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신학기 (3)
109.
[ 완성 ]
메모에 적힌 짧은 두 글자만으로도 의미는 다 전달됐다. 장장 11개월 동안 계속됐던 [레벌레이터 프로젝트]가 드디어 끝이 난 것이다. 기억장치를 쥐어들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이딴 게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한 프로그램이라니.”
과장이 아니라 ‘저쪽 세계’에서는 정말로 이렇게 불렸다. 그도 그럴 것이 중견기업 [오라클]을 단 1년 만에 우주적인 대기업으로 키운 주가 예측 시뮬레이터는, 곧 있을 종족전쟁에서 [F.E.E.]를 독보적인 존재로 만들어주는 전략 수립 시뮬레이터로 변질되니까.
그런 [레벌레이터 프로젝트], 아니. 완성된 [레벌레이터]가 내 손 안에 있었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 Type-13, 잠깐 나와 봐.”
스으으으-
- 무슨 일이지?
나의 부름에, 열심히 방 안의 먼지들을 하나하나 줍고 있던 [미스트]가 모습을 갖추었다. 나는 녀석에게 기억장치를 내밀며 물었다.
“이거, 봤냐?”
- 보았다.
“내용물은 확인해 봤고?”
- 확인하지 않았다.
“왜지?”
- 너로부터 아직 봐도 된다는 말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분명 죽고 싶지 않아서 사리는 거겠지만... 묘하게 마음에 드는 짓만 골라 하는 녀석이다 뭐. 쓸데없는 생각 할 필요 없이 나는 [미스트]에게 기억장치를 내밀었다.
“그럼 한 번 확인해 봐.”
- 알겠다.
녀석을 구성하는 소형 로봇들이 기억장치에 다닥다닥 달라붙었다. 그리고는 한참 동안이나 말이 없었기에, 내가 먼저 물었다.
“어때?”
- 이건 정말... 아름답군.
“... 그 정도냐?”
- 그렇다. [갤럭시넷]과 [Li4U], 우주단위 인터넷에 존재하는 모든 정보를 이용해 미래를 예측하게 설계돼 있고 연산량도 고작 log(log(N))... 그 결과값이 고작 주가라는 것으로밖에 도출되지 않는다는 것이 유일한 흠이지만... 이건 정말 정교하고... 난해하며... 위대하고... 아름답군.
로봇 주제에 황홀경에 빠진 것마냥 횡설수설하는 [미스트]. 나는 그 틈을 타, 은근슬쩍 내 ‘본심’을 꺼냈다.
“이걸 이용해서 [NULL]의 계획을 유추해 볼 순 없나?”
- 정말로 위대하군. 이것의 인간의... 응? 방금 뭐라 했지?
“... 이걸 약간 손 봐서, [NULL]의 동선을 예측하는 프로그램으로 변형할 수는 없냐고.”
이것이 헌터가 되면서 더 이상 돈이 필요 없게 됐는데도 [레벌레이터 프로젝트]를 지원한 이유였다. ‘저쪽 세계’에서 깡통로봇이 인류와 신인류의 동선을 예측했다면, ‘이쪽 세계’에선 내가 녀석들의 동선을 예측하는 것 말이다.
그리고 나의 물음에 [미스트]는 꽤나, 의외로 빠르게 대답했다.
- 프로그램 변형은 가능하나, 정작 가동이 불가능하다. 현재 내가 가진 마나량으로는 1시간 후의 움직임조차 예측할 수 없을 것이다.
역시 그런가. 하긴 뭐. ‘저쪽 세계’에서 [레벌레이터] 역할을 하던 존재, [위버멘쉬]가 마나량 50000을 훌쩍 넘겼던 걸 생각하면 당연할지도. 뭐 좋은 방법이 없나 고민하던 그 때, [미스트]가 말을 이었다.
- 허나.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내 기능 중 하나인 '진화'를 이용하면 가능하지.
“... 진화?”
- 그렇다. 바로 내가 가진 다른 모든 기능을 폐쇄하고, 오로지 이것을 위한 연산장치로 '진화'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의 현재 마나량으로도, 이것을 통해 [NULL]의 움직임을 예측 가능할 것이다.
