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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범 님의 서재입니다.

지옥불 난이도의 이세계 생존기.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지니범
작품등록일 :
2020.07.30 01:13
최근연재일 :
2021.06.30 06:00
연재수 :
8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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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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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
글자수 :
465,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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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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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옛 계약(1)

DUMMY

사박사박.


인간의 발걸음이 닿지 않았던 태초 그대로의 자연과, 그 자연을 경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이는 늙은 마법사 테이렌.


그는 살며시 무릎을 굽혀 눈을 손으로 사로잡더니. 이내 다시 눈을 땅으로 돌려보내주었다. 지낸 수십년간 마탑에 반 강제적으로 갇혀지내다가 이렇게 자연 속에 들어오니 어째서 드루이드들이 도시를 혐오하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테이렌이었다.


"하아.. 이곳이 바로 세유라벤 산맥. 확실히 험준함이 북부의 산맥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구나. 과연 남부가 수백년 동안이나 고립된 이유를 알 것 같다. 과연 자연의 힘이 풍만한 곳이로다!"


테이렌이 감격하며 외치자,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보고 있던 제라드가 퍼석퍼석 걸어와 그에게 말을 걸었다.


"탐사는 끝나셨소?"

"아, 미안하네 제라드. 이 늙은이가 주책맞게 탐구욕을 자제하지 못해서 원..."

"마법사라면 응당 그래야 하는 것 아니겠소. 이제 출발해야 하니. 바짝 붙으시오."


이제 세유라벤 산맥의 초행길에 들어선 제라드와 테이렌은 유유자적 산을 거닐면서 만년설을 구경하며 유랑하고 있었다.


얼핏 본다면 직무유기처럼 보이겠지만. 애초에 한 번 이동할 때 순간이동이나 초고속 이동을 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늦는 부분은 없고. 두 사람 모두 무력으로 따지자면 켈러 왕도 비빌 수가 없는 인류의 최강자들이라 안전 문제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당신과 같이 여행하는 것도 오랜만이군. 켈러 왕.. 그때는 아직 잭슨이라는 이름이었지. 그 애가 왕국의 군주가 될 것이라고는 전혀 몰랐었는데.."

"나도 그의 검을 만들어줄 때만 해도 애 하나에게 큰 선물을 준다고 생각했었소. 헌데 이제보니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구만! 허허."


과거 테이렌과 제라드는 같이 일했었기에, 두 사람은 만년설을 해쳐나가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부분은 과거에 대한 이야기였고. 나머지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래. 당신은 레나시아를 어떻게 가르칠 셈이오? 아델라이데 그 치들이 교육하는 것을 얼핏 보아하니 허투루 가르치는 것 같지는 않던데."

"뭐어.. 마법적인 소양이 있다면 마법도 가르쳐야 할 테고. 기본적으로는 외교 쪽이나 처세술을 집중적으로 가르쳐야 할 테지.알다시피 아델라이데는 수백년 동안 고립되어 있었고. 시트러스의 능구렁이 같은 귀족들을 상대하려면 처세술도 필수적이오."

"일리가 있군. 나에게 과욕의 죄를 범했다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파문시켜버린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니 말이오."

"껄껄! 자네가 그 일을 꺼내는 것도 오랜만이군 그래!"


*


"아델라이데의 궁성에 당도한 것을 환영하오 낯익은 손님들이여. 짐은 아델라이데의 백성들을 이끄는 자인 라이투스 폰 켈러라 하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듯한 인사를 하며 켈러 왕이 자신을 소개하자. 테이렌과 제라드는 무릎을 꿇고 국왕에게 예의를 갖췄다.


"영명하신 국왕 폐하를 뵙게되어 영광입니다. 소인은 일천한 지식으로나마 대마법사의 지위에 오른 솔트게릭 테이렌이라 하옵니다."

"테이렌... 짐은 그대를 알고 있다. 짐의 검을 만든 자 아닌가?"

"맞습니다. 폐하께서 이루신 업적은 모두 그 검으로 이룩한 것이니. 검 제작자와 인챈터로서 자랑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검이다. 10년 넘게 쓰고 있는데도 이 하나 나가지 않는 검이 어디 흔하게 굴러다니겠는가. 상을 줌이 가하겠으나 타국의 신하에게 함부로 포상을 내리기는 어려우니 애석하도다."

"폐하의 마음만으로도 감읍할 따름입니다."


