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실기 (2)
13.
슈우우-
차원의 틈새를 넘어, 어느새 나는 행성 과아나크에 와 있다.
이유는 [이니시움 아카데미]의 실기 평가. 그리고 내 옆에는 같은 조원인, 무모할 정도로 기세등등한 한겨울이...
어라?
“너 어디 아프냐?”
“... 신경 꺼.”
후... 참자.
아무튼 한겨울의 상태가 좀 이상하다.
[순간이동 키트] 사용할 틈만 노리느라 몰랐는데, 얘 얼굴이 좀 빨갛다. 땀도 흘리고 있고... 나는 녀석의 이마에 손을 올린다.
“뭐 하는 거야? 이 쓰레...”
“가만히 있어봐. 임마.”
왜 이리 발악을 해. 어차피 지금은 너 못 죽이니까 걱정하지 마라.
척-
난 왼손으로는 한겨울의 이마에, 오른손은 내 이마에 대 본다. 아. 얘 열이 좀 있네.
“너 감기인거 같은데 좀 쉬지? 이번 실기평가는 포기...”
“포기? 미쳤어? 그리고, 누가 내 몸에 손대래? 죽고 싶냐?”
죽고 싶냐고? 널 죽이고 싶다. 평판을 생각하며,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라앉힌다.
“그러면 뭐... 잘 해 보던가.”
“그럴 거야. 넌 0.9인분 할 준비나 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이 쓰레기야.”
진짜 말끝마다 쓰레기, 쓰레기. 죽을라고.
아무튼, 지금은 실기평가에 집중할 때다.
수행관의 모의 던전 시뮬레이터와 달리, 실기평가는 [청소], [탈취], [구출], [암살], [호위] 다섯 개의 큰 줄기만 알려줄 뿐 구체적인 목표를 정해주진 않는다.
그런 의미로 오늘 실기평가의 주제인 [청소]는 꽤나 편리하다.
보이는 대로, 다 죽이면 되니까.
“구루루루루국국!”
“미야야아아오!”
보아하니 과아나크의 대형 공원 [퍼플호크 파크]에서 발생한 뮤턴트는 두 종류다.
[시즈 피존]과 [벌처 캣].
물론 설명은 [빅 데이터]게 맡긴다.
[ 시즈 피존 ( 8급 ) ]
[ 피자와 중금속을 지나치게 많이 섭취하는 바람에 몸이 무거워진 비둘기가 마나 파동으로 변이한 생물. 움직일 수 없는 대신, 폭발하는 알을 집어던지며 자기 영역 내에 들어오는 적들을 처치한다. 벌처 캣과 공생하는 관계. ]
[ 마나량 : 70 ~ 85 ]
[ 벌처 캣 ( 7급 ) ]
[ 도둑고양이가 마나 파동으로 변이한 생물로, 엄청나게 빠르고 좁은 틈이라도 비집고 들어오는것이 특징. 어린 아이들을 주로 먹으며, 초등학교 안에 두 마리만 들어오더라도 순식간에 씨가 마른다고 전해진다. 시즈 피존의 알을 3개씩 들고 다니며 지뢰처럼 이용한다. 시즈 피존과 공생하는 관계. ]
[ 마나량 : 체감상 100 ]
다 좋은데 체감상 100은 뭐야? 빅 데이터 혹시, 위키 형식으로 된 데이터베이스였나?
아무튼, 자리 잡은 시즈 피존과 벌처 캣에게 달려드는 것은 자살행위다. 아카데미 1학년들이라면 거의 공통적으로 듣는 [뮤턴트 생태학] 교과서에도 적혀 있을 정도로 공공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먼저 들어갈 거니까, 엄호해.”
한겨울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한 걸음 한 걸음 놈들에게 다가간다. 마법사가 앞장서는 것도 이해가 안 되는 행위지만, 무엇보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야. 너 필기 12등 맞냐? 시즈 피존이랑 벌처 캣한테 정면승부를 하는 건 병신짓이야.”
“알아. 근데 어쩌라고, 인원이 둘뿐인데. 싸워 보지도 않고 도망치는 것보다는 낫지.”
한겨울 얘는 진짜 무식한 건지, 용감한 건지 모르겠다. 일단 나는 멍청하다에 한 표 던지겠다.
하지만 니가 죽으면 내가 곤란하다, 이 말이야. 난 재빨리 움직여 한겨울의 앞길을 막아선다.
“자. 생각을 해 보자. 지금 저기 퍼플호크 파크 안에는 대충 [시즈 피존]과 [벌처 캣] 뿐이잖아?”
“그래서?”
