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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범 님의 서재입니다.

지옥불 난이도의 이세계 생존기.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지니범
작품등록일 :
2020.07.30 01:13
최근연재일 :
2021.06.30 06:00
연재수 :
8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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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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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65,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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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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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하나의 깃발 아래에서(1)

DUMMY

"....."

"....."

"....."


기묘한 침묵만이 바르카스의 왕성을 휘감고 있었다. 왕성 바깥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아델라이데의 군기가 그 침묵의 이유를 살벌하게 대신하고 있었고. 대신들은 가끔씩 입만 달싹거릴 뿐이었다.


쌍둥이 요새의 함락과 그에 따른 아델라이데 군의 포위는 바르카스의 40만 백성들에게 있어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것이었고. 포위 후 1달이 지난 지금에서는 바르카스의 백성들은 생필품의 부족과 함께 언제 닥칠지 모를 아델라이데의 침공을 두려워해야만 했다.


"어째서 다들 말이 없는 것이냐? 뭔가 대책을 내어야 할 것 아닌가 대책을!"

"소..송구하옵니다 폐하.."


답답함을 참지 못한 무마트 3세가 옥좌를 내려치며 신하들을 다그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무언가 대책을 내려 해도 자금줄과 군대는 이미 메말라 바닥을 드러냈고. 추가 증세와 징병을 하려 했다가는 불만에 찬 백성들이 폭동을 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아직. 아직 하나의 해답이 남아있었다.


"폐하.."

"오! 그래. 재상이라면 뭔가 대책을 내놓을 수 있겠지! 어서 말해보라!"


재상은 엎드린 채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도 자신이 하려는 말이 한 나를 완전히 끝장내자고 한 나라의 주인에게 간청하는 일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폐하...."


그러나 과연 재상의 자리에 오른 자라는 것일까, 재상은 울먹이는 얼굴을 들어 왕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항복을... 하셔야 할 줄 아뢰옵나이다."

"항복..! 짐에게... 항복을 하란 것인가..! 항복을 하란 말인가!"

"마음이 찢어지고 가슴이 미어지지만... 그렇사옵니다 폐하! 항복한다면 나라를 잃을 것이나. 항복하지 않는다면 백성들을 잃게 되실 겁니다!"

"어찌 재상이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는가? 400년의 역사를 가진 이 바르카스를 어찌 20살도 되지 않는 어린 군주에게 바치자는 소리를 한단 말이냐!"

"저희에게는 더 이상 남은 군대가 없기 때문입니다!"


털썩!


흥분해 자리에서 일어났던 무마트 3세가 다시 옥좌에 앉았다. 결국 이렇게 되는 것이다. 협상국을 만들고 2년이나 넘게 전쟁을 벌였거늘. 결국엔 패배하고 말았다.


"대체 왜냐?"


그리고 최후에는 순수한 의문만이 남았다.


"우리는.. 바르카스는.. 협상국은... 저 작은 도시국가 하나 이기지 못한 머저리였단 말인가? 수백년을 이어져 왔음에도 결국에는 자리잡은지 100년도 지나지 않은 신생국에게 무력하게 패배하는 것이... 정녕 우리의 끝이란 말인가?"


무마트 3세는 소리죽여 울었다. 군주의 눈물이란 경멸시되는 것이었지만. 망국의 군주의 눈물을 그 누가 비난할 수 있단 말인가.


차라리. 처음 그 오만방자한 어린 왕이 건넨 제안을 처음 받아들였더라면 이런 결말은 맞이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치욕과 굴욕은 당하더라도 멸망을 맞지는 않았을테니 말이다.


그러나 역사에 만약이라는 선택지는 없는 법이고. 군주란 자신이 선택한 결과를 받아들여만 한다.


설령 그것이. 국가의 파멸일지라도.


*


"바르카스가 항복의 의사를 전해왔습니다 폐하. 어찌 처리하시겠습니까?"

"모든 왕족을 처형해라. 방계까지도 전부. 군자금과 군납품을 댄 상인들과 현지 관료들의 삼족또한 멸할 것이다."

"허나 그리하신다면 바르카스의 백성들은 뼛속 깊이 폐하를 증오하게 될 것입니다. 왕족은 유폐로 끝내시고, 현지 관료들에게는 형식적인 충성 맹세를 받는 것이..."

"폴 공작. 지금 감히 짐의 결정에 토를 다는 것인가?"


