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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내 힘 돌려줘요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완결

가시멧돼지
작품등록일 :
2021.09.03 13:06
최근연재일 :
2022.11.14 00:13
연재수 :
18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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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25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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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96. 알렉산드리아 (3)

DUMMY

96.


“그나저나 [NULL] 이 개새끼들... 이름이라도 좀 바꿔서 나올 것이지.”


내가 작게 이를 갈자, [빅 데이터]가 창을 띄운다.


띠링-!


[ NULL ( 분류 : F.E.E ) ]

[ F.E.E. 최초이자 최후의 집단. 이들의 선전포고로 인해, 4번째 공통사건 ‘3차 기업대전’이 종료되고, 5번째 공통사건 ‘더 넥스트 제너레이션’이 시작된다. ]


적혀 있는 대로, 녀석들은 깡통로봇 패거리. 그러니까 깡패집단이다.


[F.E.E]들의 행동원리가 ‘찾고, 먹고, 진화하는’ 것 밖에 없는 만큼, 녀석들은 원래 서로 다른 기종끼리 협력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지들끼리 만나면 서로 죽일 듯이 싸우는 편이지. 먹으면서 진화하는 깡통로봇들에게 있어 다른 개체는 쓰러드리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먹잇감으로 삼을 수만 있다면 비할 데 없는 최고의 만찬이니까.


허나 [F.E.E]중 프로그래밍되지 않은 ‘협력’이라는 새로운 행동원리를 깨닫고 집단행동을 하는 개체들이 몇몇 있는데, 그런 녀석들이 뭉친 게 바로 [NULL]이다.


“... 근데 이 녀석들 그냥 조용히 와도 될 텐데, 왜 굳이 꽹과리 치면서 오는 거지?”


-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정리 드리겠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동안, 회의실 중앙에서 계속 흘러나오던 목소리는, 어느덧 2차 시험의 안내를 마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 [2차 시험] 과제는 ‘경호’입니다.


- 응시생 여러분께서는 각자 지정받은 대상을, 학회 기간 내내 [NULL]을 비롯한 외부 위협으로부터 보호하시면 됩니다.


- 시험은 절대평가로 치러지며, 이 자리에 있는 전원이 합격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 해당 과제에서 가장 중요한 평가 사항은 ‘경호 대상의 만족도’와 ‘경호 대상의 지적 재산권 침해 정도’ 입니다. 물론 경호 대상이 사망한 경우 즉시 실격 처리됩니다.


- 타 응시생의 경호 대상을 보호하는 것은 평가 기준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 여러분의 경호 대상은 약 2시간 뒤 개별적으로 송신드릴 예정입니다.


- 응시생 여러분들 모두의 건투를 빌겠습니다.


- 이상입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회의실 중앙에 떠다니던 홀로그램이 전부 꺼졌다. 건조하게나마 정보를 전달하던 음성도 더 이상 흘러나오지 않았다.


“... 끝?”


“뭐야. [NULL]이 누구인지, 뭐 하는 놈들인지 그런 건 안 알려줘?”


임무의 막연함에 황당하다는 듯 중얼거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극히 소수였다. 대부분은 오히려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NULL]이고 자시고... 그냥 말 그대로 사람 지키기만 하면 되는 거네.”


“뮤턴트 득실대는 던전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생사도 위치도 모르는 인질들 구해 오는 것도 아니고... 평범한 경호 업무.”


“1차가 헬이더니 2차는 나름 개꿀인데?”


지금 자기들이 치르는 게 다른 시험도 아니고 ‘국가 단위 존재’인 헌터를 가리는 시험인 만큼, 이 정도는 양호하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였다.


“... 지랄 하네. 진짜...”


물론 [NULL]의 정체를 아는 나는 전혀 양호한 난이도라 생각하지 않지만.


한편 회의실 안의 사람들 대부분이 별다른 움직임 없이, 그저 웅성이기만 하는 가운데.


“자! 자! 잠깐 모두 주목해 봐!”


한구석에서 키 크고 얄쌍하게 잘생긴 남자 하나가 머리 위로 박수를 치기 시작하더니.


쿵!


난데없이 회의실 중앙에 비치된 테이블 위로 올라가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


“뭐야?”


“아. 나는 존 존이라 하는데, 여기 있는 모두가 윈윈하는 제안을 하나 할까 해.”


“... 윈윈하는 제안? 그게 뭐지?”


“아. 뭐냐면... 이번 임무는 경쟁이 아니라 경호잖아? 그러니 다 같이 협력하는 거야.”


