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ㅠㅠ

뭐야 내 힘 돌려줘요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완결

가시멧돼지
작품등록일 :
2021.09.03 13:06
최근연재일 :
2022.11.14 00:13
연재수 :
183 회
조회수 :
467,140
추천수 :
15,647
글자수 :
948,632

작성
22.03.17 21:17
조회
1,206
추천
58
글자
11쪽

118. 만남 (2)

DUMMY

118.


“허허. 둘은 이미 구면인 걸로 아는데, 서로 인사하게.”


... 웃어? 이 노인네가 몇천 번 죽다 살아나니까 노망이 났나? 이 세계의 모든 비밀들을 은폐하는 집단이 안보부인데, 안보부 부장인 마윤재를 내 앞에 데려다놔?


“교수님께서 소개해주신다던 사람이... 이 아이였습니까?”


실제로 마윤재는 거의 날 뚫어져라 쳐다봤다. 뭐. 당연한 일이었다.


[ 마윤재 ( 45세 ) ]

[ 미래의 이명 : 연합의 광견 ]

[ 마나의 속성 : 질서 ]

[ 마나량 : 34504 ]


이런 식으로, 내 눈앞에다가 마윤재에 대한 정보를 띄워 주고 있는 [빅 데이터]는.


[ 권민성 ( 16세 ) ]

[ 마나의 속성 : 모순 ]

[ 마나량 : 19638 (-6062) ]


반대로 마윤재의 눈에다가도 나에 대한 창을 띄워 주고 있을 테니까. 수상한 마나의 속성부터 마이너스 붙은 마나량까지 전부 말이다!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하나 머리를 굴리는 와중에, 마윤재가 중얼거렸다.


“이전에 말씀하셨던 ‘열쇠’가 바로... 이 아이였군요. 교수님.”


“허허. 역시 자네는 눈치가 빨라서 좋구먼. 그렇다네. 허허.”


“... 왜 진즉 알려주시지 않으셨습니까?”


“가끔은 모르는 것이 도움이 될 때가 있지. 자네가 알고 있었다면, 세계가 이렇게 될 수 있었을까?”


“... 그렇군요.”


그리 말하면서도 마윤재는 단 한 번도 내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묘한 위압감에 몸이 얼어붙었지만, 할 말은 해야 했다.


“... 마윤재 이 양반도 당신 끄나풀입니까?”


“허허. 말이 심하구먼. 게다가 내 끄나풀보다는, 자네의 조력자 정도가 좋은 표현이 아닐까 싶네만-”


“제군.”


쿵-!


순간 내 어깨에 양 손을 턱하고 올리는 마윤재. 이... 이 자식은 힘조절이라는 게 없나? 녀석은 그저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이었겠지만, 일반인이라면 내장이 다 파열됐을 것이다.


“... 예.”


“제군과는 나중에 천천히 이야기해보고 싶군. 이럴 줄 알았으면 다음 일정을 빡빡하게 잡는 게 아니었는데...”


“일정? 바쁜 몸인 건 알았지만,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가는가?”


“예. 행성 에브게니아에서 만나야 할 여자가 있습니다.”


“허허. 자네도 드디어, 늦게나마 연애하는 겐가?”


“... 주책은 여전하시군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슈우우우-


단 1초의 여지도 남기지 않고 바로 [행성간 순간이동 키트]로 사라지는 마윤재. 그 모습에, 라인하르트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쩝쩝 다시며 중얼거렸다.


“허허. 천천히 이야기를 하려 했건만 오늘이 날이 아니었나 보군. 그래도 자네와 마윤재를 만나게 한 것만으로도 충분한가 싶기도 하고...”


“... 마윤재가 온다고 말하셨어야죠.”


“허허. 말했으면 자네가 왔을까?”


“... 그건 아니죠.”


“허허. 그런 걸세. 그리고 이미 이 세계는 내가 모르는 형태가 되어버렸네. 일어나야 할 일들은 일어나지 않고, 일어나지 않아야 할들이 일어나고 있지. 유일한 이정표인 [공통사건]들마저 순서가 뒤죽박죽이 돼 버렸고 말이야. 자네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나보단 마윤재, 저 아이의 도움이 필요할 걸세.”


“... 마윤재가 저를 도와준다는 그림 자체가 상상이 되지 않는데요.”


“허허. 이쪽 세계의 마윤재는, 자네가 아는 마윤재와는 좀 다를 걸세.”


---


마윤재를 떠나보내고도 라인하르트와는 이야기를 좀 했다. 녀석과 나눈 대화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 시간낭비였네.”


그야말로 시간낭비 그 자체였다. 라인하르트는 내가 묻는 모든 것에 모르쇠로 일관했으니까. [이데아 프로젝트]에 대해 물었을 때도.


“금시초문이구먼. 허허.”


400년 전 우주연합과 H.N.H.의 계약에 관해 물었을 때도.


“허허. 두 기업 사이에 그런 계약이 있었나? 처음 듣는 일이구먼.”


이런 식으로밖에 대답하지 않았으니까.


