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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범 님의 서재입니다.

지옥불 난이도의 이세계 생존기.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지니범
작품등록일 :
2020.07.30 01:13
최근연재일 :
2021.06.30 06:00
연재수 :
88 회
조회수 :
19,532
추천수 :
627
글자수 :
465,472

작성
20.07.30 0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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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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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글자
12쪽

왜 하필이면..(1)

DUMMY

"씨이발...."


한 사내가 중얼거리며 시체의 머리에 박힌 검을 회수했다. 아직 150cm도 되지 않은 그의 나이는 10세. 검을 들고 싸우기에는 너무나 어린 나이였다.


"아니 보통 이런 경우에는 트럭에 받힌 놈이 전생하는 게 국룰 아니냐? 근데 왜 트럭 기사인 내가 이세계로 떨어지고 지랄이야 씨발..."


다른 이들은 알아듣지 못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검을 회수한 아이는 단검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자신이 묵고 있는 보육원으로 향했다.


보육원의 이름도. 보육원의 원장도. 그곳에 묵고 있는 아이들의 이름도 소년은 전부 알고 있었다. 그들이 장차 어떤 운명을 맞게 될지도 알았지만. 소년은 그들을 구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왜냐면 그가 전생한 세계는. 속된 말로 하자면 지옥불 난이도의 세계였기 때문이다.


*


"잭슨! 대체 어딜 갔다 온 거니! 다른 아이들은 벌써 다 자고 있어!"


"주변에 네크로틱이 어슬렁거리고 있어서 말입니다. 순찰을 돌면서 처리했습니다."


"네크로틱이라니.. 너 혼자서 말이니?"


"보다시피 멀쩡합니다. 식사 좀 준비해주세요. 식사를 마치면 씻고 자겠습니다."


"...그래.. 금방 준비해주마."


너서리 보육원은 마그레이브(Margrave) 변경백의 영지에서도 가장 끝에 위치한 보육원이었다. 원래는 공동묘지였던 곳을 개장해 만든 곳이었는데. 그 덕에 어린아이들이 뛰노는 곳 치고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음습한 공기가 들끓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제대로 된 보육원이었다면 심심하면 네크로틱이 어슬렁대는 곳에다가 짓지 않았을 것이다.


너서리 보육원이 공동묘지를 터로 잡은 이유는 딱 하나. 집값이 쌌기 때문이다.


"빨리 어른이 되었으면..."


감자를 으깨어 시금치와 다진 고기 약간을 섞은 페이스트는 언제나 그렇듯 간신히 삼킬 수 있는 맛이었다. 소금이라도 팍팍 넣으면 모르겠다만. 영세한 보육원에 그런 사치를 부릴 여유는 없었다.


잭슨. 알맹이로 치자면 박성신은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낡은 벽결이 시계를 보았다. 시계는 정확히 9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대한민국이었다면 애는 물론이고 어른들도 활발하게 활동할 시간이었지만. 이 세계에서는 어린이들은 꿈나라로 갈 시간이었다.


"후우.."


달그락 달그락.


잭슨은 한숨을 토해내며 그릇을 싹싹 긁어 남은 내용물을 단숨에 털어넣었다. 이 세계에 전생한지도 벌써 3개월이 넘었다. 그것도 평소에 즐겨하던 소설과 게임의 세계로.


왜 소설과 게임의 세계라 하냐면.. 이 세계관을 공유하는 소설과 그 소설을 바탕으로 한 게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스토리 라인은 소설 쪽을 따라가는 것 같은데...다른 쪽은.. 모르겠군.-


소설의 주인공이 '잭슨'이라는 10살 짜리 고아 아이였다면. MMORPG로 제작된 게임의 주인공은 이제 막 성인식을 마치고 진로를 고르는 15세의 청소년이었다.


소설의 내용을 그대로 게임화할 수는 없었기에 당연하다면 당연한 각색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지금의 잭슨에게는 의문만을 증폭시키는 짐덩어리나 마찬가지였다.


"잭슨. 다 먹었니?"


"예."


"그릇은 거기 두렴. 내가 치울테니까. 너는 어서 씻고 자려무나."


"예."


레저 원장은 푸근한 인상의 40대 아주머니였다. 그린스킨의 공격으로 인해 오갈 곳을 잃은 그녀는 이 곳에서 일하게 되었고. 소설 속의 잭슨은 어린 시절이 레저 원장에게 큰 의지를 하면서 자랐다.


그녀가 죽는 것이 소설 1부의 끝이면서. 잭슨이 그녀의 복수를 대행하기로 마음먹은 것이 곧 2부의 시작이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잭슨이 얼마나 그녀를 소중히 여겼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아줌마일 뿐이지-


그러나 지금의 잭슨의 몸은 인성이 파탄난 50대 트럭 기사의 영혼이 차지한지 오래였으니. 그에게는 레저 원장이 죽든 말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애초에 이 세계에서 그녀가 죽는지 사는지도 몰랐고. 설령 죽었다 하더라도 잭슨이 그의 복수를 해야 할 의무는 없었다. 어차피 그녀가 죽기 전에 이 보육원을 뜰 것이니 말이다.