“협력? 병신 같은 소리를 하는군.”


“혼자서도 할 수 있는 미션인데 말이지.”


몇몇 응시자들은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회의실을 빠져나갔지만, 테이블 위의 남자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이번 과제가 쉬워 보일 수도 있지만, 결국은 헌터 시험이야. 분명 뭔가가 있을 거란 말이지. 그리고 절대평가라잖아? 옆에 있는 사람을 떨어뜨려야 붙는 것도 아닌데, 굳이 서로 협력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남아 있던 사람들이 자신을 존 존이라 밝힌 남자의 말에 웅성거리다가, 한 여자가 손을 들고 물었다.


“잠깐. 타인의 경호 대상을 보호하는 것은 평가 기준에 포함되지 않는데. 굳이 협력할 필요는 있나?”


“그게 바로 헌터 시험 관리본부에서 노린 포인트지. 응시자들끼리 협력하면 과제가 너무 쉬워지니까.”


“... 그렇다면 ‘협력’은 출제자의 의도에 반하는 것 같은데?”


“아니지. 협력을 금지한 건 아니잖아? 딱히 추가점수는 없지만, 필요하다면 알아서 재량껏 하란 의미지.”


“하지만-”


“나도 강요하는 건 아냐. 원래 도움이 필요한 사람끼리 도우는 법이니까. 다만 한 번 협력을 약속하면 끝까지 가자고. 정보만 먹고 도망치는 건 사양이라.”


“... 그럴 듯한데.”


“절대평가니까... 힘을 합쳐서 손해 보는 일은 없겠어.”


사람들이 하나둘 자신을 존 존이라 밝힌 남자의 말에 넘어가는 가운데, 몇몇은 등 돌려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 별 되도 않은 사기를 치고 있네. 미친 새끼가.”


나도 그 중 하나였다. 듣기에는 그럴듯한 말이었지만, 협력은 항상 수준차이가 적게 날 때 성립하는 단어. 저 자리에 있는 대부분은 [NULL]과 싸울 때 아무 도움도 안 된다. 발목이나 안 잡으면 다행이지.


뿐만 아니라.


[ 루 헤럴 ( 29세 ) ]

[ 마나량 : 3531 ]

[ 미래의 이명 : 없음 ]

[ 마나의 속성 : 변화 ]


“... 이름은 제대로 밝히고 그런 말 해야 설득력이-”


“후배님?”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데,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정예원이다.


“뭐.”


“으음. 후배님은 저 존 존이란 남자와 협력하지 않으려고?”


“어.”


“왜?”


“... 난 원래 모르는 사람이랑 협력 같은 거 안 해.”


“어머. 후배님도 나와 같네.”


살짝 웃으며 작게 박수를 치는 정예원. ‘너’가 아니라 ‘후배님’이라 부르는 걸 보아, 이 여자도 뭔가 속내가 있는 게 분명했다.


“... 근데 왜. 갑자기.”


“으음... 본론만 얘기하자면, 후배님과 나는 아는 사이잖니?”


“... 그래서?”


“저 회의실 안에 있는 사람들과는 별개로, 우린 우리끼리 힘을 합쳐 보는 건 어떻겠니?”


악수를 청하듯 손을 내미는 정예원. 나는 의심의 장막을 펼친 채 물었다.


“... 왜 하필 나랑?”


“아. 사실 후배님이 혼자 중얼거리는 걸 얼핏 들었는데, 뭔가 [NULL]이란 친구들에 대해 아는 것 같아서 말이지. 후훗.”


... 그럼 그렇지.


“그리고 난 후배님 정도면 꽤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 실력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여러모로. 후훗.”


“...”


뭐. 사실 현재 상황에서 정예원은 꽤 도움이 된다. 아니. 도움이 되는 수준 그 이상이다. 전자기장을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이 여자는 ‘대 깡통로봇 전’만 고려한다면, 박준 사부, 아니. 박준 형을 능가하는 스페셜리스트니까.


다만.


“후배님이 영 싫다면 어쩔 수 없지만... 당분간은 ‘잘 자랑’과 ‘알겠음’이 우리 회사에서 납품하는 마나블렛 로딩 화면에 떠 있을지도 모르겠네. 후훗.”


협력했을 때 도움받는 거 이상으로 내 정신이 고통받을 걸 알기에, 잠시 망설이고 있었을 뿐.


뭐.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었기에, 나는 녀석이 내민 손을 잡는다.


“... 사람이 서로 돕고 살아야지.”