정말 모른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이 능글맞은 노인네는 알면서 일부러 숨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허허. 너무 빨리 가려 하지 말게. 과속하는 차는 언제나 카메라에 찍히는 법일세. 자네는 아직 할 일이 많지 않은가.”


... 이런 말을 지껄일 이유가 없으니까.


- 이어서 대망의, 성화 봉송이 있겠습니다!


“... 젠장. 벌써?”


괜히 개회식이 끝나 갈 때까지 한겨울만 혼자 놔 둔 게 아닐까 하며 빨리 자리로 돌아가려던 찰나, 맞은편에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꽁꽁 싸맨 누군가가 걸어와 내 앞길을 막아섰다. 비켜서려고 해도 자꾸만 나를 막아서는 것이, 분명 의도적인 움직임이었다.


“... 뭔데?”

- ... 주인님께서 이 메시지를 전하셨습니다.


그리 말한 여자. 아니. 여성형 로봇은 내게 종이로 된 메모를 건넸다.


[ 오늘 밤 당신을 찾아갈 테니, 늦게 자는 게 좋을 거예요. -피그말리온- ]


“... 왜 지금 얘기 안 하고?”


- 현재 주인님께선 [NULL] 전원이 참여하는 회의에 가 계십니다. 저를 통해 이 메시지를 전하셔야만 했습니다.


“... 내가 어디 머무르는 지는 알고?”


- 볼텍스 그랜드파크 호텔 스위트룸 3107호.


“...”


- 아마도 주인님께선 회의가 끝나는 새벽 2시 즈음에 찾아가실 겁니다. 이만.


자신의 용건만을 전한 채 다시금 인파 사이로 사라지는 로봇. 그나저나 [NULL]이 평소처럼 한두 마리만 보낸 게 아니라 다 같이 움직이고 있다니.


“이 깡통로봇 자식들은 대체 뭔 짓을 하려고...”


나는 주머니 속에 고이 간직해 놓은 [리퍼]를 만지작거렸다.


---


자리로 돌아왔을 때, 한겨울은 성화 봉송이 아니라 자기 마나블렛을 쳐다보고 있었다.


뭐 보고 있나 뒤에서 슬쩍 보니까, 마나순환속도 관련 논문. 여기까지 와서 공부라니, 얘는 진짜 나 없는 데서는 공부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은근슬쩍 녀석 옆에 앉았다.


“미안. 늦었지.”


“... 응? 야! 권민성 너 왜 이제 와!”


“... 이야기가 길어졌었어. 그보다 왜 마나블렛 보고 있어. 유니온픽 보고 싶었다면서.”


“아... 사실 너 가고 혼자 보려니까 재미가 없더라. 히히.”


“... 그럼 지금부터라도 같이 보자.”


“... 그래!”


화르르르륵-!


한겨울이 대답하기가 무섭게 불붙는 유니온픽 성화. 나란히 앉아 불꽃이 넘실넘실 춤을 추는 걸 멍하니 보던 와중에, 한겨울이 작게 한숨쉬며 중얼거렸다.


“좀 아쉽다.”


“뭐가.”


“아니. 그냥 기숙사 돌아가기 싫어서. 너랑 더 같이 있고 싶었는데...”


“... 왜 돌아가. 내일도 봐야지.”


“응?”


나의 물음에 한겨울이 고개를 홱 돌리는 한겨울. 나도 녀석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정면으로 원위치했다.


“... 한겨울 니가 그랬잖아. 주말 내내 같이 보자고.”


“응. 그렇게 말하긴 했지. 근데 그게 왜?”


“... 오늘은 토요일이라고.”


그게 뭔 소리냐고 쳐다보는 한겨울이었지만, 나는 굳이 더 얘기하진 않았다. 말로는.


---


- 그랜드파크 호텔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2시간 후, 나는 녀석과 함께 행성 볼텍스의 한 호텔방에 와 있었다. 이것저것 화려하게 잘 꾸며놓은 방을 둘러보던 한겨울이, 왠지 모르게 쭈뼛거리며 물어왔다.


“야...”


“... 왜.”


“아니... 우리 진짜 한 방에서 자는 거야?”


”... 그게 뭐 어때서.”


“아니...”


순간 얼굴이 확 벌게지는 한겨울. 녀석이 내 시선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 방은 왜 또 이리 좋은 거로 예약했대?”


“남은 방이 여기밖에 없었어.”


“...”


평소답지 않은 한겨울의 모습에 얘가 왜 이러나 싶었지만, 그 이유는 불을 끄고 나니까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침대가 하나였네...”


“... 뭐야. 너가 예약했으면서 몰랐어?”


“... 아니. 제일 비싼 방에다가 침대를 하나만 쳐넣는다는 상상은 해본 적이 없어서.”


“푸흡. 뭐래.”


천장이 플라네타리움처럼 은은하게 빛나는 가운데, 나란히 누워 있던 한겨울이 고개를 내 쪽으로 향했다.


“야. 근데 있잖아.”


“... 뭐.”


“너 유아라랑도 같이 자 봤잖아. 그땐 뭐 했어?”


“쿨럭!”


갑자기 훅 들어오는 질문에, 침이 기도로 넘어갔다.


