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히어로 (4)
104.
‘저쪽 세계’ 기준으로 [1차 기업대전] 때 처음 모습을 드러낸 신인류의 생체병기 [올 포 원]은 혼자서 라인하르트를 패 죽이고 이니시움 아카데미를 박살내는 둥, 화려한 행보를 거듭하며 [인류의 멸망]까지 인류를 꾸준히 괴롭히던 녀석이다.
뭐. 생체병기라 해서 별다른 특징이 있는 건 아니다. 기껏해야 ‘아무리 죽이고 죽여도 계속 부활한다는 것’ 정도. 죽이고, 확인 사살을 두 번 세 번씩 확실하게 해 놓고, ‘해치웠나?’라는 말을 자제하더라도 일주일 정도 지나면 다시 나타나서 깽판을 치곤 했으니까.
게다가 부활할 때마다 항상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된 채로 나타나고, 단독으로 행동하는 놈인지라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예측도 안 돼서 늘 골머리를 썩이는 존재였지.
그러다 종족전쟁 최후반부 즈음, [H.N.H. 코퍼레이션]의 과학자 한 명을 족치다 녀석의 비밀을 알게 됐는데.
- 크크크... 부활? 웃기는 소리를 하고 있군. 여태 너희들이 죽여 왔던 건 그저 [올 포 원]의 아바타에 불과하다.
사실 [올 포 원]의 본체는, 배양액 속에서 가상현실을 경험하고 있는 ‘통 속의 뇌’들이었다.
물론 배양액 속에서 가상현실이나 감상하고 있는 뇌 하나하나는 현실 세계에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
허나 그런 뇌의 개수가 4만 개나 된다면, 그 각기 다른 뇌들이 전부 백지상태로 초기화돼 ‘하나의 가상현실’을 경험하면서 ‘같은 사람’으로 인지하게 된다면 이야기가 좀 다르다.
[링크]가 발생하니까.
뿐만 아니라 그 뇌들이 경험하는 가상현실의 설정도 골 때리는데-
“저기. 교수님?”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말을 걸어오는 교도소장. 아. 참. 여기 소장실이었지.
“아. 예.”
“어허허허. 별 일 없으셔서 다행입니다. 그래서... 열흘간 연구는 많이 하셨습니까?”
“예. 덕분에요.”
“어이구. 저 꼴통새끼들이 교수님 같이 훌륭한 분의 연구에 도움이 됐다니 참 다행입니다그려. 어허허허.”
“아하하하...”
어색하게나마 따라 웃어 보이는 가운데, 웃고 있던 교도소장이 은근슬쩍 물어왔다.
“그나저나 갑자기 [외부 갱생 시설]에 가 보고 싶으시다니, 그곳엔 또 무슨 볼일이십니까?”
뭐. 원래라면 이니시움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뇌 이식]의 정황을 포착한 지금 [외부 갱생 시설]은 꼭 확인해 봐야 했다. 모두와의 장소이자 이제는 내 직장이 돼버린 이니시움 아카데미를 때려 부수는 용역깡패가 그곳에 있을지도 모르니까. 라인하르트야 맞아죽던 말던 내 알 바 아니고.
물론.
“연구에 필요해서요.”
교도소장한테 그걸 다 말할 이유는 1도 없다. 연구라는 말에 교도소장이 침음을 흘렸다. 아무래도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는 눈치였다. 하긴 뭐, 처음 [외부 갱생 시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만 하더라도 소장은 ‘약물치료’정도로 믿는 눈치였으니까.
“어허허허... 그런데 [외부 갱생 시설]은 말 그대로 외부 병원이라 제 소관이 아닌데다 연합 소관도 아니라 좀...”
“... 그럼 어디 관할입니까?”
“어허허허... 기밀인데...”
교도소장이 잠깐 뜸을 들이다 말을 이었다.
“매지시아랑 H.N.H가 공동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거 어디 가서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어허허허...”
역시. 내 예상이 얼추 맞아떨어져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노인네의 뇌를 젊은 몸에 이식한다면, 늙은 몸은 쓸모없다 치더라도 젊은 뇌는 어딘가 쓸 수 있기 마련이니까. [뇌 이식] 말고는 그렇게 많은 ‘싱싱한 뇌’를 조달할 방법이 없기도 하고.
“흐음. 아무튼 그곳은 제 소관이 아닌 만큼, 공문서 위조는 저도 꽤 리스크를 지고 들어가는 터라...”
한편 뭣 좀 더 챙겨 달라는 듯 입맛을 다시는 교도소장. 나는 작은 한숨을 삼키며, 내가 가진 패를 하나 오픈했다.
“혹시 푸른들장학재단이라고 아십니까?”
“어... 아. 들어는 봤습니다. 그 도재명이란 유명한 의사선생님께서 운영하는 재단 아닙니까?”
“아드님 그 재단 특별 장학생 추천해 드린다면 충분하겠-”
“허허. 지금 신분 그대로 보내드리면 되겠습니까?”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웃으며 이야기하는 교도소장. 역시 인맥만한 게 없다.
---
우웅-
소장의 도움을 받아, 저녁 때 즈음 나는 몇몇 죄수들과 함께 [외부 갱생 시설]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나 말고도 다른 죄수들이 꽤 있었는데.
“으흐흐흐...”
“아하하...”
상태 안 좋아 보이는 녀석들의 비율이 대략 90%. 아무래도 모든 죄수들이 [뇌 이식]의 희생양이 되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어디 보자... 이름이... 멍청? 사람 이름이 멍청이야?”
“... 예.”
“특이한 이름이구만... 그리고 병력에... 분노조절장애 있네?”
“예.”
“흐음... 몸에 문신한 거 있나?”
“없는데요.”
흉터는 좀 있지만.