“어머. 현실에서도 ‘알겠음’이라 대답하진 않는구나? 푸훕.”


“...”


“아무튼, 같이 하기로 한 거네? 앞으로 학회 기간 동안 잘 부탁해. 후배님.”


정예원의 능글맞은 웃음에, 눈앞이 살짝 캄캄해졌다.


---


알렉산드리아 학회.


매년 행성 알렉산드리아에서 개최되는 권위 높은 학회로, 공학, 마나과학, 자연과학, 인문학 등 학문이라면 그 분야를 막론하고 수많은 석학들이 모여 한 해의 연구성과를 나누고 친목을 도모하는 자리.


이른바 ‘인류가 이뤄낸 모든 것’이라 불리는 학회다.


참여하는 랩만 해도 수천 개가 넘으니 학회장의 규모야 뭐 말할 것도 없고, 학회에 참여하는 사람의 종류도 다양하다.


“황영수 교수님. 매년 학회를 깜짝 놀라게 하시더니, 올해는 웬일로 잠잠하신 것 같습니다?”


“흠흠... 올해는 안식년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네.”


“하하. 오히려 안심입니다. 솔직히 저는 여태 교수님이 로봇인 줄 알았는데, 이제야 사람처럼 보입니다그려. 하하하!”


“...”


당연히 학회의 메인인 연합 산하 아카데미나 대학 교수들과.


“이번에 H.N.H.에서 신규채용 한다던데...”


“박사만으로는 힘들겠지?”


그들의 노예인 대학원생들은 물론이고,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들도 상당수 이 학회에 참석하곤 한다.


특히 로봇기술 독점기업 [슈마허 인더스트리]는 거의 매년 대형 홀을 빌려서 발표회를 열만큼, 알렉산드리아 학회의 단골손님인데-


“... 그러니까... 헌터 시험 2차 과제가 경호인데... 저희 경호를 맡은 게 당신이라고요오?”


“아... 안녕하세요. 선배...”


... 내 경호 대상은 그런 슈마허의 딸래미 두 사람, 그러니까 내가 너무나도 잘 아는 여자들이었다.


“... 당신 혹시 저랑 링링에게 이상한 수작 부리는 건 아니겠죠오?”


“... 내가 왜 니들한테 수작을 부려.”


스윽-


[ 권민성 ( 수험번호 003231 ) ]

[ 경호 대상 : 슈마허 인더스트리 - D팀 ( 유아라, 유링링, 김명민 )


나는 즉시 마나블렛을 꺼내어, 내게 주어진 과제를 유아라에게 보여주지만.


“무슨 우연도 이런 수상한 우연이...”


유아라는 패러독스에서 선보였던 개미 모양 로봇을 품에 안고,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만을 지을 뿐이다. 그러고 보니까 얘는 이제 내 앞에서는 얼굴표정 숨기지도 않네.


“그래서 당신이 우릴 경호한다는 건... 어떤 의미죠오?”


“... 경호가 뭐긴 뭐야. 니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동안 그냥 잘 지켜보고 있다가, 위험에 빠지면 구해 주는 거지.”


“바... 밤에도요오?”


“밤에는 칼 안 맞냐?”


“그... 그건 그렇지마안...”


유아라는 뭔가 못마땅한 듯 불편한 듯 고개를 숙이고.


“그... 잘 부탁드려요...”


링링은 한술 더 떠서 아예 유아라 뒤에 숨어버리지만, 뭐. 오히려 잘 됐다.


[NULL]도 결국은 [F.E.E]고, 깡통로봇들의 타겟 1순위인 유아라랑 링링이 이 자리에 있는 순간부터 다른 머저리들한테 얘네 둘을 맡기는 것보단 내가 지키는 편이 나으니까.


아무튼 그렇게 30분 정도 지났을 무렵.


“이번 마나석 고갈 이슈에 대해서, 저희 ANT-002가 작은 해답을 제시할 수 있을 거라 믿어요오.”


처음에는 뭐라 하던 유아라는 금방 내 시선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는지, 여기저기 수많은 사람들과 거리낌 없이 교류하고 있었다.


“...”


그 뒤의 링링은 계속 내 쪽을 쳐다보고 있긴 했지만 뭐...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고, 당장은 [NULL]놈들이 뭔가 수작질을 부리고 있지 않다는 게 본질-


“야야야. 씨발.”


툭-


순간 내 팔을 두들기는 목소리. 고개를 돌리니 그곳엔.


“오랜만이다. 씨발. 잘 지냈냐?”


태어나서 처음 보는, 키 작은 여자가 한 명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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