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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범 님의 서재입니다.

지옥불 난이도의 이세계 생존기.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지니범
작품등록일 :
2020.07.30 01:13
최근연재일 :
2021.06.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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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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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델라이데의 것(1)

DUMMY

아델라이데는 '장사 열을 모아도 물장수 하나 못 당한다' 라는 오랜 격언이 있다, 과거 물이 부족했을 시기에 만들어진 격언인데, 이 격언의 뜻은 아무리 군사력이 좋아도 경제력이 없으면 말짱 꽝이라는 뜻이다.


그것을 생각한다면 이 격언이 현재 국왕이 국무회의에서 내건 '산물 증식 계획'의 표어로 걸린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짐이 가만히 생각건대, 현재 우리 아델라이데가 보호무역을 취하고 있음에도 별다른 이득을 보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오랜 기간동안 빈궁하게 살아 타국에 자랑할만한 물산이 없고, 무언가 번뜩이는 재치가 돋보이는 기술력조차 없이 변변찮게 살아온 탓이다.


그러나 흐르는 폭포수가 사막을 옥토로 바꾸듯이, 짐의 치세에서는 더 이상 아델라이데가 빈궁한 나라라는 오명을 쓰고 있게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다. 그대들은 짐의 명을 받들어 아델라이데의 대평원을 돌아다녀 진귀한 물산들을 모아 짐에게 진상토록 하라."


수요가 공급을 만들어낸다, 공급이 모자란다면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공급을 늘리려 시도하지만, 수요가 없다면 그저 잊혀질 뿐이다. 마치 지구에서 조선이 겪은 일과 똑같다, 고려청나가 조선백자같이 누구나 이름만 들어도 알만큼 유명한 도자기 제품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간층에서의 수요가 전멸해 극히 소수만이 남아있고, 도자기 기술도 외국에 비해 뒤쳐지고 말았다.


아델라이데의 상황은 놀라울만큼 조선의 상황과 비슷했다, 어처구니없게도 군사력을 제외한다면 조선의 상황이 더 좋은 것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가장 좋은 것은 노동력이 많이 들어가는 노동집약적 산업, 즉 경공업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아델라이데의 경제에 무작정 지구의 그것을 들이밀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랐다.


우선 이 세상에서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대농장이 잘 발달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야 당연히 몬스터들 때문이다. 당장 하늘산의 도시 계획에도 대규모의 농경지와 그것을 감시할 첨탑과 방벽들이 포함되어 있는 이유도 그것이다,


절대 다수의 농업은 소규모 자영농에 의해 이루어지고, 자영농이 생산한 물자들을 거두어들이는 대신 농부들에게 군사적인 보호를 해주는 성주나 영주, 그리고 성주와 영주가 바치는 잉여 물자들을 받아먹어 성장하는 도시를 거점으로 한 최고 군주, 이것이 바로 이 세계에서의 가장 보편적인 정치체제였다.


노예는 대부분이 형벌로서 기간제였고, 평생 동안 노예로 있는 자들은 대부분 빛 때문에 노예가 된 금융노예였다. 특별한 기술, 예를 들어 대장장이들이나 의사 같은 고급 직업에 종사하던 이들은 노예 행을 면하는 대신 특정한 업소에서 의무적으로 몇 년씩 근무하는 것으로 형벌을 대신했기에, 이 세계에서는 노예를 이용한 대규모의 산업이 발달하지 않았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느냐 하면, 이 세계에서는 중앙 집권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뜻이다, 당장 도시 바깥을 나서기만 하면 괴성과 함께 괴물들이 날아다니니 이 세상에서는 하층민들도 허리춤에 장검 하나 차고 다니는 것이 일반적인데 말이다.


북왕국이 공장을 세우고 중앙이 강력한 것은 먼지 풀풀 날리는 드잡이질과 괴물들과의 싸움을 수천년 동안이나 계속한 것 때문이다, 딱히 사회 제도의 개혁이나 신 기술이 개발되어서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스레 아델라이데가 북왕국이 이룩한 것들을 따라잡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차라리 산업화가 답이었다면 백성들을 억압해서라도 이룩할 수라도 있지, 순전히 시간만이 답을 알고 있는 이 세계에서 아델라이데는 북왕국에게 뒤쳐질 수밖에 없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최악의 가정이지, 희망적으로 본다면 아델라이데도 충분히 북왕국들 못지 않은 발전과 풍요를 누릴 수 있는 잠재력이 있었다, 비록 140만명을 죽이기는 했어도 어찌되었건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었으니 말이다.


