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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내 힘 돌려줘요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완결

가시멧돼지
작품등록일 :
2021.09.03 13:06
최근연재일 :
2022.11.14 00:13
연재수 :
18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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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47
글자수 :
948,632

작성
21.12.13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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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추천
96
글자
10쪽

92. 소규모 전쟁 (4)

DUMMY

92.


스윽-


나는 피가 철철 흐르는 몸을 겨우 일으켰다. 제일 급한 곳만 적당히 [치유]로 슬쩍슬쩍 치유하며, 유우키 텐카를 살폈다.


“...”


[엔젤]이 종료되며, 전의도 마나도 모두 잃은 채 멍하니 앉아 있는 유우키 텐카. 구멍 난 녀석의 종아리에선 계속 피가 흐르고 있었다.


라인하르트 말대로라면 지금 녀석이 죽는 건 곤란했기에, 나는 어떻게 지혈이라도 해 줄 요량으로 마나 사브르를 뽑았다.


스응-


마나의 칼날이 사라진 그 순간.


쿵-!


유우키 텐카는 갑자기 혼절한 듯 드러누웠다.


“... 너 뭐 하냐?”


“...”


“뭐 하냐고.”


“...”


불러도, 옆구리를 툭툭 차 봐도 아무 대답이 없는 유우키 텐카. 이 년이 졸린 건가 싶어 대충 지혈을 끝냈을 때 즈음.


“우우웅... 어? 내가 왜... 여기는 어디...?”


“...”


유우키 텐카는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어지럽다는 표정으로 일어났다.


“나는 대체... 아... 아아아악! 내 다리!”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마치 여태까지의 기억이 없다는 듯 갑자기 다리를 부여잡고 고통을 호소하는 유우키 텐카. 녀석은 눈에서 열심히 즙을 짜며, 내 쪽을 보고 사정했다.


“너... 너는? 그... 맞아! 그 때 예원이 도와줬던... 2학년 친구지? 나... 나 좀 도와줘! 나 너무 아파! 병원에 좀-”


“말하는 게 좀 어색한데.”


“...”


일침 한 번에 아주 잠깐, 정말 찰나동안 표정이 굳는 유우키 텐카. 하지만 녀석은 다시 한 번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열연을 펼친다.


“혹시... 내가 뭐 했어? 내가 혹시 잘못했다면 사과할게! 나 정말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 그러니까 제발 병원에 데려다 줘...”


“이 년이 오타쿠 장사 하더니 미쳤나... 야. 내가 병신으로 보이냐?”


“... 이러지 마. 제발. 우리... 우리 같은 이니시움 생도잖아. 나 너 선배야. 선배한테 이러면 안 돼... 제발 도와줘...”


“...”


“나... 진짜 사과할게. 기억이 하나도 안 나. 뭐한테 조종당한 것처럼... 그러니 제발... 나 좀 병원에 데려다 줘...”


눈물콧물 다 짜며 애원하는 유우키 텐카. 나는 녀석과 눈을 마주치다가.


“제발...”


눈물 가득히 글썽글썽한 눈을 보고, 녀석의 손을 잡는다.


“야.”


“응? 응! 나 진짜... 도와줘. 너무 아파. 나 진짜 억울해. 난 내가 왜 여기 있는지도- 아아아악!”


뚜두두둑-!


계속해서 주둥이를 놀리는 유우키 텐카의 팔목을 꺾어, 어지간한 필라테스 강사와 비견해도 꿀리지 않을 각도로 만든다.


“... 왜? 대체 왜? 내가 뭘 잘못했다고...”


유우키 텐카의 눈에 그렁그렁한 눈물이 맺히지만, 나는 가소롭다는 듯 녀석에게 전한다.


“연기 그만해라. 다 티나니까.”


“... 연기라니... 난 정말 억울해... 그보다 너무 아파. 팔도 다리도 다 너무-”


“야. 한 번만 더 아가리 털면 반대쪽도 꺾여. 알겠어?”


“...”


“...”


너무하다는 듯 눈물을 글썽이며 나를 쳐다보는 유우키 텐카. 나는 그런 녀석을 똑바로 쳐다보다가.


