라가 몰아치는 수가 있어! 그 전에 빨리 산맥을 넘어야 한다!"

"이..이게 진눈깨비라고요?"


산맥을 넘는 병사들은 상상을 뛰어넘는 세유라벤 산맥의 위용에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눈 앞에 있는 동료의 등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심하게 눈이 휘날리고 있는데 고작 진눈깨비라니. 도대체 본격적으로 불어닥치는 진눈깨비들은 얼마나 강하단 말인가.


"어서 빨리 움직여라! 호위병들은 경계...아니다. 너희들도 골재 옮기는 거나 도와라."


모든 것을 평등하게 덮어버리는 산맥의 위대함 앞에서 병과를 나누는 것은 일견 무의미한 짓처럼 보였다. 애초에 한 치 앞을 보는 것도 힘들 지경인데 호위병들이라고 적들의 접근을 눈치챌 수 있겠는가. 결국 매그놀리아의 산악병들은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잡역부가 되어야 했다.


산악병들이 험준한 산맥에서 개처럼 구르고 있을 때. 셰리츠 드 팔랭스 백작과 무르마트 왕태자는 고급스러운 지휘관용 천막에서 작전 계획을 짜고 있었다.


"이번 전쟁은 유감스럽게도 소모전으로 흘러갈 것 같네. 유리한 것은 우리겠지만. 우리는 산맥을 넘어야 한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어. 만약 적군들이 산맥을 차단한다면 우리는 필패하고 말걸세."

"동감입니다 전하. 그걸 방지하기 위해, 최소한 시간이라도 벌기 위해 전초기지를 건설하려는 것 아닙니까? 다른 보병들은 모르겠지만. 제가 조련한 산악병들은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팔랭스 백작은 자신의 산악병단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산맥을 타고 넘어오는 괴물들은 없었지만. 험준한 산맥의 기슭에 살거나 동굴에 숨어 사람들을 습격해오는 괴물들의 수가 의외로 상당했기 때문이다.


"산악병들이 집단을 이루어 싸우는 데 재능이 있다고는 생각치 않네. 산에서 방진을 짤 수는 없지 않은가?"

"그건..."


그러나 무르마트 왕태자는 산악병단의 힘을 그다지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애초에 숫자 자체도 적고, 기동전과 각개전투에 특화된 특수병들인지라 대규모 적군과의 회전에서는 오히려 징집병보다도 못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팔랭스 백작은 마지못해 이를 인정했고, 왕태자는 옅게 한숨을 쉬었다.


"결국 이 싸움은 산맥을 통한 경로를 얼마나 잘 유지하느냐, 얼마나 대규모의 병력을 적진에 보낼 수 있느냐의 싸움이네. 물론 그대의 산악병단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네. 그들도 충분히 강병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건 전면전이네. 전초기지를 건설하고 난 뒤에는 산맥으로 후퇴한 다음 보급로를 수비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전하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팔랭스 백작은 분했지만 왕태자의 명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평시라면 어떻게든 비벼볼 수 있겠지만 왕태자는 국왕으로부터 군권을 이양받은 상황. 섣불리 반항하다가는 군법으로 즉결처형까지 당할 수 있었다.


"나는 징집병들을 시찰하러 가보겠네. 이만 수고하게."

"예! 살펴가십시오 각하!"



*


아델라이데의 산맥 근처. 어느새 군복의 팔을 걷어붙이고 삽을 든 병사들은 지휘관들의 명령에 따라 머스킷티어들이 고지에서 사격할 수 있도록 인공적으로 둔덕을 만들고 포대를 구축하는 작업에 동원되었다.


작업은 고되지만. 지난 천일전쟁에서 화기가 얼마나 큰 위력을 보여주었는지 아는 병사들은 이번에도 화력으로 노동을 보상받으리라 여기며 군말 없이 작업에 열중했다.


팍! 팍! 팍!


"후우! 그런데, 어저께 들은 소식인데 왕후 폐하께서 임신하셨다더라. 들었어?"

"아아. 아침에 들었어. 건강한 후계자께서 태어나셨으면 좋겠는데."


왕후가 회임했다는 상서로운 알림은 어느새 최전방까지 알려졌다. 매그놀리아 왕국군이 징집병들을 훈련시키며 맹공을 준비하는 사이, 아델라이데 왕국군은 화력 거점을 축성하며 장기전의 대비에 전력을 다했다.


"이번 전투, 승리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글쎄, 아마도 산맥을 넘어갈 것 같은데.."

"북쪽은 이곳이랑 완전히 다르다던데.. 여기보다 훨씬 따뜻하대."

"하이고. 그런 따뜻한 곳에서 추운 산맥을 넘어오려니 죽어나가겠구만."


병사들은 포대를 건설하면서도 서로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앞으로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이 몸을 반쯤 지배하고 있었기에. 장교들도 딱히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고 묵묵히 포대 건설을 감독했다.


한편, 아바레스트 군단장은 척후병들을 보내 적들이 산맥의 어느 부분까지 도달했는지 알아오라는 명령을 내렸고, 이에 척후특기를 맡은 소대 하나가 차출되어 세유라벤 산맥을 오르기 시작했다.


*


"염병. 왜 하필 우리랍니까? 오히려 산을 타는 것은 3소대 그 치들이 특기 아닙니까?"

"조용히 해 임마, 내가 가위바위보에서 진 걸 어떡하냐?"

"와 진짜. 그걸로 정한겁니까?"

"시꺼, 적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이제부턴 입 닫고."

"옙."


