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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범 님의 서재입니다.

지옥불 난이도의 이세계 생존기.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지니범
작품등록일 :
2020.07.30 01:13
최근연재일 :
2021.06.30 06:00
연재수 :
8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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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65,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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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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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북에서 온 손님(1)

DUMMY

아침이 밝자. 제라드는 여관에서 나와 거리를 둘러보았다. 딱히 큰 도시는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굶주리지도 않고 적당히 시끌벅적하며, 길거리에 나앉은 사람도 보이지 않는 것이 살기 좋은 도시인 것 같았다.


"이보시오, 길 좀 물읍시다. 이 왕국의 수도가 어디요?"

"으이? 당신 뭐요? 대평원의 사람이 아닌가?"

"북에서 왔소. 정확히는 시트러스지."

"시트러슨지 뭔지는 모르겠고.. 지금 이 나라의 수도라 하면 하늘산밖에 더 있겠소? 여기에서 큰 도로를 따라서 동쪽으로 가기만 하면 나올거요"

"그렇다면 금상(현재 즉위하고 있는 군주를 이르는 말)의 존함을 알 수 있겠소?"

"라이투스 폰 켈러이시오. 아델라이데 왕국의 창업 군주이시자 대평원을 통일한 고귀한 이름이올시다."

"그렇군. 대답해주어 고맙소."


제라드는 켈러라는 이름을 듣고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제자가 결국에는 일국의 왕이 되었다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주민의 반응을 보아하니 일단 대평원의 주인으로서는 인정받은 모양이니. 그가 맡은 임무도 더욱 수월해질 터였다.


-큰 도로를 따라 동쪽이라.. 시간이 얼마나 걸리려나?-


검성인 제라드의 '달리기'란 일반적인 상식을 뛰어넘겠지만. 엄연한 타국에서 성자로서의 힘을 드러내는 것은 상책이 아니었다. 힘을 드러내지 않고도 말을 타고 가면 멀지 않은 시간에 하늘산이란 곳에 도착할 수 있을테니까.


그렇게 생각을 마친 제라드는 말에 올라 도로 중 가장 큰 길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과연 큰 도로라 불릴만한 길이와 넓이에. 바닥이 전부 마찰력이 큰 돌로 되어있는지라 별 힘을 들이지 않고도 말이 시원시원하게 나아가는 듯 했다.


"몇 년만에 이런 업적을 이뤄내다니.. 역시나 범인이 아니었구나."


그 나이에 군령자가 되서 12명의 기사를 수중에 부리고. 끝내는 악마마저 물리친 채 남쪽에서 왕이 되었다니. 정말이지 비범한 업적이라 할 수 있었다.


*


제라드가 말을 타고 수도로 달려오는 동안. 하늘산의 궁성에서는 매달마다 열리는 국무회의가 한창이었다.


어느덧 시기는 6월. 완연한 여름에 접어드는 시기. 가장 중요한 것은 배급제의 유지를 위한 농작물의 확보였다.


"농업 용수가 부족하지는 않은가?"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국왕인 켈러 1세. 그는 현재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들이 물이 부족하지는 않은지를 질문했다.


"농업 용수가 부족하다는 보고는 아직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개별적인 농가에서 직결되는 수로가 없어 일일히 수로를 파 연결해야 한다는 불만이 있습니다."


대성주 중 한 명이 그 문제에 관해 읊었다. 요컨대 칠대호와 수로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농가들은 스스로 작은 수로를 파 용수를 충당해야하는 불만이 있다는 것이다.


"그건 어쩔 수 없는 문제입니다. 농가 하나하나마다 직접 연결되는 수로는 만드는 것도 불가능할 뿐더러 그럴 이유도 없습니다. 차라리 그런 농가더러 칠대호 근처로 이주하게 만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그 말에 다른 대성주가 책상을 두드리며 반론했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다. 현대 미국도 하기 어려운 일을 이 세계의 기술력과 인력으로 해낸다? 그렇다면 그야말로 신의 기적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현실성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땅을 농토로 개간하는 게 얼마나 오랜 시간과 수고가 들어가는지 알기나 합니까? 현실적으로 보았을 때는 그냥 그대로 두는 게 최선입니다. 섣불리 정부에서 건드렸다가는 오히려 농업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바투르 공작의 반론이 이어졌다. 그의 말대로 땅을 밭과 논으로 바꾸는 것은 엄청난 수고가 들어가는 일이다. 밭의 경계를 정하는 것과 땅을 고르는 것. 돌과 잡초들의 뿌리를 완전히 제거하고. 퇴비를 뿌리는 일은 아무리 빨리 잡아도 1년은 훌쩍 걸리는 중노동이었다.