“아. 이 년 진짜 끝까지 정신 못 차리네.”


녀석의 부러지지 않은 쪽으로 손을 뻗기가 무섭게, 유우키 텐카는 화들짝 놀라 손을 뺀다.


“... 알겠어. 알겠다고! 그만 하면 될 거 아냐!”


“...”


“쳇. 벌레새끼가 눈치는 더럽게 빠르네.”


아깝다는 듯 중얼거리는 유우키 텐카지만, 애석하게도 중요한 사실을 하나 간과한 듯했다.


내가 지 머리꼭대기 위에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


[엔젤] 저지 이후로는 뭐... 별 일 없었다.


[링크] 발생에 실패하면서 더 이상 사람들을 가둬둘 명분도, 이유도 없어진 연합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셸터에 갇혀 있던 사람들을 모두 풀어주었다.


그리고 그 중엔.


“드... 드디어 나가네요. 생도님... 으... 어지러워...”


“들러붙지 마라.”


“... 네...”


[엔젤] 종료 이후 다시 연결된, 내 분신까지도 포함돼 있었다.


[ Q32. 연합의 재난 대처에 대한 만족도는 어떠하셨습니까? ]

[ 1. 매우 만족한다. 2. 대체로 만족한다. 3. 보통이다. 4. 잘 모르겠다. ]


“... 지랄하네.”


셸터에서 나가기 전에 간단한 설문조사를 하고, 내 분신을 비롯한 봉사캠프 구성원들 모두가 간단한 ‘설문조사’ 이후 다 유스호스텔로 복귀했다.


그리고 그 날 밤. 나는 도재명을 으슥한 곳으로 불러냈다.


“봉사캠프 주최해 달라는 것도 해 줬는데, 이번엔 또 무슨 부탁을 하려는 거지?”


“이걸 좀 맡아줬으면 해서.”


쿵-!


나는 도재명 쪽으로 큰 자루 하나를 던져 주었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자루였다.


“이건 뭐지? 생물체인 것 같은데, 세르부스에서만 나는 귀한 약 재료라도 되-”


“읍읍!”


“...”


스르륵-


호기심에 자루 내부를 슬쩍 확인해 본 도재명이, 다시 입구를 닫고 꽁꽁 묶으며 중얼거렸다.


“파트너. 내가 이것저것 다 취급하지만, 이쪽 장사는 내가 좀 좋아하지 않는데.”


“갖다 팔라는 얘기가 아냐. 말 그대로 연말까지 맡아두기만 하면 돼. 살아있는 채로 말이지.”


“... 맡아 달라고?”


“내 신분상 보관할 데가 마땅치 않아서. 이니시움 생도가 그런 걸 들고 다닐 순 없으니까.”


“...”


나의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도재명은 못내 고개를 끄덕였다.


“... 알겠다. 맡아 두지.”


됐다. 이걸로 가장 큰 문제였던 ‘전범처리’까지 끝났다. 라인하르트 말대로라면 ‘죽이지만’ 않으면 되니까.


“그나저나, 보관하는데 주의할 사항 있나?”


“편한 대로. 약 써서 폐인으로 만들어도 되고, 필요하다면 사지 한두 짝 정도는 잘라도 상관없어. 살아만 있다면.”


“... 괜히 물었군.”


“아. 그거 [전류]를 쓰니까, 소금물 자주 부으면 다루기 쉬울 거야.”


“... 참고하지.”


“읍으븝븝! 으븝!”


나와 도재명의 대화를 듣고 자루 안의 것이 애처롭게 소리 지르며 팔딱댔지만, 귀찮다는 것 말곤 별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진 쪽은 모든 것을 잃는다. 그게 전쟁의 법칙이니까.


---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덧 우주력 886년 11월 24일.


이쪽저쪽 가릴 거 없이, 서로 다른 두 평행세계 양쪽에서 내게 의미가 큰 날이다.


저쪽 세계 기준으로는 첫 번째 공통사건 [세르부스 분리독립 내전]이 터진 날이고.


