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발톱 꽃1
꽃
프롤로그
1970년대 늦은 가을 어느 날,,서울 북촌의 한 한옥 앞 에서 초라한 여공차림의 젊은 아가씨가 얇은 옷을 여미며, 누군가를 초조히 기다리고 있다.
간혹 멍멍 짖는 강아지 소리만이 정적을 지우는 이곳은 대대로 양반들이 살았다는 북촌으로 오래 전 부터 뼈대 굵은 집안들이 모여 큰소리나 치는 곳이다.
이곳과 어울리지 안는 그녀의 차림을 힐끔 거리며 지나가는 사람들은 여공이 식모자리 알아보러 왔나보다라는 눈빛을 던지며 스쳐지나간다.
그렇게 늦은 가을의 추위와 사람의 눈총을 받으며 그 젊은 여공은 하염없이 그 사람을 기다렸다.
매발톱 꽃 1
김 종기는 오늘도 오복이를 찾아가는 길이다.
같은 동네에서 자라 같은 국어 책을 읽으며, 철수와 영이처럼 사이좋게 지내기를 꿈꾸다가 이제는 애인이 된 국민학교 동창이 장 오복인 것이다.
종기의 어머니는 그녀를 유독 싫어했는데, 싫어하는 이유가 눈 꼬리가 사납게 올라가서 팔자가 사나울 것 이다는 근본 없는 믿음에 기인한 것이라 종기는 어머니 몰래 오복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그는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집안이 어려서부터 부유했던 탓에 해방 이 되고 6.25전쟁까지 지나간 세월에도 학교까지 업어서 모시고 다니는 종놈도 있었던 것이고, 집안에는 언년이 부모가 가사일이며, 허드렛일을 모두 해주었기에 불편함을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어머니 진씨 부인은 이제 아들이 대학에 들어 갈 것이라는 희망은 포기하고, 하루바삐 장가를 가고, 직장을 다녀 장남 노릇 하기를 강권 하고 있지마는 그는 아무런 생각도 하기 싫고, 일도 하기 싫고, 오로지 오후 늦은 시간에는 오복이와 장냔질 이나 하고 밤에는 5촌 외종숙을 만나 요정집을 드나드는 것이 그의 낙으로, 아직 소년이던 16세에 5촌 외종숙과 같이 갔던 요정에서 그는 화장을 진하게 한 늙은 호스테스 백화에게 동정을 주었던 것이다.
그 이후부터는 앉으나 서나 여자 생각에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고, 감미로운 술 한 잔과 나긋한 여인들의 몸뚱이 생각만이 간절했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고등학교도 출석만 하였고 , 종놈 처럼 부리는 친구 학도가 숙제, 암기장, 학교에서 해야 할 당번일 까지 대신 해주지 않았다면 학교 졸업은 꿈도 꿀 수 없었을 것이다.
어머니 진씨 부인은 이런 사정을 자세히 알 수가 없어, 아들이 공부를 안하는 것에 대해 사춘기를 겪느냐 힘들어 한다고만 생각했던 것이고, 고등학교를 졸업 한 후에는 재수학원을 다니며, 외종숙과 같이 직장을 알아보거나 아비가 일찍 죽는 바람에 못 배운 남자로서의 일상도 배우라는 의미로 잘금잘금 돈을 찔러 주다보니 어느덧 다섯 해가 지나 양천에 있던 논마지기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하니,,요즘 어머니 진씨 부인은 장가를 가서 자손을 보아야 철이 든다며 상투를 틀라고 안달복달 이였고, 종기는 그런 어머니에게 큰마음 먹고 오복이와 혼인 하겠다고 했다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머니의 역정을 들어야 했다.
오복이의 집은 그의 집에서 한참 떨어진 뚝방길에 있었는데, 집 밖에서 부엉이 소리를 내면 그녀가 나오는 것이 약속이다.
하지만,, 오늘따라 그녀는 안 나오고 인상을 잔뜩 쓴 그녀의 오라비가 나와서,
“종기 니는 이제 우리 집에 오지 말거라.” 하고 화난 음성으로 말을 한다.
종기는 갑자기 오복의 오라비가 자신이 매일 오는 시간에 나타 난 것에도 놀란 데다가 화난 음성에 기가 팍 죽어 꾸벅 인사를 하며 말하였다.
