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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범 님의 서재입니다.

지옥불 난이도의 이세계 생존기.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지니범
작품등록일 :
2020.07.30 01:13
최근연재일 :
2021.06.30 06:00
연재수 :
88 회
조회수 :
19,533
추천수 :
627
글자수 :
465,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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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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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혈육(1)

DUMMY

켈러 왕의 명령으로 인해 북부 도로가 미친듯한 속도로 완공되자, 도로망 구축에 투입되었던 인원과 물자들은 그대로 산맥을 뚫는 터널 공사에 투입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터널 공사는 그다지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참으로 간단했다.


쿠르르릉!


"어? 무슨 소리지?"

"..이런 썅! 당장 나가! 또 무너진다!"

"예?"

"나가라고 등신 새끼야! 깔려 뒤지고 싶어!?"


콰칵! 쩌저정!


"히..히익!"


우르릉! 쿠르르륵!


"으아아!"


바로 터널이 너무 쉽게, 너무 자주 무너지는 것이었다.


야심차게 세유라벤 산맥을 돌파하려는 아델라이데와. 그에 맞서는 대자연의 전쟁은 당사자들도. 보는 사람도. 돈줄을 대는 사람도 피폐하게 만들고 있었다. 벌써 깔려죽은 사람들만 세자릿수가 넘고 유실되고 파묻힌 장비들의 값어치만 해도 수도의 노른자위 땅에 저택을 박을 수 있을 정도이니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한가?


"젠장. 벌써 4번째 붕괴야! 이제야 산기슭에 다다랐는데 이런 꼴이라니.. 산 중심부에 다가가면 볼만해지겠군."

"너무 투덜대지 마라. 이것도 다 국왕 폐하의 명 아니냐. 아니면 너도...협상국 꼴이 나고 싶은 거냐?"

"....빌어먹을."


공사를 맡은 관리자들은 피가 마르는 기분이었지만. 당장 상사가 140만명을 말끔하게 죽여버린 희대의 미친 놈이었던지라 딱히 다른 수가 없었다. 막말로 그들이 국왕을 실망시킨다면 140만+a가 될 뿐이었으니 어떻게 해서라도 저 지랄맞게 단단하면서도 자주 무너지는 어메이징한 산맥에 터널을 뚫어야만 했다.


"마법사들을 고용해보는 건 어떨까?"

"아서라. 걔네들 체력을 생각해. 치렁치렁한 로브를 입고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게 가능할거라 생각해?"

"으윽.."


관리자들은 쉬이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마법사를 동원해본다는 실험적인 생각은 유사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라는 합당한 반론에 침몰했고. 남은 해결책은 전부 탁상공론이거나 현재로서는 실현할 수 없는 것들뿐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꾸역꾸역 인부들과 물자들은 충당이 되고 있으니 미친듯이 파고들어간다면 언젠가 끝은 나겠지만. 관리자들은 문득 그 끝을 볼 때까지 보아야 하는 죽음의 수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아직 산기슭을 파헤쳤을 뿐인데도 수백명이 죽어나갔다. 그렇다면 반대쪽 끝까지 닿을 때까지 최소한 네자릿수 이상이 죽어나간다는 것 아니겠는가.


"후우우..."


관리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순수한 얼굴을 한 채 곡괭이를 들고 작업현장으로 들어가는 인부들을 바라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과연 이 공사가 끝날 때까지 저들 중 몇 명이나 다시 볼 수 있을까?


*


쨍그랑!


"아버지! 고정하십시오!"

"지금 내가 고정하게 생겼느냐! 이것 놓아라!"

"아버지 제발...!"


아마도 시트러스 왕국 역사상 길이 남을 국무회의가 끝난 직후. 사르탈 후작은 분을 삭이지 못하고 집 안의 기물들을 때려 부수며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그의 두 아들들이 아버지를 막아보려 육탄공세를 펼쳤으나. 이미 화가 머리 끝까지 난 후작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 했다.


"이이... 빌어먹을 켈러 놈 같으니! 이런 식으로 나를 엿 먹여?! 미천한 평민 주제에..!"


까드득! 까드득!


평소에도 권력욕이 남달랐던 그는 이를 갈아대며 켈러 왕에 대한 증오심을 표출했다. 앞으로 조금만 더. 앞으로 약간의 귀족만 포섭하고 약간의 정치적 공세를 펼치면 자신이 왕위에 앉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았는데. 갑작스럽게 나타는 아델라이데의 재상이라는 놈이 그 꿈을 헛것으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쯧쯧.. 이게 무슨 추태인가, 사르탈 후작?"

"넌 뭐....아니. 포이젠 후작..? 여긴 어떻게.."

