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지니범 님의 서재입니다.

지옥불 난이도의 이세계 생존기.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지니범
작품등록일 :
2020.07.30 01:13
최근연재일 :
2021.06.30 06:00
연재수 :
88 회
조회수 :
19,506
추천수 :
627
글자수 :
465,472

작성
21.05.24 06:00
조회
26
추천
0
글자
12쪽

나약함에서 강대함으로(3)

DUMMY

"폐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송구하옵나이다."

"...되었다. 따지고 보면 짐의 잘못도 있으니, 설마하니 시트러스인들이 그렇게 득달같이 달려들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느리라."


영혼까지 탈탈 털리고 난 뒤 푼돈만 가지고 온 아델라이데의 상단은 죽을 죄를 지었다며 재상에게 무릎을 꿇었고, 재상은 그들의 푸념을 가지고 그대로 국왕에게 사건의 자초지종을 밝혔다.


왕의 반응이 빈말로도 좋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처벌하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재상은 국왕이 실패한 자들에게 벌을 내리지 않을 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허나 이렇게 적자가 계속된다면 우리 아델라이데는 시트러스쪽에 경제적으로 종속될 위험도 있사옵니다. 뭔가 대책을 강구해야 함이 지당할 것입니다."

"재상의 말이 맞습니다, 상공업에서 우리 아델라이데는 북 3왕국을 따라갈 수 없으니, 우리 쪽에는 있으면서도 북에는 없는 상품을 찾아내거나 개발해야 하옵니다."


28명과 1명이 간언하자, 왕의 얼굴이 수심으로 물들었다. 그렇다면 대체 북에만 없고 남에만 있는 것이 무엇일까. 지금까지는 자급자족 경제였기에 별 상관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비록 자유 시장이 아니라 한들 외국과 교류하기 시작한 시점에서 경제권이 어느 쪽에 놓이냐에 따라 왕국의 흥망이 갈릴 수도 있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그냥 다시 나라 문을 걸어잠그는 것이었지만, 엄연히 국제 사회의 일원이 된 지금 자기 편한 대로 행동했다가는 신의없는 나라 & 신뢰할 수 없는 대상이라는 낙인이 찍힐 가능성이 매우 큰(사실상 확정적인) 수를 취할 수는 없는 법.


한동안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던 긴 침묵을 깬 것은, 역시나 국왕이었다.


"어쩔 수 없다. 지금으로서는 적자를 감수하는 수밖에, 손해를 거듭하다보면 언젠가는 흑자로 전환할 날이 오지 않겠느냐? 상인 그 치들도 경험이 쌓일테니 지금은 괜한 모험을 하는 것보다는 투자를 하는 것이 옳다."

"폐하의 성단이 그렇다면야 저희로서야 할 말이 없습니다."


일단 왕이 결정을 내리자 28명과 1명은 고개를 조아렸다, 사실 어쩔 수가 없던 것이, 딱히 낼 수 있던 수가 없었던 탓이다. 아델라이데가 경쟁력 있는 상품을 갖추고 있던 것도 아니었고, 시트러스를 아쉽게 만들 방도도 없었으며, 무엇보다 전체적인 국력이 현저하게 열세인 지금 괜히 시트러스를 자극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


"흐음... 뭔가 방법이 없을까.."

"무얼 그리 생각하고 계십니까?"

"아, 이번 상행에서 우리가 큰 손해를 입었지 않나. 그걸 어떻게 만회해야 할 지 생각하고 있는 중이네."

"아하, 쉽지 않은 문제로군요."


솔직히 말해서, 국왕이 말한 '투자'나 '손해'같은 낱말들을 가져다 붙이지 않으면 이번 상행은 원가조차도 건지지 못한, 차라리 안하느니만 못한 최악의 결과를 낸 실패였다. 그리고 그 근본적인 원인은 아델라이데의 백성들은 북방의 백성들과는 다르게 상업에는 도통 무지하기 때문이었다.


무지의 원인이 무엇이냐 하면, 그야 당연히 상업이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극히 미미하기 때문이다. 북방에서는 생필품이나 소모품들, 식료품들을 전부 시장에서 구매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국민들도 시장의 변동에 극히 예민하게 반응하지만 아델라이데에서는 전부 배급제로 국민들을 통제하기 때문에 시장이래봤자 가내수공업으로 만든 공예품이나 장난감, 혹은 요리같은, 요컨대 부가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상품들만이 작은 벼룩시장에서 팔리고 있을 뿐이다.


그에 반해 북방은 어떠한가. 먹을 것, 입을 것, 등 대고 누울 곳은 물론이고 멋드러지게 제련한 판금 갑옷과 수북하게 쌓인 화살들, 수많은 계약자들과 그 계약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수많은 암투들. 아델라이데가 감히 따라할 수 없는 신통방통한 재주가 시장에서 이루어지고, 경제의 큰 축을 차지하고 있다.


어른과 아이의 차이가 이런 것일까. 시트러스에서 거진 몇 개월을 살아오며 그들이 생활하는 방식이 어떤가를 지켜본 재상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우린 뒤쳐져 있네. 그것도 수백년, 어쩌면 수천년의 격차로 말이야."

