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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사거리.
호영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무혁을 기다리고 있었다.
"야 인마, 여기다.”
무혁은 몸을 건들거리면서 특유의 양아치 같은 웃음을 띠며 호영을 불렀다. 호영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무혁을 향해 걸어갔다.
“씨발, 너 아프냐? 이 새끼, 열나서 땀 흘리는 거 봐라. 뭔 일이길래 상태가 이 모양인데 길거리를 나돌아 다닌 거야?”
“좀 사연이 길어요. 형 죄송한데 지금 많이 힘들거든요. 정말 죄송하지만 지금 좀 눕고 싶어요.”
“이 새끼 이거. 대책 없이 불쑥 찾아와서는...... 일단은 나 아는 형님이랑 같이 살고 있어서 갑자기 울 집에 너 들이는 건 좀 곤란하고 일단 아무 모텔이나 들어가자. 그보다는 너 병원이 더 급할 거 같은데.”
“됐습니다. 그냥 약국에서 해열제하고 두통약이나 사 가면 돼요.”
무혁과 호영은 급한 대로 약국에서 약을 사 들고 근처 모텔로 들어갔다.
“모텔도 강남이 죽여주지. 대실비가 비싸서 그렇지 시설은 호텔도 안 부러울 수준이라고.”
호영은 신나서 떠드는 무혁의 말에 대꾸할 힘조차 없었다. 호영은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침대에 누워 버렸고 그 상태로 일어나지도 못 했다.
"야 인마. 그렇게 해서 자려고? 일단 밥이라도 먹어야 약을 처먹든지 할 거 아니야?”
호영은 대답 대신 멀뚱멀뚱 천장만 바라보았다.
“자식아, 좀 누워 있어라. 엉아가 죽 사 올 테니까.”
무혁이 나간 적막한 방 안에서 호영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냥 이대로 영원히 깨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뜨거워져 가는 몸뚱어리에 불이라도 확 피어나서 한 줌의 재나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야, 죽쳐먹어라.”
어느새 나타난 무혁은 호영에게 죽을 건넸다. 호영은 말없이 재빨리 죽 한 그릇을 비우고는 약을 먹었다.
“야. 지금 얘기할 기운 있냐? 나 독립하고 무슨 일이 있었냐? 그동안 연락도 거의 없고 말이야. 새끼가.”
호영은 나지막한 소리로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빠짐없이 얘기하였다. 무혁은 조용히 듣고 있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자식이 이거 큰일 날 새끼네. 여자 하나 때문에 인생관이 바뀌고 그 여자애 하나 세상에서 없어졌다고 폐인 되고 이거 그릇이 너무 작아, 정호영.”
이 말을 듣는 순간 호영은 욱하는 감정에 반박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무혁이 말을 가로막았다.
“너 이 새끼 무슨 말하려는지 다 알아. 그래 지금은 내가 하는 말이 무슨 개소리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 너보고 지금 내 말을 이해해 달라는 건 아니야. 그래, 지금은 슬프니깐 그냥 울어. 그런 감성팔이 니 나이 때 나 해 보지 언제 해 보겠냐? 일단 푹 쉬고 내일 다시 얘기하자.”
무혁은 말을 마치자마자 밖으로 나갔다. 호영은 왈칵 눈물을 흘렸다. 주변 사람들 중에서 자신의 감정을 이해해 주는 사람들이 없는 거 같아서 서러웠다.
다음날 오전 늦게 호영은 눈을 떴다. 몸은 한결 나아진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남 누치 안 보고 푹 쉬었던 거 같다. 이때 휴대전화 벨 소리가 들렸다. 형일 거 같아서 불안하긴 했지만 그래도 일단은 받아 보았다.
“여보세요?”
“정호영 학생 휴대폰이죠? 나 일전에 봤던 강정규 형사에요. 귀찮게 해서 미안한데 추가로 참고인 조사를 해야 할 거 같아서. 박시현이라고 알지?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을 거 같아서 일단 긴급체포해서 노량진 서로 압송한 상태야. 시현 양과 관련해서 몇 가지 진술 좀 해줬으면 하는데 협조해 줄 수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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