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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내 힘 돌려줘요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완결

가시멧돼지
작품등록일 :
2021.09.03 13:06
최근연재일 :
2022.11.14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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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1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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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3. 눈의 행성 (6)

DUMMY

33.


“헌터 약쟁이?”


“그래. 해리 홍이라는, 그저 헌터 약쟁이다. 에브게니아 A-024 지구의 대저택에 살고 있지. 참고로 뒤처리는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어떻게든 은폐해 줄 테니까.”


해리 홍. 도재영의 말에 [빅 데이터]가 절로 반응했다.


[ 해리 홍 ( 32세 ) ]

[ 미래의 이명 : 없음 ]

[ 마나의 속성 : 질서 ]


내 망막에 맺힌 상에 의하면, 해리 홍이라는 남자는 단정히 정리된 머리에 안경을 낀 전형적인 모범생의 상이다. 대상이 없어서 마나량까지는 표시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꽤나 중요한 정보가 드러났다.


[ 약력 ]

- 우주력 871 이니시움 아카데미 졸업

- 우주력 885 헌터 시험 합격


동문이라는 것은 별로 중요한 사실이 아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대상이 헌터라는 사실이다.


우주연합이 주최하는 [헌터 자격증 시험]에 통과한 헌터는 우주연합과 동등한 취급을 받고, 국가형 기업 우주연합과 동등한 취급이라는 것은 곧 개인이 국가 수준의 대접을 받는다는 것이다.


헌터는 노동을 하지 않더라도 경제에 문제를 미치지 않을 정도의 호사스러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코인]을 지원받으며, 법률적으로 문제가 생겼을 때는 우주연합 소속 변호인단을 지원받기도 한다. 물론 애초에 [사법 시스템] 역시 국가형 기업인 우주연합이 관리하니, 헌터와 재판을 가서 승소한 사례는 오로지 상대도 헌터인 경우를 제외하면 전무했다.


헌터와 우주연합의 관계는 개인과 기업 스폰서가 아닌, 우방국(友邦國)의 관계라 보는 게 맞았다. 그게 우주연합이 강한 힘을 가진 각성자를 다루는 방식이다.


한편 그런 헌터를 죽여달라고 부탁한 도재명은, 덤덤히 대답을 촉구할 뿐이었다.


“내 제안이 어떤가?”


“아니. 헌터를 죽여 달라고? 도재명 니가 말하고도 어이가 없지?”


“훗. 내 고객 중에 헌터가 한둘인 줄 아나? 내게 약쟁이는 다 똑같은 약쟁이일 뿐이야. 그 놈은 특히 성질머리 더러운 약쟁이긴 하지만.”


약쟁이는 다 똑같은 약쟁이라... 맞는 말이네.


아무튼 정제된 [누예티네의 피] 10kg면 사실상 30억 코인 정도의 가치를 갖고 있다. 워낙 특이해서 수요층이 한정적인 마약이니 암시장에서는 꽤나 그 가치를 평가절하당하겠지만, 그래도 액면가 30억 코인 정도면 나쁘지 않다.


무엇보다, [코인]을 쓸 수 없는 암시장에서 마약은 일단 양이 많은 쪽이 무조건 유리하다. [누예티네의 피] 10kg로 살 수 있는 물품들의 가짓수는 5kg로 살 수 있는 것과 단위 자체가 다르니까.


허나 문제는, 그 대상이 헌터라는 데에 있다.


“그건 너무 위험해서 안 되겠는데? 차라리 여기 있는 모두를 죽이고 마약만 챙기는 게 도재명 니가 생각해도 나아보이지 않아?”


“... 그렇긴 하지. 그러나 헌터라는 이름이 두려운가? 녀석은 헌터 시험을 겨우 통과한 풋내기다. 게다가 헌터 시험 통과 이후 보상심리로 마약에 빠져버리는 바람에 마나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머저리가 됐다. 이 정도면 해 볼만 하다고 생각하는데?”


풋내기? 머저리?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고 있네.


