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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내 힘 돌려줘요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완결

가시멧돼지
작품등록일 :
2021.09.03 13:06
최근연재일 :
2022.11.14 00:13
연재수 :
18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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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7,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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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47
글자수 :
948,632

작성
21.09.1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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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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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글자
12쪽

15. 유아라 (1)

DUMMY

15.


이니시움 아카데미. 기숙사. C동 1701호. 내 방.


‘룸메이트’ 박준 사부는 자신의 침대에 걸터앉아 아무 말도 없다. 나는 벌 받는 자세로 무릎 꿇고 앉아 있다. 왜 그래야 하는 지 정확히 모르지만, 단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방에 들어오자마자 자연스레 무릎을 꿇었다.


박준 사부가 내려다보는 시선에 살의(殺意)는 없지만, 그래도 무서운 건 무서운 거니까.


한참이나 말이 없던 박준 사부가, 입을 뗐다.


“편히 앉아.”


진중하고 낮게 깔린 목소리. ‘이쪽 세계’에서 박준 사부는 나랑 고작 한 살 밖에 차이나지 않음에도, 박준 사부에게는 카리스마라는 게 있다.


교수나 교관들처럼 권위에 빌어서 군림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 자체에서 나오는 카리스마다. 두렵기도 한 반면, 멋지다고도 생각했다.


그런데 ‘이쪽 세계’의 박준 사부는, ‘저쪽 세계’와 묘하게 다르다.


“이게 편합니다!”


“... 편히 앉으라니까.”


나는 재빨리 양반다리 자세로 고쳐 앉는다.


“왜 방 놔두고, 공원에서 자.”


“그게...”


“내가 많이 불편해?”


불편하다. 뭐가 불편하냐 하면, 말투가 많이 불편하다. ‘저쪽 세계’의 박준 사부는 내게 ‘해라체’를 썼다.


밥 먹어라. 그만 해라. 싸우지 마라. 싸워라. 정예원한테 반말하지 마라. 유링링 잘 챙겨라 등등...


그런데 ‘이쪽 세계’의 박준 사부는 내게 ‘해체’를 쓴다.


그 괴리가 너무나도 불편하다. 하지만 굳이 말하지 않는다. 아직 죽기엔, 너무 못 놀았으니까.


“저번에는 미안해. 내 침대에 누가 있어가지고 확 돌아버리는 바람에...”


“아닙니다! 전부 다 제 잘못입니다!”


“쉿. 조용히 하라니까. 그리고 말도 편하게 해.”


“...”


“몰랐겠지만, 사실 난 내 공간에 남이 들어오는 걸 굉장히 싫어하거든.”


그 정도는 알고 있다. 몇 년을 같이 살았는데.


하지만.


“룸메이트인지는 몰랐어. 그날 나 때문에 놀랐다면 미안해. 아무튼 내 침대만 건드리지 않으면 편하게 있어도 좋아. 아, 책상도 건드리면 안 돼.”


“...”


나는 9살 때 박준 사부를 처음 만났다.


그러니까, 시기상으로는 지금으로부터 4년 뒤의 일이다.


당시의 나는 [1차 기업대전]때 폐허가 되어버린 행성 패러독스에서 음식물 찌꺼기를 뒤져 먹거나 도둑질을 하며 살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박준 사부는 친(親) 우주연합 성향이었고, 우주연합이 선정한 정치범 ‘델 라샤’의 뒤를 쫓아 패러독스에 와 있었다.


뭐. 그 이후는 진부한 이야기다.


도시락을 훔치고 도망치던 나는 시가지를 뒤지던 그와 부딪혔고, 그는 자신의 공간을 침범한 아이를 용서할 수 없었다. 당연히 죽이려고 들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연유로 [디멘션 브레이커]가 사라졌고, 박준 사부는 그 꼬맹이에게 흥미를 느껴 자신의 제자로 삼았다...라는 이야기. 동화에나 나올 법한 일이지만, 아무튼 나는 9살부터 박준 사부를 봐 왔다.


하지만.


“편하게 있어. 여긴 내 방이지만 네 방이기도 하니까.”


난 박준 사부의 이런 모습을 본 적 없다. 그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자신의 공간을 남과 공유하지 않는다.


“...”


“후. 하긴 뭐, 그 때 내가 한 일을 생각하면 편하게 있기 쉽지 않지. 머리카락을 다 밀어버릴 생각이었으니까.”


그 [디멘션 브레이커]가 죽이려는 게 아니라, 머리를 밀어버리는 의도였다고? 말이 안 된다. 박준 사부는 잔인한 사람이다. 인정사정 봐 주는 것은 그와 어울리지 않는다.


