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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범 님의 서재입니다.

지옥불 난이도의 이세계 생존기.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지니범
작품등록일 :
2020.07.30 01:13
최근연재일 :
2021.06.30 06:00
연재수 :
8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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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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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
글자수 :
465,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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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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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다시 남쪽으로(1)

DUMMY

"아델라이데와 시트러스간의 우호가 앞으로도 영원하기를 바랍니다."

"이를 말씀입니까.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두 국가의 정상은 새로 개축된 외교관 앞에서 서로 악수했다. 새롭게 개축된 외교관의 모습은 꽤나 낯익은 모습이었는데, 다름아닌 수도에 있던 켈러의 저택을 개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아델라이데의 군주인 켈러에게 이 저택이 딱히 필요한 것도 아니었고, 시트러스 측에서도 굳이 비싼 수도의 땅값을 감수하면서까지 외교공관을 짓고 싶지는 않았으니 서로 윈-윈한 셈이였다.


"전원, 아델라이데 국왕 폐하께 경례!"


척!


마지막으로, 시트러스 근위대의 경례를 받은 켈러 왕은 자신의 군사들을 이끌고 다시 남부로 떠나갔다.


다시 한 번 열렬한 환호가 쏟아지고. 켈러 왕은 그들에게 다시금 화사한 미소로 답했다. 들어올 때와 같이 나갈 때에도, 시트러스의 백성들은 그에게 열렬한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


무어라 말해야 할까. 패배감? 굴욕감? 홈그라운드에서 패배한 선수들의 마음? 분명 자신들이 시트러스의 최정예이거늘 타국의 왕에게 '만세'를 삼창하는 군중들과 민중들이 야속하다 생각하는 귀족들과 그들을 수심 깊은 얼굴로 바라보는 섭정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결국 수도의 귀족들은, 켈러 왕이 눈가에서, 뇌리에서 떠나갈 때까지 꿈쩍없이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자! 이제 돌아가세나, 환송은 이만하면 된 것 같으니."


그들을 깨우는 섭정의 목소리가 없었다면 아마도 그들은 해가 질 때까지 가만히 서 있었을 것이다.


*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터널의 바닥은 아직 포장이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흙길이 질척이지 않는 이유는 왕의 행차를 위해 공사 현장에서 떨어진 돌가루들을 표면에 뿌려 골고루 섞은 다음 고르게 굳혀 사실상 벽돌길이나 다름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래봤자 진짜 벽돌도 아니었고, 겉모습만 그럴듯한 비포장도로여서 승차감은 별로였으나, 그럼에도 이 도로가 북부와 남부를 이어주는 거대한 원통이라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아직은 왕의 행렬밖에 없겠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수많은 사람들이 이 터널을 통해 남과 북을 오갈 것이다. 그 때가 빨리 오기만을. 재상은 들뜨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기다리고 있었다.


"터널 속으로 오니 이제야 짐의 토지로 돌아왔다는 실감이 드는구나. 미안하지만 재상, 그대는 돌아가자마자 일을 해줘야겠네. 북부에서 느꼈던 심정을 100쪽 이내로 작성해 짐에게 제출하도록."

"심정...을 말입니까?"

"그래, 심정 말이네."


재상은 눈치가 빨랐기에, 다소 뜬금없이 보이는 왕의 명령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제아무리 나라가 반쯤 마비된 시트러스라고 해도, 일단은 강대국이었기에 지금의 시트러스와 비교하면 거의 북한과 남한과 같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런 강대국에서 오랫동안 체류하며 느꼈던 감정은 그가 재상이라서가 아닌 아델라이데인으로서 느꼈던 감정이리라, 만약 지금 아델라이데 100명을 놓고 시트러스에 한 1년만 체류하게 놔둔 뒤 아델라이데에서 살지 시트러스에서 살지 고르라 한다면. 100이면 100명 다 시트러스에서 살겠다고 말할 것이다.


왕이 말한 것은 그런 뜻이 담겨 있었다. 우리가 북부의 왕국들에게 문화적으로 종속되지 않고. 아델라이데로서의 자주성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심지어 왕도 북부인인 지금, 갓 통일이 된 대평원의 민심은 쉬이 요동칠 수밖에 없었다.


*


매그놀리아 왕국.


딱히 영토가 넓은 것도 아니고, 땅이 비옥한 것도 아니며, 특별한 특산물이나 자원이 있는 것도 아닌데 자기 혼자서만 3000만명이라는 단위가 다른 인구수를 자랑하는 인구 대국.