"그 정도입니까?"

"과장이 섞인 거라고 얘기하고는 싶지만. 우리 상인들이 쪽도 못 쓰고 당한 것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야. 저들은 자유 시장 경제야말로 나라를 유지시키고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삼척동자도 그 사실을 알 정도로 말이야, 그에 반해 우리는 어떤가? 상인들보다 보급관들이 더 많지 않나."


아마도 140만명을 처형하지 않았다면 상인들이 더 많았을 수도 있지만 지금에 와서는 무의미한 주장이었다. 보급관이 상인들보다 더 많다는 것은 곧 관이 민에 대해 압도적인 우위에 있다는 것이며, 그 말은 곧 민간 경제가 성장하기 극히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오랜 개척과 정벌로 인해 적어도 도시와 도시 사이를 잇는 대로변에는 위협이 적은 북방에 비해, 수백년 동안 각자도생을 하느라 77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영토에 점점히 찍힌 군소 마을들과 도시들을 잇는 도로는 지금도 군대가 출동해 나서야 할 정도로 미친듯이 네크로틱과 그린스킨들이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이러한 것들은 곧 국내 경제의 위축으로 이어지며, 그것은 곧 세수의 감소로 이어진다. 세수가 감소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모두가 알고 있으므로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뭔가 수를 내야 하는데... 뭔가 방법이 없을까..."


국민들에게 시장 경제의 우월성을 선전하면서도, 정부의 권위도 지키고 들이는 자원들도 부담없이 끌어다 쓸 수 있는 묘수가 필요했다. 자고로 변혁이란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이 아닌 내부에서 일어나야 진정 국가를 위한 변혁이라 말할 수 있는 법이었으니.


*


한편, 아델라이데의 상단을 완전히 초토화시킨 남부의 상인들은 아델라이데에서 구매한 자원들을 비싼 값에 팔아넘겨 말 그대로 일확천금을 거머쥐었다. 상업에 어수룩한 대가는 상업의 대가들이 대신 치뤄준 셈이었다.


어찌되었건 그들 덕에(?) 남부의 재건은 한층 빨라졌고, 잘 쳐줘야 빈민촌 수준이었던 남부는 서서히 사람이 살만한 곳으로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시트러스의 정부도 이왕 인프라가 전부 날아가 버린 것, 기존에 성행했던 난개발을 금지하고 아예 남부 전체를 계획도시화하려 벼르고 있었으니, 참으로 오랜만에 관민의 관심사가 일치한 사례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남부에게 있어 긍정적인 소식은. 그동안 남부에 대한 지원을 미적지근하게 하던 귀족들도 서서히 남부가 재건되는 모습을 보고 너무 늦기 전에 빨대를 꼽거나 최소한 숟가락이라도 얹기 위해 경쟁적으로 지원을 보내기 시작하면서 자원을 분배하는 데에 필요한 재화가 원활하게 유통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여러분! 모두 일어나 삽과 곡괭이를 듭시다! 언제까지 우리가 과거에 파묻혀 살아야 합니까! 우린 남부인입니다! 중부와 북부 샌님들에게 촌놈이라 무시받았던 그 억척스러운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그동안 얼마나 고통스러웠습니까? 난개발로 인해 발 디딜틈도 없던 뒷골목과, 포도주를 빼면 내세울 것도 없던 특산물. 그러나 신의 시련으로 인해 우리의 도약에 올가미를 죄여왔던 세속의 굴레는 사라졌고. 이제는 정직한 노동으로 우리가 원하는 남부의 이상향을 새로 세울 귀한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자랑스러운 왕국의 신민들이자 이 땅의 주인들이여! 천막을 걷고 집을 지읍시다! 화전은 그만두고 밭을 일굽시다! 앞서 우리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당신들의 목숨을 거셨던 호국 영령들을 위하여 더 열심히 일합시다!


우리들은 늙어서 우리의 아들과 딸들에게 부흥의 책임을 지우지 않을 것입니다! 그 대신! 우리는 이 자랑스러운 남부의 기상을 가슴에 품은 채 자란 건장한 청년들과 아름다운 처녀들을 길러낼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이 남부의 사람들은 모두 목청껏 소리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자랑스러운 나의 고향이여! 아름다운 나의 겨레여! 그리운 나의 집이여! 남부의 백성 여러분! 남부를 다시 위대하게! 아니! 가장 위대하게 만듭시다!!!"


짝짝짝짝짝짝짝짝!!!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쏟아지자, 라우란스 백작은 연단에서 내려와 기다리고 있던 로렐라이에게 다가갔다.


"후우..후우.. 어땠소?"

"잘 하셨어요, 보는 저도 가슴이 뭉클해지더군요."

"흐하하! 당신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힘이 솟는구만!"


사실 라우란스 백작은 아버지가 남부인이고 어머니가 북부인인 하프였지만, 이미 연설의 뽕에 거하게 취해버린 군중들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였다. 그들의 뇌리에 박혀 있는 것은 오직 남부를 가장 위대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라우란스 백작의 기가 막힌 단어 선정뿐이었다.


