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의미 (6)
116.
“[이데아 프로젝트]... 아. 나왔네요.”
띠링-!
[ 이데아 !$젝트 ]
개요 : #@$@$ 프로젝트의 네 번째 단계. 기존의 인조 행성 ‘테라미시’에 대한 정보를 전부 폐기한 이후, 새로운 인조 행성 ‘이데아’를 발표하는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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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필이면 저기가 깨졌네.”
“... 이건 그저 개요일 뿐이니까, 자세한 내용을 확인해 보면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있지도 몰라요.”
띠링-! 띠링-!
유아라가 ‘더보기’를 누르기가 무섭게, 엄청나게 많은 창들이 튀어나왔다. 몇 천 페이지가 넘는 텍스트에 더불어 셀 수도 없을 양의 도표, 그래프, 사진자료.
내가 이걸 일일이 읽으려면 몇 주는 걸리겠지. 하지만 ‘이런 쪽’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능력을 가진 유아라는 고작 20분 정도만에 끝까지 다 읽곤, 기가 차다는 듯 중얼거렸다.
“하. H.N.H. 얘네들 완전 미쳤네요. 아니. 꽤나 오래 전부터 미쳐 있었네요.”
“... 나도 좀 알자.”
“... 요즘 전쟁이니, 마나석 고갈이니 세상 꼴 망가져 가는 거, 얘네가 500년 전부터 준비하고 있던 내용이에요. 여기 이거 봐봐요.”
유아라가 페이지를 휙휙 넘겨 초반부로 돌아가더니, 어디 한 곳을 가리켰다.
‘우주력 376년, #@$@$ 프로젝트의 첫 번째 단계인 세르부스 프로젝트를 통해 우주연합과 비밀 조약을 맺었다.’
“... 화면 절묘하게 깨졌네.”
“여긴 화면 깨진 게 맞는데, 다른 데 보니까 저 프로젝트명은 애초부터 블러 처리된 것 같더라고요. 회사 내부에서도 분업이 확실해야 할 때 가끔 쓰는 기법이죠. 그보다 이것 좀 봐요.”
‘해당 조약을 통해 우주연합은 시장의 99%를 독점하게 되었으며, 귀사는 우주연합을 회원이 아니었던 시민 50억 명의 생명권을 분양받아 세르부스에 500년간 운영 가능한 마나석 광산을 설치했다.’
“... 세르부스에 있던 마나석 광산이란 것도, 애초에 H.N.H랑 연합에서 인공적으로 만든 거였네.”
“에휴... 그러니까요. 난 그것도 모르고 광산 찾겠다고 돌아다녔으니... 완전 바보짓만 하고 다닌 셈이네요.”
“그러네.”
“... 당신은 공감능력이란 게 없나요?”
한 번 째릿하고 쳐다본 유아라는 이내 한숨을 푹 쉬더니, 페이지를 넘기며 중얼거렸다.
“대충 정리하면 [이데아 프로젝트]는 이곳 테라미시를 싹 다 밀어버리고 ‘이데아’라는 행성으로 리모델링 하는 거였네요. 기존에 여기 살던 사람들은 다 마나석으로 만들어 버려서, 새 마나석 광산을 찾았다고 발표할 예정이었고요.”
세 번째 공통사건 [이데아 발견]이, 그런 의미가 있었군.
“그나저나 문제는 여기, 이 이름 모를 프로젝트의 4번째 단계-”
쿵-!
유아라가 페이지 한구석을 가리키며 말하던 찰나, 한참 먼 곳에서 큰 소리가 울렸다. 희미하게 발소리도 들려오는 상황. 아까까지도 체념한 듯했던 유아라가 갑자기 덜덜 떨며 속사포처럼 물었다.
“우... 우리 빨리 도망쳐야 하는 거 아니에요? 여... 여기서 일어난 일 우리가 덤터기쓰면 몇 조, 아니, 몇십 조 짜리 소송 걸릴 수도 있어요! 아니. 사건의 중대사를 감안하면 안보부한테 끌려갈지도-”
“... 진정하고, [워프 키트] 챙겨왔으니까 CCTV 내역부터 지워.”
“아... 알겠어요.”
타다다닥-
유아라가 메인 컴퓨터를 만지는 동안, 나는 이곳의 기밀문서들을 들여다 본 것이 마치 [뱀파이어]인 것처럼 현장을 조작했다. 이런 건 도재명이 잘하지만, 뭐. 나도 기본은 할 줄 안다. ‘저쪽 세계’에서 많이 해 봤으니까.
차라락-
“그나저나 이 깡통로봇 놈들은 대체 이 [이데아 프로젝트]의 존재를 어떻게 안 거지...”
“다... 다 지웠어요! 빠... 빨리 가요!”
“... 알겠어.”
이제는 정말 누가 왔다는 게 확신이 들 정도로 바깥의 발소리도 커졌기에, 나도 재빨리 [워프 키트]를 꺼냈다.
... 젠장. 이렇게 된 이상, 역시 그 빌어먹을 노인네와 얘기를 해 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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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에덴. 마윤재의 집무실엔 두 남자가 마주앉아 있었다.
한 명은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 불리는 안보부 부장 마윤재. 또 한 명은 그런 마윤재 앞에서도 고개를 꼿꼿이 쳐들고 있는, 스물여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우주연합 회장 비서실에서 일하고 있는 연합 회장 비서실장을 역임하고 있는 원로운이라는 남자였다.