“제 잘못입니다!”


“아냐. 내가 노크라도 할 걸 그랬는데.”


인류의 희망, 박준은 오만한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반성과 배려는 더더욱 어울리지 않는다. 조금 혼란스럽다.


내가 대답이 없자, 박준 사부는 침대에 걸터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도, 내일부턴 편하게 쓸 수 있을 거야. 한동안 내가 아카데미에 돌아올 일이 없으니.”


“어... 어디 가십니까?”


“말 편하게 하라니까.”


“어디... 가세요?”


“세르부스. 일이 있거든.”


이 시국에 세르부스. 떠오르는 사건이 하나 있다.


[ 세르부스 대폭동 ( 우주력 886 ) ]


[ 우주력 885년, 행성 세르부스의 주 수입원, 마나석 광산을 우주연합이 관리하겠다고 선언한 것에 반발한, 세르부스 주민들이 일으킨 폭동. 이 사건 내에서 114명의 정치 및 불온분자들이 수감되었으며... (더보기) ]


[빅 데이터]가 적절하게 내가 생각한 사건을 띄워 준다.


하긴, 학교 여기저기 붙은 대자보들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공통사건]은 전조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박준 사부는 이미 헌터다.


헌터는 우주연합으로부터 엄청난 특권을 받으며, 우주연합과 대등한 위치에 앉게 된다.


그들을 위해 일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을 이유는 없다. [국가형 기업] 우주연합의 이사급 계약직을 누가 마다하겠는가.


온 우주의 인구가 400억이 넘음에도, 헌터는 전 세계의 3000명 정도밖에 없다. 좀 웃기는 건, 전쟁으로 온 우주의 인구가 3000만으로 줄었을 때도 헌터는 2000명이 살아남는다는 것이지만...


“아마 한 달 넘도록 안 들어올 테니까, 그 동안은 편하게 써.”


풀썩-


그리 말한 박준 사부는, 뒤로 엎어지며 자신의 침대 위에 대자로 누웠다.


... 기회는 지금뿐이다. 나는 용기를 내 그에게 말을 건다.


“저기요!”


“응?”


누워 있던 박준 사부는 다시 몸을 일으켜 세우면서, 싱긋 웃는다. 어울리지 않는 그 모습에, 나는 더 큰 용기를 내며 묻는다.


“사... 사부라 불러도 되겠습니까?”


저질렀다. 박준 사부에게는 뜬금없겠지만 내게는 매우 중요한 질문, 그는 나의 물음에 피식 웃더니,


“사부는 무슨. 편하게 형이라 불러.”


이라 말하고는 다시 풀썩- 침대에 눕는다. 나도 바닥에서 일어나 한 달 만에 침대에 눕는다.


천장을 바라보다 팔로 눈을 가린다.


그럼에도 망막에는, 하나의 상이 맺힌다. [빅 데이터]의 마나 스캔이다.


[ 마나를 되찾았습니다. ]

[ 마나량 : 940(-24187) -> 990(-24137) ]


마나량이 이제 1000에 육박해 간다. 아카데미에서 2학년 2학기로 넘어가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실력까지 더하면, 이미 3학년 1학기까지는 프리패스다.


지금 2학년 200명 중에서 아마 마나량이 나보다 많은 사람은 3명이 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소속된 기수가 [어둠의 세대]라고 불릴 정도로, 유아라를 제외하면 인재가 없는 것을 감안하면 말이다.


아무튼, 역시 ‘호감도’가 정답이었다.


저번에 박준 사부와 별로 좋지 않은 만남을 했을 땐, 마나를 되찾을 수 없었다. 허나 이번에는 조금이나마 좋은 인상을 남기니, 곧바로 마나를 되찾았다.


그럼 한겨울이... 아니다. 걔는 그냥 예외. 이제 확실한 목표가 생겼다. 그것은 바로, 떨어져버린 평판을 회복하는 것. 그래야 호감도를 얻을 테니까.


나는 주먹을 꽉 쥔다.


“내일부터는 좀 바빠지겠네.”


“하하.”


내 혼잣말을 들은 박준 사부가 웃었다. 창피하다.


나는 그를 등지는 방향으로 눕는다. 그나저나... 확실히 ‘뭔가 다르다.


내 옆 침대에 있는 남자는 내가 아는 박준 사부가 확실한데, 내가 모르는 사부다.


지금으로부터 4년간 무슨 일이 있어서 박준 사부가 성격이 바뀐 건지, 아니면 평행세계가 갖는 특수성인지.


