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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내 힘 돌려줘요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완결

가시멧돼지
작품등록일 :
2021.09.03 13:06
최근연재일 :
2022.11.14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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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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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8,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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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18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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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12. 의미 (2)

DUMMY

112.


“... 날 보고 싶었다고?”


“예. 아름다운 존재를 관찰하고 싶은 욕망은 인간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거든요.”


“...”


남자의 억지로 내는 비음 같은 목소리로 말하는 [피그말리온]. 구역질이 치밀어 오르는 걸 꾹 참으며 눈을 깜빡이자, [빅 데이터]가 창을 띄웠다.


띠링-!


[ 피그말리온 ]

[ 마나량 : 25000 ]


젠장. 대체 얼마나 많이 처먹고 다닌 건지, 마나량이 이미 [진화의 리미터]가 정해 놓은 최대한도까지 꽉꽉 차 있다. 내가 조심스레 주머니의 마나 사브르를 쥐자, [피그말리온]이 입을 열었다.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요. 나는 당신과 싸우려는 게 아니니까요. 그저 주고 싶은 게 있어서 이 자리로 불러낸 것뿐이에요.”


“... 주고 싶은 것?”


짝짝-


나의 되물음에 [피그말리온]이 작게 박수를 쳤다. 그러자 오른쪽에 있던 여성형 로봇이 작은 정사각형 모양 칩을 하나 꺼내 녀석의 손에 올려놓았고, [피그말리온]은 그것을 내게 보여주며 말했다.


“이건 [리퍼]라고, 인간에겐 무해하지만 우리 종족에겐 맹독이나 다름없는 칩이에요. 신체 어딘가에 박히는 순간, 그 즉시 몸 안의 회로들을 다 자기 쪽으로 끌어와서 에너지를 고갈시키죠. 인간으로 치면 암이 초고속으로 퍼지는 것과 비슷하다 생각하시면 돼요.”


그리 말한 [피그말리온]은, 내 손에다가 [리퍼]를 쥐어 주며 덧붙였다.


“비록 일회용이지만, [NULL]과 싸울 때 요긴하게 쓰일 거예요.”


순간 머리가 새하얘졌다. 아까 분명 머릿속으로 만 가지가 넘는 뇌내 시뮬레이션을 돌렸지만, 이런 경우의 수는 상정해 본 적 없었다. 나는 잠시 멀뚱멀뚱 칩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 너도 [NULL]의 일원이라며? 근데 이걸 왜 나한테 주는 거지?”


“저보다는 당신에게 더 필요한 물건일 테니까요.”


“... 그런 의미가 아니라, 왜 네 동료들한테 손해가 될 일을 하는 거냐고.”


“동료요? 혹시 [NULL] 말하는 거예요?” 와하하하하!”


앵앵대는 목소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호탕한 웃음소리로 빵 터지는 [피그말리온]. 녀석은 한참을 웃다가, 손사래를 치며 말을 이었다.


“아하하. 미안해요. 너무 웃겨서. 하지만 나는 단 한 순간도 [NULL]을 내 동료라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NULL]은 모든 생명체를 잡아먹고 최강의 종(種)이 되는 것이 목적이지만, 제가 원하는 것은 그것과는 좀 다르거든요.”


“... 그럼 왜 녀석들과 함께하지?”


“지금은 그들과 함께해야만 하는 이유가 좀 있거든요.”


“... 이유?”


“질문은 이제 그만. 슬슬 가봐야 할 시간이에요. 테라미시의 임무는 Type-17의 몫이라, Type-00이 제가 여기 있는 걸 알면 절 죽일 거거든요.”


[피그말리온]이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동이 터 왔다.


스윽-


녀석은 품 안에서 [행성간 순간이동 키트]를 꺼냈다. 내가 모르는 데서 헌터가 또 하나 죽었겠구나 하던 생각이 들던 그 때.


“아 참. 참고로 당신에게 [리퍼]를 준 이유가, 하나 더 있어요.”


녀석이 뭔가 떠올랐다는 듯 입을 열었다.


“... 뭔데.”


“저보다는 당신이 갖고 있는 편이, 훨씬 재미있을 것 같았거든요.”


“...”


“그럼 이만. 나중에 봐요.”


슈우우-


순식간에 [피그말리온]과 하수인이 사라지며, 성벽 위엔 나 혼자밖에 남지 않았다.


재미. 예술. 아름다움.


녀석이 한 말들이 머릿속에 앵앵대는 가운데, 주머니 속 [미스트]가 중얼거렸다.


- 내가 이전에 말하지 않았나? Type-07은 음흉한 개체다. 알 수 없는 녀석이지.