*


"답은 도자기에 있다."

"어... 도자기..말씀입니까?"


이 세계에서도 도자기 기술은 존재했다. 한 고려 시대 정도의 기술력이라고 하면 적당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 그러니까 귀족이 아닌 사람들은 나무로 만들어진 식기를 썼고, 귀족들은 대부분 자신의 용맹을 과시하기 위해 거대한 몬스터의 뿔이나 뼈로 만든 식기를 쓰는 경우가 많았다.


한 마디로, 아델라이데가 고급진 도자기를 만들어 판매한다면 북왕국에서는 '어머나 이건 당장 사야 해!'라며 돈을 가져다 뿌릴 것이란 말이다.


지구에서 고려청자나 조선백자, 본차이나같은 고급 도자기 제품들이 수백에서 수천만원을 호가하던 것을 기억한 국왕은 전국적으로 도자기 장인들을 육성하라 일렀고, 왕의 신하들은 그 말 그대로 전국 방방 곳곳에 도자기 공방들을 만들어 도자기 장인들을 육성하기 시작했다.


건국할 때부터 도자기 기술을 들여오기도 했고, 아델라이데 국내에서도 경제 성장에 따른 사치품 수요가 급증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방에서 만들어진 도자기 제품들은 아직 미숙한 점이 많았음에도 도시의 중산층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절찬리에 판매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레나시아가 11세가, 아델라이데 건국 8년이 되자, 도공들이 만들어내는 도자기들도 점점 수준이 올라 이제는 쉽게 깨지지도 않고, 빛깔도 고르게 나오며, 무게도 적당한 제품들이 생산되기 시작했고, 국왕은 이에 크게 흡족해하며 궁성에서 쓰는 식기들을 전부 도자기로 교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비록 아직 튼튼하고 오래가는 제품을 넘어 복잡하고 정교한 무늬를 새긴다던가, 알록달록한 색을 입힌다던가 하는 고급 기술들은 아직 멀었지만, 그래도 불과 1년만에 실용적으로 써먹을만한 도자기들을 양산해내는 것은 충분히 고무할만한 성과였다.


"그래, 도자기는 이제 어느정도 안정기에 올랐으니... 슬슬 팔 때가 된 것 같구나, 각지의 공방들에게 연락을 넣어 가장 화려하고 정교한 작품들을 출품하라 이르거라. 그 중에서도 가장 잘 만든 작품을 다음번 상행에 가져갈 것이다."

"예, 폐하! 속히 공방의 도공들에게 이르겠나이다."


품질을 향상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경쟁이었다, 경쟁을 통해 기술이 발전하고, 숙련도가 오르며, 더 좋은 조건을 가지고 시장에 뛰어들 수 있다, 경쟁을 통해 얻은 것들을 통해 또 다시 경쟁을 벌이고.. 그것을 반복하는 것이 바로 발전이었다.


*


정확하게 보름 후, 각지에서 올라온 도공들이 하늘산 아래 모였다. 다들 자신들이 만든 최고의 작품들을 품에 안고 있었고 눈에는 결의가 가득 차 있었다. 이곳에서 인정받는다는 것은 사실상 왕실과 국왕에게 인정받는다는 것.


군주제 국가에서 국왕이 쓰는 것을 자신도 쓸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어마어마한 마케팅 효과를 누릴 수 있고, 국왕이 쓴다는 것은 품질 또한 왕국 내에서 최고나 다름없다는 증명이기 때문이다.


"각 도공들은 거치대에 자신들이 만든 작품을 전시하라."


심사관의 명령이 떨어지자, 도공들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작품을 거치대 위에 올려놓았다. 과연 최고의 작품이라는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은 듯, 모든 작품들은 구경하러 온 하늘산의 시민들의 입을 벌어지게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우와아.. 저 빛깔 좀 봐! 대체 어떻게 하면 저렇게 만들 수 있는거지?"

"저것도 좀 보라고, 저렇게 강렬한 붉은색은 처음 봐!"


