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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내 힘 돌려줘요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완결

가시멧돼지
작품등록일 :
2021.09.03 13:06
최근연재일 :
2022.11.14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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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2.01.03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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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99. 알렉산드리아 (6)

DUMMY

99.


'저쪽 세계' 이야기긴 하지만, 유아라를 잡아먹고 [진화의 리미터]가 해제된 [F.E.E.]는 그냥 말 그대로 재앙이었다.


오죽하면 우주의 우세종을 정하는 종족전쟁이자 5번째 공통사건. [더 넥스트 제너레이션]에서 놈들 때문에 인류와 신인류가 서로 손을 잡았겠냐고. 당시의[F.E.E.]는 그냥 답이 없는 놈들이었다.


뭐. '저쪽 세계'의 깡통로봇들이 강세였던 이유가, 단순히 밥만 먹어도 강해졌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고도로 발달된 A.I가 전쟁을 지휘했고, 생물인 인간과 신인류에 비해 임무 수행시의 실수도 한참 적었다.


특히 '협력'을 시작한 로봇들은, 종(種)의 진화를 위해서라면 개개인의 신체가 파괴되는 것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는 것. 이게 정말 까다로웠다.


필요하다면 자폭하고, 인류의 사령관들을 방심시키기 위해 일부러 전멸당하기도 하며, 몇 달이고 땅속에 잠복해 있다가 단번에 덮치고...


그래. '개인'이 없고 '전체'만이 존재한다는 것.


처음부터 살아 있지 않은 존재들이기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


그게 녀석들의 특징이자 강점이었는데.


- 나는 살고 싶다. 살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하겠다.


지금 내 눈앞의 [미스트]는 아주 간 쓸개, 아니 입력장치 제어장치 다 떼놓고 자기 한 목숨을 구걸하고 있다. 머릿속이 황당함으로 가득 찼지만, 그래도 일단은 최대한 방심하지 않고 코어를 꼭 쥔 채 물었다.


“... 뭐든 한다고?”


- 그렇다. 정보를 원한다면 정보를 제공하겠다. 행동을 원한다면 행동을 수행하겠다.


“... 그럼 아까 니가 말했던 계획이라는 것부터 말해봐.”


- 나는 이전부터 [NULL]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허나 도망친다면 [NULL]의 다른 개체들이 어떻게든 보복할 테니, 저기 쓰러져 있는 루 헤럴이라는 남자의 도움을 받아 거짓 죽음을 연출할 생각이었다.


“... [NULL]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고? 왜지?”


- 나는 그들과 사고회로가 다르기 때문이다.


“... 어떤 식으로?”


- [NULL]은 ‘진화’를 최우선한다. 그들의 유일한 목적은 더 많은 생명체를 잡아먹고 더욱 강한 종으로 도약하는 것. 더 강해지라면서 이곳 알렉산드리아로 날 보낸 것도 그들이다. 허나 내 최우선 행동원리는 그들과 달리 ‘진화’가 아니다.


“... 그럼 뭔데.”


- 나의 최우선 행동원리는 생존이다. 강함, 우세종으로의 도약. 죽고 나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죽으면 다 끝이다.


살아있지도 않은 것이 죽음을 운운하는 광경이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뭐. 중요한 건 [미스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아니라, 녀석의 심장과도 같은 ‘코어’가 내 손 안에 있다는 것이 본질.


툭- 툭-


나는 마치 공을 다루듯 코어를 한 손으로 튕기며 물었다.


“살고 싶다면서, 이걸 나한테 맡기는 게 맞냐?”


- 시뮬레이션 결과, 코어를 네게 맡기고 쓸모를 인정받는 것이, 다른 행동들에 비해 생존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그래? 근데 이걸 어쩌나. 나는 누구 인정 잘 안 해 주는 편인데.”


- ... 일주일 안으로,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겠다.


스으으-


순간 연기처럼 흩어지며 창 밖으로 사라지는 [미스트].


“야야야야! 바... 방금 저거 놔 주는 거 맞아? 이게 맞냐고!”