쏴아아아!


"후우우.."


미지근하게 데워진 샤워기의 물이 잭슨의 몸에 내려왔다. 이 세계는 특이하게도 중세 시대치고는 기술 발전이 좋은 편이었다. 상수도 시설을 이런 구석진 곳에서 만끽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끼이이익...


녹이 슬어 잘 닫히지 않는 수도꼭지를 꽉 닫고. 잭슨은 샤워실 밖으로 나왔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옷가지를 대충 집어든 다음. 여러번 기운 흔적이 있는 수건으로 몸을 닦았다.


이 보욕원에서 개인용품이란 것은 없었다. 한 달 식비도 간당간당하게 유지되고 있는 와중에 개인용품을 갖춘다는 것은 다 같이 굶어죽자는 얘기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옷가지부터 시작해서 어지간한 것은 전부 공용으로 쓰게끔 보육원의 규칙으로 정해둔 상태였다.


물론 그덕에 키가 큰 아이를 배려하느라 아직 그 나이대의 평균 신장인 잭슨에게는 너무 큰 옷이었지만. 바지가 바닥에 끌리지만 않으면 잭슨은 큰 상관을 하지 않았다.


물론 패션에 민감한 여자아이들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더 상태 좋은 옷을 입으려고 기싸움을 벌이지만. 남자인 잭슨에게는 상관이 없는 얘기였다.


바스락. 바스락.


보육원 하면 흔히 상상되는 2층침대따위는 없었다. 그럴 돈이 있으면 나가서 맛있는 거라도 사먹었을 것이다.


잠자리는 얇은 천 한장 위에 얹힌 땀에 절어 누런 빛이 나는 배게. 그리고 그 위에는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기막힌 이불이 올라간다.


-빌어먹을 보육원 같으니...-


잭슨은 이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다못해 반지하도 이것보다는 나을 터였다.


그러나 아직 10살에 지나지 않은 잭슨이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자리에 누워 이불을 덮는 것 뿐이었다.


*


"잭슨."


툭. 툭.


"잭스은."


툭! 툭!


"재액스은."


"하아아아아아..."


기나긴 한숨을 쉬며 잭슨이 일어났다. 눈 앞에는 희미하게 보이는 뽀안 피부의 여자애가 보였다.


"카나... 여자애가 이렇게 남자애들 방에 막 들어와도 되는거야?"


"어쩔 수 없잖아! 나 혼자 가기는 무서운 걸!"


눈이 아직 어둠에 익숙해지지 못했다. 그러니 잭슨의 눈에 보이는 것은 희미하게 이목구비가 보이는 새하얀 찐빵같은 무언가에 불과했다.


"또 엄마 보러 가는거야?"


"응. 오늘 아니면 또 한 달을 기다려야 한단 말이야."


"..하..."


카나는 성노예에게서 태어난 아이였다. 성노예라고 해서 개인에게 종속된 것은 아니었고. 창관에 소속된 창녀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창관은 시내에. 시내 중에서도 사창가에 있다. 10살에 불과한 카나가 혼자 가기에는 무서운 것이 당연하다.


"그래. 가자."


"히히히."


이제 눈은 완전히 어둠에 적응했다. 카나가 안달이 나서 보육원 바깥에서 기다리는 사이. 나는 공용 물품함에 비치된 단검과 램프. 그리고 회중시계를 들고 바깥으로 나갔다.


바깥으로 나가자 카나는 완전히 잠에서 깨었는지 팔을 붕붕 휘두르면서 나를 재촉하기 시작했다.


"빨리 가자! 얼른! 엄마가 기다린단 말야!"


"그래 그래."


영지의 끝에서부터 영지의 중심까지는 꽤나 오래 걸어야 한다. 아이의 보폭이라면 특히나 더.


보육원의 음습한 공기에서 벗어나자. 카나는 물론이고 잭슨도 서서히 몸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딱히 보육원에 마기가 서린 건 아니고. 저 멀리서 풍겨오는 길거리 음식의 향기와 환하게 불이 밝혀진 시내가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오늘도 엄마가 용돈을 주시겠지?"


"그렇겠지?"


"용돈 받으면 잭슨은 뭐 먹을 거야?"


"나는... 닭꼬치나 사먹으려고."


"나는! 나는 각설탕 살거야!"


"각설탕?"


"응! 예전에 한 번 먹어봤는데 엄청 맛있었단 말이야!"


