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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내 힘 돌려줘요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완결

가시멧돼지
작품등록일 :
2021.09.03 13:06
최근연재일 :
2022.11.14 00:13
연재수 :
18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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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7,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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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47
글자수 :
948,632

작성
21.12.15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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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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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93. 소규모 전쟁 (5)

DUMMY

93.


이튿날, 나는 아침 댓바람부터 이니시움의 빈 강의실 한 구석탱이에 홀로 앉아 있었다.


이유야 물론.


[ 우주연합 안보부 이창혁 대리님께선 익일, 우주표준시 기준 886년 11월 25일 1시에 이니시움을 방문할 예정으로... ]


어제 잡혔다는 안보부 미팅 때문.


나는 최대한 평정을 유지하며.


달달달달...


평정을 유지하며.


잘근잘근-


강의실 안에 있다.


“... 씨발. 존나 떨리네...”


한겨울 앞에선 왠지 모르게 별 일 아닌 척 했지만, 사실 별 일을 넘어서 일생 중대사다. 안보부가 가진 권한을 생각하면, 언제 끌려가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이니시움 아카데미 생도라는 타이틀이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다지만 안보부 뜨면 개장수 앞의 개보다 무력하다.


“... 대체 왜 온 거지?”


짚이는 일은... 더럽게 많다.


세르부스에서 [엔젤]을 저지한 케이스도 있고.


에브게니아에서 해리 홍이라는 헌터를 죽인 케이스도 있다.


... 도재명이랑 마약거래 한 것도 있네. 젠장.


물론 나는 안보부를 항상 의식해 왔기에, 모든 곳에서 철두철미하게 내 자취를 지워 오긴 했다.


허나 만에 하나, 만에 하나 내 지워지지 않은 내 자취가 있었다면. 그래서 정말 만에 하나 안보부한테 끌려가게 된다면...


- 어. 거기 잘라... 에헤이. 거기 말고 저기. 피 그렇게 나면 걔가 [치유]를 쓰겠어. 못 쓰고 그냥 죽어버리겠어?


- 액체질소는 많이 있으니까 마음껏 부어도 돼. 붓고 꽁꽁 얼었을 때 부숴 보자고? 아. 그거 재밌겠네.


- 이것저것 다 해 봤는데, 뭐니뭐니해도 타르 같은 거 얹어 놓고 불붙이는 게 제일 편하다. 한 번 하면 한 시간은 뚝딱이야.


왠지 모르게 몸이 덜덜 떨린다. 몸에 새겨진 수천 개의 흉터가 다 말을 하는 것처럼 아리다. 갑자기 한겨울이 만나고 싶은 건, 한겨울이랑 못 만난다면 링링이라도 보고 싶은 건 대체 왜-


덜커덕-!


“어? 와 있구나?”


순간 내가 있던 강의실 문이 열리며, 그리 나이 들어 보이지 않는데도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 한 명이 들어온다. 나의 이성이 그 사람이 누구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빅 데이터]가 먼저 창을 띄웠다.


[ 이창혁 ( 25세 ) ]

[ 미래의 이명 : 인간백정 ]

[ 마나량 : 8334 ]

[ 마나의 속성 : 질서 ]


눈앞의 상대도 분명 이명은 있지만, 애석하게도 내가 연예인 이름 일일이 기억하는 스타일은 아닌지라 모르는 양반이다.


“2학년 권민성 맞지?”


“... 예.”


질겅질겅 껌을 씹으며 내 정면에 앉는 이창혁이라는 남자는 주머니에서 껌봉지 하나를 꺼내며 묻는다.


“껌 먹을래?”


“... 괜찮습니다.”


“그럼 뭐 말아. 이거 비싼 건데 말이지.”


“...”


“딱 보니까 긴장한 것 같은데, 그렇게 굳어 있을 필요 없어. 기본적으로는 이니시움 선후배 사이니까.”


이 양반아. 너 때문에 긴장한 게 아니라, 뒷배경이 무서운 거다. 안보부라는 배경이 말이지.


아무튼 불행 중 다행이라면 마윤재랑 독대하는 건 아니란 것이다. 안보부 부장인 마윤재와 달리 이 양반 눈깔에는 [빅 데이터]가 박혀 있지 않으니까 마나 속성가지고 트집잡힐 일은 없다.


“뭐. 선후배끼리 격식 차릴 필요는 없겠지?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할게.”


게다가 정 일이 꼬여 버린다면, 이 인간 죽여 버리고 도망치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정말 최후에 최후의 수단-


“너 안보부 들어올래?”


