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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범 님의 서재입니다.

지옥불 난이도의 이세계 생존기.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지니범
작품등록일 :
2020.07.30 01:13
최근연재일 :
2021.06.30 06:00
연재수 :
8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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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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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
글자수 :
465,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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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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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나약함에서 강대함으로(5)

DUMMY

"얼마지?"

"금화로 해서 200장은 될 겁니다."

"일시불이다, 저기에 내려놓도록."


참으로 호쾌하기 그지없는 지불이 끝나자, 레스테른 상단의 하인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엄청난 양의 서적들을 바닥에다 내려놓았다. 어찌나 무거운지 책을 하나 내려놓을 때마다 흙먼지가 휘날릴 정도였는데, 다른 상인들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그 광경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자신들은 마차 서스펜션이 부러질 정도로 많은 물품들을 가져왔는데, 관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은 그런 것에는 관심조차 없다는 듯 책들만 사들이고 있지 않은가.


"대체 뭐지? 뭐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지?"

"....혹시 야설이 아닐까?"

"저게 다 야설이라고?"

"아니면 저렇게 사들일 이유가 없을텐데..."


몇몇 상인들은 의구심을 품고 레스테른 상단이 가져온 무식한 양의 책이 '남자와 여자,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가 보통 침대 위에서 서로 상호작용하는 것을 통칭하는 문학'으로 가득찬 것이 아닌가 진지하게 생각하였을 정도였다.


"오! 우리쪽으로 온다! 빨랑 호객 준비해!"


그래도 관원들이 완전히 책에만 정신이 팔린 것은 아닌지, 책을 전부 옮겨싣고 나서는 다른 상단들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자네들은 무엇을 가져왔지?"

"저희들은 시트러스의 작물들을 가져왔습니다."

"호오? 작물들이라? 어디 한 번 보여줄 수 있겠나?"

"물론입죠! 준비해라 얘들아!"


시트러스의 상인들은 아델라이데는 남부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말인즉슨 평범하게 목재나 석재, 혹은 금속같은 것들을 팔아봤자 이윤이 잘 나지 않는다는 것을 뜻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상인들이 머리를 맞댄 것이 바로 북부의 다양한 작물들이었다, 주식 작물 외에는 기껏해야 후추 정도를 제외하면 완전히 절멸했다고 보아도 무방한 향신료나 부식용 작물들은, 지금까지 빈곤하기 그지없던 아델라이데의 식당과 식단에 무궁한 발전을 이끌 원동력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이건 '사탕무'라는 겁니다, 사탕수수와 비슷하게 단 맛이 나는데, 사탕수수를 재배하기 어려운 추운 지역에도 잘 자라는 효자 식물이죠, 아델라이데의 토지에서도 분명 잘 자랄 겁니다."

"호오.. 단 맛이 난단 말인가? 확실히 유용하겠군."

"거기에 이건 '육두구'라는 향신료인데, 설사를 멈추게하고 소화를 돕는 효능이 있답니다. 열매 안의 흑갈색 씨앗을 갈아서 만든 향신료지요."

"오오... 설사를 치료할 수 있는 향신료라.. 이건 상당히 귀한 물건이로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이건 '아보카도'라는 과일인데, 부드럽고 고소한데다 의외로 짠 맛도 난답니다. 생으로 먹어도 괜찮고 샐러드나 과카몰리.. 아. 이건 아보카도로 만드는 드레싱같은 겁니다. 게다가 복무 비만이 있는 사람이 이걸 먹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다이어트를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

"좋군! 자네가 가져온 종자들을 모두 사들이도록 하겠네! 얼마인가?"

"더도 덜도 말고 딱 금화 300장만 주시면 됩니다!"

"여기 있네, 종자들은 저기 있는 내 부하들에게 건네게나."

"예이! 감사합니다!"


상인 한 명이 묵직한 금화주머니를 들고 하핫거리며 웃었다. 북부와는 다르게 남부인 아델라이데의 관원들은 북부의 관원들과는 달리 애를 써가며 흥정할 생각도 않고 선제시한 그대로 거금을 쥐어주었으니 괜히 입씨름할 필요도 없어 정말로 거래할 맛이 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거래 하나가 끝나고, 다른 상단들도 차례대로 자신의 차례를 받아 가져온 상품들을 팔기 시작했다. 몇몇 상단은 지난 상단과 같이 짭짤한 수익을 올렸지만, 대부분의 상단은 얼굴을 찌푸린 채 손익계산에 열중하였으며, 나머지 몇몇 상단의 상인들은 풀이 죽은 채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캐러밴의 물품들을 원망스럽게 쳐다보았다.


