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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범 님의 서재입니다.

지옥불 난이도의 이세계 생존기.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지니범
작품등록일 :
2020.07.30 01:13
최근연재일 :
2021.06.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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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65,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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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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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하나의 깃발 아래에서(2)

DUMMY

한 사람을 죽이면 살인자가 되지만. 100만명을 죽이면 영웅이 된다는 말은 터무니없는 거짓이다. 아마도 그런 말을 한 자는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영웅이란 자가 100만명이나 되는 인명을 학살할리가 없다'고.


그러나 세상에는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널려있었고. 켈러 왕은 그 중 수많은 방법 중 하나를 골라 해결했을 뿐이다. 그게 도덕적으로 옳건 그르건. 판단은 그가 하는 것이지 피해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란 피해를 입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지. 피해를 입은 시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협상국. 한 때 140만이 넘는 인구와 수백년 동안 대평원의 왕초 노릇을 해왔던 세 도시 국가의 연합체는 압도적인 무력 아래에 존재를 부정당했다.


비겁하게 역사를 조작한다거나. 여자를 빼앗아 억지로 동화시킨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저 그들에게 살 권리를 빼앗았을 뿐이다.


단 하나도 남김없이. 지난 번의 학살에서 살아남았던 14만명의 바르카스 난민들까지 포함해 140만명의 협상국민은 모조리 죽임을 당했다.


일말의 희망조차 부정당한 채. 동일한 인격체라는 최소한의 존중도 받지 못한 채 140만명의 인명들은 그저 다른 깃발 아래에 서 있었단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해야 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것이다. 대평원의 통일. 1000일동안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유일하게 낳은 결과가 더 이상 땅을 갈라먹을 존재가 없어서 통일이 되었다는 하잘 것 없는 허울뿐이었던 것이다.


한 때 대평원의 진주들이라 불리던 번영했던 도시들은 완전히 불타고 망가져 버려졌고. 수십만명의 아델라이데 군은 아무런 죄책감도 가지지 않은 채 그들의 집으로 돌아갔다.


전쟁에서 아델라이데의 편을 들었던 군소 영주들은 전부 백작위나 남작위를 받고서 의기양양하게 금의환향하였고. 전쟁으로 인해 버려진 땅들은 새로운 주인을 모시게 되었다.


전쟁은 끝났다. 역사에 남을만한 전쟁이 정확하게 1000일만에 끝난 것이다. 2년하고도 9개월이라는 세월 동안 오직 죽음만을 남긴 전쟁은 아이러니하게도 남은 자들의 번영을 불러왔다.


백성들이 만든 수로는 황폐화된 땅에 무기염류와 수분을 공급해주었고. 지대가 낮은 곳에 마련된 칠대호는 수로의 중간 기착지 겸 몰고기들의 산란장이 되어주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오아시스가 되었다.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열 두명의 공작또한 적절한 보상을 받았다. 아델라이데의 수도인 하늘산을 울퉁불퉁한 원형으로 보호하는 12개의 거대한 성의 종신 성주권이 그들이 받은 보상이었다.


그리고 세르누엘라 백작을 위시한 친-아델라이데 파 유목민들또한 아델라이데가 존속하는 동안 초원의 풀을 가축들에게 먹이고 천막을 치며 사냥을 할 권리와 도시에 출입할 권리를 얻었다.


'촌장'은 남작으로. '영주'는 백작으로 변해 하나의 덩어리였던 대평원에 울타리와 표지판이 빼곡하게 설치되었고. 배를 곯던 사람들은 굶주림을 잊은 채 더 많은 밭과 논을 갈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일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보상을 얻은 것은 전쟁 전 협상국과 비교해 약간 떨어지던 국력을 가졌던 중견국의 군주들이었다. 그들은 비록 군주라는 칭호는 잃게 되었지만.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을 수용 가능한 16명의 토지에 도시를 세우고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도시의 지배자로서 군림할 권리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전쟁의 후유증이 가시고. 레나시아 공주가 7살이 되었을 때, 아델라이데는 공식적으로 개국이라는 연호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개국 1년에 이루어진 인구 조사 결과 대평원의 인구수는 약 700만명을 기록했다.