"그만. 이 문제는 더 이상 논하지 않겠다."

"""예, 폐하"""


논쟁이 과열될 양상을 보이면 그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국왕의 몫이었다. 왕의 옥음만큼 국무회의에서 큰 의미를 지닌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늘산으로 향하는 도로들의 공사 진행율은 어떠한가?"

"신이 말해도 되겠나이까, 폐하?"

"세르누엘라 백작. 말해보도록 하라."


자리에서 일어나 종이뭉치를 든 세르누엘라 백작이 헛기침을 두어 번 하더니. 이내 종이에 써진 글귀들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현재 북쪽과 남쪽의 도로들은 3분의 1즈음 완공이 된 상태이며. 서쪽과 동쪽은 약 절반 즈음 완공된 상태입니다. 이 추세대로라면. 아마도 2~3년 정도 후에 완전히 도로가 완공될 것으로 보입니다."

"좋다. 그렇다면 북으로 진출할 시기와도 맞아떨어지는군. 뭔가 특기할 만한 점은 없었던가?"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도로의 건설 부지에 몇몇 가구들이 있기는 한데. 적절한 보상금을 쥐여준다면 해결될 것입니다."

"음. 실로 훌륭하다. 백작은 다시 자리에 앉도록."

"예, 폐하."


세르누엘라 백작이 발표를 마친 후. 백작이 자신만을 위해 마련된 자리에 앉자. 국왕은 때를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세르누엘라 백작의 충심과 능력을 짐이 살펴보건대, 그의 작위는 백작에 머무르나 그의 총명함과 지혜는 하늘산을 덮고도 남음이니. 짐은 세르누엘라 백작을 아델라이데 왕국의 첫 번째 재상으로 삼고자 한다. 반대하는 자 있는가?"

"""...."""


대답은 없었다. 지금 세르누엘라 백작이 앉은 자리는 왕좌와 일직선상으로 위치한 자그마한 의자. 오직 일국의 재상만이 앉을 수 있는 만인지상 일인지하의 좌석이었다.


세르누엘라 백작이 감히 그런 신성한 자리에 앉았음에도 28명의 대성주와 공작들이 불만을 제기하지 않은 것은 그가 개국공신이기도 하고. 능력이 있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국왕의 신임을 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재상의 지위를 얻지 않은 이상 세르누엘라 백작이 국무회의의 장에 들어와 참여하는 것은 이상하게 비추어질 수 있었기에. 국왕은 이번 기회에 세르누엘라 백작의 지위를 공인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대답이 없군. 그렇다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아델라이데의 재상이자 짐의 대리인에게 예를 갖추어라."


드륵! 드르륵!


왕의 지엄한 명령에 28인이 모두 일어나 세르누엘라 백작. 아니. 세르누엘라 재상에게 허리를 숙여 예를 갖추었다.


재상의 자리는 왕의 허가가 있어야만 얻을 수 있는 자리. 국내 모든 귀족 서열 중 으뜸에 위치하는 만인지상의 위치였다.


"재상은 짐 앞에 무릎을 꿇으라."

"예, 폐하."


그리고 그 다음은 일인지하의 위치를 공인하는 차례였다. 재상은 왕의 앞에 무릎을 꿇었고. 왕은 품에서 왕의 대리인을 뜻하는 국장이 새겨진 쇠사슬에 걸린 회중시계와 흑단나무로 만든 지팡이를 하사하였다.


"국장이 새겨진 회중시계는 그대가 속한 나라를 잊지 않기 위함이며, 쇠사슬에 꿴 것은 귀족이라는 오만함을 버리고 가장 낮은 종처럼 왕국을 위해 헌신하는 것을 상징할지라.


그리고 흑단나무의 지팡이는 겉은 여릴지언정 속은 그 무엇보다도 단단하게 나라를 지킬 것이라는 짐의 호언일지니.


이 자리에서. 나라를 대표하는 28인의 귀족과 한 명의 절대자 앞에서 그대를 아델라이데의 재상으로 임명하는 바이다."


켈러 왕이 허공에서 검을 뽑아내어 그의 양 어깨를 두드리자. 세르누엘라 재상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황공무지로소이다."


황야의 쇠락한 부족장에서 강대한 대국의 재상직까지 오른 그의 눈시울은 벌써 붉어져 있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먹을 것 걱정을 하던 그가 이제는 만인지상 일인지하의 위치에 오른 것이다.


재상은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한 때 고개를 숙여야 했던. 이제는 그들이 고개를 숙여야 하는 자신이 그 자리에 있었다.


"우리의 국왕 폐하께 만세를!"


재상은 거의 본능적으로 외쳤다. 그러지 않고서야 가슴에서 벅차게 튀어나오는 감동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우리의 국왕 폐하께 만세를!"""