항복의 결과는 처절했다.아니. 처절보다는 잔악이라는 말이 더 걸맞을 것이다. 감히 자신의 군대에 피해를 입힌 결과는 왕족의 핏줄을 이은 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처형이었고. 그 다음에는 전쟁에 협조한 상인들과 관료들에 대한 학살이었다.


의기양양하게 바르카스에 입성한 아델라이데의 국군은 독기에 가득찬 채 왕족들을 개처럼 묶어 대중들 앞에 내놓은 채 몽둥이로 때려죽였고. 그 다음에는 반항하는 자들의 사지를 하나씩 말에 묶어 찢어 죽였으며. 상인들과 관료들을 구덩이에 던져넣은 후 돌덩이로 찍어 눌러 죽였다.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과 친구들. 친척들은 그저 그들의 피와 가깝다는 이유로 무참하게 학살당했다. 몇몇 여성들은 정조를 버려서라도 목숨을 부지하려고 했으나 제일 먼저 그런 이들이 죽어나갔고. 그 다음에는 어린아이들의 차례였다.


너무나 어려 아직 젖조차 떼지 못한 갓난아기들을.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어린아이들을.아이들만큼은 제발 살려달라고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지는 아버지들을. 차라리 자신을 대신 죽여달라고 비는 어머니들을. 평생 동안 종살이를 해도 좋으니 목숨만 붙여달라며 무릎을 꿇은 늙은이들을. 아델라이데의 군대는 모조리 쳐부숴 개처럼 도살했다.


순식간에 한때 번성했던 도시는 지옥으로 변했고. 이윽고 고요한 유령도시로 변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죽어 과부들의 통곡소리도. 아이들의 울음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죽음의 도시에는 오직 아델라이데의 국기만이 바르카스의 가장 높은 곳에서 나부끼고 있을 뿐이었다.


또 다시 한 달이 지나고. 대악마조차도 기겁할만한 잔학의 끝에 남은 바르카스의 백성들은 고작 20만명뿐이었다.


고작 한 달. 바르카스 전 백성들의 절반을 학살하는데에 걸린 시간은 단 한 달뿐이었다.


*


바르카스의 항복과 그에 따른 참상이 아델라이데로 퍼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생지옥에서 탈출한 자들은 자신의 몸이 상하는 것조차도 잊은 채 두려움에 가득 찬 채 그저 미친듯이 하니엘과 유레인으로 향했다. 오직 살아남기 위해서.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달리고 또 달린 것이다.


그리고 완전히 탈진한 채 두 도시로 향한 그들의 대다수는 바르카스에서 일어난 대학살을 증언하고는 악화된 건강으로 인해 죽었고. 나머지는 큰 부상으로 인해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그 많은 사람들을 다 죽였단 말이야!?"

"하..항복해봤자 죽는다는 거잖아.. 미쳤어.. 아델라이데의 왕은 미친 광왕이 틀림없어!"

"그..그럼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거지?"


항복하면 죽을 것이고. 싸우면 패배할 것이다. 희망없는 이지선다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협상국의 국민들은 극심한 공포심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어차피 전쟁에서 패배할 것이 뻔하니 죽더라고 질펀하게 놀고 죽겠다는 심정으로 쾌락범죄율이 솟구치기 시작했고. 아예 도시가 포위되기 전에 다른 지역으로 탈출하려는 두려움에 빠진 난민들. 그리고 이왕 죽을 거 끝까지 싸우다 죽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자원 입대하는 자들.


국가로서 가장 환영해야 하는 것은 단연 세 번째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협상국은 군대를 늘려보았자 그다지 쓸모가 없었다. 협상국에게 필요한 것은 한 명의 병사가 아니라 한 명의 농부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런 격렬한 총력전과 절멸전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협상국은 만성적인 보급 부족에 시달렸고 어쩌다 식량 수급이 잘 되어도 그것을 최전선까지 수송할 보급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북부의 총력전과 남부의 제한전이 맞부딫칠 때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겪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보급 부족은 곧바로 전투력의 급감으로 이루어져 아델라이데 군의 승기를 가져왔고. 협상국군은 전투에서 이겨도 후속 지원의 부재로 인해 밀려드는 아델라이데 군에게 포위 섬멸당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전선을 뒤로 물려야 하는 전투에서는 이기지만 전쟁에서는 지고 있는 형국에 빠져버렸다.


