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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의 등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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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thschild
작품등록일 :
2023.01.24 11:08
최근연재일 :
2023.05.27 08:15
연재수 :
1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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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9,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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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25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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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엔론의 수법

DUMMY

[이틀 후, 워싱턴 DC]


“굿모닝 알렉스. 오랜만이군."


조금 늦게 사무실에 출근한 알렉스 킴. 사무실에는 CIA 동료 칼 크루거와 그의 부하 제롬 소렌슨이 먼저 출근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알렉스 킴은 이에 대해 미리 통보를 받지 못한 상황.


검은 양복을 입은 백인과 흑인. 둘다 키가 크고 날렵한 체형이다. 북유럽계 성을 가진 소렌슨이 예상과 달리 흑인이었다.


알렉스 킴은 이들이 이리 빨리 나타난 것에 당황했다. 며칠전 개디스를 만난 후 빨라도 1-2주 정도 시간이 있을 줄 예상했지만 1주일 만에 자신을 감시할 인력이 배치된 것이다.


‘그리 급한 일이었나?’


물론 명목상으로는 알렉스 킴의 업무를 지원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알렉스 킴을 감시하러 온 것이 분명했고 이를 숨기지도 않았다. 알렉스 킴에게 명령을 하거나 예의없이 굴지는 않았다. 원래 칼 크루거와는 오래전 훈련을 같이 받은 적도 있었고 두 명 모두 알렉스 킴보다 기수가 낮았다.


하지만 그들이 알렉스 킴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그런 것들을 크게 신경쓰지는 않았다. 알렉스 킴이 하는 일에서는 이런 경우가 허다하다. 알렉스 킴을 아침부터 심란하게 만든 것은 다른 것, 오늘 아침 뉴스에 나온 기사였다.


– 포토맥 강변에서 신원미상 남성의 시신 발견. 조사결과 전 백악관 직원으로 밝혀져.


‘제리코!’


보통 제대로 일을 처리하면 시신이 나타나지도 않는다. 그냥 사라져버리거나 나타나도 누군지 알 수 없도록 한다.


하지만 이번 경우엔 일부러 신원을 확인할 수 있게 하여 경고를 하는 것이었다.


그 경고의 대상은 바로 알렉스 킴 자신일 것이다.


알렉스 킴이 커피잔을 세게 내려 놓으며 중얼거렸다.


“개디스 장군. 이건 아니잖아.”


그 소리가 컸는지 크루거 요원이 아무 표정없이 그를 바라본다.


* * *


[워싱턴 DC 교외의 소도시 알렉산드리아]


밤 비행기를 타고 하와이를 떠나 워싱턴 DC에 도착했다. 또다시 렌트카를 빌려 찾은 곳은 알렉산드리아라는 곳.


“조용한 동네군. 아이들 키우기엔 좋겠어.”


– 똑똑똑.


“고든 맥브라이드씨!”


하나같이 똑같이 생긴 넓직한 집들이 나란히 줄지어 있는 전형적인 미국 중산층 동네였다. 문을 두드린지 얼마지나지 않아 통통한 몸매의 백인 남자가 나온다. 내 나이 또래.


“누구시죠?”


“증권거래위원회에서 나왔습니다.”


순간 놀라는 듯 하더니 나름의 반격을 한다.


“그래요? 신분증좀 보여주세요.”


미리 준비했던대로 사실을 말했다.


“... 사실은 증권거래위원회에서 나온게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 제게 협조하지 않으신다면 장담컨대 다음 방문자는 증권거래위원회 아니면 검찰일 겁니다. 엔론에 관한 일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날 잠시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마치 이런 날이 올 것을 예감하고 있었던 듯 놀라지도 않았다.


‘보통 밑에있는 실무진이 더 쉽게 불어버리는 경우가 많지. 걸려도 형량이 적거든. 감옥가는 건 마찬가지지만서도.’


이번 일에 개입된 사람중 가장 쉽게 설득할 수 있는, 한마디로 가장 만만한 인물로 찜했었는데 다행이 내 예상이 적중했다. 생각보다 쉽게 일이 풀려나간다.


“아내에게 말을 하고 나오겠소. 밖에서 얘기합시다.”


고든 맥브라이드는 아이가 없었다. 한편으론 다행이다. 미국은 금융범죄 등 화이트컬러 범죄죄에 대한 형량이 높아 꽤 오래 감옥에 있을 것 같다.


그가 나오자 내 렌트카를 타고 아더 앤더슨의 워싱턴 본사 건물로 향했다. 서로 아무 말이 없었다.


‘고분고분해서 다행이네.’


“도대체 언제부터 이런 일을 벌린거요? 엔론하면 혁신의 상징같은 기업이고 그동안 젊은이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던 그런 회사 아니었소?”