"자네의 아내가 들여보내주었지. 보아하니 또 거하게 날뛴 모양이군."

"아니 이건.. 후우... 일단 앉지."


사르탈 후작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려는 듯 반쯤 아작이 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얼음이 가득찬 양동이에 담궈놓은 포도주를 꺼내 병나발을 불었다. 귀족이라고는 볼 수 없는 천박한 행동이었지만. 포이젠 후작은 익숙한 듯 멀쩡한 잔을 주워 사르탈 후작에게 내밀었다.


쪼르르륵...


그리고 이내 잔이 시원하게 냉각된 포도주로 채워지자. 포이젠 후작은 능글맞게 웃고는 슬며시 잔을 들이켰다. 과연 후작씩이나 되는 자들이 먹는 포도주라 그런지 맛이 일품이었다.


"맛이 좋군."

"남부에서만 자라는 포도로 담근 술이오. 요즘은 구하기가 어려워서 파는 곳도 없고 그나마 있는 곳도 웃돈을 주고 사야 한다오."

"안타까운 일이지. 그러나 지금 남부에는 포도보다 밀이나 쌀이 더 필요하네."

"누가 그걸 모르겠나.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가뜩이나 우리 영지도 난민들 때문에 골치인데 대귀족이라면서 그것밖에 지원을 안 하냐며 비난을 해대니 원!"

"껄껄. 아랫것들이야 원래 자기들 편한대로 생각하는 족속들이지 않나. 가진 자들인 우리가 참고 살아야지."

"후우!"


사르탈 후작은 이제야 좀 진정된 듯 연이어 포도주를 들이켰다. 난장판이 된 방 안에서 중년 남정네 들이 오손도손 술을 마시는 폼이 영 뭣하기는 했지만서도 말이다.


"그도 그렇고. 이제 어떻게 할 건가?"

"...생각 중이오."

"자네가 왕위를 노리고 있다는 건 저잣거리의 장사치들도 아는 사실인데. 만약 선왕의 혈육이 살아있다는 것이 정말이라면 곱게 넘어가기는 힘들게야."

"제길... 대체 왜 혈육이 이제야 나타난 건지.. 폐하께서는 재혼도 하지 않으셨는데!"

"사생아야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지. 그 경우에는 일이 편해지겠지만. 나는 켈러 왕 그자가 천한 사생아를 혈육이라 내놓을 자 같지는 않아."


포이젠 후작은 얼마 남지 않은 포도주를 입 안에 털어넣으며 그렇게 말했다. 포도주가 시원한 것인지. 아니면 이제야 화가 풀린 것인지. 사르탈 후작은 다시 평정을 되찾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설령 정말로 선왕의 혈육이라 할지라도 날 어떻게 할 수는 없을 것이오."

"호오?"

"날 따르는 귀족들만 해도 중부의 절반이 넘소. 이제 막 왕이 된 애송이가 우리를 어찌할 수 있겠소? 적당히 비위를 맞춰준다면 넘어갈 수밖에 없겠지."

"그것도 맞는 말이군."


선왕의 혈육이라는 것이 증명된다면 왕좌에 오르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것이 곧 그 혈육이 마음대로 왕권을 휘두를 수 있다는 것은 아니었다. 자세한 것은 그 혈육이란 자가 시트러스로 와야 하겠지만. 현재 귀족들 사이에서 그 혈육이란 자가 지금까지 뭘 하고 있었냐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


"레나시아가 올해로 9살이니... 일국의 왕을 맡기에는 아직 너무 어리군."

"허나 시트러스의 혼란을 마냥 지켜볼 수만은 없는 노릇입니다. 마침 섭정으로 걸맞는 자가 통치하고 있으니. 그자를 재상으로 삼는다면 왕권은 몰라도 나라는 안정될 것이니 하루라도 빨리 교육을 마치고 북송하는 것이 낫겠지요."

"흠..."


북송이란 말의 어감이 조금 거시기하긴 해도 현재로서는 그것 말고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무리 재상이 북에 가있다 한들 켈러가 직접 지령을 내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서 빨리 터널이 개통되어야 무력시위를 하든 평화적 교류를 하든 할 것 아닌가.


그러나 그 터널 공사라는 것이 함흥차사인 지금 아델라이데가 남의 나라 왕위 계승에 끼어들 여지는 많지 않았고. 그것은 곧 시트러스의 혼란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시트러스의 혼란이 가중되면 터널을 뚫어보았자 다시 아델라이데는 고립되고 만다. 우리는 수백년의 시간동안 갇혀 지내면서 발전하지 못하고 답보 상태만을 걸었으니. 북으로 향하는 관문이라 할 수 있는 시트러스의 혼란이 계속되면 북부와의 교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아델라이데 대평원이 발전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가. 강력한 통일 정부가 없어서? 물이 부족해서? 둘 다 반절만 맞는 정답이었다.