“주문 확인하겠습니다. 삼겹살 리조또 하나랑, 치킨 리조또 하나 맞으시죠?”


이쪽 세계 기준으로는 한겨울이랑 시내로, 리조또 먹으러 온 날이다.


“네~”


“...”


“예. 20분 정도 걸리니까, 기다려 주세요.”


점원인지 사장인지 모를 여자는 주문을 받자마자 주방으로 향했다. 보통 가게라면 다 키오스크 쓰는 게 보통인데, 여기는 드물게 사람이 운영하는 가게인 듯했다.


그리고 가게 사람이 모습을 감추기가 무섭게, 한겨울은 내 쪽으로 고개를 홱 돌린다.


“야. 너 돌아온 지 일주일쯤 됐지?”


“... 아마 그쯤 됐지.”


한겨울 말대로 내가 이니시움으로 돌아온 지는 좀 됐다. [엔젤] 이후 행성 세르부스에서 대규모 반연합 폭력시위가 벌어지면서, 그곳에 있던 수많은 봉사캠프들이 싹 다 철수했을 때 돌아왔으니까.


아무튼 돌아오고 일주일이나 지났건만, 그간 한겨울과는 거의 못 만났다. 서로 바빴고 여자의 사정이란 것도 겹쳐서 말이다. 이렇게 같이 밥 먹는 게 근 한 달 만이다.


물론 한 달 만이라고 해서, 나나 한겨울이나 막 반갑다 신난다 오랜만이다 이런 식으로 호들갑 떨지는 않는다. 그냥 창가 쪽 바라보면서.


“캠프 가서 뭐 했어?”


“그냥 이것저것.”


“거기 막 테러리스트들 날뛴다던데.”


“... 그렇지도 않더라고.”


늘 그렇듯, 평소처럼 별 거 없는 얘기를 할 뿐이다.


“야. 권민성.”



갑자기 날 부른 한겨울은 은근슬쩍,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내 손에 자기 손을 얹는다. 시선은 계속 창밖을 향한 채로.


“... 뭐.”


“너 없을 때, 이니시움에 눈 왔었던 거 알아?”


녀석은 내 손을 사브작사브작 쓰다듬으면서도, 시선은 모르는 척 계속 창밖을 향한다. 나도 모르는 척, 바깥을 보며 대답한다.


“눈 온 건 알지.”


“응? 니가 어떻게 알아?”


“... 한겨울 니가 사진까지 찍어 보냈잖아.”


“아. 맞다. 그랬지.”


“...”


“뭐. 아무튼 그날은 진짜... 어엄청 춥더라~”


“겨울이니까 당연히 춥지.”


“...”


“...”


“... 세르부스엔 눈 왔었어?”


“아니.”


“그래? 그럼 이니시움에도 안 온 거로 하자.”


“... 그런 게 어딨어.”


“여깄지.”


나와 한겨울의 대화는 거의 이런 식이었다. 별 알맹이도, 유용한 정보도, 맥락도 없는 단순한 주고받음.


근데 이게 또 얘기하다 보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가는 이상한 특징이 있어서, 보통 누군가한테 방해를 받으면서 끝이 난다.


그리고 오늘의 방해는, 예정대로라면 분명 주문한 음식이 나오는 것이었을 터였다. 그래. 그 때까지는 이 대화가 지속되야만 했다.


“그나저나 이젠 너 출석 진짜 간당간당하겠-”


띠링-!


“...”


“... 얼렁 봐. 급한 일일지도 모르는데.”


허나 내 마나블렛이 울리는 것으로, 한겨울이 먼저 내 손을 만지던 손을 뗐다. 알 수 없는 아쉬움 속에서 나는 마나블렛을 확인하고.


탁-


제목만 대충 확인하고 바로 덮으며, 다시 창가 쪽을 바라보았다.


“누구야?”


늘상 그랬듯, 재빨리 물어오는 한겨울. 나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 별 일 아냐.”


[ 보낸이 : 이니시움 아카데미 학생처 ]

[ 메일 : 권민성 생도님. 우주연합 안보부 이창혁 대리님께서 면담 요청 하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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