"관리관 님. 이제 민간 상인들을 들여보낼 시간입니다."

"아, 그래. 문을 열고 상인들을 들여보내도록."


끼익! 차르르르륵!


시트러스의 상단과 아델라이데 상인들을 가로막던 철문이 열리고, 아델라이데의 상인들은 시트러스에서 가져온 것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가져가겠다는 일념을 보이며 득달같이 시트러스의 캐러밴에 달려들었다.


물론 그래보았자 각자 가지고 있던 자본금이 미약하던 탓에 시트러스에서도 최고가로 쳐주는 공예품들은 사지 못했지만, 그래도 아델라이데의 상인들은 나름대로 만족하며 각자 구매한 물품들을 마차에 싣고 유유히 돌아갔다.


*


"레스테른 상단이 가져온 서적들은 어떠한가?"

"대부분이 시트러스의 문자로 적혀 있어 연구자들이 난색을 표하고는 있사옵니다만. 과연 북왕국들이 우리보다 발전한 것은 사실이라면서 극찬을 했사옵니다. 해독이 완료되고 서적에 적힌 지식들이 상용화된다면 왕국은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하다면 만족스러운 결과로다. 참. 전에 그대가 하였던 지방의 조병창 건설 건은 잘 되어가고 있는가?"

"아, 마침 보고를 드리려 했는데 잘 되었습니다. 대체적으로는 순조롭게 잘 되어가고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보안 문제도 있고 자재 수급의 문제도 있고 해서 예상보다는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그대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런 것이겠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일에 신중을 기하라, 조병창은 군대를 유지하는 데 빠져선 안 될 귀중한 재산이니 실수로 손실되었다간 대업을 그르칠 수 있음이야."

"폐하의 말을 각골명심하겠나이다."


아델라이데의 현재 상태는 평화로웠다. 140만명을 쳐죽였으니 평화롭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겠지만, 어찌되었건 강력한 왕권을 행사하는 라이투스 폰 켈러와 총명한 세르누엘라 재상의 콜라보에 힘을 입어 아델라이데는 지금껏 맛보지 못했던 성세를 구가하고 있었다.


의식주가 해결되면서 출산율은 급증했고, 유아 사망률 또한 내려간 탓에 전국적으로 인구가 폭증하고 있고, 그에 맞춰 사회간접자본(소위 '인프라'라 부르는 그것)의 확충또한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네크로틱과 그린스킨, 그리고 기타 잡다한 몬스터들에 의해 고통받았던 민중은 흔히들 '국왕의 철권(king's ironfist)로 불리는 중앙군에 의해 몬스터들이 신속히 토벌되자 입을 모아 '국왕 폐하 만세!'를 외쳤고, 그 결과 대평원의 역사상 모험가들의 연간 사상자 수가 10만명 이하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그렇게 700만명의 사람들은 서서히 그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일자리와 더 나은 잠자리, 더 맛있는 음식들과 더 많은 돈을 찾아 하늘산과 16개의 도시들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대평원의 곳곳에 점점히 박힌 16개의 도시들은 마치 북왕국들의 대도시들이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이 모여 점점 많은 건물들이 지어지고 시장이 만들어졌으며, 천일전쟁 당시 사실상 왕국의 모든 것이었던 하늘산은 수도라는 상징성 덕분인지 16개의 도시들에 몰린 사람들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오오... 여기가 하늘산인가! 과연 듣던 대로 폭포수가 끊임없이 흐르고 있군! 정말이지 아름다운 광경이야..."

"이봐, 여기 온 목적은 잊지 말라고. 팔 건 판 뒤에 여관에서 뒹굴어도 늦지 않아."


그리고 국토 전체를 대상으로 깔린 길들은 보부상과 용병들. 그리고 모험가들에게 있어 큰 도움이 되어주었고 도로를 통해 다른 도시와 마을들을 여행하는 자들은 자신들이 본 광경을 여관에서 과감없이 이야기해 다른 사람들에게 도시가 얼마나 거대한 마을인지, 하늘산이 왜 아델라이데의 도시 중의 으뜸인지 말해주었다.


"세상에 궁성이 엄청나게 높이 있어서 거의 구름과 맞닿을 정도라니까? 게다가 그 궁성이 올라가 있는 산에서는 폭포수가 콸콸 쏟아져나오지... 그 아래? 말도 마! 완전 별천지라니까. 이런 시골 마을에서는 볼 수도 볼 일도 없는 기이한 물건들이 넘쳐난다고!"