“형님, 안녕하셨어요. 오복이 한 테 무슨 일이 있나요? 제가 오길 기다리신 것 같은데, 제가 오복이와 만나는 걸 알고 계셨었나 봅니다.”
그러자 오복의 오라비는 한심스럽다는 표정으로 혀를 쯧 차며,
“니 해본 거 내는 안 해 봤을까봐,,오복이는 다른 곳에 혼처가 정해졌으니 그리 알어..지금도 많이 늦었지. 가게나,,자네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을 것 아닌가?”
그 말을 들은 종기는 갑자기 머리가 어질하고 귀에서 삐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녀와 담 밑에서 나누었던 밀어와 달달한 키스가 생각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오복의 꿈은 자신과 혼인하여 아이 넷을 낳고, 식모 두고 손에 물 안 묻히고 사모님으로 사는 것이라고 항상 그에게 말을 하였고, 자신은 그녀의 꿈보다 더 큰 것을 이루어 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종기에게는 있었던 것이다.
또한, 어머니 진씨 부인은 자신이 장가를 안가며, 세월을 두고 설득을 하며는아들에게 마음 약한 어머니가 어느날 인가는 허락을 할 것이다라는 안이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매일 만나 서로의 속마음을 이야기 하고 또 그가 그녀를 위해 노래를 불러 주면, 그녀도 같이 흥얼거리다가 키스를 하곤 했던 것이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이장희-
나 그대에게 드릴 말 있네
오늘 밤 문득 드릴 말 있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터질 것 같은 이 내 사랑을
그댈 위해서라면
나는 못할 게 없네
별을 따다가 그대
두 손에 가득 드리리
나 그대에게 드릴 게 있네
오늘 밤 문득 드릴 게 있네
그댈 위해서라면
나는 못할 게 없네
별을 따다가 그대
두손에 가득 드리리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터질 것 같은 이 내 사랑을...
같이 노래를 흥얼거리는 오복의 얼굴을 본 종기는 그녀의 까무잡잡하고 앙칼지게 올라간 눈과 토끼처럼 살짝 튀어나온 입술에, 그 입술에 다시 또 키스를 하는 것이다.
그런 그녀가 자신과의 미래를 꿈꾸던 그녀가 이렇듯 허무하게 자신의 품에서 빠져나가고 만 것이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이별을 남을 통해 통보 받은 것이다.
오복을 만나서 진심을 듣지도 못 했다는 생각에 더 큰 울분이 올라오는 것이다.
오복이 자신을 배신 했을 리는 없고, 집안에서 억지로 시집을 보내는 것이리라,
생각한 종기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으며, 그저 그녀만이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된다는 그 사실만이 종기의 가슴을 후벼 판다.
이대로 집에 돌아가기에는 마음속에 끓어오르는 울화를 다스릴 수 없을 것이 분명한 지금, 어머니 진씨 부인을 보면 이 모든 것이 어머니 탓 같아서 집안에 집기를 모두 부셔야 속이 풀릴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럴 순 없다,,어머니 진씨 부인은 몸이 허약했던 것이다,
어찌되었든 더러운 기분을 풀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 종기는 길 아래로 난 갈림길에서 다시 집이 아닌 시내 쪽 으로 발길을 돌렸다.
따뜻한 봄기운에 정처 없이 걷다가 보니 YMCA건물 앞 까지 걸어 온 종기는 약속데로 외종숙을 만나러 요정을 가야 하나 아니면 친구들이 놀고 있을 고고장으로 갈까 고민하다가 친구들과 춤을 추며 땀을 빼다보면 아무런 생각 없이 현실을 잊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고고장인 ‘닐바라’로 향했다.
고고장 ‘닐바라’
종기의 친구들은 대학생들로 이곳에서는 선망의 대상이다.
그는 너무 어려서부터 여자를 알게 되고 또 여자를 좋아하는 바람에 공부를 접어야 했지만, 그의 친구들은 반듯한 집안 자제들 답게 서울에서도 이름있는 대학교 학생들 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군대를 가기 위해 휴학 중이었고, 그의 친구들은 그를 부러워했다.
아버지 없는 외아들로 군대를 면제 받은 것이다.
고고장은 으례이 그랬듯이 ‘The Dooleys의 Wanted’가 흘러 나오고 있었고, 친구들은 담배연기를 뿜으며, 종기를 반겼다.
“니가 웬일이냐? 오복이하고 꽁냥거릴 시간에 이곳을 다오고.”