물론 보급으로만 따지자면 보급선의 길이가 거의 수로의 길이와 엇비슷한 아델라이데도 결코 사정이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탄약과 무기, 그리고 식료품을 최우선으로 보급하고 기타 잡다한 것들을 가장 나중에 보내는 식으로 보급선의 부담을 줄이는 데에 성공했고. 바르카스를 점령한 뒤에는 바르카스를 중간 기착지 삼아 더 많은 양의 보급품을 더 빠른 시간 내에 전선에 댈 수 있게 되면서 아델라이데 국군과 협상국군의 차이는 좀 더 벌어졌다.


"이제 얼마 안 가서 이 전쟁도 끝나겠구만. 이번 여름 안에 유레인과 하니엘을 점령해 보이겠어."


세르누엘라 백작의 희망찬 포부와 같이. 이 전쟁에서 협상국군은 완전한 패배를 겪었다. 바르카스가 함락되어 협상국의 허리가 끊어진 것은 유기적인 연략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협상국군이 사실상 두 군대로 나뉘는 결과를 초래했고. 잔혹한 학살 정책이 불러온 극단적인 공포심으로 인한 사회의 마비는 덤이었다.


어느덧 전쟁 시작 후 2년이 지난 후 여름이 시작되어 낮이 길어지기 시작될 때. 아델라이데는 아직도 20만이 넘는 군대를 지니고 있었고. 협상국군은 싸그리 긁어봐야 고작 5만명에 불과한 군대를 지니고 있었다.


100만명이 넘는 협상국의 시민들은 갈가리 찢어져 도시를 빠져나가고 있고. 협상국은 더 이상 사회의 붕괴를 막을 경찰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아델라이데의 깃발을 볼 때마다 협상국군은 이를 악물고 맞서 싸웠지만 결코 이길 수 없었고. 협상국은 밀리고 밀려 결국 유레인과 하니엘 본토까지 아델라이데 군이 밀려들어왔다.


성문 바깥을 빼곡히 매운 아델라이데의 군세를 보고 협상국군은 무엇을 느꼈을까. 공포인가. 수치인가. 그것도 아니면 분노와 증오인가.


그들이 무엇을 느끼는지. 혹은 느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산 자는 곧 죽게 될 것이니까.


삐이이익-!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공성전이 시작되었고. 모든 것을 끝낼 마지막 전투가 시작되었다. 화살과 총탄이 빗발치고. 철퇴와 검이 뼈를 조각내며. 함성과 비명이 병사들의 마음을 헤집고 들어갔다.


화살이 떨어지면 투석으로 대응했고. 던질 돌마저 떨어지자 주먹과 단검으로 맞섰다. 머스킷을 거꾸로 들어서 개머리판으로 얼굴을 내려치고. 폼멜로 관자놀이를 내려찍는다. 전열도. 명령도. 진법도 존재하지 않는 아비규환의 백병전이 성벽을 따라 끊임없이 이어졌고. 죽음도 계속해서 퍼져나갔다.


"죽어라!"

"카악!"

"네가 죽어야.... 우리가 살아!"


꽈아아아악!


아델라이데 병사 하나를 짓누른 채 단검을 찍어내리는 협상국군이 내뱉은 말은 이 전쟁의 모든 것을 꿰뚫는 말이었다. 그들은 모두 혈기왕성한 청년들이었고. 그렇기에 이 전쟁의 장기말이 될 수 있었다.


전쟁이 아니었더라면 어쩌면 모두 친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예술가. 누군가는 미술가. 혹은 대장장이가 되었을지도 모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막 소년의 티를 벗고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너무나 무거운 철검을 들고 다른 청년들에게 그것을 들이밀 수밖에 없었다. 적응하지 못한 자들은 가장 먼저 죽어나갔고. 적응한 자들은 모자를 바꿔스며 한 때 동료였던 자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있었다.


전투의 열기도 어느덧 식어가고 있었다. 최후의 최후까지 저항한 협상국군의 독기도 점점 늘어나는 상처에 압도당했고. 부서진 검을 든 손에는 점점 힘이 빠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땅에 쓰러진 병사들은 마지막으로 눈이 감기기 전에 푸른 하늘을 바라았다. 자신들이 죽어도 하늘은 푸르다. 그 사실이 이렇게나 미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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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옛 계약(2) 21.04.13 41 1 12쪽
70 옛 계약(1) 21.04.12 74 1 12쪽
69 혈육(2) 21.04.06 89 1 12쪽
68 혈육(1) 21.04.05 50 1 12쪽
67 남에서 온 손님(1) 21.03.23 52 1 14쪽
66 북에서 온 손님(1) 21.03.22 4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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