대학살을 저지른 것 치고는 나쁘지 않은 인구수였다.


*


전쟁이 끝나고. 대규모 군수 소요는 없어졌지만 켈러 왕은 군대를 감축시키지 않았다. 원작. 그러니까 원래 세계에서 일어났던 몬스터들의 대규모 발흥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기존까지 사용하던 과도기적 전법과 장비들을 계속해서 사용할 수는 없었기에 켈러 왕은 대포의 개발과 동시에 보병들의 장비를 개편하기 시작했다.


길고 무거운 워 소드 대신 길이는 거의 비슷하지만 좀 더 얇고. 한손으로 가볍게 휘두를 수 있는 카츠발게르(katzbalger)와 투사체에 대한 방호를 중점적으로 맡는 타지(Targe)를 근접전용 무기로. 그리고 주무기로는 머스킷과 15발짜리 종이탄포가 들어가는 작은 가방으로 이루어진 군장은 원거리 전을 중시하면서도 최소한의 백병전 대책을 세운 아델라이데 군의 표준 군장으로 채택되었다.


도대체 중세인지 르네상스인지 근대인지 종잡을 수 없이 기술력과 사회 구조가 혼재되어 있는 이 세계에서 전열보병이 얼마나 전투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이겠지만. 적어도 판금 갑옷을 깨부술 수 있는 머스킷의 위력만큼은 확실하게 보증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선형진이라는 특성상 범위 마법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피해를 줄일 수 있을 터이니. 진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나는 피해를 줄이면서도 상대방의 피해를 강요'한다는 목적을 달성하는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으리라.


*


"뭐야? 대체 남쪽에서 뭔 일이 일어나고 있는거지?"

"저렇게나 많은 연기라니.. 큰 불이라도 난 건가?"


세유라벤 산맥이라는 거대한 방벽으로 가로막힌 북부와 남부가 교류할 수 있는 방법은 극히 적었다. 더욱이 두 지역간에 왕래할 이유가 거의 없는 탓도 있는 탓에. 서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산맥을 넘어올 수 없는 이상 상황을 알 수 없던 것이다.


그러나 140만명이라는 말하기도 두려운 숫자를 태워 없애기 위해 지른 불에서 나온 연기는 북부의 사람들에게 자신들을 기억해달라는 듯 제트기류를 타고 올라가 북부의 최남단인 시트러스 왕국의 남부에 이르게 되었다.


매년 겨울만 되면 남해에서 올라오는 거대한 기류에 의해 북풍을 맞는 시트러스 왕국에서 이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였나 하면. 실상 아무렇지도 않아했다.


사람들이란 본디 자신에게 해가 오지 않으면 그러려니 하고 살아가는 것이 급하기에. 대충 남부에서 큰 불이 났거니 하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린 것이다.


사실 이것이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어딘가에서 연기가 난다면 그 연기가 땔감을 태워서 나는 연기일 것이라 생각하는 자가 많지. 시체가 너무 많아 썩기 전에 태우려고 불을 질렀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을테니 말이다.


게다가 시트러스 왕국은 아직까지도 남부의 피해를 제대로 복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근본적으로 피해가 너무 큰 것이 이유였지만. 아직까지 재건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완전히 몸져누워 국정을 돌볼 수 없는 늙은 왕이 끈질기게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왕이 결정을 내릴 수 없으니 중요한 정치적 결정이 계속해서 보류되고. 그 틈을 타 재상이나 대귀족들의 영향력이 야금야금 넓어지고.. 결국에는 민심이 폭발하지 않도록 생색을 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되는 답답한 상황이 완성되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왕이 콱 죽어버린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느냐 하면. 얄궃게도 그것도 아니었다. 후계자가 없는 늙은 왕. 반란이 일어나고 왕조가 바뀌기에는 더할나위없이 적절한 배경 아니던가?


*


"이제 전쟁의 참화도 정리되어가고 있는 듯 하구나."