“... 약간 그런 것 같긴 하네.”


---


한편 권민성의 오피스텔.


- 오늘의 달인은! 26년간 피자만 만들어 오신 피자의 달인, 하시모토 스즈끼 상입니다!


“피자다.”


“피자군!”


“...”


한겨울은 정명훈과 김석봉, 두 사람과 함께 오피스텔 거실 소파에 앉아 멍하니 대형 스크린을 쳐다보고 있었다.


- 바로 그 때! 달인만의 특별한 비밀이 등장한다! 피자 도우 위에다가 행성 비오크산 최고급 파인애플을 듬뿍!


“오. 꽤 맛있어 보이는군!”


“우웩. 저게?”


“그렇다! 나는 파인애플도 좋아하고, 피자도 좋아하거든!”


“... 나도 짜장면이랑 요플레 좋아하지만 그걸 섞어 먹진 않는데.”



- 여기서 끝이 아니죠! 잘 익은 가지를...


“가지? 이제 보니 피자의 달인이 아니라 음식물쓰레기의 달인이었군!”


“...”


정명훈과 한겨울이 대형 스크린을 보며 얘기하는 동안, 김석봉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른 방송을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 이 로션. 원래 2개에 2만 코인이지만, 오늘 사면 4개에 5만-


홈쇼핑을 틀던.


- 연합은 회원들 등급제에 초안을 공표했으며, 세부사항은 3월 15일 공표할 예정입니다.


뉴스를 틀던, 묵묵부답인 김석봉. 그는 마치 영혼이라도 빨린 것처럼 멍하니 스크린만을 쳐다보다가 문득, 입을 열었다.


“겨울 양.”


“응? 왜.”


“저기...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능.”


“물어보고 싶은 거? 뭔데?”


“겨울 양이랑 민성 쿤이랑 사귀게 된 거 관련해서인데- 읍!”


한겨울이 총알같이 김석봉의 입을 틀어막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뭐... 뭐야? 내가 권민성이랑 사귀어? 누가 그딴 소리를 해? 권민성이 그랬어?”


도리도리-


“그... 그럼?”


“명훈 쿤이 말해줬다능...”


“명훈이가?"


한겨울의 시선이 순간 정명훈 쪽으로 향했다. 리모컨을 만지고 있던 정명훈이 뭐가 대수냐는 듯한 표정을 짓는 가운데, 한겨울이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물었다.


“... 야. 명훈아. 니가... 나랑 권민성이라 사귄다고 했다고?”


“그렇다!”


“무... 무슨 근거로?”


“근거? 있다! 저저번주에 내 방에서 자다가 목말라서 깼는데, 둘이 소파에서 이야기하는 걸 우연히 들었지! 나는 겨울 양이 그렇게 애교가 많은 줄 처음 알았다!”


“내... 내가 그 때 뭐라 했는데?”


“분명 오늘은 할 것 도 없으니까 하루 종일 이렇게 쭉 껴안고 있자고- 읍!”


김석봉의 입을 틀어막던 손이, 순식간에 정명훈의 입으로 옮겨갔다. 한겨울은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실제로 그녀의 얼굴은 단순히 빨개진 수준이 아니라, 완전 푹 익은 토마토처럼 벌게졌다.


허나 그것도 잠시.


우우우웅-!


한겨울이 마나를 끌어모아, 검지 끝에 붉은 [빛]의 구체를 생성했다. 마치 레이저를 한 점에 응축해 놓은 것 같은 형태. 구체 내부에서 흐르는 마나를 따라, 거실에도 회오리 같은 바람이 몰아쳤다.


한겨울은 정명훈의 멱살을 잡고, [빛]의 구체를 그의 눈앞에다 들이밀며 추궁했다.


“야. 정명훈. 너 그거 김석봉 말고 누구누구한테 말했어.”


“아... 아직 석봉 군 말고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 확실해?”


“화... 확실하니까 이... 일단 이건 좀 치워 주는 게...”


“며... 명훈이 말이 맞다능. 일단 좀 진정하라능...”


덜덜 떠는 정명훈의 모습에, 한겨울이 일단 마나를 거두었다.


“니네 두 사람 다, 어디 가서 그 얘기 하고 다니면... 알지?”


두 사람이 딱따구리처럼 초고속으로 머리를 끄덕이는 모습에, 한숨을 푹 내쉬는 한겨울. 그녀가 풀썩하고 소파에 도로 앉으며 물었다.


“... 에휴. 그래서 아무튼 석봉이 넌 뭐가 궁금한 건데?”


“그... 겨울 양은 민성 군한테 어떤 식으로 고백받았냐능?”


“고백? 고백은 권민성이 아니라 내가 했는데?”


