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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범 님의 서재입니다.

지옥불 난이도의 이세계 생존기.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지니범
작품등록일 :
2020.07.30 01:13
최근연재일 :
2021.06.30 06:00
연재수 :
8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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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5,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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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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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금의환향(1)

DUMMY

"금의환향이라는 말을 아나?"

"금의..? 죄송합니다 폐하. 잘 모르겠습니다."

"흠. 옛 고서적에서 나온 경구인데. 뜻은 타지에서 출세를 하여 고향에 돌아오는 것을 뜻한다고 하네. 참으로 짐에게 어울리는 말 아닌가?"

"실로 그런 것 같사옵니다."


3만명.


그것이 세유라벤 산맥을 뚫기 위한 사람들의 목숨의 총합이었다. 계속해서 무너지는 낙하물들에 깔려 시체조차 찾지 못하고 죽은 자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뒤로하고 완공된 터널은. 반드시 무너지지 않아야 한다는 관리자들의 집착을 반증하듯이 터널 전체에 보강재와 철근들이 빼곡하게 둘러져 있어 마치 뼈로 만들어진 미궁을 활보하는 듯 하였다.


높이 100미터. 폭 400미터라는 거대한 터널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것은 왕의 행렬을 호위하는 병사들이 밝힌 불과 길을 잃지 말라고 달아놓은 등불뿐. 그러나 그것으로도 충분했는지. 왕을 태운 호위 행렬은 쭉쭉 나아가 어느새 터널의 끝에 다다랐다.


"이제 다 왔구나. 이곳이 북부다. 짐이 태어난 곳이지."


터널을 빠져나오자. 행렬을 구성하는 호위병들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난생처음 보는 동식물로 가득한 세계. 메마른 남부에서 태어나 빈약한 식생에 익숙한 대평원의 인간으로서는 문화 충격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북부는 정말이지.. 활기찬 곳이군요. 산맥 하나를 두고 이렇게나 많은 것들이 떨어져 있었다니. 뭔가 불공평한 기분입니다."


무어라 비교할만한 단어를 찾지 못한 부관이 나지막히 '활기찬 곳'이라는 감상을 털어놓자. 켈러 왕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솔직히 남부에서 가장 그리웠던 것이 북부의 풀내음 아니었던가.


"뭐, 무리도 아닐테지. 병사들을 너무 다그치지 말게. 짐도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오니 달라진 것만이 눈에 밝히니."

"예, 폐하."


실로 오래간만에 돌아온 북부의 남쪽은 여전히 켈러 왕이 떠나올 때 그대로였다. 아직 시트러스의 국경에 들어가기까지는 멀었지만. 딱히 서두를 필요도 없겠다. 켈러 왕은 눈을 댕그랗게 뜨고 상관들의 눈을 피해 북부의 풍부한 식생을 감상하고 있는 병사들의 편을 들어주었다.


*


시트러스의 왕성에서는 때 아닌 손님맞이 준비가 한창이었다. 일개 어염집도 손님을 집에 들인다 하면 가구까지 들어가며 청소를 하는데. 하다못해 집이 궁성이고 손님은 다른 나라의 왕이면 오죽하겠는가?


가뜩이나 인구가 줄어 구하기도 어려운 산해진미들이 수레에 그득그득 실려 왕성으로 들어가고. 요리사들은 오랜만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질 좋은 재료로 최고의 요리를 내놓고 있었다.


"한 치의 실수도 있어서는 아니 된다! 우리 시트러스의 국격을 신생국의 군주에게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반드시 잡아야 한다!"


비록 최근에 재액을 만나 죽을 쑤고 있다고 한들 시트러스는 수백년을 견뎌온 강력한 나라였다. 헌데 일국의 군주를 모시는 자리에 흠이 있다니 아니 될 말. 나라 전체가 침체된 지금 함부로 연회를 열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오랜만에 죄책감이나 눈치 없이 즐길 수 있는 대규모 파티에 귀족들의 기대치도 높아져만 가고 있었다.


"후우... 역시나 엄청나군. 북부의 파티라는 것은.."


그리고 이러한 광경을 바로 옆에서 보고 있는 세르누엘라 재상은 침울한 마음을 숨길 수밖에 없었다. 북부의 연회 준비를 보고 있자니 남부의 초라한 파티가 너무나 부끄럽게 보이는 것이다.


