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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내 힘 돌려줘요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완결

가시멧돼지
작품등록일 :
2021.09.03 13:06
최근연재일 :
2022.11.14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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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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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03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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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07. 신학기 (1)

DUMMY

107.


행성 루드비코에서 돌아오고, 대략 한 달 정도가 지났다. 꽤나 바쁜 나날의 연속이었다. 이니시움에서 시간강사 등록도 해야 했고, 한겨울이랑 마리아 할멈 보러 성 에피토아 여고에도 갔다 와야 했었으니까.


뭐. 그 한 달 동안 우주에 별다른 사건은 없었다. 두 번째 공통사건인 [클래시피케이션]이 발표되지도 않았고, 깡통로봇 집단 [NULL]이 어딘가에서 대량학살을 벌이지도 않았다. 정작 사건이라 할 만한 것들은 전부 다 내 주위에서 일어난 일들이었다.


그 사건이란 것들은 가령.


- 너 왜 멍때리고 있냐?

- ... 아... 아무 일도 아니라능.


김석봉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창밖을 보는 시간이 늘어났다는 것이라던가.


- 이게 뭔데?

- 보... 보면 몰라요? 가방이죠.

- ... 아니. 그걸 몰라서 묻는 게 아니라, 이걸 왜 나한테 주는 거냐고.

- 그건... 됐고! 그냥 받기나 해요!


별로 친한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유아라가 난데없이 백팩을 선물해 온다던가.


“하아암... 졸리군...”


“...”


이니시움에서 제적당한 정명훈이랑 같이 살기 시작했다는 것이라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 야. 밥은 다 먹고 자라.”


“으... 으음... 알겠다...”


뭐. 정명훈이랑 같이 산다 해서 특별히 불편하다 할 만한 것은 없다. 전 룸메이트 박준 사부에 비하면 대하기도 편하고, 녀석은 거의 하루 종일 방에 틀어박혀서 코딩만 하고 있기에 집 안에서도 마주칠 일이 거의 없으니까. 지금처럼 밥 먹을 때 겨우 마주하는 게 전부일 정도.


“프로젝트는 완성까지 얼마나 남았냐?”


“이제 거의... 다...”


쿵-!


“쿠울...”


“... 이럴 줄 알았어.”


물론 간혹 가다, 녀석이 이렇게 밥 먹다가 식탁에서 잠들어버리긴 하지만... 그래도 지낼 만 하다.


털썩-


나는 정명훈이 쓰는 방 침대에다가, 녀석을 던져 놓았다. 방 안의 마나 컴퓨터에는 내가 이해할 수도, 이해해야 할 이유도 없는 수많은 프로그래밍 창들이 띄워져 있었다.


“... 어지럽네.”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을 잃을 수도 있었기에, 나는 재빨리 녀석의 방을 빠져나왔다.


드르렁-


코고는 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나는 도로 식탁에 앉았다. 한 손으로는 [쿄쿠미]에서 파는 즉석볶음밥을 대충 깨작이고, 다른 한 손으로는 마나블렛으로 뉴스 기사들을 뒤졌다.


[ 갤럭시넷 황 전 부사장, 아동성폭행 혐의 이후 잠적 ]

[ 행성 루드비코의 정신병원 전소... 생존자 수색 중 ]

[ 30살 평생 비만이던 여자... ‘이것’ 먹으니 11kg 빠져 ]


행성 루드비코에서 있었던 일들은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기레기 집단으로 유명한 [GZNS]가 어그로성 낮은 제목으로 다룬 것이 전부일 정도. 그 병원에서 [올 포 원]이 100명 넘게 죽였단 걸 고려하면, 분명 누군가가 연합에다가 언론 통제를 요청한 게 분명했다.


“뭐. 사건이 작아져서 나한텐 나쁠 거 없지만...”


- 그 날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나 보군.


나 혼자만의 중얼거림에, 순간 거실 쪽에서 기계음이 들려왔다. 로봇청소기로 위장해 있던 [미스트]였다. 녀석은 바닥의 먼지를 쓰레기통에 내버리며 말을 이었다.


- 그것은 확실히 특이한 존재였다. 본체가 따로 있는 생명체라니. [NULL]이 그 존재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았더라면 인류멸망계획을 통째로 수정했을지도 모르겠군.