시즈 피존이나 벌처 캣이나, 대공에서 오는 공격에는 방어할 수단이 없다. 그 역할은 8급 뮤턴트 [골리앗 몽키]가 보충해주는 역할이다.
그리고 지금 퍼플호크 파크 안에는 [골리앗 몽키]가 없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공원에는 원래 원숭이가 없기도 하니, 당연하다.
“그래서라니. 그러니까 [부착형 드론] 끼고 공중에서 치자고. 정 안되면 적당히 높은 건물 올라가서...”
“난 못 해.”
단호하게 거절하는 한겨울. 하긴, 얘는 멍청하지 무식하진 않다. 이해가 안 되는 판단을 할 뿐, 지식은 모자라지 않는다. 공중에서 공략하는 것쯤은 떠올렸을 것이다.
“왜? 고소공포증이라도 있냐?”
“아니. 내 마나량에서 나오는 마법으로는 어차피 쟤네 사정거리 밖에서 안 닿아. 그러니까 비켜. 쓰레기야.”
... 어이가 없다.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긴 하지만, 또 말이 안 되는 말이다.
“멍청아! 화염계 마법만 고집하니까 그러지! 전류계를 써!”
화염계 마법이 컨트롤이 필요 없는 대신 마나량만으로 쓸어버리는게 가능한 반면, 전류계 마법은 컨트롤만 좋으면 마나량과 상관없이 효율적인 파괴가 가능하다. 왜 자꾸 맞지도 않는 옷을 입으려 하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
“아. 좀! 0.9인분만 하랬지! 앞길 막지 말고 빨리 비켜!”
“그래! 가서 알맞고 뒤져버려! 답답해 죽겠네! 전류계 마법 썼으면 존나 쉽게 잡을 건데!”
라인하르트가 틀렸다. 얘는 조언을 해 줘도 들을 생각도 안하는 머저리다! 등신 같은 년! 용감하게 죽은 사람은 ‘저쪽 세계’에서 수천 명도 더 봤다!
-구루루구루국!
-구구국!
한겨울이 [퍼플호크 파크]안에 발을 디디자, [시즈 피존]들이 짖어대며 자신들의 영역을 주장했다.
그러나 한겨울은 멈추지 않는다.
- 까우우욱!
한겨울이 한 발짝, 한 발짝 더 다가 들어감에 따라 괴상한 형태의 비둘기들은 자신의 알을 입에 문다. 이제 곧 시즈 피존의 알폭탄들이 쏟아질 것이고, 그 중 하나라도 맞으면 쟨 확실히 죽는다.
그럼에도 한겨울은 멈출 생각을 않는다. 아니, 난 쟤한테 생각이란 게 있는지 그 자체가 의심스럽다. 왜 안 되는 일을 저렇게 무리해서 하려는 걸까? 이해가 안 된다.
“꾸우욱!”
알 세례가 쏟아진다. 크지도, 빠르지도 않다. 피할 만한 수준이다. 문제는 ‘알’이 다가 아니라는 거다.
콰콰쾅!
후두두둑-
폭발과 함께 흙먼지가 피어오른다. 잔디로 뒤덮여있던 공원은 마치 포크레인으로 파헤친 것마냥 뒤집어졌다.
하지만 한겨울은 아슬아슬하게 알들을 피해내며, 마법을 준비한다.
그 종류는... [파이어 볼트].
그래. 아주 멍청하진 않구나. 지금은 큰 마법보다 짜잘한 마법을 단타로 꾸준히 날리는 게 현명한 판단이다. 큰 마법은 마나가 흩어질-
-먀아아오!
“...!”
멍청이.
시즈 피존의 알만 신경 쓰다가 벌처 캣한테 뒤를 잡혔다.
뒤늦게나마 알아챈 한겨울이 [파이어 볼트]의 방향을 틀어 벌처 캣들에게 날린다. 그런데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 같다.
화아아아!
한겨울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 여자가 벌처 캣들을 못 맞출 정도로 실력이 형편없는 건 아니다. 다섯 마리밖에 격추시키지 못했다.
“미야아!”
세 마리가 마법을 뚫고 한겨울의 목덜미를 물어뜯으러 달려든다.
젠장.
젠장!
“먀아-”
서걱! 투둑.
좆냥이 세 마리가 공중에서 반으로 갈라져서 죽는다. 물론 한겨울이 해낸 일은 아니다.
[ 마나가 올랐습니다. ]
[ 마나량 : 413(-24631) -> 415(-24631) ]
내가 한 일이다. 나의 손에는 단검 크기의 마나 사브르가 푸른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다.
“멍청한 년아! [벌처 캣]은 생각 안 하냐? 알에만 정신 팔리면 뒤진다고!”