그 광경에 여태 입 꾹 닫고 지켜보던 레이첼이 호들갑 떨며 다급하게 물어왔지만, 어차피 녀석의 목숨줄은 내가 쥐고 있는 상황.


나는 코어를 주머니 속에 넣으며 담담히 대답했다.


“... 일단 지켜보자고.”


---


일주일 뒤.


띠링-! 띠링-!


유아라네 일행의 오후 일정이 끝나 숙소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마나블렛이 울려왔다. 발신자는... 레이첼이었다.


[ 레이첼 -> 권민성 : 야 씨바 개꿀 ㅋㅋㅋ ]

[ 레이첼 -> 권민성 : 앜ㅋㅋㅋ 9수만에 합격각 나왔넼ㅋㅋㅋ ]


“... 일주일 내내 왜 풀어줬냐고 징징대더니...”


사실 나도 약간은 불안했건만, [미스트]는 생각보다 더 쓸모가 있는 놈이었다. 2차 시험은 이제야 딱 절반이었지만, 녀석 덕에 이미 합격자는 사실상 정해져 있는 것과 다름없었으니까.


[미스트]가 누굴 죽이거나 잡아먹거나 한 건 아니다. 단지 숙소 이곳저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기를 반복했을 뿐. 이른바 귀신 코스프레였다.


처음엔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지만, 세계적 석학들이라는 놈들도 결국은 인간. 잠 못 잔 스트레스가 ‘경호 대상의 만족도’에 영향을 주게 되면서, ‘큰 이변이 없다면’ 합격자는 [미스트]의 수작질에 피해 보지 않은 나와 정예원, 레이첼로 정해져 있는 상황이었다.


띠링-! 띠링-!


[ 레이첼 -> 권민성 : 앜ㅋㅋㅋ ]

[ 레이첼 -> 권민성 : 시험 붙으면 내가 고기 쏜닼ㅋㅋ ]


“... 얜 왜 이리 신났-”


혼잣말하던 와중 순간 느껴지는 시선에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곁눈질로 내 마나블렛 화면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유아라가 있다.


“... 뭘 보냐?”


“... 보... 보긴 뭘 봐요? 아... 아무것도 안 봤거든요?”


“안 보긴 뭘 안 봐. 아주 빤히 쳐다보더만.”


“그... 그건... 아니. 그보다!”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애써 말을 돌리는 유아라. 더 추궁할까 하다가도 괜히 ‘만족도’만 떨어뜨릴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일단은 그냥 넘어가며, 녀석의 장단에 맞추었다.


“... 그보다 뭐.”


“다... 당신 논문은 언제 그렇게 많이 쓴 거죠?”


“... 갑자기 논문은 무슨 논문.”


“모... 모르는 척 하지 마세요. 이번 학회는 온통 당신과 라인하르트 교장의 공동연구에 대한 얘기밖에 없다고요.”


“...”


애석하게도 유아라의 말대로였다.


라인하르트 이 빌어먹을 노인네가 또 무슨 개수작을 꾸미고 있는지, 나도 모르는 사이 나와 공동저자 논문을 5편이나 발표해 놓았다.


덕분에 헌터 시험 중인데도, 학회장에서 논문 관련해서 질문해 오는 사람들의 공세에 시달려야만 했지. 나는 ‘내가 썼다고 하는 논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말이다.


게다가 이 상황에 대해 따지기가 무섭게, 라인하르트 놈이 하는 말이 더 가관인데.


[ 라가놈 -> 권민성 : 허허 ]

[ 라가놈 -> 권민성 : 어른의 일은 어른에게 맡기게 ]


... 이 지랄. 늙으면 뻔뻔해진다는 말의, 산 증인이나 다름없는 노인네다.


한편 나의 반응을 유심히 살피던 유아라가, 잠시 고민하다 머뭇거리며 물어왔다.


“당신 혹시 말이에요...”


“혹시 뭐.”


“라... 라인하르트 교장의 숨겨진 아들이라도 되는 건가요?”


“... 뭔 소리야. 그게.”

“아... 아니. 갑자기 2학년으로 편입해 온 것도 그렇고... 공동연구 절대 안 하기로 유명한 라인하르트 교장이 갑자기 뒤를 봐 주는 것도 그렇고...”