세유라벤 산맥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는 것은 많은 각오와 준비가 필요했다. 언제나 괴물들과 마주칠 수 있으니만큼 무기를 항상 손에 빼어들고 있어야 했고. 그 자체로 체력을 깎아먹는 울퉁불퉁한 바닥과 날카롭게 갈려진 암석들. 그리고 살을 에는 듯한 추위와 시야를 가리는 눈발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기에 더할나위없이 적절했다.


그렇게 계속해서 산을 오른 제5 소대가 조금 이른 점심 식사를 위해 산 중턱에 있는 작은 동굴로 이동해 눈보라를 피하고 작은 모닥불을 피워 염장고기를 녹이려 안간힘을 쓰고 있을 때였다.


사박...사박...사박...


"뭐야? 이게 무슨 소리지?"

"왜 그래?"

"저 소리! 넌 안 들려?"


무슨 소리가 들리는 듯 갑자기 일어난 소대원에 의해 식사 시간은 순식간에 어그러지고, 소대장의 표정도 일그러졌다. 그는 소대원에게 무어라 말하려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이내 그의 귀에도 들려온 사박사박소리에 입을 틀어막을 수밖에 없었다.


"모두 자세를 낮춰. 지금부터 숨소리 하나 내지 마."


소대장이 경악한 표정으로 낮게 읊조리자 나머지 소대원들도 무언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자세를 낮추고 입을 틀어막았다. 지금도 계속해서 들려오는 사박사박소리는 점점 더 강해져 이제는 모든 소대원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마침내 소리의 강함이 끝에 이르러서야. 그들은 희미하게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Bu lanet olası kar fırtınası gibi, bundan donarak öleceğim!(젠장! 빌어먹을 눈보라 같으니. 이러다가 얼어죽겠구만!)"

"Çok şikayet etmeyin, bir karakol ama işiniz bittiğinde şöminenin yanında dinlenebileceksiniz.(너무 불평하지 마, 전초기지만 지으면 난로 옆에서 쉴 수 있을거야)"


아델라이데의 그것이 아닌 너무나 낯선 타국의 언어. 그것이 반증하는 바는 명확했다. 매그놀리아군! 아델라이데의 적이 바로 앞에 나타난 것이다. 적들의 존재를 알아챈 소대장은 경악한 소대원들을 진정시키며 침착하게 지시를 내렸다.


"이런 ㅁ.."

"조용! 모두 조용히 날 따라온다. 포복으로 이동해. 발걸음 소리도 내면 안 돼."

"알겠습니다."


혹시 모르기에 모닥불조차 꺼버리고, 타다 남은 장작조차 눈더미 속에 묻어둔 채, 25명의 소대원은 엎드린 채로 엉금엉금 기어 무언가를 나르고 있는 매그놀리아군을 따라 이동했다.


눈밭에서 포복으로 이동하니 배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았지만. 그래도 들켜서 포로로 잡히는 것보다는 나았기에 소대원들은 이를 악물며 견뎌내었다. 배가 시리다고 몸을 일으킨다면 순식간에 소대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정지!"

"""!"""


소대장이 큰 소리로 외쳤지만. 눈이 휘몰아치는 소리 덕에 매그놀리아군은 소대장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사실 들어도 알아들을 수는 없었겠지만. 그 덕에 소대장은 망원경으로 산의 아랫둔턱에 반쯤 지어진 전초기지의 윤곽을 볼 수 있었다.


"이런 젠장할. 왜 안 내려오나 했더니!"

"소대장님. 무슨 일입니까?"

"놈들이 전초기지를 짓고 있다. 거점을 확보하려 한다, 그 말이야. 빨리 산을 내려가야 한다. 최대한 빨리! 어서 일어나!"


소대장의 일갈에 소대원들은 벌떡 일어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군영을 향해 달렸다. 그렇게 다시 반나절이 지나고, 5소대는 완전히 탈진한 채로 군영으로부터 200m 떨어진 지점에서 초병에 의해 발견되었다.


*


"뭐야?! 놈들이 산맥 아랫쪽에 전초기지를 건설해?"

"척후병 소대로부터 전달받은 확실한 정보입니다. 소대장의 증언으로는 이미 기둥들이 전부 지면에 박혀 있었고, 외벽이 조립되던 중이랍니다."

"이런. 완전히 당해버렸군. 척후를 조금 더 일찍 보냈어야 하는데.."


군단장은 얼굴을 구길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해 아직 아델라이데도 군단 단위의 병력 운용에는 노하우가 없어서 비효율적이란 것을 알면서도 병사들을 반쯤 어거지로 덩어리로 굴리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포대와 둔덕을 만드는 것에 열중해 정찰에 소홀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타격을 입힐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서는 무리입니다. 산세가 워낙 험해서 기껏해야 중대나 대대 규모인데. 일단 거점을 파괴하는 것에는 성공한다 쳐도 뒤이어 올 매그놀리아군의 공세에 밀려버리고 말 겁니다. 산맥의 특성상 신속한 기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제와서 화포를 옮길 수도 없는 노릇이군... 일단 영주군들에게 산맥을 포위하라고 명령하게."

"알겠습니다 각하."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다. 꼼짝없이 병력을 조금씩 집결시키다가 한 번에 대규모 회전을 열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예 거점까지 만들고 장기전을 대비하고 있을 줄은 말이다.


앞서 얘기한 병력을 모은다느니 하는 것은 천일전쟁 시기 협상국의 주요 전법이었고. 내전 시기에 성장해 고위직을 꿰찬 군인들이 절대 다수인 아델라이데군에게는 예상치 못한 복병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만나왔던 적들과 전혀 다른 적들을 상대하는 것은, 어쩌면 지휘관에게는 강적과 싸우는 것보다도 그들의 역량을 더 효과적으로 시험에 들게 하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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