그러나 그 반대급부로 인구의 안정적인 유지를 위한 경공업을 제외하면 중공업이나 서비스업의 발달은 미약하여 북부 3왕국 중 가장 약한 상비군을 지녔다고 평가되는 무엇인가 나사빠진 국가.


그나마 다른 두 왕국들과 비교했을 때 가장 눈에 띄는 장점은 바로 인구수에서 오는 압도적인 경제력으로, 공업력과는 다르게 엄청난 인구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지탱하기 위해서 도입한 적극적인 상공업 장려 정책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어. 두 왕국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어있는 절묘한 지리적 위치를 십분 활용하여 중계무역국으로서의 입지가 탄탄하다는 것만큼은 높이 쳐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매그놀리아 왕국에도, 시트러스에 아델라이데의 군주가 당도해 정식으로 국교를 맺었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매그놀리아의 정계는 대평원에 통일 왕조가 들어섰고. 그 왕조의 주인이 시트러스인이었다는 것에 놀랐으며, 시트러스 왕국과 국교까지 맺었다는 것에 경악했으나, 이내 상업의 달인들 답게 아델라이데와 국교를 맺어 정식으로 무역을 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실 매그놀리아 왕국의 입장에서도 아델라이데의 존재는 달가운 것이었다. 매그놀리아 왕국의 경제력이 타 왕국들보다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뛰어나다' 정도이지 '압도한다'가 아니었기 때문에, 경제 주권이 넘어가고 있다는 불안감이 두 왕국에 스멀스멀 피어오르자 매그놀리아 왕국이 벌어들이고 있는 자금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새로운 시장이 될지도 모르는 신생국이 떡하니 생겨났으니 상업 국가로서 욕심이 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할 노릇, 매그놀리아의 국왕인 아흐바트 2세는 대신들을 불러모아 아델라이데의 시장에 접근할 방법을 찾으려 했다.


"우선 시트러스 왕국에 언질을 주는 것이 어떠신지요? 그쪽도 현재 남부 전란으로 인해 사정이 좋지 못하니, 남부에 대한 지원으로 당근을 준 뒤 아델라이데와의 주선을 청한다면 그쪽으로서는 거절할 명분이 없을 것입니다."

"허나 시트러스 왕국이 지원을 받는 것을 거절한다면 그것또한 공염불이 되지 않겠습니까? 폐하, 굳이 이리 빙빙 돌리지 말고 그저 사절만을 보내 시트러스에 위치한 아델라이데의 대사관으로 보내시옵소서. 괜히 술수를 부리다 신의 없는 나라라고 낙인 찍힐지도 모르옵니다."

"과연 그대의 말이 옳도다."


여러 방안 끝에. 아델라이데의 대사관에 정식으로 사절을 파견하는 안이 선택되었고. 격식을 맞추기 위해 장차 나라의 주인이 될 아흐바트 2세의 장자, 즉 왕태자가 직접 가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왕태자가 직접 가는 것이 불안하기는 하였지만 외교에서 격식을 갖추지 않는 것은 심각한 결례였고. 또한 대사관이 시트러스의 영내에 있기에 영내 통과를 최대한 수월하게 할 목적도 있었다.


단적으로 말해 아델라이데가 시트러스의 식민지도 아니고, 본래 대사관까지 간다는 목적만을 밝힌다면 오히려 시트러스의 측의 호위를 받을 수 있겠으나 수백년 동안 태어나지 않았던 신생국의 대사관으로 가는 것이니 신중을 기한다 해서 문제될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아바마마, 그럼 소자,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대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왕국의 미래를 위해 훌륭히 처신하기를 바라노라."

"각골명심하겠습니다."


*


"흐음..."


프리드리히 대사는 사과를 우적거리면서 국왕 폐하께서 직접 하교하신 명령을 곱씹고 있었다.


-짐이 직접 명을 내리기 전에는 시트러스를 제외한 다른 왕국에서 오는 자들은 모두 쳐내도록 하라. 만약 왕족이나 고위 귀족이 올 시에는 짐이 하사한 문서를 들려보내 되돌려보내도록 하라.-


한 마디로 줄여서 시트러스 빼고 다 나가란 소리였다. 프리드리히 대사는 대관절이 왜 이런 명령이 내려졌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외교관계는 넓으면 넓을수록 좋을 텐데 대체 왜 고립을 자처하는 것일까.