“... 예?”


나의 어이가 없다는 대답에 이창혁이라는 남자는 탄식을 한 번 내뱉더니.


“아니. 마 부장님은 뭐 이렇게 둔한 애를 점찍어 두셨대?”


라 중얼거리다 다시 질겅질겅 껌을 씹으며 말을 잇는다.


“너 안보부 들어올 생각 없냐고.”


“...”


“이번 년도 헌터 시험만 붙으면 당장이라도 들어올 수 있어. 조기졸업하는 것도 가능해지고, 마 부장님께선 이니시움 다니면서 안보부 소속이셨으니까. 헌터 시험 접수는 당연히 했을 거고-”


“안 했는데요.”


“그래. 마 부장님이 찍어 놓을 정도면 헌터 시험 붙는 건 쉬우니... 아니, 잠깐만. 안 했다고?”


“예.”


“왜?”


“봉사캠프 때문에요.”


내 대답을 듣기가 무섭게 이창혁이라는 남자는 날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어이가 없다는 듯 묻는다.


“봉사캠프? 그 쓸데없이 어디 가서 팔 허우적허우적대며 밥 축내고는 착한 일 했다고 이력서에 한 줄 딱 쓰는 거?”


“... 예.”


“... 하아. 얘를 어떡하지? 아니. 너 정신이 나갔냐? 고작 봉사캠프 때문에 헌터 시험 신청을 안 했다고?”


... 못 한 거다.


“아니. 이런 말 하면 내가 꼰대 같아 보일 순 있는데, 정신이 오천년 나가지 않고서야 봉사캠프 가서 헌터 시험 신청을 못 하는 등신이 어딨냐? 외부에서 헌터 시험 신청하려면 얼마나 많은 자격증이 필요한 줄 알아?”


“아니. 그게-”


“넌 이니시움 생도잖아! 내 후배! 교수 추천서 하나만 있으면 자격증 다 필요 없이 헌터 시험 볼 수 있는데, 그걸 봉사캠프 따위 때문에 신청 못 했다고? 아니. 내가 절대 꼰대는 아니지만 이건-”


이걸 시작으로, 내게 20분이 넘도록 무호흡으로 잔소리를 쏟아 붓는 안보부 이창혁 대리. 녀석은 깊은 한숨으로 잔소리를 매조진 다음, 자기 마나블렛을 꺼내며 중얼거렸다.


“후우. 그래. 이제 와 뭐 하겠어. 본인이 접수 못 했다는데. 하긴 아무리 이니시움이라도 2학년 때 헌터 시험 보는 케이스도 드물지. 나 같이 몇 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한 인재가 아니라면.”


“... 내년에 보도록-”


“인적자원관리본부에 연락해서 접수해 놓은 걸로 처리할 테니까, 12월 7일에 1차 시험이거든? 꼭 봐라.”


“... 예?”


“하아. 마 부장님은 정말!”


쿵! 쿵!


속 터지겠다는 듯 가슴을 치는 이창혁 대리. 녀석은 그러고서도 이마빡을 한 대여섯 번 더 친 뒤에야, 내게 손가락 하나를 들이밀며 말했다.


“야. 너 이름이 권... 아무튼 권가야. 너가 지금 어려서 우주의 정세를 몰라서 그렇지, 알면 안보부 추천 감사하다면서 나랑 마윤재 부장님 있는 곳으로 하루에 세 번 고사 지낼 거다. 아침점심저녁으로 말이지.”


“...”


“자. 잘 들어. 얼마 전에 [종전 선언] 있었던 건 알고 있지? 세르부스 독립결사라는 폭동 집단 진압되면서 말이야.”


이창혁이라는 남자 말대로였다.


공통사건인 [세르부스 분리독립 내전]은 자취를 감췄고, 5월 달에 선포됐던 전쟁의 [종전 선언]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별 거 아닌 것 같았지만 세계의 운명이 엄청나게 틀어져버린 사건이다. 마나석이 되어야 할 2000만 세르부스 주민들이 살아 버리면서, 연합은 더 이상 자원난을 숨길 수가 없게 되었-


“... 야. 듣고 있냐?”


“... 예.”


“하. 얘 왜 이리 맹하지? 암튼 그 때 세르부스 폭도들이 최후에 무슨 짓을 했는지도 알고 있지?”


물론 남탓이라면 우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집단인 연합이, 마나석 고갈을 자기들 책임이라고 말할 리가 없었다.


“... 같이 죽자면서, 마나석 광산을 날려버렸습니다.”