라거 한 잔을 곁들이자 말은 술술 나오고, 오랜 기간 여행을 계속해온 방랑자들의 입담에 순박한 시골 청년들이 꼬여들지 않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여느 때나 마찬가지로 젊은이들은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 자신을 증명하기를 원했고, 그 기회를 잡기 위해서라면 오랫동안 배워왔던 농삿일 정도는 기꺼이 포기할 수 있었다.


예전이라면 모를까, 강력한 통일 정권이 그들을 수호하고 있는 이상 인생의 초입에 들어선 그들은 자신의 돈이 허락하는 한 마음껏 사치를 부릴 수 있었고, 그들의 능력이 허락하는 한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물론 대부분은 도시의 최하층 노동자로 전락하겠지만, 어차피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 않는가.


*


"위령제?"

"예, 폐하..."

"무엇에 대한 위령제지? 이미 천일전쟁의 종전 후에 국가적으로 위령제를 지냈을 터인데?"

"그것이... 폐하께서 주살하신 140만명에 대한 위령제를 지내고 싶다는 청이 들어왔습니다."


그 단어, 그 단어가 나오자 일순간 회의장이 싸하게 얼어붙었다. 아델라이데에서 140만이라는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 140만명을 추모하는 위령제를 지내고 싶다는 청이 얼마나 민감한지에 대해 모르는 무지렁이가 그런 청을 넣은 것이 분명했다.


"그런 반역자들에게 어찌 영혼의 안식을 준단 말입니까? 당장 요청을 기각하고 청을 올린 자를 반역죄로 잡아들여야 합니다!"

"그 말이 맞습니다! 감히 국왕 폐하의 원대한 계획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익한 피를 흘려 대평원의 통일을 늦춘 백해무익한 자들을 위해 위령제를 지내자니요?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16명의 도시 위원장 겸 국무회의원은 천일전쟁시기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중견국 출신 군주들인만큼 위령제를 지내고 싶다는 요청에 대해 거의 발작을 일으킬 정도였다. 그들에게 있어 협상국이란 두번 다시 입에 담고 싶지 않은 불손한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저 또한.. 위령제에 대한 것은 기각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하는 위령제를 막지 않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저 또한 폴 대성주님의 의견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


12명의 대성주들 또한 부정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시트러스 시기부터 국왕을 호종해왔던 원로들로서, 만약 위령제를 허가한다면 그것은 국가의 최고존엄인 켈러 왕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대체 어떤 자입니까?! 당장이라도 잡아들여야 합니다!"

"맞습니다! 지금 당장 추격대를 보내 잡아들입시다! 재상 각하! 대체 누구입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제안을 꺼낸 역적들은!"

"그것이...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세르누엘라 재상이 땀을 닦으며 수북히 쌓인 편지들을 의원들에게 보여주었다.


"이...이건?"

"도저히 사람이 썼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정갈한 글씨체... 그렇다면 금속 활자인가?"

"신문사가 이런 짓을 저질렀단 말입니까?"

"아냐...! 뭔가 다릅니다! 활자인 것은 분명하지만 글자와 글자 사이가 부자연스럽게 떨어져 있거나 일자로 정렬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활자는 있지만 인쇄기가 없어 사람의 손으로 활자를 찍은 걸 겁니다."

"허어! 그렇다면 대체 누가...!"


상식적으로 활자가 있다면 그것을 기계에 넣고 찍어내면 될 것이지, 일일히 손으로 눌러 찍어서 삐뚤빼뚤하게 글자를 새기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이 '위령제'에 대한 청은 개인, 혹은 조직에 의해 면밀하게 조직된 행위라는 뜻.


의원들의 경악과 함께, 국무회의는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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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금의환향(3) 21.05.03 38 0 12쪽
73 금의환향(2) 21.04.20 42 1 12쪽
72 금의환향(1) 21.04.19 95 1 12쪽
71 옛 계약(2) 21.04.13 41 1 12쪽
70 옛 계약(1) 21.04.12 74 1 12쪽
69 혈육(2) 21.04.06 89 1 12쪽
68 혈육(1) 21.04.05 50 1 12쪽
67 남에서 온 손님(1) 21.03.23 52 1 14쪽
66 북에서 온 손님(1) 21.03.22 44 1 12쪽
65 하나의 깃발 아래에서(4) 21.03.16 5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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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하나의 깃발 아래에서(2) 21.03.09 63 2 12쪽
62 하나의 깃발 아래에서(1) 21.03.08 55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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