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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

뭐야 내 힘 돌려줘요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완결

가시멧돼지
작품등록일 :
2021.09.03 13:06
최근연재일 :
2022.11.14 00:13
연재수 :
183 회
조회수 :
467,255
추천수 :
15,647
글자수 :
948,632

작성
22.03.20 01:36
조회
1,183
추천
57
글자
11쪽

119. 만남 (3)

DUMMY

119.


스윽-


침대 끝까지 밀려나 있던 터라 일어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한겨울이 안 깨게 손깍지 푸는 게 더 힘들었을 정도.


문 쪽으로 살금살금 걸어가 심호흡을 한 번 하자, [빅 데이터]가 건너편의 존재에 대한 창을 띄웠다.


[ 피그말리온 ]

[ 마나량 : 25000 ]


나는 만반의 준비를 갖춘 채, 문을 열었다.


- 오랜만이군요- 윽!


쿵!


나는 [피그말리온]을 벽에다가 밀어붙이고 놈의 목에는 마나 사브르를, 배 쪽에는 [리퍼]를 갖다 대었다. 허나 녀석은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태연하게 되물었다.


- 왜 이러는 거죠? 나는 당신을 도우러 왔는데요.


“... 쓸데없는 말 말고 내 질문에나 대답해. 내가 여기 묵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 순전히 우연이었어요. 행성 볼텍스에서의 ‘사전 작업’을 위해, 호텔 투숙객 리스트를 뒤지다가 알게 된 것 뿐이에요.


“... 너 말고도, [NULL] 중에서 내가 여기 머무르고 있다는 걸 아는 녀석이 있나?”


- 나 혼자뿐이에요. 그보다 이거 좀 치우죠. 이게 내 몸에 들어갔다간 정말로 죽는다고요.


목에 들이댄 칼이 아니라, 배 쪽에 다가온 [리퍼]를 스윽 밀어내며 말하는 [피그말리온]. 내가 한 발짝 물러나자, ‘남성형 로봇’ [피그말리온]이 기계의 기괴한 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 오홍홍. 당신답지 않게 흥분한 모습이군요. 이런 모습도 또 하나의 아름다움이지만...


“... 역겨운 소리 집어치우고, 난 왜 찾아왔지?”


- 사실 별다른 이유는 없어요. 단지 이 행성을 떠나기 전에 인사라도 남기고 갈까 싶어서요.


“... 떠난다고?”


- 예. 원래 조직 차원에서 몇 가지 일들을 계획했지만... 흥이 깨졌어요. 남이 쓴 각본에 조연으로 일하기는 싫더군요.


[피그말리온]은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더니, 방 쪽을 한 번 쳐다보고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 그나저나 안에 누가 있군요. 애인이랑 놀러 온 건가요?


“... 신경 끄지. 개수작 부릴 생각도 말고.”


- 오홍홍. 조금 지켜보고 싶지만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가 드리죠. 그 전에. 혹시 알고 계셨나요?


“... 뭘.”


- 여기 이 행성 볼텍스에 있는 유니온픽 스타디움... 이곳 전체가 하나의 ‘무대’라는 사실을 말이에요.


“...?”


- 전혀 모르는 눈치군요. 그렇다면 내일은 긴장하는 게 좋을 거예요. 애인과 보내고 있다고 너무 들떴다가는...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될 지도 모르니까요.


---


“... 스타디움 전체가 무대라고?”


소파에 앉아 [피그말리온]이 했던 말을 곱씹다 보니 어느덧 새벽 4시였다. 한겨울은 누가 보쌈해 가도 모를 정도로 깊은 잠에 빠진 가운데, 마나블렛이 작게 울려왔다.


띠링-


[ ‘Li4U’ 알림 - ‘자연의 친구 채명훈 TV’에 새로운 영상이 업로드됐습니다. ]

[ 제목 : 이거 정말 못 막습니다 ]


[Li4U] 영상을 통해 전달되는 도재명의 비밀 메시지. 그 내용은 당장 호텔 근처 편의점 쪽으로 나와달라는 이야기-


“으음...”


... 나는 조용히, 정말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사방이 어두컴컴한 가운데 유일하게 밝은 편의점 앞에는.


“야. 여기여기.”


“... 선생님. 오랜만입니다.”


장쯔하오와 유엔, 그러니까 에브게니아에서 마약배달 같이 했던 두 친구가 핫바를 먹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 도재명은?”


“도 선생님께서는 일정 때문에 이미 다른 행성으로 떠나셨습니다. 서로 만나는 것도 좋지 않으니 양해를 부탁드린다고...”


“너랑 우리 둘이랑 일해야 돼. 물건은 이거.”


유엔이 메고 있던 더플백을 풀어헤치자 잘 포장된 주사형 모듈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장쯔하오가 그 중 하나를 집어들며 말했다.


“OVE-02라고, 주사한 부위에다가 마나를 불어넣는 제품입니다. 도핑 검사에도 안 걸리고, 부작용이 드문 몇 안 되는 녀석들 중 하나죠. 허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이걸 한 번 사용한 선수들은 나중에 꼭 저희 고객이 된다는 것입니다.”