그가 남부로 온 것은 아무래도 타국의 왕을 장인어른으로 모시게 된 그를 껄끄럽게 여겨 귀족들 사이에서 반쯤 경원시 된 탓이 컸다. 귀족으로서 영지를 가지고 있는 그였기에 먹고 사는 것은 문제가 없었으나. 변변찮은 인맥도 쌓지 못하고 콕 박혀 살아야 한다는 것은 백작쯤 되는 대귀족들에게는 가문의 수치나 다름없는 일.


그렇다고 다른 귀족들의 머리끄댕이를 잡고 시비를 가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좋은 일이나 하자고 아내를 데리고 무작정 남부로 달려온 것인데 이게 왠 걸. 한 나라의 국왕과 담판을 지은 담력과 언변이 과연 어디로 가지는 않았는지 생각보다 그는 걸걸하고 구수한 입담으로 남부인들의 인망을 얻는 데에 성공하였다.


당장 위의 연설도 준비와 리허설만 몇 번 한 것으로 이런 대성공을 이루어낸 것이니, 아예 이런 쪽에 재능이 있다는 것도 틀린 말만은 아니었다.


"백작 각하. 다음은 어디서 연설하실 겁니까?"

"음.. 아직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대성당에서 다음 연설을 할 것 같군. 사실 그곳이야말로 남부의 상징 아니겠나?"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럼 아랫것들에게 그리 말해놓도록 하겠습니다."


라우란스 백작 본인도 연설하는 것에 맛이 들렸는지. 아예 연설단을 꾸리고 남부의 세족들이나 현지 귀족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연설을 하며 쏠쏠한 수익을 얻을 정도였으니, 이 정도면 아예 천성이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였다.


남부로 온 것이 천운이라고 생각하는 라우란스 백작이 승승장구하는 것을 본 사람들은 기꺼이 그의 연설단에 들어갔고, 연설단의 규모가 커질수록 그들이 얻는 명성과 돈은 더욱 더 늘어났다.


그리고 그들이 마침내 대성당 앞에서의 연설도 성공적으로 끝내고 자축하고 있을 무렵, 한 상인 무리들이 라우란스 백작을 찾아왔다.


"고귀하신 분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각하. 조금만 시간을 내주실 수 있으신지요?"

"음? 자네들은 누군가?"

"소개가 늦었군요, 저희는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상인들입니다. 상단주께서 꼭 백작 각하를 만나뵙고 싶다고 하셔서.."


그들이 건넨 명함에는 레스테른 상단이라는 여섯 글자가 큼지막하게 적혀져 있었다. 레스테른 상단. 딱히 들어본 적은 없는 상단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거절하는 것도 영 그렇고, 어차피 만나서 손해될 것도 없겠다 생각한 라우란스 백작은 흔쾌히 만나겠다는 약속을 하고 그들을 돌려보냈다.




추천과 댓글은 작가가 연중할 수 없게 만드는 방법 중 가장 흔한 방법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지옥불 난이도의 이세계 생존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중 공지 21.07.08 38 0 -
공지 본 작품은 무료연재입니다. 앞으로도 유료화 계획은 없습니다. +1 21.06.25 41 0 -
공지 표지가 나왔습니다. 21.01.25 87 0 -
88 기쁜 일(3) 21.06.30 19 0 12쪽
87 기쁜 일(2) 21.06.29 15 0 12쪽
86 기쁜 일(1) 21.06.28 15 0 12쪽
85 내우외환(2) 21.06.22 14 0 12쪽
84 내우외환(1) 21.06.21 18 0 12쪽
83 아델라이데의 것(2) 21.06.08 30 0 12쪽
82 아델라이데의 것(1) 21.06.07 26 0 12쪽
81 나약함에서 강대함으로(6) 21.06.01 26 0 12쪽
80 나약함에서 강대함으로(5) 21.05.31 28 0 12쪽
79 나약함에서 강대함으로(4) 21.05.25 35 0 12쪽
» 나약함에서 강대함으로(3) 21.05.24 27 0 12쪽
77 나약함에서 강대함으로(2) 21.05.11 36 0 12쪽
76 나약함에서 강대함으로(1) 21.05.10 36 0 12쪽
75 다시 남쪽으로(1) 21.05.04 41 0 12쪽
74 금의환향(3) 21.05.03 37 0 12쪽
73 금의환향(2) 21.04.20 41 1 12쪽
72 금의환향(1) 21.04.19 95 1 12쪽
71 옛 계약(2) 21.04.13 40 1 12쪽
70 옛 계약(1) 21.04.12 73 1 12쪽
69 혈육(2) 21.04.06 88 1 12쪽
68 혈육(1) 21.04.05 50 1 12쪽
67 남에서 온 손님(1) 21.03.23 51 1 14쪽
66 북에서 온 손님(1) 21.03.22 44 1 12쪽
65 하나의 깃발 아래에서(4) 21.03.16 55 1 12쪽
64 하나의 깃발 아래에서(3) 21.03.15 66 1 12쪽
63 하나의 깃발 아래에서(2) 21.03.09 63 2 12쪽
62 하나의 깃발 아래에서(1) 21.03.08 54 2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