사실 답을 알고 있는 질문을 한 것이다. 답을 들어보면 이놈이 어떤 놈인지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간 이메일에 적혀 있던 이름만을 보고 나혼자 상상해왔던 것과 딴판이었다. 고든 맥브라이드는 성실하고 착해보였다. 외모도 그렇고 지금 말을 하는 모양새도 그렇다. 이런 일에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속은 알 수 없는 거지만.


자포자기한 표정. 고든 맥브라이드가 한숨을 크게 내쉬더니 얘기를 시작했다.


“어느 회사나 그렇듯이 돈을 잘 벌 때는 문제가 없지요. IT 버블이 붕괴되고 돈이 벌리지 않으면서 덮어졌던 문제들이 하나둘씩 나온 겁니다. 마치 물이 빠지니 강물 바닥에 박혀 있던 시체들이 나타나는 것처럼요.”


“저는 엔론과 일을 하며 이 회사가 어떻게 비약적인 성장을 했는지 또 어떻게 점점 탐욕이 회사를 갉아먹었는지를 모두 봤습니다.”


고든은 원래 엔론의 직원으로 일하다가 회계사 자격증을 받은 후 회계법인으로 이직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직도 엔론을 자신의 친정으로 생각하는 듯 하다.


회계법인에 들어간 후 크리스토퍼 러셀과 함께 엔론의 회계감사 업무를 아더 앤더슨이 수주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한다.


“엔론은 본질적으로 석유에너지 유통회사입니다. 에너지를 싸게 사서 마진을 받고 파는 것이 업무죠. 그런데 뭔 맥킨지 경영 컨설턴트들인지가 들어와서는 고정비가 많이 드는 석유를 비축하지 말고 선물시장에서 거래를 하라는 둥 비지니스 성격 자체를 바꿔버렸죠. 효율성을 추구한다는 명목으로요.”


“처음엔 꽤 성과가 났습니다. 그랬더니 왠걸 그 컨설턴트들이 아예 사장과 임원자리를 다 차지해버렸지요.”


그가 하는 말을 듣고만 있었다.


“여기까지도 괜찮았어요. 경기가 좋았고 IT붐에 따라 통신망 투자한 것도 꽤 전망이 좋았았거든요.”


“그런데 이제 버블이 꺼지니 여기저기 적자 투성이인 것이 나타났죠.”


난 이미 엔론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사실 엔론은 경기가 나빠지기도 전에 속으로 곪아가고 있었다. 금전적으로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심지어 캘리포니아에서는 단가를 맞추기 위해 전략적으로 에너지 공급을 줄여 대규모 정전사태를 야기하기까지 한 전력이 있다.


“이것은 이번 엔론 뿐 아니라 이 나라 대기업 전체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자체적으로 잘못을 고치고 정화할 능력을 이미 상실했어요. 탐욕에 눈이 멀어서.”


고든의 설명은 나에게 들으라기 보다는 자기 한탄 같았다.


“사실 희생을 감수하고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했으면 이 지경까지 이르지는 않았을텐데··· 사람들의 기대가 너무 컸습니다. 다들 설마 엔론이 그럴리가 라는 생각을 했어요. 주주들은 대놓고 경고하기 시작했고 특히 기관들은 뭔가 주가를 올리는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임원들을 자른다고 무언의 협박을 하기 시작했죠.”


“CEO나 CFO도 당장 자신들이 받고 있는 연봉이나 여러 혜택들을 내려놓을 생각이 없었지요. 여기서 혜택이란 것들이 좀 웃깁니다. 내려놔도 전혀 먹고사는데 지장없는 것들이거든요. 예를 들자면 자신이 갖고 있던 맨하탄 럭셔리 아파트, 요트, 마이애미 별장 이런 것들을 내놓기 싫었던 겁니다.”


‘그런데 당신 사는 집은 럭셔리 하곤 좀 거리가 있던데 뭔 소리야.’


내가 빤히 쳐다보자 눈치빠르게 내 의중을 알아챈다.


“물론 저는 맨하탄 아파트니 요트니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여기에 가담했냐고요? 저도 탐욕스럽긴 마찬가지였죠. 제 나름의 수준에서 말이에요. 아내가 몸이 좋지 않습니다.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희귀병을 가지고 있어요. 당장 죽지는 않지만 죽을 때까지 약을 먹어야 해요. 약값과 치료비가 만만치 않았죠.”


“그런데 크리스토퍼 러셀이 그런 자질구레한 문제들을 한방에 해결해줬죠. 저는 파트너급이 아니면서 회사에서 가장 보너스를 많이 받았으니까요. 이제 약값 걱정없이 넉넉하게 살 수 있어요. 편한 길을 택한 것이었습니다. 잘못된 것인줄 알면서. 그리고 지금 그 댓가를 치르고 있네요.”