그리고 28인의 군주들이 일제히 자신을 따라 합창하자. 마침내 그는 자신의 오랜 숙원이 이루어졌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


"호오.. 이곳이 하늘산인가.. 산 한 번 높기도 하구만."


국무회의가 파하고 세르누엘라 재상이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갔을 무렵. 마침내 제라드는 아델라이데의 수도인 하늘산에 도착하였다.


1000미터가 넘게 솟아오른 장대한 산과. 그 위에 어렴풋이 보이는 웅장한 왕성의 모습은 현재 켈러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뚫고 들어가기는... 무리인가."


제라드는 내심 자신의 품 속에 정식 외교문서가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아무리 검성이라고 해도 일국의 수도에서 칼춤을 벌이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잠시 헛웃음을 지은 제라드는 우뚝 솟은 하늘산으로 향하는 유일한 통로인 하늘계단으로 향했다. 여행자 코스프레는 이미 의미를 잃었기에. 그는 사전에 챙겨온 외교 사절용으로 제작한 고급 의복을 정제하고 하늘계단으로 향하는 자들을 검문하는 검문소 앞에 섰다.


"본인은 북부에 위치한 시트러스 왕국에서 온 사절이오! 이 나라의 국왕 폐하께 긴히 전할 말이 있으니 문을 열어주시오!"


제라드가 그 말을 외치는 순간 거리를 지나다니던 사람들이 눈을 댕그랗게 뜨고 그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지금 자신들이 들은 말이 정말로 진실인가? 외국의 사절이라니!


"외...국의 사절이라..."

"대위님. 어떻게 합니까?"

"....당신이 정말로 외국의 사절이란 증거가 있소? 애시당초 어째서 외교 사절이 호위도 없이 혼자 저잣거리에 나왔단 말이오!"

"그 대답은 이것으로 대답하겠소."


제라드는 검을 뽑아 아우라를 국수가락처럼 뽑아낸다음 하늘을 향해 검을 휘둘렀고. 그러자 하늘에 몰려들었던 구름들이 마치 홍해처럼 갈라졌다.


털썩!


"...마..맙소사!"

"국왕 폐하 맙소사... 검성이 외교 사절로 왔단 말인가?"


난생 처음 보는 성자의 위력에. 친위대는 창칼을 든 손을 바들바들 떨며 애써 자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늘산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는 구름을 일직선으로 갈라버리는 위력이라니. 만일 저것이 하늘산에 직격이라도 한다면?


꿀꺽!


"좋소! 하지만 그건 당신이 검성이라는 증명일 뿐. 외교 사절이라는 증명은 되지 못하오. 외교 문서라던가. 임명장을 가져와보시오!"

"그것이라면 여기에 있소."


제라드는 자신의 품 속에서 시트러스의 국장이 새겨진 짧은 단봉을 내밀었다. 전권대리자를 나타내는 범대륙적 표식이었다.


"이제 들어가도 되겠소?"

"...문을 열테니 잠시만 기다리시오. 그리고 왕성 내에서 무장은 허가할 수 없으니. 검의 착용을 해제...해주시오."

"그거야 당연한 것 아니오. 내 기다릴테니 천천히 여시오."


제라드의 '허가'가 떨어지자마자 친위대는 혼비백산하며 굳게 닫혀있던 문을 열고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제라드의 검을 받았다.


"지..지...지금부터.. 국왕 폐..폐하께로 안...내하겠습니다!"

"고맙구려."


걸음을 걸을 때마다 압도적인 무력이 전해져오는 공포는 과연 어떠할까. 친위대는 부디 저 검성이 자신들에게 아무런 가치도 느끼지 않길. 외교 사절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신이 도운 것인지. 계단을 모두 오를 때까지 검성은 사절로서의 예절을 지켰으며. 그는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왕성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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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금의환향(2) 21.04.20 42 1 12쪽
72 금의환향(1) 21.04.19 95 1 12쪽
71 옛 계약(2) 21.04.13 41 1 12쪽
70 옛 계약(1) 21.04.12 74 1 12쪽
69 혈육(2) 21.04.06 89 1 12쪽
68 혈육(1) 21.04.05 50 1 12쪽
67 남에서 온 손님(1) 21.03.23 52 1 14쪽
» 북에서 온 손님(1) 21.03.22 45 1 12쪽
65 하나의 깃발 아래에서(4) 21.03.16 55 1 12쪽
64 하나의 깃발 아래에서(3) 21.03.15 67 1 12쪽
63 하나의 깃발 아래에서(2) 21.03.09 63 2 12쪽
62 하나의 깃발 아래에서(1) 21.03.08 55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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