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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범 님의 서재입니다.

지옥불 난이도의 이세계 생존기.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지니범
작품등록일 :
2020.07.30 01:13
최근연재일 :
2021.06.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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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
글자수 :
465,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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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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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약함에서 강대함으로(4)

DUMMY

날이 밝고, 라우란스 백작은 레스테른 상단주를 찾아갔다. 이름을 밝히니 호위들은 편히 이야기하라며 물러났고, 상단주는 기쁜 얼굴을 감추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백작을 맞이하였다.


"나를 보자고 한 이유가 무엇인가?"

"일단 앉으시지요 각하,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자리에 앉자, 상단주는 손깍지를 낀 후 백작에게 말했다.


"각하, 저희 상단주의 후원자가 되어주시지 않겠습니까?"

"후원자라? 내가 말인가?"


귀족들이 상단의 후원자가 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아예 가문 내에서 상단을 만드는 귀족들도 있었으니 오죽할까, 그러나 라우란스 백작이 의문을 품는 것은 어째서 하필 자신을 후원자로 삼고 싶어하느냔 것이다.


최근 백작의 행보가 남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기는 해도, 왕국 내에는 아직 명망있는 귀족들이 많았다. 라우란스 백작가보다 작위도 높고, 명성도 드높으며, 무엇보다 재력이 압도적인 대귀족들을 다 제쳐놓고 하필이면 그에게 후원을 부탁하는 이유가 대관절 무엇이란 말인가.


"예, 백작 각하의 후원을 등에 업는다면 저희 상단은 더욱 성장할 수 있을 겁니다. 솔직하게 말해 요즈음 저희 상단의 상황이 영 좋지가 못합니다. 기껏 창고를 지어놓았는데 남부 전란에 휘말려 전부 불타버리고.. 그것 때문에 계약도 대부분 깨져버려서 위약금을 버느라 정신이 없답니다."

"그래서 내 후원이 필요하다..?"

"염치 불구하고 부탁드리겠습니다 각하. 적어도 귀족의 후원을 얻는다면 극성을 부리는 채권자들도 조금은 가라앉힐 수 있지 않겠습니까?"


백작의 눈이 가늘어졌다. 요새는 흔한 상단이 망해가는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는 상단에 굳이 후원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데다가, 자신이 레스테른 상단을 후원한다고 한들 금전적인 지원도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터인데...


"상단주, 자네의 말은 이 나에게 상단의 보증을 서달라는 말이 아닌가."

"그건....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맹세하겠습니다. 저희 상단은 그 무슨 일이 있어도 백작 각하께 폐가 될 일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거야 후원자가 된다면 당연한 일일 터이고.. 위약금이 구체적으로 얼마나 되는가?"

".....금화 40만장 정도..."

"40만. 그것도 전부 금화라면 확실히 껌값은 아니군. 지금 돈이 들어오는 구석은 있나?"


금화로 40만장이라면 수도에서도 노른자위 땅을 구매해서 큼지막한 장원을 세울 수 있을만한 금액이다. 확실히 그 정도 금액이 눈코뜰 새에 증발해버린 채권자들이 눈이 돌아갈만 했다.


"돈이 들어오고는 있습니다. 들어오는 족족 이자 변제로 나가서 수익성은 제로라는 것이 문제지만..."

"흐음... 한 마디로 빗방울은 떨어지고 있는데 정작 땅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없는 꼴이로군. 그렇다면 사실상 돈줄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나."


상단주는 뭐라 반론을 취하지 못했다. 그도 안다. 지금 상단의 형편은 영 좋지 않은 것을 넘어 상단이 망할 때까지 이자만 갚고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뜻밖에도, 라우란스 백작은 후원자를 자처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도와줄 수 없는 것은 아니지, 내가 말하는 조건들을 성실히 이행한다는 조건 하에, 후원자가 되어주도록 하겠네."

"저..정말이십니까?"

"정말이고 말고. 일단 내가 거는 조건은 3가지일세."


라우란스 백작은 세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첫번째는 자신에게 상단의 지분 절반. 그러니까 50%를 달라는 것, 두번째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아델라이데와의 교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 세번째는 앞으로 상단의 운영에 관해 전적으로 백작의 의견에 따를 것.