“... 엄호 잘 하네. 계속해.”
도와주기 싫었다. 진짜 아카데미 내 평판만 아니면 절대 도와주고 싶지 않았다.
“넌 대체 생각이란 걸...”
-꾸우우욱!”
알들이 다시 한 번 폭격처럼 떨어진다.
콰과과광! 후두두둑-
나는 당연히 알에 맞지 않는다. 한겨울도 알 정도는 알아서 잘 피한다.
아무튼, 이건 용감한 게 아니라 그냥 멍청한 거다.
저번 오류 시나리오에서 좀비 킹과 맞섰을 때도 그렇고, 한겨울 이 여자는 불가능한 걸 자꾸만 시도하려 한다.
그래. 시도하는 거 좋다 이 말이야. 근데 남한테 피해는 주지 말아야지.
왜 항상 내가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냐는 거냐고. 이럴 거면 차라리 도와주지 말 걸 그랬다. 죽게 내버려 둘 걸 그랬다.
허나 후회해봐야 이미 늦었다.
- 미야아아오~
수십 마리의 벌처 캣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일부는 시즈 피존들을 감싸고 나머지는 나와 한겨울의 퇴로를 차단한다.
- 구루루루룩!
어느새 비둘기들의 주둥이에는 다시 한 번 알들이 장전되어 있다. 원거리는 시즈 피존이 담당하고, 다가오는 적들은 벌처 캣들이 교란하며 물어뜯는 사기적인 진형이다.
내 마나량 약 400, 한겨울 마나량 450 언저리. 일반적인 경우라면 정면승부로 뚫는다는 발상 자체가 병신-
콰과과광!
다시 한 차례 알들의 세례가 쏟아지며, 공원이 한바탕 뒤집어진다. 그럼에도 한겨울은 멈추지 않는다.
“엄호해. 시즈 비둘기만 죽이면 되니까.”
안 되겠다. 저 미치광이 정신병자에 맞춰 주다가는 나까지 위험하게 생겼다.
나는 마나 사브르를 꼬나쥐고, 한겨울 앞으로 나선다.
“야. 한겨울. 지랄 말고 니가 엄호해.”
“너는 니 할 일이나...”
“지금 니 꼬라지나 보고 말 해. 내가 안 구해줬으면 니는 벌써 뒤졌어.”
“D판정 주제에...”
“그럼 한번 보고나 말해. 이 쓰레기야.”
한바탕 쏘아붙인 나는 호흡을 가다듬는다. 벌처 캣이 30마리, 시즈 피존이 15마리 정도고, 이미 자리잡은 상태.
아마 아카데미의 학생이 이걸 혼자서 클리어하려면 마나량 800은 필요할 것이다.
내 마나량은 고작 420정도. 하지만 ‘양’에다가 ‘실력’을 가미하면, 어렵지만 충분하다.
난 ‘이쪽 세계’로 왔을 때부터, 실력을 숨길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오히려 힘을 쓰면서 펑펑 놀 생각이었다가 계획이 꼬인 것 뿐.
낭중지추(囊中之錐)라고, 어차피 강한 자는 두각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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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학교 인트라넷에 실기평가 점수가 공지됐다.
[ 실기평가 성적표 ( 3월 3주차 ) ]
[ 장소 : 행성 과아나크 - 퍼플호크 파크 ]
[ 주제 : 청소 ]
[ 채점관 : 핸슨 최 ]
[ 총평 : 시즈 피존과 벌처 캣을 정면으로, 그것도 단 둘이서 뚫어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준다. 특히, 시즈 피존이 알을 물었을 때를 저격한 권민성 생도의 행동은 매우 훌륭한 임기응변이었다. 그러나 정면돌파를 선택한 것은 감점 요인이 되었다. ]
[ 기여도 : 권민성 89% , 한겨울 11% ]
[ 점수 : 권민성 A. 한겨울 B- ]
솔직히 성적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어차피 지금 수준으로도 2학년 2학기까지는 쉽게 뚫을 수 있으니까.
다만 언제나 그랬듯, 문제는 한겨울이다.
아. 물론 걔 점수가 망한 건 내 알 바 아니다. 그건 문제가 아니라 호재다.
내가 말하는 문제는,
[ 마나를 되찾았습니다. ]
[ 마나량 : 415(-24631) -> 615(-24431) ]
‘저쪽 세계’에선 아무것도 아니던 한겨울 때문에, 대량의 마나를 되찾았다는 것이다.
“씨발...”
욕이 절로 나온다. 좀비 킹 때에 이번이 두 번째다. 힘을 되찾았지만, 힘을 되찾을 방법이 묘연해진 경우 말이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한겨울 이 망할 년이 연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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