두 사람 사이에선 기묘한 정적이 흘렀고, 그 흐름을 먼저 깬 건 마윤재 쪽이었다.
“그래서... 원 실장님께선 어떤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회장님의 전언을 가져왔습니다.”
“전언?”
“예. 현재 마 부장님께서 수사하고 계신 헌터 집단 사망사건. 그냥 묻으라 하시군요.”
“...”
“또 이번에 [NULL]이라 불리는 타종족이 행성들을 침공한 것도, 그대로 놔두라 하셨습니다.”
“... 이해하기 힘든 지시군요. 행성 미라이에만 약 5000만 명의 국민들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냥 죽도록 놔두라는 겁니까?”
“회장님께선 일반인들과 보는 그림의 스케일이 다르십니다. 외부의 적이 존재한다는 것이, 장기적으로 연합의 안위에 더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고 계시죠. 당장의 안보만 보고 계신 마 부장님과는 다릅니다.”
다리를 쭉 꼬며 말하는 원로운 실장. 자기보다 한참 어린 하급자의 시건방진 태도에도, 마윤재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로 대꾸했다.
“일단 알겠습니다. 회장님 지시대로, 헌터 사망사건 수사와 [NULL]에 대한 관찰은 모두 일시중지하도록 하죠.”
“좋습니다. 회장님께서도 기뻐하시겠군요.”
“그 외에 더 전하실 말씀은 없습니까?”
“없습니다. 잘 알아들으신 것 같으니, 이만 가 보도록 하지요.”
딱 용건만 전한 원로운 실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그 때, 마윤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원로운 실장님.”
“... 뭡니까?”
“제가 원로운 실장님께 몇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대답해 드릴 수 있는 건 전부 대답해 드리죠.”
“회장님께선 건강하십니까?”
“건강하시다곤 말씀드릴 수 없군요. 나이가 나이신지라.”
“회장님께선 비서실 사람들을 통해서만 이야기하시던데, 비서실에선 정확하게 어떤 일을 합니까?”
“말 그대로 비서입니다. 회장님의 말씀을 전하고, 업무를 보조하죠.”
“비서실엔 젊은 남성뿐인 것 같더군요. 그 이유를 혹시 아십니까?”
“그 이유는 저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딜 가나 취향이 고약한 늙은이들이 있기 마련이죠.”
“... 회장님은 25년 전 제가 연합에 입사한 이후로 영상으로밖에 마주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만, 그 영상 속 인물이 확실히 회장님이 맞습니까?”
마윤재의 마지막 질문. 청산유수로 대답하던 원로운 실장이 잠시 움찔하더니, 눈을 가늘게 뜨고 자리에 앉아 있는 마윤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방금 그건 조금... 건방진 질문이군요. 마윤재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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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라 아가씨, 권민성 헌터님. 두 분 잠시 얘기 좀 할까요?”
연구소를 빠져나와 링링이 기다리는 테라미시 F-04 구역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건 바로 눈을 시퍼렇게 뜬 지부장이었다.
“두 분께서 사막 쪽으로 나갔다는 소식을 접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들어봐도 되겠습니까?”
평소의 굽실굽실대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마치 독사처럼 우리를 노려보는 지부장이었지만.
“어허허허... 뭐 이런 걸 다...”
“그간 실례가 많았으니 이런 거라도 드려야죠오. 사모님 드리세요오.”
“그럼 사양치 않고... 어허허허... 그렇다면 일단 두 분 성 밖으로 나가셨던 건 그저 사막 투어, 관광 목적이었으니 벌금형 처분으로만 적어 두겠습니다!”
유아라가 꽤 값나가는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뇌물로 바치면서, 500만 코인 정도의 벌금을 무는 것으로 별 문제 없이 상황이 종료... 되는가 싶었다.
허나 ‘진짜 문제’는, 이니시움으로 돌아온 이후에 터지고 말았다.
[ 슈마허 인더스트리의 장녀 Y양과 신입 헌터 K군 비밀 열애 정황 포착 ]
“... 뭔데?”
이튿날 새벽부터, 나와 유아라에 관한 가짜뉴스가 [갤럭시넷], [Li4U]를 불문하고 떠돌아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 이니시움 아카데미에 재학중인 Y양과 신입 헌터이자 이니시움 아카데미 교수 K군과의 밀회 정황이 포착되어 화제다. 두 사람은 행성 테라미시 F-04구역의 사막 지역에서 피크닉을 즐긴 것으로 추정되며...
“... 지랄하네. 진짜.”
의심의 여지도 없는 순수 100% 가짜뉴스. 안보부가 은폐하지 않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진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갤럭시넷]도, SNS도 없는 테라미시에서 이런 사단이 났다면 그 의미는 단 하나.
지부장이 나와 유아라에 대한 정보를 신문사에다 갖다 판 것이다.
띠링-! 띠링-! 띠링-!
[ 유아라 -> 권민성 : 기사 봤어요??? ]
[ 유아라 -> 권민성 : 진짜... 그게 얼마짜리 목걸이인데! ]
[ 유아라 -> 권민성 : 아니 그보다... 이거 어떻게 수습하죠? ]
유아라도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했는지 다급하게 나한테 메시지를 보냈지만,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유아라네?”
“...”
지금 내 옆에는, 아침수업도 싹 다 빼먹고 찾아온 한겨울이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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