"그렇습니다. 폐하의 은혜에 힘입어 아델라이데의 700만 백성들이 하나된 왕국 아래에서 치세를 누리고 있으니. 어찌 폐하의 덕이 아니겠습니까?"


이번 달에 열린 국무회의는 12명의 공작들과 16명의 대성주들이 참석했다. 백작 이하의 직위를 지닌 자들은 아무래도 매달 열리는 회의에 참석하기에는 거리 상의 문제도 있고 하니 배제되었고. 수도와 가장 가까이 있는 12명의 공작들과 도로로 직결되어 있는 16명의 대성주들만이 국정을 논하는 이 영광스러운 자리의 참석권을 얻을 수 있었다.


"어느새 짐의 나이가 20세가 되어 완연히 성인이 되었으나. 요즘 따라 짐은 편히 잠을 이루지 못하겠도다."

"아니.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고향.. 짐의 고향이 보고 싶구나. 비록 사람들은 데려왔지만. 내가 나고 자랐던 토지를 그리워하지 않는다면 어찌 사람이라 부를 수 있겠느냐?"

"폐하의 고향이라면 북부.. 시트러스 왕국의 남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러하다."


북부. 남부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북부란 경원시되는 곳이었다. 자신들보다 수도 많고. 문명도 발전되어 있지만 교류가 사실상 불가능해 선망의 대상으로만 수백년을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켈러 왕이 누구인가? 명령 하나만으로 140만을 학살한 희대의 폭군 아니던가. 그런 왕이 고향 땅을 밟고 싶다는데 섣불리 반대할 애국지사가 있을 리 없었다.


"걱정 마라. 이번 기회에 짐은 세유라벤 산맥을 통과할 거대한 터널을 만들 생각이다. 게다가 짐은 시트러스 왕국의 대공 작위또한 가지고 있음이니. 그대들이 걱정하는 외교적인 충돌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야."


그러나 켈러 왕 또한 최소한의 돌파구는 마련해 놓았다. 시트러스 왕국이 망하지 않은 이상. 자신이 대공위를 수여받았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마치 이중국적자가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의 국적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 같이. 북부의 세 왕국은 이중국적을 허용하고 있기에 켈러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쯤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 국적에 딸린 신분이 하나는 대공에 하나는 국왕이니 정말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되겠지만 말이다.


*


켈러 왕의 바람과는 달리. 다 합쳐 28명의 신하들은 북부와의 교류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끈질기게 간청하였다.


이유는 크게 세가지였다.


하나는 협상국을 말 그대로 아작내버린 후유증이 아직까지도 남아 불안한 내수 경제가 지속되고 있는데. 이런 상태에서 적절한 처리과정 없이 외부 물자가 들어오게 된다면 북부에 비해 전반적인 생산량이 떨어지는 남부의 경제가 붕괴할 위험성.


둘째는 세유라벤 산맥을 뚫고 국가와 국가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무역량을 감당할 수 있는 터널을 뚫기에는 아직 걸음마 수준인 대규모 토목 공사 기술.


셋째는 북부 왕국들과의 정치적 알력 사이에서 아델라이데가 제대로 의견을 내지 못하고 휘둘려 무역과 교류로 인한 사회적, 경제적 이득을 보지 못할 가능성이었다.


어느 것도 나라를 반쯤 망하게 하기에 더할나위없이 적절하였기에. 켈러 왕은 일단 세유라벤 산맥을 관통하겠다는 야심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경들의 말을 들어보니 아직은 시기상조인 듯 하군. 좋다. 3년 후에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하도록 하겠다. 레나시아 공주가 10살이 될 그 때에는 더 긍정적인 답변을 기다리도록 하겠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왕의 말대로.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했다. 특히나 140만명의 인명을. 어쩌면 터널을 뚫는 기술자들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140만명을. 수준 높은 경제학자가 있었을 140만명을. 북부의 치열한 외교전 속에서 당당하게 아델라이데의 주권을 주장하는 용맹한 외교관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140만명을 죽인 직후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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