툭.


그는 다 먹어버린 사과의 잔해를 쓰레기통에 던지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사실 아무래도 좋은 문제였다. 그는 신하였고, 명령을 내린 자는 왕이었다. 자신의 생각과 왕의 생각 중 무엇을 더 우선할지는 자명했다. 신하란 왕을 따르는 자, 그 개념이 깨질리는 없지 않은가.


사실 그의 머리로도 어째서 폐하가 이런 명령을 내렸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아직 아델라이데는 불안정하다. 140만명을 죽여가면서까지 얻은 통일이라는 크나큰 과실을 삼킨 것까지는 좋았지만 국토의 안정적인 개발. 칠대호 사업, 세유라벤 터널의 개통 등 아직 소화도 되지 않았는데 무리하게 거대한 몸을 움직인 결과 조금만 더 움직이면 정말로 탈이 날지도 몰랐다.


그런데 옆에서 자꾸 누가 알짱거리면 되는 소화도 안 되기 마련, 내치를 위해 외치를 희생한다는 전략이라면 그의 일천한 지혜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똑똑!


"무슨 일인가?"

"저.. 대사님? 그게... 매그놀리아의 왕태자 전하께서 오셨습니다."

"후우..."

"대사님?"

"알겠다. 금방 나갈테니 왕태자 전하를 극진히 대접하도록 해라."

"예에...."


설마하니 사과심을 쓰레기통에 버린 지 1분도 채 되지 않은 지금 매그놀리아의 왕태자가 당도하다니. 참 타이밍도 이런 타이밍이 없다고 대사는 생각했다.


*


"아니... 그게 무슨 말이오? 국교를 맺을 수 없다니?"

"말 그대로입니다 전하. 송구하오나 현재 아국은 시트러스 이외의 국가와는 일절 관계를 맺지 않고 있습니다."

"아니 그렇다면 이유를 알려주시오. 왜 시트러스와는 국교를 맺었으면서 우리 매그놀리아와는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겠다는 것이오?"

"그 이유는 저도 모릅니다. 다만 폐하께서 따로 칙명을 내리셨단 것만 알고 있습니다."

"이런..."


매그놀리라의 왕태자인 마르무트는 낭패어린 표정을 지었다. 설마 아델라이데가 이렇게 나올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와 국교를 맺어 주권을 가진 독립국임을 인정받는 것을 거부하는 국가라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이것이 폐하께서 내리신 거부서입니다. 한 장 가져가시지요. 아직 수백장이나 남아있답니다."

"후우... 폐하께 직접 기별을 넣을 수는 없겠는가?"

"안타깝지만. 저희로서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관이 아닌 민간 차원의 교류는 가능하겠는가?"

"그것도 불가능합니다. 이미 시트러스 측과도 1개월에 단 한 번씩만 서로 상단을 보내 무역을 하기로 결정하였는데. 매그놀리아 왕국에게만 그런 특혜를 부여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왕태자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분노와 당혹감이 반반 섞인 얼굴로 대사관을 나와 다시 마차에 올라탔고. 그 길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본국으로 떠났다. 더 이상 머물러보았자 메리트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젠장.. 이렇게 되면 내 입지가 위험해지는데.."


마르무트는 손톱을 깨물면서 아델라이데에서 발행한 거부서를 들여다보았다. 위쪽은 아마도 아델라이데의 언어로, 아래는 시트러스어로 적혀져 있었는데. 대충 시트러스 이외에는 그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제기랄! 대체 아델라이데의 국왕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그는 거부서를 구겨버리려다 간신히 참아냈다.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왕의 국새까지 찍힌 외교 공문을 구겨버리는 것은 심각한 행위였기 때문이다.


"우선은... 아바마마께 돌아가야 하는데.."


자신의 입지가 좋은 싫든 추락할 수밖에 없단 것을 깨달은 마르무트의 얼굴은, 점차 어두워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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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금의환향(1) 21.04.19 9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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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옛 계약(1) 21.04.12 73 1 12쪽
69 혈육(2) 21.04.06 88 1 12쪽
68 혈육(1) 21.04.05 50 1 12쪽
67 남에서 온 손님(1) 21.03.23 51 1 14쪽
66 북에서 온 손님(1) 21.03.22 44 1 12쪽
65 하나의 깃발 아래에서(4) 21.03.16 55 1 12쪽
64 하나의 깃발 아래에서(3) 21.03.15 66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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