그럴지도. 신인류 역시 종족전쟁의 한 축. [F.E.E.]와 비견하는 재앙급 존재니까.


- 그나저나 그 존재의 본체가 행성 에덴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으면서, 왜 움직이지 않는 것이지?


“... 에덴은 연합 앞마당 같은 행성이니까.”


- 앞마당? 그게 무슨 말이지?


말 그대로 앞마당이었다. 에덴은 우주연합을 비롯한 수많은 독점기업들의 본사가 위치하고 있는 행성, 그곳에서 [올 포 원]을 찾겠다고 움직였다가는 금방 안보부 눈에 띌 터. 아무리 내가 연합 우방국가인 헌터가 되었다곤 하지만, 결국 매지시아나 H.N.H. 같은 대기업의 영향력엔 비할 바가 못 됐다.


“... 일단은 확실한 무언가가 있기 전까진 기다리는 게 맞아. 본체의 위치를 알아내던가, 아니면 내부에서 협조해 줄 사람을 구한다던가.”


- 그렇군.


섣부르게 움직였다간 죽는다는 것. 그것은 내가 ‘저쪽 세계’에서 배운 진리중 하나였다.


---


쿵쿵쿵-!


“... 응?”


밥 먹고 한 시간 쯤 지났을까, 강의계획서를 만들고 있는데 누군가가 오피스텔 문을 두들겼다. 보통 여기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마나과학동 G-411 일원 중 한 명이다. 정명훈이 제적된 이후로는 내 오피스텔에서 모이곤 하니까.


물론.


“야! 권민성! 나 왔어!”


멀쩡한 인터폰 놔두고, 문 두들기는 녀석은 한 명 밖에 없다.


띠리릿-


“... 왔냐.”


“하이.”


문이 열리자, 예상대로 그곳엔 싱긋 웃는 한겨울이 서 있다. 평소라면 그냥 빈손으로 오는 녀석인데, 오늘은 웬일로 뭔가를 하나 들고 왔다.


“... 그건 또 뭐냐.”


“이거? 초콜릿 케이크.”


“... 갑자기?”


“갑자기는 무슨. 곧 발렌타인데이잖아.”


“... 한 시간 전에 밥 먹었는데.”


“누가 지금 먹으래? 냉장고에 넣어 놓을 테니까, 나중에 먹어.”


“...”


그리 말한 한겨울은 성큼성큼 집 안으로 들어왔다.


“와. 근데 올 때마다 느끼는 건데, 권민성 니네 집 진짜 깨끗하다. 먼지 하나 없네.”


“...”


“그나저나 냉장고가... 아. 저기 있었지.”


[미스트]가 순간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형태로 뭉쳤다가 흩어지는 가운데.


쿵-


“야. 여기다 넣어 놓을 테니까 먹어라?”


한겨울은 자연스럽게 냉장고 문을 열고 케이크를 넣었다.


“어.”


나 역시 당연하다는 듯 소파에 앉아 하던 일을 계속했다.


타악-


경쾌한 소리를 내며 냉장고를 닫은 한겨울. 녀석은 곧바로 내가 앉아 있는 소파에 몸을 던지며 물었다.


“명훈이는 뭐 해?”


“자.”


“언제부터?”


“한 한 시간 전쯤?”


“그래? 당분간 안 깨겠네?”


“그렇겠지?”


“그러면... 에잇.”


나의 대답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내 허벅지에 드러눕는 한겨울.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녀석을 내려다보자, 녀석은 반대로 눈을 동그랗게 뜨며 올려다봤다.


“... 아주 지네 집 안방이네.”


“왜, 싫어? 싫으면 일어나고.”


“...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이히히...”


한겨울은 나의 말에 대답은 하지 않고, 그저 음흉하게 웃을 뿐이었다.


“근데 뭐하고 있었어?”


“일.”


“일? 무슨 일?”


“강의계획서 만들기.”


“강의계획서? 아~ 맞다. 너 이제 교수님이지?”


“... 시간강사야.”


“강의하면 다 교수지 뭐.”


어디 사는 교도소장과 비슷한 소리를 하는 한겨울은, 내 배랑 옆구리를 사정없이 찌르며 쿡쿡 웃었다.


“근데 너 어떤 과목 강의해? 그걸 안 물어봤었네.”