아. 맞다. 이 녀석도 필요에 따라 진화하는 깡통로봇, [F.E.E.]였지. 너무 비굴한 녀석인지라 그간 잊고 있었다.
“언제부터 가능하지?”
- 안정적으로 진화 과정을 마칠 수 있는 장소와 [에그]를 형성하기에 충분한 양의 금속만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가능하다.
[에그]는 깡통로봇들이 진화할 때, 자기들을 알처럼 감싸는 금속 껍데기. [미스트]의 덩치를 고려한다면... ‘거기’ 있는 거면 충분하겠네.
---
슈우우우-
[순간이동 키트]를 누르니, 눈 깜짝할 사이에 눈의 행성 에브게니아였다.
헌터 자격증을 따고 나서 가장 편해진 점은 역시 이거였다. 행성간 순간이동이 자유로워진다는 것.
원래라면 기업 의뢰니 봉사활동이니 어떻게든 명분이 있어야 올 수 있는 타행성을 이렇게 편하게 올 수 있다니, 감개가 무량했다.
- 에브게니아... 듣던 대로 기온이 상당히 낮은 행성이군. 진화하기는 좋은 환경이다.
“... 금속은 저기 충분히 있을 거야.”
나는 온통 하얀 세상 속에서, 혼자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폐공장을 가리켰다.
쿵-!
예상대로 폐공장 안에는 이전에 도재명 패거리가 마약 정제하는 데 쓰이던 기재들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해체하기 위해 있던 갈고리, 대, 칼날, 게다가 가벽에 난방 시설 등등. 공장도 꽤 커서 다 합치면 금속 쓰레기만 족히 몇 톤은 나올 터였다.
뭐. 언젠가 쓰려고 이렇게 쟁여 놓은 거겠지만... 나중에 그만큼 일해 주면 되지. [미스트]의 진화가 더 급하다.
“그 금속이라는 거, 여기 있는 정도면 충분한가?”
- 약간 부족해 보이지만, 어떻게든 끌어모은다면 작은 [에그] 하나 정도는 만들 수 있을 것 같군.
“그럼, 시작하자고.”
콰직-!
[미스트]가 형태를 망치처럼 바꾸어, 폐공장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때려 부수기 시작했다. 일부는 손의 형태로 폐자재를 모았다. 그렇게 삼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아, 공장 내의 모든 금속은 한데 모여 거대한 기계 알의 형태를 갖추었다. [미스트]가 그 껍데기 내부를 가리키며 말했다.
- 이 안에, 나의 코어를 넣어다오.
“응.”
스윽-
나는 유아라가 사준 검정색 가방에서 코어를 꺼냈다. 원래 푸른빛을 띠던 코어는 [올 포 원]의 아바타를 먹은 이후로는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에그]안에 들어간 코어는 저절로 떠올라, 허공에서 심박 같은 공명음을 냈다.
“진화에는 몇 시간이나 걸리지?”
- 진화라 해 봐야 몸을 재구축하는 것뿐이니, 네 시간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그보다 한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이 있다.
“... 뭔데.”
- 정밀한 계산을 해 본 결과, 내 모든 기능을 폐쇄하는 진화를 거치더라도 이 [레벌레이터]라는 프로그램을 작동시키기에는 내 마나량이 약간 모자라다.
“... 그래서?”
- 앞으로 이 프로그램을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너의 마나를 일정량 주입해 줘야 할지도 모른다. 괜찮겠...나?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이 녀석이 [레벌레이터]만 꿀꺽하고 배신하는 시나리오를 고려하고 있었는데, 내 마나를 먹어야 한다면 그럴 염려조차 할 필요가 없으니까.
“상관없어. 빨리 진화나 하라고.”
- 그래... 알겠다.
스으으으-
녀석의 몸이 안개처럼 흩어지며, [에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마자 마치 우주비행선의 문이 닫히듯, 기계 알의 껍데기가 빈틈없이 메꿔졌고.
두궁-! 두궁-!
‘코어’가 내는 것이 고동이라면, [에그]는 태동에 가까운 듯한 울림을 내기 시작했다.
“하아... 4시간이라 했-”
띠리리링-!