“... 제품 설명은 됐고, 난 뭐 하면 되는데. 배달?”


“아닙니다. 이미 모든 제품들은 선수들에게 전달이 된 상태거든요. 선생님께서 도와주셔야 할 부분은 그 쪽이 아니라, 일종의 애프터케어 쪽이라 보시면 됩니다.”


“애프터케어?”


“예. 드물긴 하지만 ‘부작용’을 겪는 고객들이 있으니까요. 이게 바로 이번 유니온픽에 참여한 저희 고객들 명단입니다.”


그리 말하며 파일을 하나 건네는 장쯔하오. 대충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빅 데이터]가 수도 없이 많은 창을 띄웠다.


“... 부작용이 일어나면 어떻게 되지?”


“평범하게 뮤턴트화 됩니다. 마나를 감당하지 못하는 일반인들은 다 그렇죠. 애초부터 부작용 발생했을 땐, 편하게 보내 주는 것이 계약 내용입니다.”


“...”


그렇게까지 금메달이 따고 싶을까 하는 생각이 아주 잠깐 들었지만, 이내 고개가 끄덕여져 갔다. 세상에는 자기 목숨보다 소중한 것들이... 없는 게 아니니까.


---


이튿날 아침.


나와 한겨울은 호텔에서 챙겨주는 조식을 먹고 펜싱 경기가 치러지는 경기장으로 향했다. 물론 펜싱이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도재명의 고객들 중 가장 먼저 경기를 치르는 놈이 펜싱 선수였으니까-


“근데 웬 펜싱? 너 펜싱 좋아했어?”


“... 그랬나봐.”


“그래? 몰랐네. 그럼 나도 앞으로 좋아해야지. 히히.”


“... 딴소리 말고 경기나 봐.”


핑- 핑-


치열하게 칼을 맞부딪히며 겨루는 선수들. 1초에도 수십 번의 공방이 오갔지만, 뭐. 그래 봤자 일반인들 수준. 이니시움의 리틀 아카데미 애들도 아마 여기 행성 대표라고 납신 선수들보다 훨씬 잘 싸울 거다.


“어... 재미있... 하암...”


열렬하게 눈을 밝히고 보던 한겨울도, 이제 슬슬 지루해졌는지 하품을 하던 찰나.


와아아아아-!


갑자기 경기장 전체가 떠내려갈 정도로 열렬한 환호성이 몰아쳤다. 전광판에는 한 선수의 프로필이 떠올라 있었다. 카네다 료이치라는 선수였다.


“저 선수 되게 인기 많은가 보네. 너도 알아?”


한겨울의 물음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은 전혀 몰랐지만.


띠링-!


이제 슬슬 알아가면 되니까.


[ 카네다 료이치 ( 32세 ) ]

[ 이명 : 없음 ]

[ 마나량 : 0 ]

[ 마나의 속성 : 없음 ]

[ 비고 ]

- 행성 매그너스 출신.

- 키보 유니온픽 플뢰레 금메달.

- 얀워 유니온픽 플뢰레 금메달.

- 볼텍스 유니온픽 플뢰레 금메달. (더보기)


대충 약력을 읽다 보니, 카네다 료이치란 남자는 행성 매그너스에서는 꽤 유명한 사람이었다. 유니온픽 말고도 대부분의 펜싱 경기에서 금메달, 우승을 독식하다시피해서 펜싱을 행성 매그너스의 메인 스포츠로 끌어올린 남자.


거기다 수려한 외모와 깨끗한 사생활로, 행성 매그너스에선 거의 영웅 취급을 받는-


“꺄아아아악!”


“사랑해요! 카네다 옵빠!”


... 나타났군. 카네다가 경기장에 등장하기가 무섭게 여기저기서 괴성이 들려오자, 한겨울이 귀를 틀어막으며 중얼거렸다.


“으... 시끄러... 야. 미안. 나 펜싱은 좀 좋아하기 힘들겠다.”


“... 괜찮아.”


한편 경기장 한복판에서 여성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고 있는 카네다 료이치를 보자, [빅 데이터]가 조금 흥미로운 창을 띄웠다.


[ 카네다 료이치 ( 32세 ) ]

[ 마나량 : 0 ( + 21 ) ]


일반인인 카네다 료이치에서 감지되는 마나. 도핑을 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그럼 그렇지. 깔끔한 척 하는 놈들은 항상 뒤가 구리다.


우우우우우-!


우연인지, 거센 야유 속에서 카네다 료이치의 맞상대로 등장한 것은 도재명의 ‘고객’이었다. 커리어는 전무한, 유니온픽 첫 출전의 신인 선수였지만.


[ 박경환 ( 23세 ) ]

[ 마나량 : 0 ( +103 ) ]


주사한 약물의 성능은 이쪽이 확실히 위였기에, 이번 경기만큼은 ‘아주 조금’ 기대가 됐다.


핑-! 핑-!