진정한 답은 개혁과 발전을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북부에서는 세 나라가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면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기술,문화,제도 등이 끊임없이 발전하였으나 어설프게나마 자력 갱생에 성공한 대평원의 도시 국가들은 형편없는 인구수와 절대적인 생산력 부족에 허덕이며 정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결과 북에서는 나라 하나가 수천만에 이르는 백성들을 거느리는데 이 아델라이데는 77만km²라는 거대한 면적을 통치함에도 겨우 700만이라는 적은 인구에 불과하지 않은가.


"교류가 활성화되면 들어오는 것이 어찌 문화나 물자뿐이겠는가. 사람들도 들어오겠지. 시트러스인, 매그놀리아인, 단델라이언인 등등... 그들을 받아들여 최소한 1000만명의 인구를 갖추는 것이 짐이 해내야 할 과업이다."


당장 지구에서 중국이 14억이나 되는 인구로 국제 사회의 큰손으로 군림하는 것이 아니다. 인구는 곧 경제력이란 말은 곧 절대적인 소비량과 생산량이 늘어난다는 뜻 제아무리 기술이 발전하고 제도가 혁신된들 적게는 수백만에서 많게는 수천만에 달하는 인구 차를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허나 그렇게 된다면 필시 백성들 사이에 다툼이 생길 것입니다."

"그럼 천일전쟁에서 짐의 위업을 알려주면 되겠군."

"..."


폴 공작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원래 인간이야 치고박고 싸우면서도 생존의 위기 속에서는 다같이 협동하는 동물 아니던가. 국왕의 혜안대로 북부의 이민자들이 종족 보호의 본능을 발휘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폴 공작이었다.


*


국왕과의 면담이 끝난 후. 폴 공작은 레나시아의 방으로 가 그녀에게 곧 시트러스로 가게 될 것임을 알렸다.


"저.. 정말이에요? 제가 시트러스로 간다고요?"

"그렇습니다 공주님. 시트러스 말을 까먹으시진 않으셨죠?"

"물론이죠! 제 고향 말을 어떻게 까먹겠어요?"


폴 공작은 밝그랗게 상기된 레나시아의 볼을 어루만지며 쓰게 웃었다. 아직 이렇게 어린 소녀를 피바람이 휘몰아치는 정계에 내보내야 한다니. 위정자 이전에 인간으로서 할 짓이 못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공주님.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합니다. 엘베레스 섭정이 공주님을 잘 보필하겠지만... 시트러스의 상황이 그렇게 좋지가 않습니다.. 남부 난민들은 넘쳐나고. 나라의 경제는 반쯤 죽어가고 있고... 귀족들의 시선도 싸늘합니다."

"이미 들어서 알고 있어요. 걱정 마세요. 잘 해낼 수 있어요. 제가 가지 않으면 더 나빠지는 거잖아요."

"아이고 공주님..."


폴 공작은 이미 늙은 얼굴을 우그러트리면서 레나시아를 덥석 안았다. 저리도 당차게 말하는데 어떻게 이 늙은 공작이 그녀의 앞길을 막을 수 있겠는가.


"공주님의 뜻이 그러하다면 이 노신이 막을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아직 공주님이 시트러스로 가기 전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습니다. 적어도 1년 정도는 말이지요."

"...네?"

"1년 동안 제가 알려드릴 수 있는 것은 모조리 다 가르치도록 하겠습니다. 공주님. 앞으로 하루에 16시간씩 공부하는 겁니다."

"네?"

"일국의 왕이 되려면 솔직히 이것도 부족하겠지만... 아무쪼록 최선을 다해주십시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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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금의환향(3) 21.05.03 38 0 12쪽
73 금의환향(2) 21.04.20 42 1 12쪽
72 금의환향(1) 21.04.19 96 1 12쪽
71 옛 계약(2) 21.04.13 41 1 12쪽
70 옛 계약(1) 21.04.12 74 1 12쪽
69 혈육(2) 21.04.06 89 1 12쪽
» 혈육(1) 21.04.05 51 1 12쪽
67 남에서 온 손님(1) 21.03.23 52 1 14쪽
66 북에서 온 손님(1) 21.03.22 45 1 12쪽
65 하나의 깃발 아래에서(4) 21.03.16 55 1 12쪽
64 하나의 깃발 아래에서(3) 21.03.15 67 1 12쪽
63 하나의 깃발 아래에서(2) 21.03.09 63 2 12쪽
62 하나의 깃발 아래에서(1) 21.03.08 55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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