기지개를 뻗는 와중에 난데없이 울리는 마나블렛. 그것도 메시지도 아니고 통화였다. 발신자는 안 봐도 뻔...하지 않네. 웬일로 요즘 연락이 뜸하던 링링이었다.
“어. 왜.”
- 저... 민성 선... 아니. 교배... 아니아니. 교수님...
“... 그냥 옛날처럼 불러.”
- 아. 네. 선배... 저... 그... 뭐 하고 계셨어요...?
“그냥 있었어. 넌?”
- 저도 그냥... 침대에서 [Li4U]보고 있었어요...
“그래?”
- 네...
“그래.”
- ...
나나 링링이나 말하는 재주는 없는 사람들인 만큼, 대화는 또 툭 끊어지고 말았다. 그 이후로 한참 동안의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고, 그 기약 없는 정적을 부순 건 내 쪽이었다.
“... 하아. 링링. 그래서 왜 전화했는데?”
- 아. 선배... 그게요... 언니랑 저랑... 다음 주에는 수업 못 나올 것 같아요...
“그래? 왜?”
- 그게... 저... 행성 테라미시에 마나석 광산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돼서... 정확하진 않지만...
행성 테라미시(Terramish). 아미시의 땅.
문명을 거부하는 자들끼리 모여 사는 행성이란 건 알고 있는데... 거기에 마나석 광산이 있다는 말은 금시초문이다. 빠르게 [빅 데이터]를 뒤져 봐도 매한가지다. 지들이 가겠다는데 내가 말릴 이유는 하등 없지만.
“그래. 뭐... 잘 갔다 와. 애초에 출석도 없는 수업에다가 그런 걸 왜 말해 두는 지는 1도 모르겠지만...”
- 그... 그건 아라 언니가 저보고 말해 두라 하셔서- 히익! 저... 저 이만 끊을게요. 선배. 안녕히 주무세요!
뚜-
마나블렛 너머에서 유아라가 뭐라뭐라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오기가 무섭게, 전화를 끊어버리는 링링. 뭐지 하는 생각을 하던 찰나.
푸슈우-
때마침 [에그]에서도 엄청난 열기의 스팀이 한 번 뿜어져 나왔다.
---
[미스트]가 [에그] 안으로 들어간 지 어느덧 3시간 정도가 지났을 무렵, 링링으로부터 다시 한 번 연락이 왔다.
띠링-! 띠링-! 띠링-!
[ 유링링 -> 권민성 : 저... 선배... ]
[ 권민성 -> 유링링 : ㅇㅇ 왜 ]
[ 유링링 -> 권민성 : Li4U 보다가 우연히 발견했는데... ]
[ 유링링 -> 권민성 : 이 영상 보셨어요...? ]
[ ‘유링링’ 님이 링크를 보냈습니다. ]
틱-
[ 영상을 재생합니다. ]
- 미야아오~
링링이 보낸 건 고양이가 요리하는 8분짜리 영상이었다. 내가 이걸 왜 보고 있나 하는 마음으로 고양이가 칼질하고 지지고 볶는 걸 5분 정도 보고 있을 무렵, 다시 한 번 마나블렛이 울렸다.
띠링-!
[ 유링링 -> 권민성 : 선배 죄송해요... 링크 잘못 보냈어요... ]
[ 권민성 -> 유링링 : ... ]
[ 유링링 -> 권민성 : 이... 이걸 보냈어야 했는데... ]
[ 유링링 -> 권민성 : 죄... 죄송해요... ]
[ ‘유링링’ 님이 링크를 보냈습니다. ]
틱-
[ 영상을 재생합니다. ]
- 치이이이이...
이번에 링링이 보낸 영상은 아까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였다. 방금 전 고양이 영상은 시작하자마자 고양이 얼굴부터 들이밀었는데, 이번 것은 그저 까만 화면에 노이즈만 흘러나올 뿐이었으니까.
아무래도 이 채널 주인장은 [Li4U]로 성공할 생각은 1도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잡생각을 하던 찰나.
「 세대교체의 시간이다. 」
순간 마나블렛에서 들려오는 단호한 기계음. 이내 검은 화면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깡통로봇들의 수장, [위버멘쉬].
... 뭐야. [F.E.E.] 놈들이 왜 [Li4U]를 하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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