기철이의 말에 친구들은 낄낄 거리며, 한두마디 씩 음담패설을 던진다.
종기는 기철의 말에 어두운 얼굴로 한숨을 푹 쉬며 답변했다.
“물건너 갔어.”
종기에 말에 현석은 깜짝 놀라며,
“뭐? 무어라, 아니 왜?”
“혼약처가 정해져 곧 혼인을 한다고 하네. 하~”
종기가 다시 또 크게 한숨을 쉬며 말을 하자 친구인 만기가,
“허긴,여자 나이로 스물하나면 적지 않은 나이긴 하네. 이제 결혼할 나이가 꽉 차긴 했어.”
그 말끝에 종기가 왈칵 컵에 맥주를 따르며 쭉 들이켰다, 목을 타고 내려가는 맥주의 시원하고 깔깔한 맛에 답답한 가슴이 어느정도 뚫리는 것을 느낀 종기는 맥주를 계속 들이키기 시작했다.
계속 맥주를 들이키며 어두운 종기의 얼굴을 본 가장 친한 동무인 기철이,
“오늘 종기 기분 좀 풀어주자고, 저기 여자애들 네명 어떠냐?”
기철의 말에 다들 두리번 거리다 한쪽에서 어색하게 술을 마시며 눈을 둥그렇게 뜨고 춤추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촌년들이 보였다.
“순진해 보이는게 조금만 작업걸면 넘어올 것 같은데.”
촌년들을 보며, 현석이 말을 하였다.
그러자 만기가 말을 받았다.
“종기 너가 인물이 우리 중에 가장 낫으니 니가 가서 말 좀 붙여봐라.”
종기는 시큰둥하게 담배 연기를 뿜으며 말을 하였다.
“오늘 기분이 안좋다, 여자들 하고 말 붙일 기분 아니다.”
기철은 종기 쪽으로 바짝 얼굴을 들이밀며,
“여자문제는 여자로 풀어야 하는 법이야. 저기 얼굴 하얗고 조그만한 애, 귀엽게 생기지 안았냐?”
종기가 돌아보니 촌스러운 에이라인 스커트에 꼴에 종로통 온다고 블라우스 입고 머리를 부풀리고 있거나 판탈롱을 입고 스카프를 맨게 영 어색해 보이는 딱 봐도 어려보이는 여자애 네명이 어울리지 안는 진한 화장을 하고 앉아 있는게 보였다.
그중에서도 작은 키에 하얀 얼굴이 앳되어 보이는 아이가 눈에 들어온다.
친구들의 끊임없는 부추김에,
“그래, 이 형님이 여자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보여주지, 잘보고 배워라 자식들아.”
종기는 담배를 꼬나물고,
아가씨들 곁에 가서 의자에 털썩 앉아 아무나의 맥주잔을 들어 시원하게 들이켜며, 신성일을 닮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아가씨들 오늘 여기 처음 왔지?”
젊은 처녀들은 순간 놀라다가 잘 생기고 말끔한 청년의 모습에 방심이 흔들리는 걸 느꼈다.
영화관에서 봤던 신성일과 비슷하게 하얗고 짙은 눈썹에 역삼각형의 얼굴과 올빽으로 기름을 발라 넘긴 머리가 보이고, 170cm가 넘는 훤칠한 키의 젊은 청년은 뽀얀게 힘든 일 이라고는 한 번도 안 해 본 사람 처럼 보이는 게 길고 하얀 손가락에 담배를 들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대범한 말자가 먼저 말을 받았다.
"엄머 뭐래,,시방 우리 헌티 말건 거래유."
종기는 속으로 ,
‘하~이 아가씨 사투리 장난이 아니네, 견적서 나왔으니 느끼하지 안으면서도 적절한 답말을 생각해 날려보자.’
“생기발랄하고 아름다운 꽃들이 있는데, 나비가 찾아드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이보시게 아름다운 꽃님들,,저기 우리 친구들과 함께 춤추고 맥주 한 잔 씩 하면서 청춘을 논해보자고.“
어렵지 안 게 아가씨들과 합석하게 된 종기와 친구들은 그녀들이 학생도 아니고 집도 서울이 아닌 시골 출신에 돈 벌러 서울에 상경한지 수 개월 밖에 안 된 생 무지렁이라는 사실에 실컷 재미를 볼 생각으로 눈들을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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