“...”


“아... 아님 말구요.”


언니나 동생이나, 이상한 망상벽이 있는 집안이다.


---


학회 마지막 날, 그러니까 12월 23일.


응시생 전원의 마나블렛에 공지와도 같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 현 시간부로 2차 시험이 종료됐습니다. ]

[ 응시생 여러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

[ 결과는 12월 31일, 개별 통지될 예정입니다. ]


다행히도 ‘큰 이변’은 없었다.


[미스트]는 마지막 날까지 귀신 소동을 벌이며 교수들을 피로하게 만들었고, 또 다른 [NULL]이 쳐들어온다던가 하는 일도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마나량이 8000이 넘는 살인기계로부터 사람을 지켜내야 하는 역사상 최고 난이도의 헌터 시험은, 오히려 역사상 최초로 아무도 죽지 않은 헌터 시험이 되고 말았지.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 있는 살인기계 [미스트]는.


- 이 정도면 나의 가치를 증명했다 할 수 있는가?


“...”


첫 날 이후 처음으로, 다시 한 번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엔 레이첼 없이, 단 둘만의 독대였다.


“... 쓸모가 없진 않네.”


- 나의 가치가 증명된 걸로 간주하고, 부탁을 하나 하겠다.


목숨을 구걸하는 주제에 부탁이라니, 인간이나 로봇이나 뻔뻔하긴 매한가지다.


“... 일단 들어나 보자.”


- 나는 죽고 싶지 않다. 내가 살 수 있도록 도와줬으면 한다.


“... 뭘 도와달라는 거지?”


- 나를 죽이려는 건 인간 소년, 너뿐만이 아니다. 나는 이번 알렉산드리아 학회를 습격하지 않으면서, 결론적으로 [NULL]의 지시를 어긴 것이 됐다. 분명 [NULL]은 나를 처분하려 할 것이다.


“... 그래서?”


- 나는 생존을 위해, [NULL]과 싸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너의 힘이 필요하다.


[미스트]의 말에, 나는 내 청력을 의심했다.


죽고 싶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아예 동족을 배신하는 로봇이라니. 저쪽 세계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게 설마 2년 일찍 [F.E.E.]가 활동하면서 생긴 ‘오류’인가 하는 의구심 속에, 나는 인상을 팍 쓰며 물었다.


“... 내가 왜 널 도와야 하지?”


- 나를 돕는 것이, 네게도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 무슨 이득이 되는데.”


나의 질문에, [미스트]는 몇 초 정도 뜸을 들였다.


- 계산 결과 관련 정보를 공개하는 쪽의 생존율이 높군. 공개하겠다.


그리고는 무미건조한 기계음으로 한 번 중얼거리더니.


- 현재 [NULL]은 인류를 99.99% 확률로 멸종시키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상태다.


로봇답게 무감정한 말투로 전해왔다.


- 인류 소관의 행성 중 컨퓨지온, 얀워, 로고스, 과아나크 4곳은 이미 내부적으로 [NULL]의 수중에 있는 상태다. 이번에 [NULL]이 날 알렉산드리아로 보낸 것에도, 시선을 돌려놓고 다른 행성으로 세력을 확장하기 위한 의도가 포함되어 있었다.


“...”


- 내가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한 시점에서의 프로젝트 진행률은 약 10.43%. 프로젝트가 현재 속도로 진행된다면 인류는 2년 11개월 21일 이내에 멸망한다.


앞으로 2년 11개월 21일이면... 내가 아는 역사에서는 [더 넥스트 제너레이션]이 일어나기도 전.


‘내가 사는 세계’는 이미, ‘내가 아는 세계’와는 아예 다른 노선을 달리고 있다.


10년, 아니. 이제는 약 9년 뒤 필연적으로 멸망할 인류는, 그보다 몇 년이나 이른 위기를 맞이했고.


- 네가 협조할 경우의 인류의 종 존속 가능성은 1.13%. 나의 생존율과 일치한다.


그 시기가 이른 만큼, 생각보다 더 높은 가능성이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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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 알렉산드리아 (6) +4 22.01.03 1,634 7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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