한 동안은 입에 발린 인사치레와 격식을 갖춘 인사치레를 주고받았다. 아무리 왕의 성격이 시원시원한 것을 좋아한다 하나. 공식적인 곳에서마저 자신의 취향을 드러낼 정도로 막나가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대가 레나시아의 스승이 되어준다면야 천군만마를 얻은 것이나 다름없다. 이웃 나라의 곤경은 곧 우리나라의 외환이니. 그대가 레나시아 공주를 현명하게 가르쳐 장차 성군이 된다면 어찌 그 성은이 시트러스에만 머물겠는가? 장차 교류를 이어갈 이웃나라로서 기쁘기 그지없는 일이다."

"폐하께서 이리 공주의 교육에 신경을 쓰시니 저희 시트러스의 백성들도 모두 폐하의 현명함에 깊이 감사를 올릴 것입니다. 저희 왕국에 큰 변란이 닥쳐 내외로 혼란스러우나. 다행히도 선왕의 혈육이 이웃나라에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왕국이 비로소 안정되었으니. 참으로 신의 인도하심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한줄로 요약하자면 대략 '너네 집 딸래미 너네가 가르쳐서 잘 되면 콩고물 좀 나눠줘라'와 '지금까지 우리 딸래미 키워주고 재워줬으니 안 될 것도 없지.'로 설명되는 말들을 굳이 유려한 만연체로 풀어쓰는 것은 왕공귀족들만의 특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길고도 짧은 알현 끝에. 테이렌은 드디어 레나시아 공주를 만날 수 있었다.


*


"오오... 레나시아 공주를 뵙습니다. 이 늙은 마법사는 솔트게릭 테이렌으로. 시트러스 왕국의 대마법사 직을 맡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제가 공주 마마의 교육을 맡게 되었습니다. 선왕의 혈육이자 유일한 시트러스의 지배자를 가르치게 되어 영광입니다."

"고마워요 테이렌님. 앞으로 잘 부탁해요."

"부디, 말을 놓으시지요 공주 마마. 공주께서는 장차 왕이 되실 분입니다. 저같은 아랫것들에게 일일히 말을 높이시면 아니 되옵니다."

"크흠 흠! 알겠..어..테..이렌?"

"네. 그렇게 하시면 되옵니다."


과연 테이렌은 오랫동안 살아와서 그런지 예법같이 폴 공작이 자세히 가르칠 수 없는 부분을 자세하게 꿰고 있었다. 나이로만 치자면 폴 공작도 거드름을 피울 수 있을만큼 먹었으나. 아무래도 살아온 시간동안 칼밥만 먹어온 자와 지혜와 지성을 갈고닦아온 자가 같을 수는 없는 노릇. 폴 공작은 아쉬워하면서도 공주에게 예를 올리고 떠나갔다.


"테이렌 경이 왔으니 이제 노신은 쓸모가 없어졌습니다. 본래 저는 무인임에도 불구하고 폐하의 간택을 받아 공주 마마를 가르쳐왔으나 더 이상은 무의미할 듯 합니다. 테이렌 경. 부디 레나시아 공주님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공작께선 걱정 마시고 편히 물러가십시오."


늙은이 둘이, 그것도 공작과 대마법사라는 엄청난 지위에 올라 있는 자들이 서로 허리를 숙이며 악수를 하는 광경은 깨나 귀한 광경이었다. 한 아이의 미래를 위해 비단 옷을 입은 권력자임에도 결국에는 핏덩이로 이루어진 인간이라는 방증이 아니겠는가?


"폴 공작. 지금까지 고마웠어요."

"저도 영광이었습니다 공주님."


반말을 써야 한다고 들었음에도 레나시아는 마지막 예우로 폴에게 존댓말로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폴 공작도 그것이 퍽 마음에 들었는지. 주름살로 가득찬 얼굴을 펴면서 고개를 숙였다.


*


세르누엘라 재상은 시트러스 왕국의 수도의 가장 좋은 호텔. 그 중에서 최상층에 머물고 있었다. 본래 외국의 재상이 대로변의 호텔에 머무는 것은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시트러스의 정치계에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가까스로 호위만 받기로 하고 호텔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훌륭한 도시로구나."


고급진 호텔을 차치하더라도. 100만에 이르는 인구를 거느리는 거대한 도시의 이름은 시트러시 프라임. 시트러스의 최우수라는 말 답게 이 도시는 200만이라는 인명이 남부에서 죽어나가 사방에 난민이 넘쳐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특유의 기풍을 잃지 않고 있었다.