1년에 15명 나오면 많이 나오는 게 헌터다. 우주의 400억 인구 중 각성자가 0.1% 4000만이인데, 현재 등록된 헌터는 3000명 뿐이다. 아무리 약에 빠진다 하더라도 헌터는 헌터다.


게다가 헌터를 죽인다는 것은 우주연합의 우방국을 침략한다는 의미, 헌터의 사망이 확인된다면 안보부가 뜨는 것은 당연지사다.


뒤처리를 해 준 다고 하지만, 약장수 말을 누가 믿겠는가.


“해 볼만 하긴 뭐가 해 볼만 해. 안 돼.”


“그럼 이렇게 하지. 7월 말까지 11kg.”


“무리라니까.”


“12kg. 뒤처리는 정말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해리 홍을 처리할 시나리오는 이미 구상되어 있으니까.”


“...”


“12.5kg. 더 이상은 우리도 무리야.”


사실 지금 꼭 필요한 감정은 아닌데, 갑자기 좀 궁금해졌다. 왜 도재명이 해리 홍을 이렇게까지 하면서 죽이고 싶어 하는지를 말이다.


“해리 홍이랑 무슨 관계지?”


“약쟁이들은 두 부류가 있지. 갈 데 까지 간 놈과 갈 데까지 가고 있는 놈. 해리 홍은 2년만에 전자가 되었다. 앞으로 더 위험해질 놈이야.”


흠. 하긴 뭐 마약은 사람을 애로 만들고, 힘을 가진 애새끼보다 위험한 게 없지. 이해는 간다. 하지만 내 알 바 아니라고 생각하던 찰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지. 장사꾼이 가장 중시하는 게 뭔지 아나?”


“돈?”


“아니, 바로 신용이다. 그리고 신용이라는 것은 서로가 배신할 수 없을 때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구성되지. 당장 내가 여기 있는 [누예티네의 피]를 전부 손님에게 넘긴다고 해서, 그쪽이 가진 영상으로 아무것도 안 한다는 보장이 아예 없지 않나?”


꽤나 머리 돌아가는데. 역시 [약선] 도재명, 의사 면허는 똥구멍으로 딴 게 아니다 이건가.


“그러니까... 도재명 니도 내 약점을 하나쯤은 쥐고 싶다. 이건가?”


“한쪽만 리스크를 지는 건 거래가 아니라 착취지. 나는 단지 거래를 하고 싶다는 것뿐이다.”


도재명이 이렇게까지 나올 줄이야. 아니, 오히려 의뢰를 받아들일 이유가 생겼다.


내가 해리 홍을 죽였을 때, 내가 잡힌다면 도재명도 무사할 수 없게 되니 뒤처리를 더 열심히 해 주겠지. 반대로 내가 녀석의 영상을 푼다면 놈은 내가 해리 홍을 죽였다는 증거를 꿍쳐 놓고 있다 풀겠지. 말 그대로 서로가 서로를 배신할 수 없는 구조다.


허나 장사꾼이 이렇게 나온다면, 내가 손해 보는 딜이라는 거겠지. 상대가 레이스를 쳤으니 나도 맞레이스를 쳐 본다.


“좋아. 12.5kg 정도면 괜찮네. 대신 세 가지 추가적인 제안이 있다. 도재명 니가 이걸 다 받아들이면 나도 그 해리 홍이라는 녀석을 죽이는 시나리오를 들어는 볼게.”


푹팍푹팍!


내가 이리 말하자, 주머니 속 [페르소나]가 내 복부를 연신 두들겼다. 링링의 분신아. 아직도 정의같이 달달한 걸 믿니?


꾸욱-


나는 주머니 속으로 손을 넣어 [페르소나]의 머리를 눌렀다. 도재명이 의심스럽다는 눈빛으로 잠시 쳐다봤다.


“뭐 하는 거지?”


“아니. 아무것도 아냐. 일단 내 조건은 이렇다. 첫째. 채명훈은 죽이지 마. 서로에게 쓸모 있는 존재일 테니까.”


도재명의 시선을 받은 채명훈이 움찔하고는 자신의 오른손목을 문질렀다. [치유]를 먹여 놓긴 했지만, 한 번 부러졌던 손이니 후유증이 없진 않을 것이다. 나는 계속해서 요구사항을 읊었다.