“성병은?”
“... 없는데요.”
의사는 많은 것을 물었다. 혈액형, 음주경력, 마약 복용 경력 등등. 그렇게 10분 정도 질의응답 시간이 끝나자, 의사는 자기가 앉아 있던 책상 서랍에서 알약 두 정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좋아... 분노조절장애니까, 그럼 일단 이 약부터 먹고 얘기 마저 하자.”
“...”
알약을 주시하고 있으려니까 [빅 데이터]가 곧바로 창을 띄웠다.
[ Zolpizolpi ( 분류 : 수면제 ) ]
[ 각성자 전용 수면제. 약효가 매우 강해 먹는 즉시 잠든다. ]
“...”
“뭐 해? 먹으라니까.”
“... 예.”
수작이 뻔히 보이지만 애석하게도 이런 약은 내게 통하지 않는다. 생체실험 하루 이틀 당한 몸도 아니고, 이 정도 약의 [해독]은 변화의 마나를 이용해 그리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었다.
꿀꺽-
내가 약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걸 확인한 의사는, 자기 마나블렛 화면 쪽으로 향하며 중얼거렸다.
“1분 정도 지나면 슬슬 졸릴 거야. 당연한 현상이니까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고... 좋아. 그 안쪽 생활은 어떻지? 뭐 누가 괴롭힌다던가 하는 거 있나?”
“거긴...”
털썩.
일부러 잠든 척 하며 앞으로 쓰러지자, 상담하던 의사는 피식하고 웃더니.
“들여보내.”
삐이- 소리가 나는 버튼을 누르며 한 마디 했다.
덜커덩-!
채 1분이 지나지 않아 상담실로 의료진 몇 명이 들어왔고, 나는 그들이 가져온 의료용 침대 위에 눕혀졌다. 혼신의 힘을 다해 자는 척 하는 가운데, 의료진 중 하나가 질문했다.
“누구한테 연락드릴까요?”
“그... [갤럭시넷] 황웨이칭 부사장한테 연락드려. 만족하실 만한 매물 나왔다고.”
“예.”
---
나는 의료용 침대에 눕혀진 채, [외부 갱생 시설]의 지하의 한 수술실로 이송됐다. 그곳에서 의료진들이 내 몸에 바늘 꽂고 뇌파 측정기 등을 붙일 때마다.
- 어어. 거기 자르면... 어우. 피난다. 얘 죽는다.
... 조금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지만, 그래도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며 자는 척을 했다.
“자는 거 맞지?”
“뇌파랑 심박 보면 몰라? 완전 곯아떨어졌잖아.”
[전류]를 조금만 다룰 줄 안다면 이런 의료기기 조작은 일도 아니다. 아마 한겨울도 할 수 있을걸.
삐이- 삐이-
아무튼 그렇게 의료용 침대에 드러누운 채로 [전류]와 [해독]을 계속 유지한 지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어이구. 부사장님 오셨습니까.”
드디어 ‘내 몸’을 탐내는 녀석이 등장한 듯했다. 실눈 떠서 [빅 데이터]로 면상이나 확인할까 싶었지만, 일단은 더 자는 척 해보기로 했다.
“그래. 괜찮은 게 나왔다고?”
“예. 마침 저기 있으니, 한 번 확인해 보십시오.”
저벅저벅-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눈을 뜨고 있지 않아도 강렬한 시선이 느껴지는 가운데.
스윽-
놈이 나타나자마자 다짜고짜 내 허벅지를 슥 쓰다듬었다. 독두꺼비 비슷한 뮤턴트의 혀에 핥아질 때도 별 감흥 없었는데, 손짓 한 방에 온몸에 소름이 죽 돋는 느낌. 그렇지만 아직은 좀 더 기다려 봐야 했다.
“허허. 정말 마음에 드는군. 이제 내 새 몸이 되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부사장님.”
“후후... 맘에 드는군. 그래. 살다 보면 돈이고 명예고 권력이고 다 필요 없어. 건강이 최고지. 잘생기면 더 좋고.”
“... 미리 말씀드렸지만 수술 후 한 달 정도의 적응 기간이 필요하실 겁니다. 그리고 적응기가 끝나면 바로 루드비코 소년교도소로 가게 되실 거고-”
“다 기억하고 있네. 거기서 1주 정도 참고 기다리다가, 특별사면 대상으로 나가는 거지. 그보다 내가 이곳에 온 기록은 확실히 안 남는 거겠지?”
“예. 그것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수술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해선 그 어떠한 영상이나 문서상의 기록을 남기지 않고 있으니까요.”
“허허.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일단은 믿어 보겠네.”
의사와 부사장이라는 작자들이 지들끼리 좋다고 대화하는 가운데, 의료진 중 한 사람이 끼어들었다.
“수술 준비 완료됐습니다.”
“으음. 부사장님, 슬슬... 준비 되셨습니까?”
“허허. 준비랄 게 있나.”
덜커덩-
내 옆에 준비된 침대에서, 묵직한 것이 드러눕는 소리가 들려왔다. 팅-!하고 주삿바늘 튕기는 소리와 함께, 의사가 중얼거렸다.
“일단 한 숨 푹 주무시고 나시면, 몸이 한결 개운하실 겁니다.”
“허허. 기대하지.”
“그럼...”
푹. 후우-
희미하게 쇠바늘이 살을 가르고 들어가는 소리 이후로, 옆 침대에서 들려오던 숨소리가 차분해졌다.
“뇌파 안정됐습니다.”
“심박도 정상입니다.”
“자. 그럼 시작하자고.”
수술실 안에 있던 의료진들의 정신이 온통, 부사장이라 불린 남자가 제대로 잠들었는지에만 쏠린 틈을 타.
스윽-
이번엔 내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Comment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