제아무리 명군인 켈러라 해도. 무력으로 해결하면 오히려 역효과만 나는 문화 분야에서의 성장은 돈을 뿌린다고 해서 쑥쑥 자라나는 것이 아니었다. 아마도 이것이 남부가 못 산다고 하는 큰 이유이리라. 가난하다고 해도 무언가 아름다운 것이 있다면 가난하다고 소문이 나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


"뭐..뭐지? 저 행렬은.."

"나도 모르겠으니까 일단 엎드려! 딱 봐도 귀하신 분이잖아!"

"아니.. 거 참.."


국경지대까지는 아직도 머나먼 여정이 남았다. 그들의 앞에 수많은 자연인들이 부복하고 있기는 하나. 그들은 시트러스의 백성이 아닌 자유 영주 휘하의 백성들이나 말 그대로 부락 단위로 살아가는 부락민이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산맥으로 막혀 있는 남쪽에서 갑자기 이색적인 복장을 한 대규모의 군세가 나타나. 하염없이 북쪽으로 향하고 있는 괴이한 광경이리라.


모여드는 군중들을 뒤로 하고. 행렬은 끊임없이 북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나 아무리 정예라 해도 계속해서 행군할 수는 없는 법. 어느새 밤이 찾아오고. 병사들의 관절에서 삐걱대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하자 기나긴 행렬은 잠시 멈추고 내일을 위해 천막을 치고 숙영할 준비를 마쳤다.


그렇게 어느덧 완연한 밤이 찾아오고. 켈러도 이제 잘 준비를 마쳤을 때였다.


"폐하, 주무시옵니까?"

"음? 아니. 아직 깨어있다. 무슨 일인가?"

"그게... 송구하오나 나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짐이 직접 나서야 할만큼 중대한 일인가?"

"솔직히 아뢰자면 그것은 아니오나.. 저들이 무슨 일이 있어도 폐하를 직접 뵈어야 하겠다며 고집을 부리는지라..."

"...저들이라? 백성들이 찾아왔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다들 한 아름 먹을 것이나 장작더미를 들고 왔는데.. 이를 어찌해야 할 지..."

"음.. 알겠다. 짐이 직접 나갈테니 저들을 진정시키거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켈러는 의관을 바르게 정제하고 천막 바깥으로 나갔다. 그러고 나서 보니 과연 부관이 말한대로 수많은 민중들이 밤의 어둠 속에서 제각기 손에 든 것을 하늘 높이 들며 뭐라 아우성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다들 그만! 국왕 폐하시다! 예를 갖추어라!"

"아니 그러니까 뭐라 말하는지는 모르겠는데 당신들 대빵 나오라고!"

"아 진짜 미치겠네...! 대체 뭐라고 말하는거야?"


-아이고 이런...-


켈러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소란의 원인을 파악했다. 대평원에서 온 자와 북부에서 사는 자들이 서로 다른 말로 삿대질을 해대고 있으니 서로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들 그만!"

"!"

"웜메?"


보다 못한 켈러가 사자후를 내지르자. 시장통을 방불케 했던 말다툼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뭐 왕이 나타나서 '말싸움 멈춰!'라고 말하는데 따르지 않을 자가 어디에 있겠나.


"병사들을 물리고 의자를 가져오너라."

"예, 폐하!"


병사들이 허겁지겁 의자를 가져오자 켈러는 의자에 앉아 순식간에 무릎을 꿇은 수천명의 인파들을 바라보았다. 다들 보따리짐이나 무거워보이는 상자를 끌고 온 것은 아마도 그의 군대에게 바치려 모아온 것들이리라.


"너희들의 대표자는 누구인가?"


그들의 말로 말하자. 가장 늙어보이는 자가 비쩍 마른 몸을 일으켜 무릎을 꿇은채로 살금살금 다가왔다.


"폐하... 저는 늙고 초라한 몸으로나마 촌장이라는 과분한 지위를 맡고 있는 자입니다. 본디 저희 부락민들과 영주가 다스리는 자유민들은 부족한 살림을 이끌면서 한 철 농사 지어 한 철을 견디어내는 잡초와도 같은 인생을 살고 있사온데. 북에서 내려오는 기사들과 병사들은 가축을 줄이고, 어려울 때는 가족마저 줄여야 하는 겨울철에 내려와 민가를 약탈하고. 아녀자들을 희롱하여 마을 하나를 초토화시키고 가니 저희로서는 도저히 견뎌낼 재간이 없습니다.