"어떤가. 이행할 수 있겠나?"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흙탕물이 문제겠습니까? 전부 받아들이겠습니다. 저희 상단을 좀 구해주십시오."

"좋아. 그럼 이 시간부로 우리는 계약을 맺은 걸세."


*


라우란스 백작이 상단의 지분과 운영권을 가져온 것은 당연히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그는 아델라이데 국왕의 사위였기에, 아델라이데와의 교역에 있어 유무형의 어드밴티지를 받는 것은 누구도 비난하거나 비판할 수 없을 터였다.


장인어른이 사위를 챙긴다는데 누가 비난할 수 있겠는가.


백작은 국왕에게 보낼 편지를 쓴 다음 온갖 고생 끝에 상단 입찰권을 따낸 레스테른 상단에게 말해 사치품이나 공예품이 아니라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서적을 중심으로 물건을 준비하라 일렀다.


"기술 서적 말씀입니까? 그런 건 구하기가 어려운데..."

"생각해보게나, 아델라이데는 신생국이네. 우리보다 수백년간 뒤쳐져 있다는 것은 곧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을 뜻하지. 아마도 다른 상단들도 곧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할 것일세. 우리가 선점하는 것이 낫지 않겠나?"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군요. 알겠습니다. 조합에 연락을 넣어 보겠습니다."


사실 아델라이데의 기술력은 켈러 국왕이 데려온 북쪽 출신 기술자들로 인해 딱히 뒤떨어지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전쟁에 쓰이는 야금술(철 같은 금속들을 만들고 가공하는 기술)이나 화학 분야에 그쳤지, 실제 실생활에 쓰이는 건축술이나 농법 같은 경우에는 북왕국들의 그것에 한참이나 뒤떨어져 있었다.


고립되어 있는 도시 국가들 특성상 당장 한 해 농사를 망치면 전부 굶어죽어야 했으니, 도박이나 다름없는 농법의 향상을 극히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백작은 농서나 건축 공법같은 아델라이데에게 꼭 필요한 기술 서적을 기준으로 마차에 실으라 일렀고, 선택권을 박탈당한 상단의 인원들은 백작이 이르는 대로 닥치는 대로 책을 수집해 캐러밴에 싣기 시작했다.


"나는 이제 그만 가보겠네."

"어디로 가십니까? 배웅해드리겠습니다."

"아니, 괜찮네. 대사관으로 갈 생각이라 말이야."

"대사관...말씀이십니까?"

"그래. 보내야 할 편지가 있거든."


*


"그래서 이걸 국왕 폐하께 전달하려 하신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만."

"원래 이런 업무는 대사관의 업무가 아니지만... 알겠습니다. 폐하께 이 편지를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보통 편지는 우편함에 넣어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겠지만, 아델라이데 같은 폐쇄적인 국가에 보내려면 다소 엉뚱한 방법을 사용해야 하는 법이다. 다행스럽게도 라우란스 백작은 국왕의 사위였기에 이런 방법을 이용할 수 있었지만, 다른 자들은 이런 요행을 바랄 수 없을 것이다.


대사관을 나온 백작은 콧노래를 부르며 남부에 위치한 자신의 별장으로 돌아갔다. 만약 아델라이데의 국왕이 자신이 보낸 제안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돈 방석에 앉는 것은 시간 문제나 다름없었다.


*


"그래, 이걸 라우란스 백작이 보냈단 말이더냐?"

"예, 폐하."

"거참 당돌한지고... 일개 백작이 국왕에게 청탁을, 그것고 외국의 국왕에게 편지를 보내는 일은 좀처럼 없을 터인데..."


켈러 왕은 흥미로워하며 편지의 내용을 읽었다. 긴 글이었지만. 중요한 내용만 추려 말하자면 아델라이데의 기초 과학 수준이 떨어지는 것을 알고 있으니 상행을 통해 기술을 판매하되, 과학 기술에 관련된 사람들이나 서적, 기타 등등을 거래할 수 있는 권한을 오직 레스테른 상단에게만 달라는 글이었다.


"재상은 어찌 생각하는가?"