“응? 왜 갑자기 당황해?”


“다... 당황하긴 뭘 당황해. 난 항상 걔 경호역할 하고 있었는데, 걔 잘 동안 난 쭉 불침번 섰지.”


“으음... 정말?”


“... 정말.”


“그러면 이렇게 같은 침대에 누운 건 내가 처음?”


“그럼 달리 누가 있-”


“흐음... 그래?”


대답하는 도중에 갑자기, 꿈틀대며 영역을 침범해 오는 한겨울.


“... 야. 침대 넓은데 좀 넓게넓게 쓰자.”


“응? 뭐라고? 안 들려~”


“...”


뜬금없이 시작된 침대 위 영토분쟁. 허나 실상은 내가 일방적으로 밀려날 뿐이었다. 어느덧 나를 더 물러설 수 없는 침대 가장자리까지 몰아낸 한겨울은, 내게 딱 붙은 채로 천장을 보며 중얼거렸다.


“야. 이런 말 하는 건 좀 그렇지만... 나 사실 권민성 너랑 만난 거 진짜 내 일생 최고의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 또 뭐가.”


“그냥... 전에 말했지만 나 매지시아 막내딸인거 아무한테도 말 안했댔잖아. 그렇게 계속 혼자 비밀을 가진 채 끙끙 앓고만 있으니까... 너무 괴로웠거든.”


“... 그렇게 괴로우면서 왜 비밀로 했대.”


“그야 당연히 절연당할까봐 그랬지. 친구들보다는 가족이 우선이니까. 근데 뭔가... 너한테 얘기할 땐. 이런 생각이 들더라?”


“... 어떤 생각.”


“8년 간 한 번도 안 찾아오는 가족들보다는... 너랑 같이 있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


“...”


“히히. 나 별 얘기를 다 한다. 그치?”


... 비밀. 나도 그런 게 있지.


평행세계. 인류의 멸망. 안보부. 매지시아. 한겨울 오빠 한가을. 신인류.


말 못할 비밀들이 혀끝에서 맴돌다가 결국.


“... 별 얘기를 다 한다. 진짜.”


“으흐흐... 뭐 어때.”


“...”


“그나저나 내일 아침 경기 봐야 하니까 우리 이제 자자. 손만 잡고.”


“... 그러던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침대에 누운 것이 10시인데 바로 잘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한겨울과 나는 자정이 넘을 때까지 계속 이야기했고, 녀석이 잠든 건 결국 새벽 한 시가 넘어서였다.


그리고.


저벅- 저벅-


발소리가 난 것은 정확하게, 새벽 두 시가 됐을 무렵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6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뭐야 내 힘 돌려줘요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24 119. 만남 (3) +5 22.03.20 1,183 57 11쪽
» 118. 만남 (2) +16 22.03.17 1,207 58 11쪽
122 117. 만남 (1) +3 22.03.15 1,241 55 11쪽
121 116. 의미 (6) +6 22.03.12 1,208 61 10쪽
120 115. 의미 (5) +4 22.03.10 1,231 58 11쪽
119 114. 의미 (4) +8 22.03.05 1,262 57 12쪽
118 113. 의미 (3) +8 22.02.26 1,339 63 11쪽
117 112. 의미 (2) +15 22.02.18 1,359 58 12쪽
116 111. 의미 (1) +10 22.02.15 1,401 60 10쪽
115 110. 신학기 (4) +8 22.02.11 1,404 65 11쪽
114 109. 신학기 (3) +8 22.02.09 1,367 66 11쪽
113 108. 신학기 (2) +13 22.02.05 1,427 74 11쪽
112 107. 신학기 (1) +7 22.02.03 1,457 72 11쪽
111 106. 히어로 (6) +5 22.01.27 1,602 67 11쪽
110 105. 히어로 (5) +4 22.01.25 1,445 66 10쪽
109 104. 히어로 (4) +7 22.01.21 1,477 73 10쪽
108 103. 히어로 (3) +16 22.01.20 1,461 73 11쪽
107 102. 히어로 (2) +7 22.01.15 1,529 73 9쪽
106 101. 히어로 (1) +7 22.01.12 1,584 76 11쪽
105 100.5. 메리 크리스마스 (2) +6 22.01.08 1,557 84 6쪽
104 100. 메리 크리스마스 (1) +19 22.01.05 1,646 83 11쪽
103 99. 알렉산드리아 (6) +4 22.01.03 1,631 77 11쪽
102 98. 알렉산드리아 (5) +8 21.12.31 1,704 88 13쪽
101 97. 알렉산드리아 (4) +5 21.12.27 1,739 83 10쪽
100 96. 알렉산드리아 (3) +3 21.12.25 1,832 77 12쪽
99 95. 알렉산드리아 (2) +6 21.12.23 1,892 79 8쪽
98 94. 알렉산드리아 (1) +8 21.12.20 1,999 97 11쪽
97 93. 소규모 전쟁 (5) +15 21.12.15 2,102 95 11쪽
96 92. 소규모 전쟁 (4) +6 21.12.13 2,013 96 10쪽
95 91. 소규모 전쟁 (3) +3 21.12.12 2,079 105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