“어. 이번 경기는 좀 재밌네? 얘네는 좀 싸울 줄 아는 것 같다. 그치?”


두 사람의 경기는 이전과는 달리 수준부터가 달랐다. 조금 지루해하던 한겨울도 자세를 고쳐 앉으며 유심히 볼 정도였으니까. 기본기도 탄탄했고, 전략이라는 것도 나름 있어 보였다.


허나 역시 승부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몸에 때려박은 약물의 성능이었다.


삐익-!


[ 카네다 료이치 : 6 ]

[ 박경환 : 13 ]


“카네다 옵빠아! 안돼요오오!”


“매그너스의 주민 여러분! 모두 료이치 상을 응원해요!”


카네다가 지기 직전까지 몰리자, 한 마음 한 뜻으로 카네다 료이치를 응원하는 관객들. 실제로 경기장에 와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행성 매그너스에서 카네다를 응원하러 왔을 테니 당연한 현상이었다.


삐익-!


[ 카네다 료이치 : 7 ]

[ 박경환 : 13 ]


- 와아아아아!


그 응원에 보답하듯 바로 득점하는 카네다 료이치. 관객들이 환호하고 녀석이 포효하던 그 때.


쿠궁-!


순간 카네다의 몸에서 고동과 함께, 방사능 같은 푸른빛이 환하게 뿜어져 나갔다가 잦아들었다.


“뭐야? 방금 봤어?”


한겨울이 내 어깨를 탁탁 치며 묻는 동안, 나는 카네다 쪽을 계속 응시했다. 심판진들이 카네다 쪽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뭐지? 카네다 료이치? 설마 마나 도핑이라도 한 건가?”


“아... 아니에-”


쿠궁-!


다시 한 번 고동하며 푸른빛을 뿜어내는 카네다. 아까와의 차이가 있다면, 녀석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빛은 완전히 사그라들지 않았다.


“이... 이게 뭐야? 내 몸. 내 몸 왜 이래?”


마치 바위가 틈새로 빛이 새는 것처럼, 피부 곳곳에 균열이 생기며 계속해서 뿜어져 나오는 빛. 부정 의혹을 물어보던 심판들이 한 발짝 물러났다.


쿠궁-! 쿠궁-!


점점 빨라지는 고동. 카네다 료이치의 몸에는 더 많은 균열이 생기고, 뿜어져나오는 푸른빛은 점점 강해져 이제는 흰빛처럼 보인다.


“누... 누가 의사 좀 불러 줘요!”


“아... 안전요원 불러!”


쿠구궁-!


“아아아아악!”


폭발하듯 빛을 뿜어내는 카네다. 거기서 폭발하고 끝이면 좋았겠지만.


우우우웅-!


사라져야 할 빛은 흩어지지 않고, 허공에 구체 형태로 머무르고 있다.


"뭐... 뭐야. 저게?"


... 나도 의문이다. 이건 나조차도 '처음 보는' 현상이니까.


작가의말

늦어서 죄송합니다. 뭔가 그림이 잘 안 나오네요 ㅠ

아. 그리고 오해하시는 분이 있어서 말씀드리는데, 둘이 아직 안 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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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117. 만남 (1) +3 22.03.15 1,241 55 11쪽
121 116. 의미 (6) +6 22.03.12 1,208 61 10쪽
120 115. 의미 (5) +4 22.03.10 1,231 58 11쪽
119 114. 의미 (4) +8 22.03.05 1,262 57 12쪽
118 113. 의미 (3) +8 22.02.26 1,339 63 11쪽
117 112. 의미 (2) +15 22.02.18 1,359 58 12쪽
116 111. 의미 (1) +10 22.02.15 1,401 60 10쪽
115 110. 신학기 (4) +8 22.02.11 1,404 65 11쪽
114 109. 신학기 (3) +8 22.02.09 1,367 66 11쪽
113 108. 신학기 (2) +13 22.02.05 1,427 74 11쪽
112 107. 신학기 (1) +7 22.02.03 1,457 72 11쪽
111 106. 히어로 (6) +5 22.01.27 1,602 67 11쪽
110 105. 히어로 (5) +4 22.01.25 1,445 66 10쪽
109 104. 히어로 (4) +7 22.01.21 1,477 73 10쪽
108 103. 히어로 (3) +16 22.01.20 1,461 73 11쪽
107 102. 히어로 (2) +7 22.01.15 1,529 73 9쪽
106 101. 히어로 (1) +7 22.01.12 1,584 76 11쪽
105 100.5. 메리 크리스마스 (2) +6 22.01.08 1,557 84 6쪽
104 100. 메리 크리스마스 (1) +19 22.01.05 1,646 83 11쪽
103 99. 알렉산드리아 (6) +4 22.01.03 1,632 77 11쪽
102 98. 알렉산드리아 (5) +8 21.12.31 1,705 8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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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94. 알렉산드리아 (1) +8 21.12.20 2,000 97 11쪽
97 93. 소규모 전쟁 (5) +15 21.12.15 2,104 9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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