사방에 깔려진 돌길들과 하늘 높이 솟은 고층 건물들. 삭막한 도시에 푸른색을 더해주는 도시공원들은 마치 앞으로 하늘산이 밟아야 할 이상향과도 같이 느껴졌다.


"아! 나는 얼마나 큰 은혜를 입었는가!"


재상은 눈을 감으며 외쳤다. 10년. 딱 10년 전만 해도 그는 평원을 정처없이 떠도는 실패한 부족장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하해와 같은 성은을 입어 일국의 재상위에 오르고. 지금에 와서는 북부의 선진국에 와서 유유자적하게 휴가 아닌 휴가를 즐기고 있지 않은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쇠사슬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자신이 어딘가에 속해있다는 소속감. 그리고 속해있는 곳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듯 했다. 어느새 그의 나이도 30을 넘었다. 이제 서서히 늙음에 대해 생각해야 할 나이. 그는 못내 아쉬워하며 자신의 까슬까슬한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늙고 싶지 않다! 할 수만 있다면 영원히 살면서 조국의 번영과 발전을 지켜보고 싶거늘 어찌 신은 인간에게 영원을 허하지 않았단 말인가!


똑! 똑!


"음?"


그러나 그런 철학적인 물음에 답하기에는 호텔이라는 장소가 너무나 시끄러웠던 탓인지, 누군가 두드린 노크 소리에 재상의 상념은 깨어져버리고 말았다.


"누구인가?"

"실례지만 각하. 찾아온 손님이 계십니다."

"손님?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

"저 그게.. 귀족 중 한 명입니다."

"귀족?"


사색을 방해받아 약간 짜증이 났던 재상이었지만 상대가 귀족이라면야 얼마든지 웃는 낯으로 맞을 수 있었다. 헌데 의문점은 어째서 귀족이 외국의 재상인 그를 찾아왔는지이다. 내정은 섭정에게. 귀족간의 일은 귀족원에 맡기면 될 터인데 굳이 시트러스의 정계에 간섭할 수 없는 그를 찾아오다니.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잘 알겠다. 참. 그 귀족의 이름과 작위가 무엇이냐?"

"성함은 라우란스 폰 케일란이시고. 작위는 백작입니다."

"확실한가?"

"그분께서 스스로 밝히셨습니다."

"..그런가? 아무튼. 서둘러 모시도록 하여라."

"예, 각하."


백작이라면 코에 바람 좀 넣고 껌 좀 씹을 수 있는 엄연한 대귀족. 그런 자가 도대체 왜 재상을 찾아왔는지는 도통 모르겠지만. 재상은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원래 나라가 미쳐돌아가기 시작하면 불안해하는 것이 귀족들의 심리 아니던가.


*


수분이 지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상층의 스위트룸으로 올라온 백작을 재상은 반갑게 맞았다.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재상 각하. 저는 시트러스의 백작인 라우란스 폰 케일란이라고 합니다."

"본인 또한 이리 만나게 되어 반갑네. 백작. 헌데 무슨 연유로 본인을 찾은 것인가? 그대도 알겠지만 본인은 시트러스의 사람이 아닌지라 별다른 도움을 줄 수 없을 것 같네만.."


재상은 그렇게 말하며 백작의 용태를 살폈다. 과연 무언가 청이 있는 자답게 눈알은 쉴 새 없이 굴러가고. 멋드러지게 차려입고 온 정장은 땀으로 몸에 착 달라붙은 것이 한 눈에 봐도 보일 지경이었다.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허나 제 청은 아델라이데의 국왕 폐하만이 들어줄 수 있는 것이라 부득이하게 이리 각하를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국왕 폐하께서 직접 처결하실 일이라니..? 케일란 백작. 그대는 시트러스의 귀족이 아닌가?"

"저... 뭐라 설명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것을 봐주시겠습니까?"


재상은 눈을 댕그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시트러스의 귀족이 대관절 아델라이데의 국왕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가지고 있는 것은 또 무슨 연유인지, 게다가 품에서 '순결의 증서'라고 써져 있는 문서를 건넨 것은 대체 무슨 뜻인지. 재상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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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옛 계약(2) 21.04.13 40 1 12쪽
» 옛 계약(1) 21.04.12 74 1 12쪽
69 혈육(2) 21.04.06 88 1 12쪽
68 혈육(1) 21.04.05 50 1 12쪽
67 남에서 온 손님(1) 21.03.23 51 1 14쪽
66 북에서 온 손님(1) 21.03.22 44 1 12쪽
65 하나의 깃발 아래에서(4) 21.03.16 5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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