지금의 나로서는 알 방법이 없다.


힘을 되찾다 보면, 무언가를 알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


이튿날, 수업이 끝났다.


[ 유링링 -> 권민성 : 오늘도 3시에오 ]

[ 유링링 -> 권민성 : 기다릴게오 ]


역시 다음 일과는, 멘토링을 위해 링링을 만나러 가는 것. 셔틀을 타고 도서관 앞에서 내려, 그룹학습실을 향해 걸어간다. 오늘 멘토만 딱 끝나면, 지원금이 내 학내 통장으로 들어올 것이다.


이번 주말엔 그 돈으로-


띠링!


[ 전체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

[ 제목 : 5월 첫째 주 실기평가 미실시 및 중간평가 공지 ]

[ 보낸이 : 이니시움 아카데미 학생처 ]

[ 다음 주 금요일에 있을 중간평가 준비를 위해, 이번 주에는 실기평가를 미실시함을 공지합니다. 또한 다음 주에 있을 중간평가에는 특별한 졸업생들과 11개 대기업이 참관하게 될 것이며... (더보기) ]


더보기를 눌러 전체 메일을 확인한다.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이번 주 실기평가는 취소. 다음 주 중간평가 때는 대기업이랑 졸업생들이 올 테니 잘 준비하라는 내용이다.


“힘을 되찾을 좋은 기회네.”


이니시움 아카데미의 졸업생들 중에서는 ‘저쪽 세계’의 유명인이 많다. ‘매지시아 컴퍼니’의 [홍염의 기사] 한가을이라던가, ‘레스큐 코퍼레이션’의 [복룡] 남재진이라던가.


그들과 대화하는 것으로도 호감도를 얻을 수 있다면, 마나를 되찾을 수 있다면. 중간평가는 확실한 기회다.


“저기요오.”


멘토링을 때문에 도서관으로 들어가려는데,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여자가 내게 말을 건다.


발걸음을 멈추자, 그녀가 흐물흐물 다가온다.


“저 아시죠오? 기다리고 있었어요오.”


모를 리가 있나.


살랑살랑한 머리에 서글서글한 눈매. 석봉이처럼 토실토실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근육이라고는 찾아볼 데 없어, 근접전에는 완전 쓸모없는 몸. 유링링의 ‘호적상’ 언니이자, [슈마허 인더스트리]의 외동딸 유아라다.


“알지. [의무]반의 유아라.”


“저희 전에 얘기한 거 기억나세요오?”


물론 잊지 않고 있다. 학기 초, 내 평판이 지금보다 더 쓰레기였을 때도 꽤나 오래 대화를 해 준 마나 25짜리 소중한 인연이다.


“당연히 기억하지.”


“아하아. 잘 됐네요오. 기억하지 못할까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는데요오.”


조마조마했다고?


거짓말. [인베스터] 유아라는 절대로 긴장하지 않는다.


애초에 유링링이 만들어내는 분신 [페르소나]가 갖는 발랄하고 활기찬 자아는, 그녀의 언니를 모티브로 만들어졌으니까.


단지 유아라는 자신의 이득을 위해 ‘부드럽고 착한 성품의 사람’을 연기하고 있는 것뿐, 그녀의 본성은 굉장히 철저하고 계산적인 사람이다.


단적인 예로 지네 가문 기업인 [슈마허 인더스트리]의 번영을 위해-


“무슨 생각 하시나요오?”


“니 생각.”


“호오. 제 생각이요오?”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실제로 유아라 생각 하고 있었으니까. 단지 ‘저쪽 세계’의 유아라일 뿐이지만. 나는 화제를 돌린다.


“아무튼, 무슨 일로 날 기다렸는데?”


“말하자면 길어요오.”


유아라랑 말하면 길어질 수밖에 없다. 그녀의 컨셉은 끝이 늘어지는 말투니까.


나는 솔직히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답답해서 별로 좋아하진 않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리 생각하지 않나 보다. 실제로 유아라의 평판과 나의 평판은 태양과 쇠똥구리의 똥뭉치 만큼이나 차이가 난다.


“그럼 짧게 말해.”


“그러지 말고오. 저랑 저기 도서관 카페 가서어. 얘기 좀 해요오.”


유아라의 호감도를 얻어서, 나쁠 건 없지. 나는 마나블렛의 시간을 체크한다. 오후 2시 10분. 멘토링은 3시니까 딱 40분 이야기하고, 링링을 만나러 가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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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6. 의뢰 (1) +4 21.09.15 4,767 13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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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유아라 (1) +3 21.09.11 5,161 13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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