“둘째. 네 고객 명단을 내게 넘겨. 특히 헌터인 녀석 위주로.”


이게 본질이다. ‘저쪽 세계’의 [슈마허 인더스트리]가 에브게니아에 왔다면 필히 도재명과 엮였을 것이다. 세계의 운명 따위는 내 알 바 아니지만, 문득 [F.E.E. 프로젝트]가 내가 생각하는 그림과 일치하는지가 궁금해졌을 뿐이다. 궁금한 건 못 참으니까.


“... 좋다. 마지막 세 번째는?”


지잉-


마나블렛을 조작해 하나의 홀로그램을 띄운다. 그 정체는 바로 내가 유아라에게 뮤턴트 처리를 의뢰받은 곳의 마나 분포도다. 나는 붉은색으로 표기된 4곳의 지역을 일일이 가리켰다.


“내일까지, 여기 있는 [누예티네]랑 [아이스 리자드] 싹 다 정리해 놔.”


돈을 버는 가장 쉬운 방법은 원래 남의 노동력을 헐값에 빨아먹는 것이다. 도재명에겐 어려운 조건도 아니니, 놈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 가지 모두 수락하지. 그럼 시나리오를 한번 들어 보겠나?”


“뭐. 들어는 볼게.”


“서경환. 지금이 몇 시지?”


도재명의 물음에 뒤에서 열중 쉬어 자세로 대기하고 있던 한 남자가 마나블렛을 꺼내 시각을 확인했다.


“딱 오후 7시입니다. 우주표준시로는 오후 4시고요.”


도재명은 잠시 눈을 감더니, 팟하고 눈 뜨며 말했다.


“자. 지금으로부터 1시간 뒤, 우리는 녀석의 집으로 [아이스 리자드의 체액]을 배달할 거다.”


“그래서?”


“그 때 들어가서, 놈을 죽여라.”


씨발. 이런 것도 계획이라 할 수 있는 거야?


---


에브게니아 A 섹터는 연 평균기온이 -11도인 에브게니아에서 가장 따뜻한 지대로, 고난마저 유흥거리인 우주 상류층들의 별장이 밀집되어 있는 구역이다. 즉, 주택들 하나하나가 엄청 크고, 사람들은 별로 없어 적막하다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그래서, 해리 홍이라는 새끼가 있는 집이 어딘데?”


나는 동행한 장쯔하오와 유엔에게 물었다. 원래는 내가 베어버린 타오링위까지 세 사람이 [아이스 리자드의 체액]을 배달하곤 하는데, 내가 타오링위 대신 들어온 신입 컨셉으로 놈의 집에 잠입하는 것이 도재명의 디테일한 계획이었다.


“거의 다 왔습니다.”


“걷다 보면 나와.”


아이러니한 것은 대장 격인 장쯔하오는 내게 존대하지만, 그의 부하이자 4번 대의 홍일점인 유엔은 내게 반말을 한다는 것이다. 사실 내 알 바 아니긴 하다.


“아. 저기 있네.”


유엔이 손을 뻗어 하나의 집을 가리켰다. 에브게니아의 설산을 연상케 하는 눈처럼 흰 저택이었다.


“아따. 크네. 저기서 해리 홍 말고 또 몇 명이 살지?”


“해리 홍은 독신입니다.”


“부모는 있다고 들었는데, 저 집에는 혼자 살아.”


혼자 살기엔 너무 큰 집으로 보였지만, 뭐 헌터라면 저 정도 살아 줘야지.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마당이 흰 눈으로 덮여 있는데 발자국 하나 없다는 것에서 외부인의 왕래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아냈다.


“밥은 지가 해 먹나?”


“거의 무조건 배달시켜 먹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배달이라면 역시 [IFOYY]겠군. 아마 놈의 시신을 처음으로 발견하는 것은 IFOYY 고객응대팀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놈쯤 되는 고객이 잠수탄다면 5일 안에 안내 메시지가 갈 거고, 열흘이 넘으면 서비스팀이 직접 자택에 방문할 테니까.