폐하께서는 남쪽에서 올라오셨고. 또 아무런 약탈도 저지르지 않으셨기에 저희는 안심하고 잘 수 있었으나. 폐하께서 북국을 치러 가신다는 소문이 돌아 다음은 저희의 마을을 불태우고 여자들을 강간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아 부득이하게 온갖 재물들을 싸들고 폐하께서 계시는 곳으로 향한 것입니다.


부디 저희가 바치는 재물들을 받으시고 저희의 터전을 조용히 지나가주시옵소서. 그것만이 저희가 바라는 모든 것이옵니다."


"..."


켈러는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확실히, 시트러스를 비롯한 북부의 3왕국들은 겨울철만 되면 몬스터 퇴치를 위해 자유 영주들이나 부락민들이 사는 곳으로 향해 징발을 빙자한 약탈을 한 후 눈에 보이는 몬스터들을 싸그리 잡은 후 돌아오는 것이 거의 관례화되어 있었다.


그나마 영주가 지배하는 장원은 자체적인 군사력이 있기에 아녀자를 희롱한다던가 하는 일은 없지만. 마을이라 불러주기도 초라한 부락민들에게 무슨 군사력이 있겠는가. 말이 희롱이지 실제로는 동의없는 강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군대가 북쪽으로 향하니 가뜩이나 당한 것이 많던 이들로서는 극도로 긴장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약탈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물자를 바치러 찾아온 것이다.


켈러 왕으로서는 당혹스러운 결과였지만.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나쁜 것은 없었다. 어차피 물자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으니까.


"좋다. 너희들이 가져온 성의를 봐서 징발은 하지 않도록 하겠다. 가지고 온 물품들은 이곳에 내려놓고 돌아가도록."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인심, 아니 군심 좋게 자발적으로 마친 것들을 민중들에게 돌려준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이미 저들 딴에는 살고 싶어서 마친 물자를 받지 않는다는 것은 공포를 확산시키는 것밖에는 되지 않고. 이쪽도 물자가 많아야 하는 이유가 있었으니까.


"후... 일정이 지체되겠군. 너희들은 어서 이것들을 마차에다 실도록 하라."

"예, 폐하!"


*


부락민들의 '호의'를 말 그대로 등에 업고 며칠간 행군을 계속하자. 마침내 시트러스의 영역과 야생을 구별하는 변경백의 장대한 방벽이 보였다. 마치 '이곳부터는 문명의 영역이다'라고 말하는 듯한 노골적인 행태에 켈러 왕은 쓴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그 장벽의 끝자락에 서 있는 것은 시트러스의 제복을 걸친 근위대. 화려한 장식들과 5미터가 넘는 장창으로 엄숙하게 서 있는 그들은 오직 켈러와 그의 종복만을 위해 이곳에 나와있는 자들이었다.


척! 척!


행렬이 문 앞에서 멈추자. 염색을 한 것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그런 것인지 알 수 없는 붉은색 수염의 장교가 앞으로 나와 정모를 벗고 고개를 숙였다.


"본인은 시트러스 근위대의 제4대대장을 맡고 있는 아르시온 폰 파섹이라 합니다. 아델라이데의 국왕 폐하를 만나뵙게되어 영광입니다."

"만나게 되어 반갑네 파섹 경. 부디 짐의 병사들이 무장하고 있는 것에 대해 불평하지 않기를 바라겠네."


그 말에 파섹은 국왕이 이끌고 온 군사들을 훑어보았다. 걸치고 있는 장비들에게선 장인의 기운이 서려있고. 눈빛은 흉흉하기 그지없었으며. 군복 아래에 잠자고 있는 꿈틀거리는 근육들이 만만치 않은 정예라는 것을 말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물론입니다 폐하. 다만... 저희 왕국의 영토에서 함부로 무기를 꺼내드는 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겠습니다."

"그것이야 그대들의 당연한 권리이니 받아들여야 하겠지. 그래.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왔지만 계기가 계기이니만큼 편안한 마음으로 둘러볼 수만은 없다. 우리를 들여보내 주겠는가? 파섹 경."


파섹은 침을 삼켰다. 그리고는 그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경의와, 존경심을 담아 눈 앞의 가마에 앉아있는 타국의 국왕을 향해 말하였다.


"물론입니다 폐하. 시트러스 만민을 대표하여. 아델라이데 왕국의 주인이신 라이투스 폰 켈러 국왕 폐하와 당신의 종복의 입국을 환영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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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금의환향(3) 21.05.03 38 0 12쪽
73 금의환향(2) 21.04.20 42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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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혈육(2) 21.04.06 89 1 12쪽
68 혈육(1) 21.04.05 5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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