개인적인 사정을 들으니 미안한 감정이 조금 들었다. 하지만 그가 범죄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누구나 다 사정이 있는 법이지. 딱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계속 적자가 누적되자 결국 이사회에서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고 결국 방법을 찾은 겁니다. 가장 잘못된 방법을.”


그 후에 설명해준 것은 마이크 한이 예전에 술 마시며 말해줬던 수법과 그대로 일치했다.


그들이 가짜 매출을 일으킨 것은 마크투마켓 이라는 회계기법. 자신들의 임의적 기준으로 수익을 기록하고 손실이 나는 경우에는 특수법인들을 이용해 그곳에 모두 숨겨버렸다.


이미 알고 있던 일이지만 고든의 말을 계속 듣다보니 울화가 치밀었다. 바로 얼마 전까지도 IMF를 통해 우리기업들의 회계제도에 대해 후진적이고 불투명하다고 하던 놈들이다.


“아니 이 새끼들은 더하면 더했지 전혀 우리보다 나은 것도 없구만. 이런 놈들이 그동안 우릴보고 뭐라 했던거야? 열받네. 이거 우리보다 더 나쁜 놈들 아니야! 한국의 기업들은 정부 눈치라도 보지, 이것들은 지들이 정부 관료가 되고 하니 견제도 안되네. 지들끼리 다 해쳐먹는구나.”


내가 한국말로 소리를 치니 고든 맥브라이드가 자신에게 욕을 한 것인줄 알고 몸을 움추린다.


그 후론 가는 길 내내 서로 침묵했다.


고든의 사무실에 도착했다.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운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으로 올라갔다. 전형적인 미국 사무실 구조. 복도를 따라 조그마한 사무실이 늘어서 있었다. 이중 하나가 고든 맥브라이드의 사무실이고 코너쪽에는 크리스토퍼 러셀의 사무실이 있을 것이다.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간 고든 맥브라이드가 열쇠를 가지고 나왔다. 비장한 표정을 하더니 말한다.


“이제 자료를 주면 나는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가는거죠?”


뭐라 위로가 될 만한 말을 찾았지만 그럴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이제 나에게 자료를 넘겨주고 검찰에 자수할 것이며 긴 재판과정이 지나면 대략 5년 정도 수감생활을 할 것이다. 임원급이 아니기에 형량이 아주 높지는 않지만 이제 빨간줄이 그어지면 이쪽 분야에서 일자리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네. 하지만 그게 옳은 길입니다. 그 방법 외의 길은··· 권장하고 싶지 않군요.”


비통한 표정으로 화일 캐비닛을 열더니 커다란 화일서류 박스를 하나 건네준다.


“필요없는 것도 끼어 있지만 여기서 찾으시면 됩니다. 원하시는 자료는 여기에 모두 다 있습니다. 하나하나 분류해드리기엔 시간이나 정신적 여유가 없네요.”


일핏 들춰본 서류중 눈에 들어오는 것은 랩터/탈론, LJM1, LJM2 이라고 불리는 특수법인들이었다.


‘렙터? 맹금류? 거참 작명센스하고는. 뭔 법인 이름을 이렇게. 이름도 참 유치하게 지어놨네.’


나는 유학시절 수업을 통해 엔론이 어떻게 이들 특수법인들을 통해 본사의 손실을 숨겨왔던 것을 배운 적이 있다. 이들 특수법인은 원래 기업의 위험을 분산시키고 채무부담을 덜어줄 목적으로 생겨난 합법적인 제도지만 엔론은 온갖 파생상품 거래를 통해 이를 악용해왔었다.


“이 특수법인들을 통해 어떻게 손실을 숨긴겁니까?”


그는 쉽게 설명을 잘했다.


“마크투마켓이라는 장부기록 방식을 통해 마음대로 수익을 부풀리고 또 그를 통해 올라간 주가를 이용해 특수법인들이 그 주식을 담보로 외부에서 돈을 빌리고, 그렇게 들어온 현금은 임원들이 흥청망청 써버린 거죠.”


고든 맥브라이드가 박스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서류철을 꺼내들더니 그것을 따로 챙겼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있었습니다. 이 서류는 그런 날을 대비해서 제가 모아둔 것들입니다. 어쩌면 이게 지금 상황에게 제게는 유일한 낙하산일 수도 있겠군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내게 서류철을 건네준다. 건네준 서류들의 가장 앞에 나와 있는 인물.


현직 국무장관 버나드 스트라우스.


“아 맞다. 그가 예전엔 엔론의 CEO였지. 이렇게 되면 일이 점점 커지는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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