각자 나름대로 1년간 수련한 티를 오색찬란하게 뽐내며, 자신들을 으뜸이라 말해줄 심사관의 한 마디를 기다리고 있었다.


"흐음.."


땅땅땅!


심사관들이 제각기 몰려와 쇠막대로 도자기의 강도를 시험해보고, 횃불을 비쳐 얼마나 빛을 잘 반사하는지 시험해보고, 물을 부어서 녹는지 안 녹는지를 검사하고, 내부를 들여다보고 얼마나 마감이 잘 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공정 하나 하나마다 도공들과 그것을 지켜보는 관중들의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시험은 끝났고, 이제 심사관들이 토론을 통해 우승작을 정할 것이니 모두 정숙하시오!"


그렇게 말하자 수십만의 관중들이 일제히 사그라들었다. 과연 누구의 작품이 국왕의 인증을 받을 수 있을 것일까? 과연 어느 작품이 최고의 인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칼발 공방에서 만든 작품은 색이 강렬하기는 한데 다른 색과 융화가 되지 않습니다."

"수크로스 공방에서 만든 것이 문양이 조잡하기는 하지만 마감이 참 잘 되었는데.."

"마감으로만 치자면 수크로스 공방보다 에비안 공방의 것이 더 낫지 않습니까?"

"펠릭 공방의 작품은 문양에 넣은 색이 번졌더군요, 안타깝습니다."

"맥켄지 공방의 작품은 디자인이 인상적이기는 한데 실용성은 떨어져보입니다."

"실용성으로 치자면 다인하르트 공방 것이 제일 같은데... "


심사관들의 토론이 흘러나올수록, 대중들은 침을 삼키지도 못한 채 심사관들의 평결만을 애타게 갈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단상 위에 올라선 도공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자신들의 작품이 뭔가 하자가 있다는 식의 말소리가 들릴 때마다 몸은 사시나무 떨리듯 진동해, 이대로 둔다면 거치대에 놓은 도자기들이 진동에 못이겨 떨어질 지경이었다.


"심사관들의 평결이 나왔소이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말이 나왔다. 대중들은 일제히 숨을 몰아쉬었고, 도공 중 한 명은 아예 호흡곤란을 일으켰다.


"흐업! 흐그겁!"

"어어.. 정신 차리게!"

"숨 쉬어 숨!"


일련의 소동 끝에, 심사관 중 한 명이 나와 우승작을 발표했다. 우승작은 발칸 공방의 술병으로, 실용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외관, 완벽한 마감이 어드밴티지를 주었고, 주된 이유는 청록색 염료를 이용해 술병을 마치 나뭇가지가 감싼 것 같은 수준 높은 염색이었다.


"우승자는 자신의 작품을 들고 국왕 폐하를 알현할 기회를 얻게 되었소! 패자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들고 공방으로 돌아가 더욱 더 정진토록 하시오!"


*


"우승이라니! 내가 우승이라니! 세상에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후우... 역시 아직 모자란 건가.."


희비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승자는 의기양양하며 심사관들을 따라 하늘산 위의 궁성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걸어갔고, 패자들은 아쉬운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자신들의 작품을 들고 돌아갔다.


아니, 정확히는 돌아가려 했다. 패자들의 어깨를 붙잡는 의문의 손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자..잠깐만!"

"?"

"그.. 그 도자기, 나에게 팔 수 없겠나? 돈은 모자람없이 쳐줌세!"

"어.. 그..그럼 얼ㅁ.."

"에헤이! 그 사람 말고 나한테 파시게! 내가 더 많이 쳐줄테니!"

"어..어어?"


그랬다. 사실 말이 실패작이지, 일반인들의 눈에는 다 똑같이 엄청나게 잘 만든 도자기였던 것이다. 심사관들이 마감이 어쩌네 염색의 질이 어쩌네 따지기는 했어도 겉보기에는 그다지 티가 나지 않는 바람에 수많은 부자들이 '실패작'을 사기 위해 달려들었고, 이내 실패작을 든 도공들은 졸지에 도자기보다도 훨씬 더 무거운 돈다발을 들고 공방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승리자는 궁성으로 향하고, 실패자는 시장으로 향한다는 일련의 과정이 도자기 경연대회의 전통으로 자리매김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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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혈육(1) 21.04.05 5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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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북에서 온 손님(1) 21.03.22 4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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