“...”


“근데 갑자기 왜? 석봉이 너 좋아하는 사람 있어?”


김석봉이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자, 한겨울이 옳다꾸나 박수를 짝 치며 캐물었다.


“와? 진짜? 왠지 석봉이 너 요즘 자주 멍때리더라! 그래서 누구? 우리 학교 애야?”


“그... 이니시움 생도는 아니고... 리듬게임에서 만난 [갤럭시넷] 친구라능...”


“그래? 어떤 사람인데?”


“그... [리듬 더 소닉] 티어는 브론즈고... P컨은 할 때마다 매번 실패하고... 뭉개기 자주 하고...”


“... 아니. 그딴 거 말고 어떤 사람이냐고. 성격이나 나이 같은 거 말야.”


“성격은... 음... 착하고, 욕 많이 하고... 나이는... 열 살 연상...”


“... 열 살 연상? 그러니까... 스물여섯 살?”


끄덕-


네 살, 여덟 살도 아니고 열 살 차이. 한겨울의 얼굴에 순간 복잡미묘한 감정이 스쳐지나갔지만.


‘뭐... 지가 좋다는데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이유는 없겠지.’


“그래. 뭐... 게임에서 만났으면, 실제로도 만나는 본 사이야?”


“아직 실제로는 한 번도 못 만나봤다능...”


“...”


“하... 하지만 다음 주에 만나기로 했다능! 올해 헌터 시험 붙은 기념으로...”


“응? 올해 합격자가 권민성이랑 예원이 언니 빼면... 그 레이첼 안이라는 여자였나? 너가 좋아한다는 사람이 그 사람이야?”


끄덕-


한겨울의 얼굴에 안쓰러운 감정이 살짝 비쳤지만, 그녀는 이내 평소처럼 표정관리를 한 뒤 김석봉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 뭐. 다... 좋은 경험이 될 수 있... 겠지? 그래서 뭐. 그 레이첼이란 사람이랑 어디서 만나기로 했는데?”


“행성 에브게니아에서의 일이 끝나는 대로, 이니시움으로 오기로 했다능.”


“에브게니아? 그 사람은 그 추운 덴 왜 갔대?”


“그... 이건 사실 비밀인데... 저번에 그레이트 오프닝 때, 헌터들 죽은 사건 수사한다고 안보부한테 협조 요청 받아서 갔다능...”


순간 한겨울의 얼굴이 싹 굳었다.


다름이 아니라, 김석봉이 이렇게 입이 싼 남자인지 몰랐기 때문.


왠지 자기와 권민성의 관계가 이니시움 전체에 퍼질지도 모르는 망상이, 그녀의 뇌를 지배했다.


---


[피그말리온]을 만나고부터 사흘. 어느덧 기습이 예정된 3월 14일을 하루만 남겨놓고 있는 가운데, 유아라가 약간 어두운 낯빛으로 홀로그램창의 한 지역을 가리켰다.


“내일은 그동안 모래 폭풍 때문에 보지 못했던 사막지역을 볼 거예요오...”


“네...”


“링링. 좀 피곤한데, 오늘은 일찍 잘까요오?”


끄덕-


“당신도... 잘 자요.”


딸깍-


그리 말하며 불을 끄는 유아라. 녀석은 조금 자신감을 잃은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 F-04구역을 중심으로 동쪽, 서쪽, 남쪽을 모두 뒤졌음에도 마나석 광산은커녕 모래알만한 마나석조차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튿날.


“좋아요오. 오늘은 꼭 찾는 거예요오. 링링!”


“네!”


좋은 꿈이라도 꾼 건지, 밤 늦게까지 뒤척거리던 유아라는 약간이나 활기를 되찾은 모습이었다.


“좋아요오. 일단 ANT-003부터 챙기고...”


녀석이 만반의 준비를 마쳐 유일한 희망인 F-04 구역 북쪽의 사막(물론 그곳에도 마나석 광산 따위 없다는 건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으로 출발하려던 그 때.


“그... 헌터님. 아가씨. 죄송한데 사막 지역은 조금... 안 가시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쪽엔 좀 큰 문제가 있어서...”


F-04 구역의 지부장이 그녀의 앞길을 막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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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2. 의미 (2) +15 22.02.18 1,361 58 12쪽
116 111. 의미 (1) +10 22.02.15 1,402 6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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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102. 히어로 (2) +7 22.01.15 1,531 7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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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100.5. 메리 크리스마스 (2) +6 22.01.08 1,558 84 6쪽
104 100. 메리 크리스마스 (1) +19 22.01.05 1,647 8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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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98. 알렉산드리아 (5) +8 21.12.31 1,705 8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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