"아서라. 각설탕을 지금 이 시간에 팔겠어? 게다가 설탕은 비싸. 용돈이라고 해봤자 겨우 동화 10개인데. 각설탕 한 봉지 사려면 못해도 동화 20개는 필요해. 다음 달까지 한 푼도 안 쓰고 모을거야?"


"으으윽..."


순식간에 카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어지간히 먹고 싶었나보구만.-


"엄마한테 용돈 더 달라고 해볼까?"


"이 소리 안 들리냐?"


"무슨 소리?"


"느그 엄마 등골 휘는 소리."


"야아!"


카나가 도도도 달려와 동동동 잭슴의 가슴팍을 두드렸다. 엄마를 건드리는 것이 어지간히 신경에 긁힌 듯 하다.


그렇게 엎치락뒤치락하며 계속해서 걸어나가니. 어느샌가 잭슨과 카나는 사창가에 도착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끗힐끗 두 아이를 쳐다보기는 했지만. 대충 엄마가 아빠를 찾으라고 보낸 아이겠거니 하고 큰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했다.


"엄마 만나러 가자! 빨리이!"


"그으래애."


이쯤되니 카나는 거의 날아다니듯이 길거리를 헤집으며 제 어미가 있는 창관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를 단검을 든 잭슨이 쫓아가고 있으니. 만약 두 아이들이 성년이었다면 누군가가 경찰에 신고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게 사창가를 제 집마냥 달려간 카나는 한 작은 창관에서 그 발걸음을 멈추었다. 제대로 청소를 하지 않아 본래의 색을 잃어버린 간판에는 유려한 글씨체로 '내려온 천사들'이라고 적혀져 있었다.


똑똑!


"예! 어서... 으음?"


"엄마 보러 왔어요!"


"엄마?... 아. 라나 딸이냐?"


"네."


"조금만 기다려라. 지금 일하는 중이거든. 일이 끝나거든 내려보내마."


아마도 손님을 맞이하고 제압하는 일을 하는 듯하는 거구의 사내가 그렇게 말하며 문을 닫았다.


"일하는 중이라."


잭슨이 문득 중얼거렸다. 성노예가 창관에게 대관절 무슨 일을 하겠나. 당연히 오입질이었다.


"빨리 나오면 좋겠다."


그러나 카나는 신경쓰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관심이 없는 것인지 문 옆의 자그마한 턱에 앉아 오매불망 제 어미를 기다렸다.


딱히 뭐라할 수 없는. 아직 세상을 알기에는 한참 어린 10살의 나이. 이 세상은 카나같은 어린아이에게는 너무나 가혹했다.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고. 엄마는 창녀에다. 카나도 15살이 되어 성인이 되면 기껏해야 누군가의 아내나 허드렛일이나 하다 늙어 죽거나 끔찍하게 죽을 것이다.


좀비와 그린스킨. 뱀파이어와 마수들. 흑마법사들과 혼돈의 신들이 존재하는 이 세계에서 아이들의 순수함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듯 버려지기 일쑤였으니까.


벌컥!


"하악.. 하악.. 카나?"


"엄마아!"


"하악.. 그래 내 딸. 오느라.. 하아.. 힘들었지?"


그렇게 잭슨이 생각하고 있을 때. 얼굴이 불게 상기되고 숨이 차 있는 카나의 엄마가 나타났다. 후줄근한 옷에 이제 이제 20대 중반에 접어든 그녀의 얼굴은 화장품의 여독에 쌓여 본래의 미모를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이제 그만 가봐야겠다. 여기. 용돈 줄테니까 아껴쓰렴."


"응! 엄마 나중에 봐!"


"그래 내 새끼. 건강해야 한다."


30분.


잭슨이 회중시계로 잰 모녀의 대화시간이자 라나의 휴식시간이었다. 고작 30분. 1달의 기다림은 고작 30분의 대화로 그 가치를 다하였다.


"잭슨."


"응."


"용돈 받았으니까. 반으로 나누자."


"...그래."


카나의 얼굴은 언제나 그렇듯 밝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바로 그런 점이. 잭슨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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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금의환향(2) 21.04.20 42 1 12쪽
72 금의환향(1) 21.04.19 96 1 12쪽
71 옛 계약(2) 21.04.13 41 1 12쪽
70 옛 계약(1) 21.04.12 74 1 12쪽
69 혈육(2) 21.04.06 89 1 12쪽
68 혈육(1) 21.04.05 50 1 12쪽
67 남에서 온 손님(1) 21.03.23 52 1 14쪽
66 북에서 온 손님(1) 21.03.22 45 1 12쪽
65 하나의 깃발 아래에서(4) 21.03.16 55 1 12쪽
64 하나의 깃발 아래에서(3) 21.03.15 67 1 12쪽
63 하나의 깃발 아래에서(2) 21.03.09 63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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