"라우란스 백작이 묘수를 내었군요. 그가 이끄는 상단에게 기술과 과학에 대한 독점적 권한을 준다면 우리 왕국으로서는 북왕국들의 간섭을 최소화할 수 있고, 백작은 돈 방석에 앉게 되겠지요,


외부에서 개입하려 해도 라우란스 백작과 폐하는 장인과 사위 관계이니 섣불리 개입하게 된다면 역으로 우리가 압박을 넣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이 제안을 받아들이자는 건가."

"그렇습니다. 아델라이데로서는 전혀 나쁠 것이 없는 제안입니다. 총과 대포는 만들 수 있으면서 고층건물은 만들지 못하는 이 불균형을 이제 깨부술 때도 되었지요."

"그대의 말이 옳다. 백작에게 서신을 보내거라.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하겠다."

"예, 폐하!"


아델라이데에게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은 북왕국과 아무런 조건을 걸지 않고 경쟁할 때 밀리지 않을 만한 내실이었다, 물론 근본적인 국력이 켈러 국왕의 치세 대에 시트러스에 비빌 정도로 성장할 수는 없겠지만, 그 내실을 다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왕으로서의 책임이었다.


아델라이데는 아직 갈 길이 멀고, 더 수준 높은 문명국에게서 야금야금 훔쳐 배우는 것은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국왕은 라우란스 백작의 의견에 따라 시트러스의 기술들을 수입할 채비를 갖추라 재상에게 명령했고, 재상은 국왕의 명령을 받들어 터널의 끝자락에서 대기하고 있는 부하들에게 레스테른 상단 이외에는 모든 서적들을 받아들이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


"재상 각하, 그렇다면 민간인들이 사가는 서적들은 어떻게 합니까?"

"모두 압수하라, 불만이 나온다면 왕명이 내려졌다고 말하면 될 것이야."

"아... 알겠습니다."


부하들은 왕명이라는 두 글자에 사시나무가 떨리는 것마냥 몸을 떨었다, 대부분의 아델라이데인들에게 국왕은 같은 인간이 아닌 무언가 초월적인 존재라고 인식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그럴만한 위업을 세우기도 했거니와 무엇보다 140만명을 참살해버린 국왕의 명을 그 누가 거역할 수 있겠는가?


"이건 우리나라의 미래가 달린 일이다, 한 치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돼, 우리가 레스테른 상단과 독점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은 당분간 시트러스 측에 알려지면 아니 된다, 만약 알려지게 된다면 귀찮은 일이 생길 수 있음이야."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부하들이 새삼(죽지 않기 위해) 각오를 다지는 모습이 퍽 좋게 보였는지, 재상은 미소를 짓고는 부하들을 해산시켰다. 이제 남은 것은 이번 달에 올 시트러스의 상행과, 캐러밴들에 실린 서적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북부의 광대한 지식들을 온전히 아델라이데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


라우란스 백작에게 대사관의 전령이 편지를 전달하자, 시간은 딱 맞아떨어져 바로 내일 상행이 출발하는 날이었다. 백작은 상단의 고위직에 앉은 자들에게 편지의 내용을 보여주며 계속해서 아델라이데에 값진 기술들을 가져다주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인식시켰다.


상단의 내부 인물들은 드디어 이자뿐만이 아닌 원금까지 갚을 수 있다는 희망에 차 백작의 계획에 찬동했고, 이제 라우란스 백작은 완벽하게 레스테른 상단을 휘어잡게 되었다.


백작의 비호 아래, 다른 상단들이 시트러스의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겠다는 듯 대량으로 보석 가공품이나 비싼 식자재들을 하나라도 더 올리려고 고군분투 하고 있을 때, 레스테른 상단은 그저 차곡 차곡 모아놓은 책들을 쌓고 흘러내리지 않게 천으로 덮은 뒤 끈으로 단단하게 묶었다.


"뭐야 저 상단은? 보석은 싣지 않고 왠 책만 이렇게 산더미같이 가져온 거야? 서점이라도 차릴 생각인가?"

"멍청한 상대와 경쟁하는 건 우리로서는 이득이지. 저들은 우리의 글자를 읽지도 못할 터인데 저렇게나 많은 책을 사가겠어?"


다른 상인들이 비웃든 말든 레스테른 상단은 꾸역꾸역 책을 실었고, 마차의 축이 비명을 지를 때쯤 상행은 드디어 아델라이데를 향해 출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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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혈육(1) 21.04.05 51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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