연합의 남탓 대상은 바로 세르부스 독립결사라는 ‘가상의’ 폭력조직이었다.


‘캘 마나석이 없는 게’ 아니라, ‘분명 있는데 누군가들이 못 캐게 한 것’은 아예 다른 상황인 만큼, 비난도 연합보다는 세르부스 쪽을 향했다.


“그래! 마나석이 현 우주에서 얼마나 중요한 자원인지는 이니시움 생도라면 말 안 해도 알지?”


“예.”


“물론 비축분이 좀 있긴 하지만 충분하진 않아. 슬슬 우주가 점점 혼란스러워지겠지.”


혼란스러운 수준이 아니지. 내가 아는 역사에선 전쟁나서 인류 멸망한다. 그리고 그 [인류의 멸망]까지 다이렉트로 땡겨버린 조직이.


“이럴 때일수록 우리, 안보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 바로 이 새끼들, 바로 안보부 놈들 되시겠다.


“너 임마! 지금이야 얼굴 좀 잘생기면 여자들한테 인기 있겠지만, 임마! 결국 남자는 능력이야, 임마! 남자로 태어났으면 말이야! 이 한 몸 연합과 인류에 다 바치고! 그렇게 살다 가야지!”


“...”


“이니시움 딱 졸업하고! 헌터 자격증 딱 따고! 그리고 안보부 뱃지 가슴에다 딱 달아 줘야! 아! 내가 남자로 태어나서 이제 좀 사람 구실하겠구나! 딱! 하는 거지! 응? 알겠어?”


‘저쪽 세계’에서 이 놈들이 했던 개짓거리들을 상세히 서술한다면, 아마 기가바이트 단위의 텍스트 문서가 나올 거다.


특히 이놈들이 말하는 안보란.


‘문제가 생겼지만 연합 때문은 아닙니다. 소수의 반동분자들 짓거리입니다. 저희가 다 알아서 할 테니 우주연합 회원 여러분들은 모두 안심하시고 탱자탱자 노십시오.’


란 뜻이기에, 문제 생기면 남탓, 여론조작, 사실은폐하는 집단이 바로 안보부다.


근데 이 새끼들이 또 무능하면 괜찮은데, 심지어 유능하기까지 해서 더 문제다.


얼마나 유능한지 ‘저쪽 세계’ 기준 인류 최후의 생존자인 나조차, [세르부스 분리독립 내전]이 마나석 때문에 발발했다는 걸 ‘이쪽 세계’와서 알았을 정도-


“야. 듣고 있지?”


“... 예.”


“내가 뭐라 했는데.”


“남자는 능력, 능력 하면 안보부라 하셨습니다.”


“그래! 남자는 능력! 능력 하면 안보부! 다시 한 번, 뭐라고?”


“... 남자는 능력. 능력 하면 안보부.”


“그래! 그나마 따라하는 건 잘 해서 좋네.”


“...”


“좋아.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난 이제 이만 일어나 봐야겠다. 다음 일정이 있어서.”


자기 할 말만 열심히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이창혁 대리. 녀석은 의자에 걸쳐 놓았던 코트를 다시 입으며 말했다.


“헌터 시험은 자원관리본부에 연락해 놓을 테니까, 12월 7일에 1차 꼭 보고.”


“... 예.”


“그리고 임마! 기회가 있을 때 잡아야지! 다른 사람들은 안보부 들어가고 싶다고 사옥 앞에서 막 드러눕고 그러는데! 내가 속이 터진다, 터져!”


그리 말하며 가슴을 쾅쾅 친 이창혁 대리는, 마나블렛을 조종해 홀로그램으로 일련의 코드를 하나 띄운다.


“이거 내 마나블렛 코드니까, 안보부 들어올 생각 있으면 언제라도 연락해라. 뭐. 사적으로도 상관 없어. 선배님의 인생 조언이 필요하다던가 하면 말이지.”


“... 예.”


“그리고 헌터 시험 꼭 봐라. 안 보면 넌 내가 내 손으로 끌고 간다.”


“...”


“그럼 이만.”


슈우우-


곧바로 [행성간 순간이동 키트]를 꺼내고는, 정말 그대로 사라져 버리는 이창혁 대리.


“... 하아. 좆되는 줄 알았네...”


녀석이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등받이에 등을 기댈 수 있었다. 등이 온통 땀으로 젖어 축축하다.


오늘도, 아니. 오늘은 살아남았다.


"그나저나 헌터 시험이라."


슬슬 준비... 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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