“... 마나현상분석학 1.”


“마나현상분석학? 그런 과목도 있었나? 나 우리 학교 과목 어지간한 건 다 아는데, 그건 처음 듣는 것 같은데?”


처음 듣는 게 당연했다. 마나현상분석학이란 학문은 애초에 존재하질 않으니까. 라인하르트가 내게 위장 신분을 제공하기 위해 그저 얼렁뚱땅 개설한 강좌일 뿐이다.


띠릿-


[ 강의계획서 등록이 완료됐습니다. ]


[ 마나현상분석학 1 ( 3학점 ) - 월, 수 11:00 ]

[ 권장대상 : 3학년 ]

[ 분류 : 일반교양 ]

[ 담당교수 : 권민성 ]

[ 장소 : 마나과학동 C - 301호 ]

[ 정원 : 30명 ]

[ 평가방법 : 출석 0%, 과제 0%, 중간 0%, 기말 100% ]

[ 비고 : 교과서 없음. ]


나는 강의계획서를 수강신청 사이트에 등록한 이후, 마나블렛을 덮었다. 그리고 몇 초 지나지 않아.


“이게 뭐야. 출석, 과제, 중간 0에 기말 100퍼? 와~ 권민성 개 날먹할 생각이네?”


내 허벅지 위에서 뒹굴대며, 마나블렛을 만지작대던 한겨울이 중얼거렸다.


“... 그걸 너가 왜 보고 있어.”


“왜 보고 있긴. 나도 니 수업 들을 거니까 보고 있지.”


“... 너가?”


“왜, 싫어? 싫으면 그만두고.”


다시 한 번 아까와 똑같은 표정으로 물어오는 한겨울.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꾸했다.


“...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


발렌타인데이. 필기시험. 입소식.


짧았던 2월은 순식간에 끝이 나고, 3월과 함께 신학기가 시작됐다. 이니시움 아카데미는 분명 작년과 별반 다를 바 없건만, 보는 각도가 달라져서인지 조금 다르게 비쳐 보였다.


“후우...”


그리고 대망의 첫 수업. 나는 강의실로 이동하며 수강생 목록을 살폈다. 내 수업에 등록한 19명의 수강생 중에서, 단번에 한 여자의 이름으로 시선이 갔다.


[ 3학년 정의 - 한겨울 ]


“하란다고 진짜 하냐...”


장난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할 줄이야. 이 제멋대로인 녀석이 수업 중에 뭔가 이상한 짓을 하는 건 아니겠지. 뭐. 그러면 내쫓으면 그만이지만.


아무튼 한겨울을 제외하더라도, 수강생 목록엔 낯익은 이름들이 좀 있었다.


[ 3학년 정의 - 유아라 ]

[ 2학년 명예 - 유링링 ]


얘네들은 또 무슨 꿍꿍이로 이 강의를 듣는 건지 모를 슈마허 자매라던가.


[ 3학년 정의 - 성민석 ]


현 이니시움의 학생회장이자, 유아라가 세운 바지사장의 이름도 보였다.


그 아래로는 싹 다 별 볼일 없는 녀석들의 이름들이었기에, 생각하며 보는 둥 마는 둥 시선을 내리다 문득 맨 아래에서 다시 한 번 아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 1학년 자유로움 - 이한울 ]


이한울.


겁도 없이 3학년 강의를 신청한 유일한 1학년이자, 이전에 행성 루드비코에서 밀약을 맺은 교도소장의 아들. 어떤 녀석인지도 모르는데, 미우나 고우나 잘해줘야 하는 녀석이었다.


“... 좀 멀쩡한 녀석이었으면 좋겠는데.”


수강생 목록에 있는 사진으로 봤을 땐 뭔가 말똥말똥하고 빠릿빠릿하게 생기긴 했다. 생긴 대로만 굴어 준다면 얼마나 서로 편하고 좋을까. 그래도 교도소장이 분명 자기 아들을 내 ‘팬’이라 했었는데, 적어도 거지같이 나오진 않겠지.


[ C - 301 ]


어느덧 강의실 앞. 유리 너머로 비치는 정경에서, 가장 앞줄에는 익숙한 세 여자와 처음 보는 한 남자애가 앉아 있었다.


후우.


나는 숨을 한 번 고르고, 문을 열었다.


작가의말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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