딸깍-


화려한 집답게 초인종 소리가 뿌우우우우! 하고 요란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조용했다. 아무 반응 없다가 몇 초 뒤 단지 철컹- 하는 소리와 함께 문만 열릴 뿐이었다.


대문에서 저택의 정문까지는 약 50m. 나는 그 길을 걸어가는 와중에 두 사람에게 물었다.


“뒷처리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방금 들어오면서 우리 면상 다 찍혔을텐데.”


“안 찍혀.”


“안 찍힌다고?”


“응. 절대 안 찍혀.”


유엔이 나른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해리 홍이라는 헌터를 사냥하러 가는 이 긴박한 순간에도, 그녀의 얼굴은 마치 ‘아 빨리 일 끝나면 맥주 한 잔 하고 [Li4U]나 보다 자고 싶다’라 말하는 것 같았다.


“유엔 말이 맞습니다. 해리 홍은 출입하는 사람들을 녹화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장쯔하오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확신에 찬 말투로 그녀의 의견에 힘을 더했다.


“무슨 자신감으로?”


“곧 알게 돼.”


“... 정말, 그 말 밖에 할 수가 없네요. 보시면 아실 겁니다.”


왜일까. 그저 헌터라는 이름이 주는 자신감인가? 하긴 헌터를 죽이려 하는 사람은 그와 원수를 진 헌터를 제외하면 세상에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헌터를 친다는 것은 결국 우주연합과의 한 판 하겠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으니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어느새 저택의 정문 앞에 섰고, 다시 한 번 초인종을 눌렀다.


쿵! 쿵! 쿵! 쿵!


저택 내부에서 지진이라도 난 듯 쿵쾅거리는 소리가 울려왔다.


신경질적으로 대저택의 정문이 열렸고,


“왜 이리 늦어!”


그곳에는 알몸에 흰 가운만 걸친 웬 돼지새끼 한 마리가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66 겜판소조아
    작성일
    22.04.19 22:46
    No. 1

    현재의 시각과 우주 표준시라.. 각 행성간의 중력등에 의해 변화하는 늘어나거나 짧아진 시간까지 감안하는 시간일려나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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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9. 눈의 행성 (2) +1 21.09.16 4,408 121 14쪽
28 28. 눈의 행성 (1) +5 21.09.16 4,604 129 15쪽
27 27. 의뢰 (2) +3 21.09.15 4,501 137 12쪽
26 26. 의뢰 (1) +4 21.09.15 4,767 137 14쪽
25 25. 프롤로그 (2) +9 21.09.15 4,717 151 11쪽
24 24. 프롤로그 (1) +7 21.09.14 4,765 154 13쪽
23 23. 중간평가 (2) +4 21.09.14 4,760 154 14쪽
22 22. 중간평가 (1) +2 21.09.14 4,831 131 12쪽
21 21. 사건 (4) +5 21.09.13 4,778 139 14쪽
20 20. 사건 (3) +4 21.09.13 4,813 137 12쪽
19 19. 사건 (2) +4 21.09.13 4,941 135 13쪽
18 18. 사건 (1) +5 21.09.12 5,056 132 12쪽
17 17. 계시자 +4 21.09.12 5,112 142 14쪽
16 16. 유아라 (2) +3 21.09.12 5,065 143 12쪽
15 15. 유아라 (1) +3 21.09.11 5,161 139 12쪽
14 14. 호감도 +1 21.09.11 5,313 136 13쪽
13 13. 실기 (2) +6 21.09.11 5,355 151 12쪽
12 12. 실기 (1) +5 21.09.10 5,559 145 13쪽
11 11. 멘토링 +2 21.09.10 5,660 144 12쪽
10 10. 박준 (2) +7 21.09.10 6,147 144 13쪽
9 9. 박준 (1) +5 21.09.09 6,252 149 14쪽
8 8. 교장 +12 21.09.08 6,531 164 14쪽
7 7. 모의 던전 (3) +7 21.09.08 6,579 162 13쪽
6 6. 모의 던전 (2) +11 21.09.07 6,753 159 13쪽
5 5. 모의 던전 (1) +4 21.09.07 7,136 16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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